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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10.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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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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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웅변부(校內雄辯部)의 월례회가 끝나고 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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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가 끝나자 여럿은 이내 다 흩어져 갔고, 한 6,7인이나가 그대로 처져 있었다. 웅변부를 리드하는, 그리고 나아가서는 교내에서 저희들의 이른바 진보적인 세력을 리드한다는 윤상수, 문태석, 고영달 이런 5,6학년 중심의 맨 말썽꾼이 일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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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들은 이렇게 얼렸다. 웅변부의 집회실로 정하여진 이 5학년 교실에서, 혹은 그들 가운데 누구의 집이나 하숙에서 반드시 약속이나 지정이 있는 것이 아니면서도 저절로 그렇게 얼리곤 하던 것이었었다. 얼려서는 제법 정론(政論)을 하면서 비판하고 방담(放談)하고, 학교 당국을 공격하고 비방하고, 선생 누구를 그렇게 하고, 간혹 ‘연극’ 이라는 것도 하고 하다가는 필경 온갖 잡담을 하고, 그리고 마지막 가서는 빵 먹을 궁리를 어떻게 해서든 마련해 내고 하기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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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학교 당국에 대한 공격이 유난히 심하였었다. 금년은 교내 웅변대회를 허락치 않기로 되었다는 학교 당국의 조치가 오늘 열린 월례회에서 드디어 발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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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변부가 비로소 생긴 것이 작년이었고, 따라서 교내 웅변대회를 열기도 작년이 처음인데, 그 처음에서 바로 교내 웅변대회 같은 것을 한만히 열게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학교 당국은 절절히 깨달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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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녀석마다 개개일자로, 남조선의 현상에 대한 선동적인 폭로와 공격이었다. 소위 그 불온하고 극렬하기라니…… 자리에 임한 교직원들은 실로 방금 거기 무장한 경관대가 우하고 달려들며 있는 것이나 아닌가 싶을 만큼들 심담이 서늘한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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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마지막으로 한 녀석이 척 올라서더니, 그가 바로 말썽꾼이 괴수 윤상수였다. 그 녀석이 멀쩡하게시리 제가 내건 무어라더냐 하는 제목은 젖혀놓고서 시치미 뚝 따고 한단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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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현재 남조선에 있는 중등학교와 및 그 이상의 모든 학교가 다 그러하듯이, 소위 정부 당국으로부터 받는 보조라는 것은 병아리 눈물만치도 못 되는 것으로 한 달 용에도 부족하고, 경비의 거이 전부는 우리들 학생이 다달이 내는 수업료와 그리고 입학 당초에 입학을 시킨다는 교환조건으로 후원회를 통하여 매명 앞에 2만 원 3만 원씩 걷은 그 돈을 가지고 1년 경비의 거이 전부를 써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학생은 학교의 학생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학교 경영의 주체(主體)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 학생은 학교의 운명에 대하여 특별히 그 회계사무(會計事務)에 대하여 감독과 간섭을 할 권리를 주장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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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말하리라. 그것은 아름다운 정과 의리로써 맺어져야 할 학교와 학생,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너무도 상업적으로만 규정하는 것이 아니냐고. 오케. 그러나 그 상업적이기를 누가 먼점 상업적이었든가. 우리가 석 달치 수업료를 내지 않었어 보아라. 학교는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거절하지 않는가. 입학시험을 치루고 난 우리가 후원회에서 학교를 유지해나갈 경비로써 요구하는 2만 원이면 2만 원, 3만 원이면 3만 원의 기부금을 내지 못하였어 보아라. 그가 제아모리 우수한 성적으로 서험에는 파쓰가 되었드래도 학교는 그를 받아들이기를─학문을 가르치기를 거절하든 것이 아닌가. 누가 먼점 상업적이었드냐 하는 것은 이로써 명백하여지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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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하여, 학교는 기부금과 수업료를 받음으로써 우리들에게 가르칠 의무를─교육할 것을 판 것이요, 우리들은 본의는 아니나마 학교와 스승에게서 배움을 산 것이요 한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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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되 내용의 약속이 없이 막연히 팔고 사고 한 것은 아니었다. 과거의 일제적(日帝的)인 노예교육 팟쇼교육이 아니라, 진보적인 민주주의 교육, 그리고 충실한 학과 이것이 그 사고 파는 마당에서 무언중에 피차간 약속이 되어졌든 것이었었다. 그러나 실지에 와서는 그 약속이 하나도 이행이 되어지고 있지를 않는 것이다. 일제잔재 그대로의 노예교육, 팟쇼교육이요, 진보적인 민주주의 교육은 꼬물도 구경을 할 수가 없다. 더우기 매일매일의 학과랄지 학과내용의 불충실함이란 언어도단이다. 이것은 교육자로서는 태만이요. 상업취인상으로는 배신행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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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학생의 대부분은 돈이 많아 걱정이요. 돈을 물쓰듯 하는 자본가나 모리배의 자제가 아니다. 우리는 거개가 소작농민의 자제요, 박한 월급 세민의 자제요, 가난한 소상인의 자제요 한 것이다. 우리가 입학당초에 내는 2만 원 3 만 원의 기부금은 뼈가 휘도록 벅찬 금액이다. 다달이 수업료를 내는 것도 결코 수얼한 노릇이 아니다. 소작농민이요, 박한 월급세민이요, 가난한 소상인이요 한 우리들의 부형이 2만 원이나 3만원의 입학금을 물기에 소작농민은 한 가마니에 6백 60원 하는 벼를 몇 가마니를 공출하여야 하며, 월급세민은 몇달치 월급을 들여놓아야 하며, 25원짜리 장작 한 단을 팔면 3원이 남는 소상인은 몇단의 장작을 팔아야 하며, 한다는 계산은 구태어 일일히 들어서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소위 혈한(血汗)의 결정이라고 이르거니와, 우리들의 부형이 우리를 교육시키기 위하여 학교에다 바치는 돈이야말로 진정 혈한의 결정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듯 혈한의 결정을 질겨 학교에다 바치는 소치는, 그들의 사랑하는 자녀로 하여곰 민주주의적인 좋은 교육과 더불어 충실한 학과를 교수받게 하고저 하는 정성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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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우리가 지금 학교에서 받고 있는 그 일제잔재의 노예교육이나 팟쇼교육을 받게 하기 위하여, 또는 하로에 겨우 두세 시간의 학과를 교수하고 마는, 두세 시간이나마 지극히 빈약한 내용의 교수를 하고 있는 그런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하여 당신네의 귀중한 혈한의 결정을 아낌없이 학교에다 제공을 한 것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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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당국의 유일한 구실은 교사진(敎師陳)이 부실하다는 것이다. 사실로 교사진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인간적으로도 그러하고 실력으로도 그러하다. 그러나 그렇듯이 교수진이 부실하도록 만들어 논 자가 누군가. 