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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송판 조각을 가지고 내가 손수 아무렇게나 못질해 만든 것이니 무릇 운치는 고사하고 체재(體裁)랄 것을 운위하기조차 면목이 없는 저 서탁(書卓)과 대조할 때에 그 몰풍취한 서탁과는 신분상 심히 상거(相距)가 머언 ‘양반족속’이랄 수 있는 고려자기 두 개가 역시 가멸치 못한 다른 여러가지 문구들과 더불어 천연스러이 동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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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그렇다고 하여 그 두 점의 고려자기라는 게 그리 진귀한 일품(逸品)이더냐 하면 실상은 그렇지도 못하고 겨우 가짜를 면한 진품의 고기(古器)일 따름이지 도저히 그 고귀한 미술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저렇듯 모양새 흉한 서탁과 가난한 문구들 틈에서나 가만히 ‘양반 행세’를 할 채비이지 달리 얻다가 내놀 자랑거리는 되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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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털이로 쓰는 중길의 접시가 한 개 그리고 또 하나는 옛날 그 시절에 여인네들이 머릿기름을 담아두고 썼다는 조그마한 단지로 자못 연연한 정서가 어렸을 성도 싶은 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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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는 그리하여 미상불 여인네의 그렇듯 곱상스런 소용임직하여 한손에 쥔다치면 반이나 쌔게 조그만 놈이 춤은 팡파짐하니 본치가 이쁘장하고, 빛깔도 청자는 물론 아니지만 담록색으로 맑고 제법 윤이 나서 두루 아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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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랭이와 빨갱이의 두 가지 잉크병 사이에 나란히 놓아두고서‘만년필 꽂이’로 쓰는데 일을 하다 말고 담배를 붙이든지 하느라고 잠깐잠깐 손을 쉬게 될 때면 쥐고 쓰던 만년필을 그대로 갖다가 단지의 주둥이에 꽂는다 한다치면 그 주둥이가 마침으로 좁고 묘하게 생겨서 만년필은 촉만 쏘옥 꽂히고는 꼿꼿이 그냥 서서 있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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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편리하고 그게 재롱을 부리는 것 같아 재미가 솟는다. 하기야 편리하기로 말하면 거리의 문구점에서 사는 두어푼 짜리의 제물‘철필꽂이’에 어찌 따를꼬마는 편리라는 건‘운치있는 편리’를 의미함이어서 항용 실용적인 편리와는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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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바로 세전(歲前) 호남(湖南)까지 갔던 길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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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막 경향(京鄕)을 물론하고 부쩍 왕성해진 고대미술의 수집열로 광주에선 고서화(古書畫)가 한참인 걸 보았는데, 회로에 정읍(井邑)의 은군(殷君)에겔 들렀더니 거기서는 또 고자기가 마침 득세를 하여 은군도 직업은 소위 망중한(忙中閑)의 의사이겠다, 잔돈푼 아쉽지 않겠다 한목 재미를 붙인 모양으로 이것저것 한 십여 점이나 모아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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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골동품 수집꾼이면 으례 하는 버릇으로 이군이 잡다한 그 골동들을 주욱 모두 꺼내다 놓고는 이건 여조(麗朝) 것인데 중품밖엔 안되고, 이건 본조(本朝) 치라도 상길이요, 이건 천하의 진짜 진품이요, 이건 가짜지만 섬뻑 속기가 쉽고…… 이렇게 설명을 해가면서 구경을 시켜주는 것이었었다. 그러나 내라는 사람이 실상 고자기의 본고장인 송도에 와서 사오 년을 살았으되 그 고려자기란 대체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를 가리켜 좋다고 하는 것인 줄조차도 모르는 판무식꾼이고 보니, 별안간 흥미가 날 턱이 없는 것이어서 결국 장 님 단청 구경 푼수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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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침 그때도 한편으로 급한 원고 하나를 앉아서 초하고 있던 참인데 그러자 책상머리에 벌여논 여러 개의 그 고기들 가운데 조그마한 단지가 한 놈 목이 바싹 졸아들어 주둥이가 좁디좁은 게 문득 그럴 성하길래 장난삼아 손에 쥐고 있던 만년필을 그대로 갖다가 꽂아보았다. 했더니 고대 여인네의 그 애틋한 기름단지는 어느 덧 오백 년 넘은 오랜 잠이 깨어 졸지에 수염이 시꺼먼 외간남자들 앞에서 어인‘만년필꽂이로 인도환생’을 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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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이 깊은 규방의 장제구 틈에서 고이 내외를 하며 지나던 애련한 기름단지에 가서 만약 한 가닥의 영혼이 깃들어 있었다고 한다면, 그는 작히 기색을 하게시리 새로운 현실이 놀라왔으려니…… 또한 사내들이 수줍어 어쩔 줄을 몰라 했으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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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상을 하고 앉았을 만큼 나는 그때에 임시로 로맨티스트가 되어 웃는 줄도 모르게 혼자서 빙그레니 웃고 있었다. 그 끝에 나는 생각했다. 로맨티즘이라는 것도 저 혼자서만 즐길 때엔 노상 괄세하지 말아도 좋을 성부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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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은군도 그 ‘운치있는 편리’를 연방 추찬(推讚)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어떤 것이든지 한 가지 주고 싶던 참이더니 십상 잘되었다면서 다시 받침으로 오목접시까지 한 개를 더 껴서 손수 잘 꾸려 대롱대롱 비끄러래 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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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는 그런데 갓이 더러 닳고 이지러지고 하기는 했어도 품질이 단지보다 훨씬 나았던 것을 내가 침대차에서 실수를 하여 마룻바닥에 떨어트려 그만 산산박살을 내고 말았었다. 