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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방찬(茶房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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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7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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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 房 讚[다방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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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화문잡지(和文雜誌)에서「근일끽다점풍경(近日喫茶店風景)」이라고 제한 다음과 같은 풍자만화를 본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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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가 놓이고 액(額)이 걸리고 열대식물의 분(盆)이 있고 한 것이 배경이요, 그 앞으로 세트가 한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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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卓)에는 빈 찻잔과 설탕단지와 재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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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서 걸상에는, 탁 밑에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 넣고, 걸상 앉을 개 위에 가 무릎을 단정히 꿇고 두 손을 마주잡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두 눈을 내려감고 한 인물이 조용히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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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蛇足) 같으나 원화에 있는 설명을 마저 소개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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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꽤 버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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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하나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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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만화를 구태여 인용하지 않더라도 진작부터 이 두레에도 첨구거사(尖口居士)들이 다방인종을 신랄하게 풍자한 썩 재미있는 어휘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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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壁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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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만 마신 찻잔에서는 김도 오르지 않고 재털이에는 꽁초만 그득하니 벌써 두 시간이 되었는지 세 시간이 되었는지, 그 두 시간 혹은 세 시간을 벽 밑의 세트에 가서 그린 듯 붙박이로 앉아 있는 포즈가 왜 아니 그림 같을꼬! 벽화란 참으로 천금값이 나가는 한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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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특히 온종일 다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물만 먹는대서 금붕어라고도 한다. 역시 재치꾼이 아니고는 지어내기 어려운 명담(名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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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다방인종이 일부 사람에게 (가령 독한 가시는 없으나마) 조롱을 받는 것이 사실은 사실이나 그러한 조롱을 때우고도 넉넉 남음이 있을 만큼 다방은 전당국과 아울러 현대인에게 다시 없이 고마운 물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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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와 몸이 피로하기 쉬운 우리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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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로부터 풀려나오는 길이라도 좋다. 볼일로 줄창 돌아다니던 길이라도 좋다. 혹은 아스팔트를 거닐러 나왔던 길이거나 영화를 보고 나오던 길이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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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뭏든지 피로를 느낄 때, 길 옆 거기 어디 다방을 찾아 들어서면 우선 푹신한 쿠션이 있어서 앉을 자리가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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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에 따라 향긋한 홍차든지 쌉쌀한 커피든지 또는 갈증에 좋은 청량음료든지, 이편이 청하는 대로 대령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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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이 구비하다. 웬만한 것이면 이편이 귀가 서툴러 못 알아들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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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자리가 편안하겠다, 마시는 것이 흥분제였다, 음악이 아름답겠다. 차를 마신 다음에는 담배라도 붙여 물고 유유히 2,30분이고 앉아 있노라면 피로는 자연 걷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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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만한 설비를 제가끔 제 가정에다가 해놓고 지내자고 해보아라. 가뜩이나 살림살이가 군색한 조선의 중류 사람으로 땅띔도 못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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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살자니, 펀둥펀둥 놀고 먹는 사람이 아니고는 제각기 제 깜냥에 자작소롬한 용무가 많고, 자주 사람을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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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일일이 찾아다니고 제 집에서 기다려서 만나보고 하자면 여간만 불편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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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다방이면 으례 중심지대에 있겠다, 항용 다른 볼일과 겸서서 나올 수도 있고 지날길에 잠시 들를 수도 있다. 더구나 전화가 있으니 편리하다. 웬만한 회담이면, 그러므로 안성마춤인 것이 다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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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의식적으로 피로를 쉰다거나 더우기 다방을 사랑방으로 이용하는 그런 공리적인 타산은 말고라도, 혹시 겨울의 모진 추위에 몸을 웅숭크리고 아스팔트 위로 종종걸음을 치다가 문득 눈에 띄는 대로 노방의 다방문을 밀치고 들어간다고 하자. 