유능하고 실력 있는 교사를,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학원으로부터 깡그리 구축을 한 자가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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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작농민이요 박한 월급세민이요 가난한 소상인이요 한 우리들의 부형은 그런 부실한 교수진의 실력도 없고 성의와 책임감도 없고 한 사람들로 하여금 월급이나 받아먹게 하기 위하여, 당신네들의 귀중한 혈한의 결정을 선선히 제공할 자선사업가들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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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제삼자적인 정의감(正義感)으로서나, 우리들의 부형의 혈한의 결정을 헛되이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직접적인 입장에서나, 단연코 학교 당국의 그와 같은 부패와 태만과 무성의와 배신행위를 용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학교 당국은 하로바삐, 성의 있고 책임 있는 태도로 돌아가는 동시에, 약속한 바 의무를 충실히 이행을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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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시방 항간에서는 학교 내의 회계사무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향그럽지 못한 풍설이 떠돌고 있는데, 우리는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학교 경영의 주체라는 권리를 가졌다는 의미에서, 우리들 학생에 의한 학교 내의 회계사무의 검사를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부형의 귀중한 혈한의 결정이 정당히 지출이 된다는 데에도 우리는 불만이 없을 수가 없거든, 항차 부정한 흑막이 있대서야 차마 그대로 방관을 하다니 될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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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원들의 판단으로 하면, 이런 당돌하고 무례하고 그리고 지극히 편벽스럽고 한 소리를 그는 한바탕 지껄여놓던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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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천 명이 다 모인 전교 학생이 간간이 박수와 아우성을 친 것은 물론이요, 그 반면, 교직원들의 딱한 얼굴들이란 막상 보기 민망한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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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다 녀석이, 실컷 그렇게 불손한 소리를 지껄이고는 단으로부터 내려와 교직원들이 앉았는 앞으로 휘적휘적 걸어가더니, 벌쭉 웃으면서 어린 양 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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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거시키, 지끔 그건 웅변연습으루다 헌 소리니깐, 상관 없죠, 선생님?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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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데는 교직원들은 웃어야 할 것인지 울어야 할 것인지, 혹은 기절이라도 하여야 할 것인지 문득 어찌할 바를 몰라 뻐언할 따름이었었다. 아뭏든 이런 가슴 뜨끔하고도 일변 괘씸스런 봉변을 당한 학교 당국이 금년에 또다시 그 교내웅변대회란 것을 허락을 하자고 하였을 이치가 없을 것은 차라리 당연한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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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학교 마당은 축질 줄 모르는 첫 5월의 눈부신 햇빛만 아낌없이 내리고 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이른 오후, 학생들이 흩어져가고 난 학교 마당은 절간처럼 호젓하고 한가로왔다. 뒷 교정의 테니스 코트로부터 끊었다 일었다 들려오는 고무공 맞는 소리의 연한 음향이, 그 한가로움을 한결 도와, 하마 졸음이 올 듯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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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석은 잡담들을 하고 있는 여럿과 떨어져 아까부터 따로이 열어젖힌 유리창 문턱에 가 걸터앉아 한만없이 바깥을 내어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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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질로 해맑고 갸름한 얼굴이 타고 난 천품으로 침울한 빛을 지니고 있어, 햄리트라는 별명을 듣는 문태석이었다. 그런 문태석이가 요사이 며칠 더욱더 침울하여지고, 따라서 말이 적어지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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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들은 그가 이번에 그의 부친 문영환의 선거 문제를 가지고, 그의 집안 사람 누구와 사이에 정녕 무슨 충돌이 또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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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상 그런 것도 아니었다. 부자간이나 모자간의 충돌쯤 거진 하루 걸러큼씩이었다. 그걸 가지고 새삼스럽게 더 침울하여지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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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석은 이 며칠 이래로 바싹 더 집이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문태석 자신의 표현으로 하면, 그의 집은 죄악의 복마전이요, 추악한 시궁창이요, 허위와 소란의 장거리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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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교만과 잔인과 야심과 음험한 모략성 이것을 다 추리고 나면, 입은 옷만 뱀의 허물처럼 훌쭉하니 처지게 생긴 부친 문영환, 그 칼날같이 푸르고 차가운 얼굴. 독기가 뻗쳐나오는 눈. 그 눈은 요즈음 선거로 벌컥 뒤집히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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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영환을 둘러싸고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수군덕거리고 음모하고 하는 소위 참모들과 모사(謀士)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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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환이 당선이 되어 감투를 쓰는 날이면, 도의 과장이나 군수라도 한 자리 얻어 할까 하고서, 마치 썩은 생선 대가리를 버린 쓰레기통에 파리떼가 엉기듯이 어중이떠중이 모여들어 온갖 아첨하고 보비의하고, 그러면서 선거 운동비도 일부분 대고 하는 엽관배(獵官輩)들, 이들은 이조 말년에 돈 짊어지고 서울로 세도재상(勢道宰相) 찾아가 몇 해씩 구사살이(求仕生活 : 買官運動[매관운동])하다가 돈은 돈대로 쓰고 벼슬은커녕 똥강구 하나 못 얻어 하고 원통히 죽은 무리들의 망령(亡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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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문영환을 지도자로 받들고 있는 위지왈 애국적인 청년단체의 멤버들. 직접행동으로 이 일파에서 최대 최고의 영광스런 기록을 가진, 그리고 시방도 부절히 희생을 뒤쫓고 있는 활량들이었다. 20세로 30 안짝의 밀끔밀끔한 체격에 문영환이 제공하는 좋은 옷 입고, 술 밥 뚜드려 먹고 하면서 본업인 테러는 물론 문영환의 신변을 파수하며, 선거의 삐라를 뿌리고 붙이고 하며 심부름도 다니며 하는 것이 그들의 일방의 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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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문영환의 넉넉 갑절은 되는 육중한 몸집이요, 남편 문영환 못지않게 교만하고 야심 있고, 그러한 한편 누구에게도 지지 아니할 만큼 위선과 가식과 흔감떨이가 능란하고, 또 누구에게도 지지 아니할 만큼 히스테리와 강짜가(나이 50인데 젊은 여자처럼 강짜가) 맹렬하고, 그 몸집처럼 우둔하고 무지하고, 그러면서 세상 일은 혼자서 다 아는 체하고, 이것이 대체로 문태석의 모친 최씨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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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며칠 전이었다. 아침에 교회의 전도부인과 여느 여자 교인으로 조직된 문영환의 선거선전대가 죽 모인 자리에서 그중 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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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최부인, 밤새 신관이 못허섰수. 어디 편찮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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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묻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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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 간밤에 죽을 뻔했다우. 열이 49도나 오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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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서, 열이 49도나 올랐다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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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아닌 것이 아니라 감기 기운으로 열이 나기는 났었다. 