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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협의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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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7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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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협의 시
 
 
2
전원풍경을 그린 천연색 연화를 보고 나오니 시골로 가고 싶은 생각이 부쩍 동해진다. 아무 때 보아도 좋은 것은 초목과 시냇물의 자태이다. 사람이 반세기를 살아도 한 세기를 산대도 이런 것에는 물릴 날이 없으리라. 초목과 시냇물과 산과 들과 바다와 ― 언제나 친하고 정답게 바라보이는 것이다. 싫증나는 것은 사랑의 모임이지 이런 자연물은 아니다.
 
3
지난해에는 대동강에서 철벅거리다가 만주를 다녀오느라고 그리운 산과 바다를 찾지 못했으나 올에는 반드시 일년 동안 묵은 정을 풀어 보려고 마음먹고 있다. 몸도 무던히는 상한 것이요, 완전한 휴양의 한 여름을 가지고 싶은 까닭도 있다. 시골서는 벌써 한 주일 전에 편지가 와서 용현(龍峴)에 아직도 서양인 별장이 남았으니 한 채를 예약해 두라느냐는 것이나 별장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니 음식의 기관이 마땅한지 어떤지 해서 아직도 대답을 주저하고 있다. 편지에는 경비 일절 염려하지 말고 뚝 떠나 오라는 것이다. 아마도 가게 될 듯도 하고 적어도 주을(朱乙)에서라도 몇 주일을 묵을 생각이다.
 
4
주을과 용현은 바로 인접한 곳으로 산과 바다를 함께 얻을 수 있는 알맞은 피서지이다. 두 곳은 기차로 바로 일 역구(驛區)의 거리밖에는 안 된다. 경성(鏡城)과 독진해변과도 가깝다. 회답을 주저하고 있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그곳으로 피서를 떠나기 전에 올에도 또 한 바퀴 만주를 돌아올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이다. 작년에는 수박의 겉만을 핥고 돌아왔으나 올에는 좀더 자세히 신경(新京), 하얼빈 등지를 보고 오려는 것이다.
 
5
외래자에게 그렇게 만만히 참된 자태를 헤쳐 보일 것 같지는 않은 성격을 띠인 곳이기는 하나 거듭 걸어 보노라면 그 무엇에 부딪칠 수 있으리라고도 믿는다.
 
6
신경이니 하얼빈이니가 그다지 신선한 거리가 아니다. 각각 아름다운 일면의 풍모를 가지고 있으나 전체적 인상은 지저분하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씨가 너무 많고 따라서 천하게 보인다. 입을 것 못 입고 먹을 것 못 먹고 거리에서 와글와글 끓는 꼴은 그대로 개미 떼나 파리 떼로 보이지 그 이상 귀하게도 신령스럽게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떼가 한 무더기 뭉턱 그 자리로 감해 버린대도 눈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다. 때로 인간을 천하게 보고 멸시해 봄도 뜻없는 일은 아니다. 만주 여행의 소득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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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시를 원하면서도 한편 무더운 산문 속에 잠겨 보려 함은 웬일일까. 시심(詩心)과 산문정신과는 바로 아래 윗 번지에 사는 가장 가까운 일가인가. 마음속에는 시인과 산문가가 함께 살고 있는 것인가. 만주의 도회에서 얻은 얼크러지고 더럽혀진 산문의 페이지를 피서지 그늘에서 씻어 버리고 헤워 버릴 것이다. 시를 생각하므로 산문을 한층 보람있게 할 것이다.
 
8
지금 내 마음속에 오르는 것은 사람의 웅성거리는 도회의 골짜기와 백양(白楊)이 나부끼는 산협의 골짜기와의 겹쳐진 풍경이다. 둘 다 가장 자연스럽게 한꺼번에 떠오른다. 두 가지가 아주 다른 것임으로서 내 마음이 괴로울 것도 없다. 도리(道裡)의 아편굴이 얼마나 무더울 것과 같이 동해의 물결이 얼마나 푸르며 산협의 백화(白樺)와 백양의 잔 피 깨끗할 것인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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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40. 7. 30
【원문】산협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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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 산협의 시 [제목]
 
  이효석(李孝石)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40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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