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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일기가 고르지 못하더니 입춘을 지난 어제 오늘부터는 추위도 많이 물러가고 완연히 봄이 찾아든 듯 햇볕이 따스한 게 마음조차 한결 풀리는 성합니다. 적조했던 그 사이 몸소 안녕하시고 부인께서와 두 애기네도 두루 연고는 없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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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弟)는 그 뒤로 아직 별탈이 없이 권솔(眷率)과 더불어 편히 지내고 있으면서 겸하여 변화는 없으나마 그날 그날을 일에 골몰하며 과히 무료치 않게 지내고 있읍니다. 그만해도 불행이 없는 만큼 다행이라고 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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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여러 달이나 소조(疎阻)했던 문안을 드리자던 차인데 오늘은 오후의 햇살이 어떻게 따뜻하든지 가인(家人)이 집 뒤 밭엘 나가더니 벌써 움이 돋은 달래를 캐가지고 와서 가난한 저녁상을 입맛 돋게 해주어 문득 형을 생각하고는 불시로 이렇듯 지필을 대하게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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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에는 어떠실는지요. 그동안 누차 벼르시던 이곳 송도 유람 말씀입니다. 소문에 비하면 그다지 뛰어난 고적이나 명승은 없어도 박연과 공민왕릉(恭愍王陵) 이 두 가지만은 한번 보시기에 족한 바가 없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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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박연……하더라도 가을의 단풍철이 더 절승(絶勝)이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첫봄 진달래꽃이 한창 어우러질 무렵을 택하여 도보로 ‘장성백이’ 란 곳에서부터 그 유수한 협곡을 석간수 옥 같은 시내를 끼고 올라가며 만산에 피어 흐드러진 두견화를 완상하기란 결코 흔히 즐길 수 있는 정취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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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앞서 가는 역로엔 화담(花潭)이 놀던 서사정(逝斯亭)이 또한 볼 만 하고 다시 귀로는 정기의 자동차를 이용하되 중간에 잠시 내려 공민왕릉의 그 찬란한 여조미술을 감상할 수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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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하순이나 사월 상순 그 무렵이 꼭 시기가 좋겠읍니다. 부인과 애기네서껀 동도(同道)하여 오시면 제역(弟亦) 가족 데리고 두 가족이 더불어 그렇듯 승지고적을 즐기도록 잘 안내해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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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잊지 마시고 유념하셨다가 올봄엘랑 기회를 놓치지 마시도록…… 물론 바쁘신 터이지만. 그러나 언제 한가하여 유유히 승지 강산을 찾아 놀려다가는 형이나 내가 백발이 흩날릴 때라야 하겠으니 그 어디 조만早晩)이 있겠읍 니까. 회신은 서서히 틈 보아서 주시고 내내 안녕하시기 축수하며 우선 이만 끊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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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 2월 8일 채만식 재배 은중기 형(殷仲基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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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思想[문학사상] 197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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