그러나 체온기로 열을 재어보지는 않았고, 따라서 39도를 무심결에 49도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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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부친의 선거운동을 응원하러 왔노라고 와 있는 둘째딸 명자가 그 49도란 소리에 호호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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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유, 어머니두. 49도란 열이 어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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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최씨부인은 그러나 천연덕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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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 얘야, 여름에 한창 더울 땐, 백도두 넘는다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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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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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이 고상한 애국자요 지방의 덕망가요 실업계의 중진이요, 그리고 독실한 신자인 동시에 교회의 최대한 보호자요, 그의 위광(威光)과 준엄한 처단으로 이 지방의 매국적(賣國賊) 좌익분자들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소위 인텔리 층의 비애국적인 중간파들까지 골통이 깨어지고 팔다리가 부러지고 하여 거진 소탕이 되다시피 하였고, 이렇듯 공적이 위대한 문영환 선생을 국회에 보내야 하겠다는 열성은 실로 놀랄 만한 것이 있어, 가령 그가 소속된 교회만 하더라도 전 교회가 나서서 분투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는 한편 10여 명의 전도부인과 언변 좋은 여자 교인 20여 명을 골라 특공대(特攻隊)를 조직하여 가지고 최씨부인의 총지휘 아래 매일같이 주야로 교인과 비교인을 가리지 않고 가정방문을 한다, 가두선전을 한다 하면서 맹렬한 활동을 하였다. 문영환이 당선이 되어 감투를 쓰는 날이면, 적어도 특공대 각원에게는 무엇인가가 돌아갈 것이 은연중 기대되었음은 물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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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뭏든 그러느라고 그 30여 명의 혼감스럽고도 다변하고도 요망스런 혐의까지도 없지 못한 여인들이 저무나 새나 모였다는 흩어졌다 도로 모이고, 흩어졌다 도로 모이고 하면서 온갖 쑥덕공론과 요설과 분배를 다 놓던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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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아직 젊어 30 이전이요, 몸집도 아직은 뚱뚱보는 아니고 고등여학교 하나를 마친 것이 있어 열이 49도가 올랐노라고는 할 지경이 아니고, 이것만 빼놓고는 그 모친 최씨부인과 비교하여 성격이며 언행이며가 한푼도 틀리는 것이 없는 문태석의 출가한 둘째누이 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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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자의 남편 황종택의 직업은 토목청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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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돈을 썩 잘 벌었다. 그 썩 잘 돈을 버는 방법은 지극히 간단하고 명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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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만 원짜리 토목공사를 청부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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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만 원쯤 들여서 어름어름 공사를 마쳐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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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만 원 공사를 절반 5백만 원 들여서 만들어놓았으니, 당자 황종택의 눈이 하나가 애꾸눈인 것처럼, 아무가 보아도 불완전한 공사인 것이 단박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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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택은 검사하러 나온 친구에게 미리서 준비하였던 백만 원 한 뭉치를 슬며시 쥐어주고는 최신식 자가용 자동차에다 떠싣고 요리집으로 가서 술과 계집을 직사하게 들이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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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는 이튿날 완전히 패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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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아먹은 5백만 원에서 백만 원은 그렇게 쓰이고, 그 1천만 원 공사를 저의 앞으로 낙찰시키느라고 쓴 운동비 백만 원을 까고, 교제한 요리값, 기집 해웃값, 선사한 물건값 모두 해서 한 백만 원 들었고, 나머지 2백만 원은 고스란히 황종택의 낭탁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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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수월히 잘 버는 돈이기 때문에 황종택은 안해 명자의 청을 좇아 장인 문영환의 선거에다 백만 원의 현금과 40만 원어치의 종이를 투자(投資)하기에 주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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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원의 현금과 40만 원어치의 종이를 가지고, 명자는 부친 문영환의 선거를 응원하려고 서울로조차 내려온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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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는 여자특공대를 가로맡아 가지고, 총지휘 최씨부인을 젖혀놓다시피 하면서 종횡으로 활약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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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특공대들로 하여금 가정방문을 하여 문영환에게 투표를 하라고 권유를 하면서 그 자리에서 ‘암만 비밀ㆍ무기명 투표라고 하여도, 그가 누구에게 투표를 한 것이 나중 가서 죄다 드러나게 마련이 되었느니라고’ 한편 손으로는 슬그머니 위협전술을 쓰게 한 것도 명자가 발명한 전술 가운데 하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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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친 문영환, 이런 모친 최씨부인, 이런 누이 명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드나드는 온갖 종류의 인물들, 그 누구 한 사람에게서도 구역이 나도록 반감을 느끼지 아니하는 인물이 없었다. 황차 그들이 그들답게 빚어내는 분위기란 정히 견디기 어려울 만큼 탁하고 추하고 불순스럽고 한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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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석은 부친 문영환과는 정신적으로 절연을 한 지 이미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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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석은 손위로 누이가 둘, 손아래로 누이동생이 하나, 남동생이 하나, 도합 5남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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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딸 둘을 난 끝애 비로소 난 아들이었고, 나중 와서 막내동이 아들을 두었으니, 독신 아들은 아닐망정 아뭏든 소중한 맏아들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하건만, 문영환은 이 맏아들을 도무지 사랑할 줄을 몰랐다. 철 알기 전의 일은 기억이 없다고 하더라도, 철 안 이후로, 문태석은 부친에게서 부드러운 말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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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모든 언어와 행동이, 잘하는 것이나 잘못하는 것이나 덮어놓고 문영환에게는 눈에 거슬리고 마땅치 않고 하여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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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히 미워하고, 하찮은 일에도 트집을 잡아 구박을 하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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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무슨 잘못이라도 있을 때의 그 가열함이라니 상식을 벗어날 지경이었다. 다긏는 말씨하며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이며, 증오와 반감이 넘쳐흐르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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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나 근친들은 그것을 자제를 엄히 훈육하는 아버지의 태도라 하였다. 그러나 엄한 것에는 일변 애정이 따르는 법인데, 문영환의 그것에는 애정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애정과 반대로 증오가 있을 따름이었다. 문영환의 그것은, 그러므로, 오직 가열일 따름이었다.
 
