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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멧조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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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9
채만식
1
가을의 멧조각
 
 
2
가붓한 바람이 지날 때마다 바시시하고 볏목들이 물결을 친다. 자라다 말고 열매를 맺은 벼일망정 제철이라고 노릇노릇한 목이 고분고분 숙어졌다.
 
3
재재거리고 날아드는 참세떼들 보고 새막에 앉은 허연 영감이 생철통을 달아맨 새끼줄을 왈그렁덜그렁 잡아흔들며 “우이 횟” 소리를 친다.
 
4
구추(九秋)의 한적한 소리가 노인의 가슴에서 먼저 우러나온다. 논 귀퉁이에 섰는 허수아비는 가난한 철한자다.
 
5
밭두덩 원두막은 3년 빈 셋집 같고 원두밭에는 시든 참외 덩굴과 콩 포기만 우북하다.
 
6
석양을 넘다 만 햇볕이 등덜미를 바로 쬔다. 더도 덜도 아니고 알맞게 야왼 햇밭이 당길성있게 따스하다.
 
7
유유하게 내리뻗친 산기슭이 들까지 다다른 곳에 낡은 초가가 요리조리 두세 채 놓여 있다-큰마을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놓고 간 것처럼.-
 
8
물동이를 재주 부리듯이 머리에 이고 우물길을 가는 여인네의 등 뒤에서 여름내 새까맣게 햇빛에 그을린 발가벗은 어린놈이 발을 동동 구르며 엄마를 부르고 쫓아온다.
 
9
이상한 듯이 구경을 하며 따라오던 흰둥개가 낯선 나를 보고 콩콩 짖으며 달아난다.
 
10
산기슭을 돌아 얕은 고개를 넘어가니 공동묘지가 나선다. 멧등마다 솜같이 흰 갈꽃이 드북드북 피어 바람이 부는 대로 가지런히 휘날리고 있다.
 
11
공동묘지는 볼 때마다 이사해올 집을 미리 둘러보는 듯하다.
 
12
높은 고개를 넘자니 등에 땀이 밴다.
 
13
철도 나지 아니한 초동(樵童)애들이 푸나무를 하면서 육자배기를 주고받는다.
 
14
“사람이 살며는 멫백년이나 사드란 말이냐. 죽음에 들어 노소가 있나. 살어 생전이나 내 맘대로만 놀거나……”
 
15
고개 위에 올라가 우거진 풀밭에 누우니 약오른 풀포기에서 물큰한 향내가 온몸에 배어든다.
 
16
손 가까이 하얀 들국화가 웃지도 않고 고달프게 피어 있다. 청초한 풀이 소복한 여인 같다.
 
17
한 송이 잡아끊느라니 아프다는 듯이 바르르 떤다.
 
18
몇만 길이나 될는지 까맣게 높은 하늘은 벌이라도 보일 듯이 맑고 푸르다.
 
19
밑도 없고 끝도 없고 차례도 없는 공상을 그 높은 하늘 복판에 띄워 놓고 이리저리 달리느라니 일어날 생각이 나지도 아니한다.
 
20
가을 해는 갈길이 바쁘다. 앞으로 보이는 넓은 들판을 조그마한 이 산 그늘이 거진 덮어버렸다.
 
21
들판으로 몰려나갔던 참새들이 무디무디 떼를 지어 황급히 날아들고 산 밑 오막살이에서는 저녁 연기가 곤소로니 솟아오른다. (묵은 기억에서)
【원문】가을의 멧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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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의 멧조각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30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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