못내 섭섭했고 마음먹고서 준은군한테 시방까지도 두고두고 미안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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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의 파편은 그래서 중로에 문장사의 휴지통에다가 버렸고 단지만은 무사히 가지고 돌아와서 이내 그‘만년필꽂이’로 놓아두고 쓰는 중이고, 그게 바로 저기 세쌍동이처럼 파랭이 빨갱이의 잉크병과 더불어 의좋게 가지런히 놓였는 그 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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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저 대형의 양(洋)접시에다가 받쳐놓고 담배재털이로 쓰는 접시는 그 뒤에 수영(水泳)군이 가져다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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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재털이를 연거푸 몇번 깨뜨리고는 목제(木製)를 놓았더니 구들이 더워서 절로 터지고 할 수 없이 최근엔 마루 밑에 굴러다니는 생철접시를 주워다가 대용품 여행(勵行)을 실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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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철접시의 재털이가 그런데 내 거처의 모든 어설픈 풍조 가운데서도 특히 더 모양이 흉해 보였던지 놀러오는족족 수영군이 그걸 바라다 보고는 혼자 벌씸 웃고 바라다보고는 빙긋이 웃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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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하루는 내가 고기(古器)를 그렇게‘만년필꽂이’로 실용에 이용하는 것을 대단히 재미있어 하더니, 이튿날 바로 이왕이면 재털이도 하나 이걸로……라면서 신문지에 싸가지고 온 예의 접시를 펴놓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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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깔은 암갈색으로 거무튀튀하고 되바라지게 본이 밉고 겸하여 유약을 칠하지 않아서 막상 고려자기 치고는 맨 쌍놈인 듯싶었다. 그러나 요즘 복선(複線)공사로 산을 무너트리다가 낡은 고총에서 다른 여러가지 진품과 더불어 나온 것이라고 하니 쌍놈일값에 진짜의 진품인 것만은 안심할 수가 있었고, 그 단지 진품의 고기인 것만으로 나는 족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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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나는 이곳 송도로 오던 바로 이듬해 봄 매일같이 집 근처의 용수산(龍峀山) 기슭에서 두렁밭을 거닐다간 고려자기(인 듯싶은 사기의) 파편을 주워 가지고 그 고기 조각에 어리었을 정서를 자유껏 꾸미어 상상하면서 홀로 즐기곤 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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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그때에 비하면 시방은 아무려나 진품의 고려 고자기를 옹근 채 서탁 위에 놓고 보게끔 되었으니 훨씬 부자스럽다고는 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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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상 말하면 나는 우연히 그 두 개의 가난한 고기가 다만 친구들의 호의로 나의 신변에 놓여졌을 따름이지, 그때나 시방이나 조금치라도 고미술에 대한 나의 흥미랄지 또는 동경이랄 것이 적극적으로 성장이 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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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왈‘마음의 여유’가 없다. 또 생활도 그러한 낭비를 비집을 여유가 없다. 뿐만 아니라 잘못 골몰하다가 너무 거기에 몰두하여 인간이 변해버릴까 저어해서 의식적으로 경계하는 무엇도 없지가 않다. 섣불리 현재가 울적하고 무위하여서 앞으로 뚫고 나가는 대신 안이한 과거에다가 산무덤을 파든지 하게 된다면 그에서 슬픈 노릇은 없을 터이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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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기 고전(古典)을 갖다가 바둑이나 장기처럼 순전한 소한(消閑)에 이용한다거나 또는 요샛날 벼락부자들이 고전이나 고미술에 대한 교양도 없이 멋도 모르고서 다만 호사거리로 거둬모으는 고전이며 고미술의 수집열에 또는 감상에 부질없이 가담한대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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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역시 방금도 그렇게 한 것처럼 일에 잠착했던 사이사이 저단지의 주둥이에다가 만년필을 꽂아놓고 잠깐 담배를 한대 피우는 동안 보잘것은 없으나마 연조(年祚)만은 오랜 이 두 개의 고기에 가서 면면히 어리었을 어떤 집안의 혹은 어떤 젊은 여인의 로맨스를 마음껏 자유로 꾸미어 상상을 하면서 조그마한 흥을 삼고 거기까지를 나는 한계(限界)하되 더는 넘고 싶은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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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물론 고전이나 고미술을 즐기는 정도(正道)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의 이 무욕(無慾)의 태도가 무슨 죄있는 사도(邪道)는 또한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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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新報[매일신보] 1940. 3. 2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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