69
혹은 문영환이 천품이 차가와서 그런다고도 할는지 모른다. 미상불 문영환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든 곡진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에게 애정이라고 이름하는 것이 전연 없느냐 하면, 노상 그렇지도 않았다. 딸들이라든지, 더욱이 막내동이 아들에게는 제법 상냥히 굴고, 귀애할 줄도 알고 하였다. 그러면서 유독 문태석에게는 그렇듯 ─ 흡사히 의붓자식처럼 박절하고 모나게 굴던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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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아버지에게 아들로써 탁탁히 애정이랄 것이 있어질 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71
부친의 그러한 태도가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없는 부당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하자, 문태석은 자연간 거기에 대한 불평과 반감이 생기지 아니치 못하였고, 따라서 아들 편에서도 부친을 미워하고 적대시하고 하는 적극적이요 도전적(挑戰的)인 태도를 가지지 아니치 못하였다. 그리하여 문영환이 아들의 모든 언어와 행동이 잘잘못을 덮어놓고 비위에 맞지 않고 밉듯이, 꼭 그와 마찬가지로 문태석은 부친의 모든 언어와 행동이 잘잘못을 덮어놓고 비위에 맞지 않고 반감이 나던 것이었었다.
 
72
해방이 되었다.
 
73
미구에 문영환은 정치 노선을 뚜렷이하고 나섰다.
 