활짝 단 가스난로 가까이 푸근한 쿠션에 걸아앉아, 잘 끊은 커피 한잔을 따끈하게 마시면서 아무것이고 그때 마침 건 명곡 한 곡조를 듣는 그 안일과 그 맛이란 역시 도회인만이 누릴 수 있는 하나의 낙인 것이요, 그것을 모르고 도시에 살다니, 그는 분명 촌맹(村氓)이며 가련한 전세기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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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가 쉬는 조용한 동안에는 그 무성한 열대식물과 아울러 묘하게 생긴 소녀 웨이터를 완상하는 것도 또한 흥이 있고 ⎯ 고요히 담배 연기를 뿜어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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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겨울이어서 그러하고 또 여름은 여름대로 더운 숨길을 내쉬면서 들어서면 얼음기둥까지는 못 갔어도 전기풍선이 땀을 들여 주는데 한 컵의 탄산수가 족히 목을 축여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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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다방이란 두루두루 편하고 긴하고 그래서 현대 도시인에게는 끔찍이 고마운 물건이기는 한데, 그러나 시방 서울 하면 서울의 다방이 실질에 있어서 그만한 만족을 주느냐 하면 그건 섭섭하나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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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서울 안의 그 숱해 많은 다방치고, 다방의 차로는 중심인 커피 한 잔을 제 맛이 나게 끓여주는 집이 드물다. ‘명과(明菓)’ 나 ‘금강산(金剛山)’ 에서는 그래도 제법 커피다운 커피를 대접하지만 거기야 차를 파는 가게지 다방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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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힝기레밍기레한 게 맹물 쇰직한 것을 명색 커피라고 마시고 지내는 오늘날의 다방 인종이 내가 나를 두고 생각해도 가엾은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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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음악인데, 남촌의 다방들은 대개 명곡들을 많이 갖추어 두고 걸기도 조백이 있이 걸어 들을 만하지만, 북촌 다방에를 들어서면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발악을 하는 그놈 재즈에, 신경이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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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至於) 북촌 다방 인종의 품에 이르러서는 오늘 조선의 가장 부끄러움의 하나를 여실히 노출시킨 감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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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양복점의 진열창에서 뛰어나온 듯싶은 말쑥말쑥한 서방님네들이다. 그들은 다방마다 패패 들어앉아서 떠들고 지껄이고 펄럭거리고 하품을 하고 몸을 비비 꼬고, 그러다가는 다음 다방으로 옮아 앉고. 이 짓으로 겨우 하루 해를 지운다. 밤이 늦어서는 취해가지고 와서 웨이터와 희악질을 하고 계집에게서 오는 전화통에 매달려 떨어질 줄을 모른다. 그런데 잔상히 못난 것은, 그들이 남촌 다방에를 가서는 감히 씻은듯이 점잖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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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로 옮아 앉은 후로 가끔 일 끝에 머리가 고단하고 하면 다방의 진한 커피 한잔이 그립곤 하더니 작년 가을부터 하나가 생기기는 생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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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우선 반가와했고, 생겨난 뒤에는 마침 명곡도 몇 장있고 하여 쓸쓸히 다니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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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차맛은 족히 논할 것까지도 없었으나 죽느니 까물치는 게 낫다는 푼수로 마지못해 다니곤 했는데, 근자에는 낮이면 양식꾼과 밤이면 술꾼 등쌀에 통히 발을 끊다시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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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만 해도 시골이어서 그런 허물 저런 허물 없고, 또 순전히 차만 해가지고는 유지가 안되겠으니 양식도 팔고 정종도 팔고 하기는 하겠지만, 서울 바닥에도 그러한 인찌끼 다방이 있는 건 적잖이 민망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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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양주는 곁들여 팔곤 하니 흥삼아 한편 구석에서 남이 볼까 조심하면서 한두 잔 마신다거나 또 레몬 스커쉬에 위스키 한잔쯤 부어서 마시는 것 쯤 그다지 흉한 짓은 아니겠지만, 정종 도꾸리가 삼엄한 탁자 사이에 간장과 스루메 접시를 놓고 앉아 취흥이 자못 높아 소녀 웨이터더러 술을 치라고 꾸중꾸중 하는 광경은 실로 송구스러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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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남은 조용히 앉아 차로 더불어 음악을 즐기는데, 칼과 갈퀴를 휘두르면서 째끔째끔‘난찌’라고 하는 괴물과 씨름을 하기에 정신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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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당이거든 아예 이러한 다방의 신성을 모독하는 만행을 삼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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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명치정의 다방에서 김문집(金文輯)이 도테라 차림으로 원고를 쓰고 있는 것을 보았거니와, 요샛날 다방에서 원고를 쓰자면 웬만한 강심한(强心漢)이 아니고는 못할 짓이겠지만, 적이나 서울에도 한 곳쯤 원고쓰는 사람이 전문으로 이용할 수 있게 풍도가 짼 다방이 생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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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다방답게 다방의 운치가 있으면서 그러나 한인은 받지 않기로, 또 샌님네도 사절하기로 하고 단지 독서와 집필을 하는 사람에게만 자리를 빌려주는, 그러니까 다방이요 공동서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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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천정(長谷川町)에 모 다방이 한때는 문단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구보씨(仇甫氏)는 거기서 원고도 쓰고 했던 모양인데, 요즘 주인이 갈리고 나서는 그렇지는 않은 성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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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잔소리를 늘어놓자면 한이 없겠는데, 암만 써본댔자 편집자가 주문한 ‘다방의 현대성의 탐구’라는 어마어마한 제에 알맞은 소리는 나올 것 같지도 않고, 이 잡설로써 끝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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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光[조광] 1939년 7월호>
【원문】다방찬(茶房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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