74
가사 부자간에 본시 그런 감정의 대립ㆍ갈등이 없는 사이더라도 대세가 아버지와 아들의 나아가는 길이 상극이 지가가 쉬운 형편인데, 황차 부친의 하는 일이 잘잘못을 덮어놓고 비위에 맞지 않고 반감이 나는 문태석의 컨디션이리요. 부자는 마침내 단순한 인간적이요 가정적인 대립에서 정치적인 대립으로 대립이 되고 말았다.
 
75
인하여 문영환은 정면으로 대고 아들을 미워하여도 무방하였다. 또, ‘그렇길래 나는 애당초에 그걸 자식으로 치지 않았노라’고 하여, 일찌기 이유 없이 아들을 미워하던 사실을 합리화시킴으로써 만족을 느끼었다.
 
76
그러나 문영환은 말 못할 심각한 고민을 부담치 아니할 수가 없었다. 아들이 소위 빨갱이어서 그를 미워할 정당한 조건이 생겨진 것은 실없이 마음 후련한 일이었으나, 도대체 버젓한 한인(韓人)의 자식에 빨갱이가 있다는 사실은, 아비 문영환으로서는 여간만 불리한 것이 아니었었다.
 
77
문영환은 곧잘 그의 백계한인 그룹이나 혹은 그 행동파(行動派)들과 사담을 하는 자리에서, 기회가 다는족족 그놈은 내 자식이 아니라커니, 그런 놈은 죽여야 한다커니 등의 강경한 말을 하기를 잊지 아니하였고, 그리함으로써 자신의 한인으로서의 순수도(純粹度)와 열도(熱度)를 높이는 효과를 얻기에 등한치 아니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비장(悲壯)은 하였어도, ××××당의 ××부 당부(××府黨部)의 최고책임자인 문영환의 자식에 빨갱이가 있다는 사실은, 당자 문영환을 위하여 지울 수 없는 불명예요 정치상의 커다란 손실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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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원한 장래에 사어사전(死語辭典)이 편찬이 된다고 하면 빨갱이라는 말이 당연히 거기에 오를 것이요, 그 주석엔 가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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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의 남부조선에서 볼쉐비키, 멘쉐비키는 물론, 아나키스트, 사회민주당, 자유주의자, 일부의 크리스찬, 일부의 불교도, 일부의 공맹교인(孔孟敎人), 일부의 천도교인, 그리고 주장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로써 사회적 환경으로나 나이로나 아직 확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잡힌 것이 아니요, 단지 추잡한 것과 부정사악(不正邪惡)한 것과 불의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과 바르고 참된 것과 정의를 동경 추구하는 청소년들, 그 밖에도 ×××과 ××××당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 (그리고 차경석의 보천교나 전용해의 백백교도 혹은 거기에 편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느니라.”
 
80
하였을 것이었었다.
 
81
문태석은 그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것이 자못 유쾌하였다. 문태석은 저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는 생각지도 않거니와, 그것은 문제가 아니고, 단지 그는 그의 부친 문영환이, 자식이 빨갱이인 것으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불명예롭고 손실인 것을 괴로와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고소해서, 그래 저의 이름이 빨갱이인 것이 유쾌하던 것이었었다.
 
82
통행금지에 걸린 일이 있었다.
 
83
행순하는 순경과 행길 복판에서 주쩍 마주쳤다.
 
84
“무어야?”
 
85
카빈총을 겨누면서 순경은 꿱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86
“빨갱이요.”
 
87
총부리 앞으로 위정 다가서면서 문태석은 천연덕스럽게 대답이었다.
 
88
“무엇이 어째?”
 
89
순경은 벌컥 성이 나 마침 길 옆 상점의 유리창으로 환히 비치는 불빛에 바싹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단박 한 대 올려붙일 듯이 재우쳐
 
90
“무어야, 이 자식아.”
 
91
“지끔, 번연히 사람더러, 무어야 허구 묻잖었소?”
 
92
“그래서?”
 
93
“그래서, 난 빨갱이니깐, 빨갱이요 허구 대답할밖에요.”
 
94
“이 자식아, 네 이름이 빨갱이야?”
 
95
“우리 아버지가 날 그렇게 이름지었다우.”
 
96
미상불 문태석은 맨처음으로 빨갱이라고 부른 것은 그의 부친 문영환이었었다.
 
97
“네 애비가 누구야?”
 
98
“알면, 당신 뒤루 벌떡 나가자빠지지.”
 
99
“이 자식이, 누굴 히야까실 하는 심인가아?…… 누구야, 이 자식아, 네 애비가.”
 
100
“문, 영, 환.”
 
101
“무어? 문영환? 저 ××××당, 그 문영환 씨?”
 
102
순경은 뒤로 벌떡 나가자빠지지는 않았어도, 저으기 의외로와하면서 등등하던 서슬이 차차로 풀어졌다.
 
103
빨갱이를 빼놓고는 이 일판에서 너나 할것없이 정치적으로 최고의 존경을 바치고 있는 문영환 씨였다. 뒷서장(背後署長)이라는 별칭이 있는 만큼 경찰과는 표리일체의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서장의 명령 즉 문영환 씨의 명령이라고까지 하는 그 문영환 씨였다.
 
104
그 문영환 씨의 아들에 빨갱이로 지목받는 중학생이 하나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도 동시에 비로소 생각이 났다.
 
105
“예이 여보”
 
106
순경은, 겨누었던 총부리는 어느 겨를에 벌써 거두었고, 피깃이 웃으면서
 
107
“진작 그렇다구 할 것이지, 사람을 막 놀려먹는담! …… 어여 가슈.”
 
108
하고는 또 무슨 생각이 나 흐트렸던 얼굴을 도로 순사 나으리답게 준절히 하여 가지고, 말도 준절히
 
109
“원은 서(署)루 동행해서 며칠 유치처분이라두 시킬 것이지만, 아버지 문영환 선생의 얼굴을 보아 특별 용서하는 것이니 이댐 그리지 말아요.”
 
110
“……”
 
111
“다아, 아버지의 덕인 줄 알아요. 그런 휼륭한 아버지를 두었으면, 그 아들다웁게 행동을 해야지.”
 
112
이 말인즉은, 너는 어째서 그런 나쁜 빨갱이냐, 이 뜻이었다.
 
113
문태석은 돌아서는 순경을
 
114
“여보시요.”
 
115
하고 불렀다.
 
116
순경은 걸음을 멈추고 돌려다본다.
 
117
문태석은 잠깐 그대로 썼다가 퍼뜩, 곰곰한 말로
 
118
“당신은 지끔 나더러,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다구 그랬지요?”
 
119
“문영환 선생이야 조음 훌륭하신 양반이요?”
 
120
“그리구…… 우리가 지끔 오늘 저녁에 서루간 겪은 이 사건만 하드래두, 사소하나따나, 아모튼 불상사(不祥事)는 불상사렷다요? 피차에 불행은 불행이렷다요? 그렇지요?”
 
121
“그렇다구두 하겠지…… 그런데?”
 
122
“그렇다면 말이지요. 우리들의 아버지가 당신은 그런 아버지를 훌륭한 아버지라구 했는데…… 우리들의 아버지가 그런 아버지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구태라 방금 우리가 서루간 겪은 그런 불상사두 불행두 아니 겪었으리란 그 말이요. 우선 야간통행금지두 없었을 것. 따라서 당신은 그 야만스런 물건을 들여대면서 번연히 사람을 마치 짐승이나 그런 것 다루드끼, 무어야 허구 고함을 칠 필요두 없을 것이구. 나는 당신을 그렇게 멸시하구 조롱하구 할 며리가 없는 것이구…… 서루 반목하구 잡아먹지 못해 으릉거리구, 필경엔 잡아먹구……그러는 대신 우리는 다같이 존경하구 위해 주구 도읍구 하면서, 의좋게 평화롭게 살아갈 수가 있으리란 그 말이요. 우리들의 아버지가 소위 그런 훌륭한 아버지들이 아니었다면 말이요. 어여 가시우.”
 
123
이번에는 문태석이 먼저 돌아섰다.
 
124
순경은, 어둠속으로 뚜벅뚜벅 멀어가는 그림자를 멍하니 서서 바라보았다. 말의 뜻을 선뜻 이해하지는 못하였으나, 그 조용하니 다정스런듯, 어쩌면 구슬픈 듯, 곰곰이 흐르는 음성과 여운이 이상스럽게도 가슴에 맞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25
덕(德 : 人格)과 애정이 반드시 일치하라는 법은 없는 것이었다. 덕은 없어도 애정은 따로이 있을 수 있도록 마련이었다.
 
126
최씨부인은 남편 문영환과는 달라, 아들에게 그처럼 애정이 없어 하지는 않았다.
 
127
최씨부인은 남편 문영환이 아들에게 그와 같이 야속히 굴고 미워하고 하는 것을 항상 슬퍼하고 불평하고 항거하고 하였다. 곧잘 아들을 편역들어
 
128
“대체 그 애는 내가 데리고 온 자식이란 말이요? 그 얘가 어디가 미운 털이 백혔단 말이요. 무슨 내력에 당신은 그 애라면 그렇게두 원수척으루 미워만 하러 드시우?”
 
129
하면서 대들고. 그 끝에 일쑤 부부싸움이 한바탕씩 벌어지고 하였다.
 
130
부친에게 그처럼 부당한 구박과 미움을 받는 아들인만큼, 최씨부인은 남의 어머니답게 그를 안고 도는 애처로운 정으로 하여도 다른 자녀에 비하여 애정이 살뜰한 것이 없지 아니하였다.
 
131
당자 문태석은 그러나 이 모친에게도 별양 농후한 애정은 가지는 줄을 몰랐다.
 
132
물론 어머니였고, 어머니인 만큼 부드럽고 임의로운 것이 있고, 그리고 저를 안고 돌면서 다른 자녀들보다도 알아보게 사랑을 하고 하는 것으로 하여 부친에게와 같이 전혀 애정이라는 것이 싹도 없거나 하던 바는 아니요, 매양 일맥의 애정이 드리워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그 도(度)란 매우 희박하여, 도저히 곡진한 것이 되질 못하였다. 문태석은 모친의 하나도 진실성이 없는 신앙(信仰), 위선, 야심, 교만, 무지한 것, 넉살스런 것, 허겁, 히스테리, 강짜, 그리고 부대한 살집 이런 것에 일종의 육체적인 혐오와 불쾌감을 느껴, 도무지 착 안기는 정이 가지질 않던 것이었었다.
 
133
둘째누이 명자. 남매 가운데 제일 보기 싫고 배짱이 안 맞는 게 둘째 누이 명자였다.
 
134
모든 성격과 행동이 모친 최씨부인을 그대로 복사(複寫)하여 놓았는데, 거기에 건방진 것을 한 가지 더 얹은 것이 둘째누이 명자였고, 그러기 때문에 문태석은 그가 보기 싫고, 배짱이 안 맞는다는 것이었었다.
 
135
이 남매는 그래서 어려서부터 유난히 의가 좋지 못하였고, 출가를 한 시방도 어쩌다 얼굴을 맞대면 으레껏 티격티격 싸움을 하고라야 말았다.
 
136
지나간 4월 그믐, 명자가 돈 백만 원과 종이 40만 원어치를 짊어지고 부친 문영환의 선거응원을 오던 바로 그날이었다. 이 집으로는 드물게, 더우기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식탁에 외인이 몇씩은 참여하지 않는 끼나가 없었는데, 이 날 저녁만은 어떡하다 외인은 아무도 없고, 가족끼리만의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바깥 대주 문영환은 저녁밥이라는 것을 집에서 먹는 적이란 별로이 없는 사람이었고, (그래도 교회는 그를 독실한 신자로 존경하기를 인색치 아니하니, 과연 하나님의 사도(使徒)다운 너그러움이었고.)
 
137
식탁의 화제는 자연 선거 등록에 대한 것이 중심이 되어, 명자는 서울 형편을 이야기하고, 최씨부인은 이곳 ××부의 형편을 이야기하고, 그러다 명자가 문득 막내동이 상석과 맞상을 하여 밥만 파고 있는 태석더러
 
138
“석이 넌 참 만 스물한 살 안직 못됐지? 그럼 등록두 못했겠구나?”
 
139
하고 물었다.
 
140
문태석은 거듭떠보지도 않고 밥만 파면서 잔뜩 비꼬는 투로
 
141
“우리 친애하는 하지중장 각하께서, 만 19세버틈 선거자격을 주었으면 할걸…… 천추유감이우.”
 
142
명자는 눈이 샐룩해 가지고 한참이나 오랍동생의 옆볼을 흘겨보다가 혀를 차면서
 
143
“저앤 무슨 아이가 갈수록 점점 더 저래갈까?”
 
144
“이댐 선거 땐, 나도 사랑하는 우리 아버질 위해 다정한 1푤 던져 드리게 될 테니깐 실망이나 비관은 아니허우마는.”
 
145
“사람이 그렇게 히네꾸레루 허믄, 신상에 해룬 법이란다. 우선두 보렴. 네가 고 따위루 못되게 구니깐, 아버지가 널 미워하시잖아?”
 
146
“옳아 ! 그럼 내가 요 따위루 못되게 굴두룩 만들어 준 건 누군지, 그건 연구 아니해 보았수?”
 
147
“남의 자식 돼. 너 겉은 불효도 없드라. 저런 속에 학문은 들어 무얼해. 진작 작파하지. 우리 아버진 참말 불쌍하신 이야.”
 
148
“염려 없어. 사내자식 열몫이두 더 하는 누나 같은 효녀딸이 있으니깐.”
 
149
“그럼, 너 겉을 줄 아니?”
 
150
명자는 그만 악이 나서 얼굴에 핏대를 세워가지고 소래기를 지른다.
 
151
문태석은 그러나 종시 침착하고 음성이나 얼굴이 한결같다.
 
152
“뽐낼 만두 하지. 현금 백만 원에다, 40만 원에치 종이를 짊어지구, 선거응원을 하러 반천리길을 머다 아니하구 서울서 예꺼정 왔는데. 가만 있어요, 내 인제 효녀문(孝女門) 세워 주께시니.”
 
153
“그럼 효녀 아냐? 전 머 허다못해, 학교 동무루 동록된 아이래두 찾아댕기믄서 얘 너, 이번에 우리 아버지헌테 투표 꼭 해주어예지 한다. 이런 말이래두 했어?”
 
154
“난 감투가 필요치 않으니깐.”
 
155
“누군 그럼, 감투 쓸 영으루 그리는 줄 아는감?”
 
156
“가령, 대한토건공사(大韓土建公司) 황종택 씨 같은.”
 
157
“아니, 무엇이 어째?”
 
158
명자는 밥 먹던 수저를 내박치듯 놓으면서, 한무릎 이편으로 다가앉는다. 필경 아픈 자리를 건드렸던 것이다.
 
159
“그래, 황종택이가 언제 누구더러 감투 쓰겠다구 했드냐? 으응?”
 
160
“감투뿐이우?”
 
161
“그럼, 또 무어냐?”
 
162
“문영환 씨가 정견발표 연설을 하면서, 무어 농촌을 깡그리 전화(電化)하구, 농민들의 주택을 죄다 헐구서 문화주택으루 곤쳐 짓구, 수리공살 대규모루 일으켜 천수답(天水畓)이란 걸 하나두 없이하구, 다 그럴 테라구 했답디다. 그리구 그 말 끝에 ‘허되, 그 건설과장은 황종택 씰 임명하구, 그 공산 대한토건공사에다 전부 청불 맡기구 할 테라구’ 언명은 아니했지만서두, 우리 위대한 문영환 씨가 서랑 황종택 씨의 현금 백만원과 종이 40만 원에칠 투자한 이익 배당을 저바릴 이치야 없잖우? 당선이 돼서, 국회의원 자리에 앉기만 앉는 날이면 아마 모르면 몰라두 1백 40만 원의 백곱절 1억 4천만 원은 이익을 보두룩 마련해 줄걸. 대통령을 국회의원에서 뽑는다니깐, 문영환 씨가 대통령이래두 되는 날인다 치면, 머 제주도 하나쯤 떼줄 영으루 들 것이구, 그럼 황종택 씬 제주도 대통령, 누나는 제주도 대통령 부인…… 조음 좋수?”
 
163
“자알 한다, 잘해. 잘해. 아굴찌루다 아무렇다 지껄이면 말인 줄 알구…… 그래 어떤 황종택이가 그랬다든? 어떤 황종택이가 감투 쓸 엉으루 토목공사 청부 맡을 양으루 그런 야심으루다 어떤 황종택이가 우리 아버지 선거에 돈 대구 했대드냐? 응? 말을 해봐.”
 
164
“대한토건공사 주인 황종택 씨라구, 알으켜 줘두 그리는구려. 더 자상하게 대주리까?…… 문명자 여사의 부군 황종택 씨. ××××당 ××부당부 부장 문영환 씨의 서랑 황종택 씨. 그래두 어떤 황종택 씬지 몰라? …… 그럼, 일정시대에 일본군에다 물자납품(物資納品)하구서 큰돈 모은 황종택 씨. 이번 선거에 당당히 입후볼 하군 싶어두, 조선말이 도무지 서투르구 무의식중에 자꾸만 일본말루다 지껄여지군 해서, 망신이나 하구 말까 바서 유감인 대루 입후볼 단념하군, 장인영감의 선거에다 방퉁일 했다는 황종택 씨. 이 사실은 방금 15분 전에 당자 황종택 씨의 영부인의 입으루부터 그 친정 모친에게 이야길 했는데, 그래두 몰라요? 자아, 최후루 그럼, 출생지는 함경남도 함흥, 나이는 마흔 살, 얼골은 뿜떡형, 그리구 왼편 눈이 약간 불완전하다는 특증을 가진 그 황종택 씨…… 어때요? 그래두 어떤 황종택 씬지 몰라요?”
 
165
“무엇이 어쩌구어째? 눈이 불완전해? 눈이 불완전해? 오냐 잘한다. 잘해. 허다허다 못하니깐 인전 황종택이 눈병신인 거꺼정 해폐하구. 오냐 잘한다. 잘해, 잘해. 얼마든지 해폐해라, 얼마든지.”
 
166
“사실의 정확한 지적과 비방과는 다른 줄 알았드니……”
 
167
“얼마든지 해폐해, 얼마든지. …… 그래, 황종택인 애꾸야. 사팔뚜기야. 그런데 어쨌단 말야? 으응? 어쨌단 말야? 말이?”
 
168
“눈이 하나가 약간 불완전하다군 했어두, 눈처럼 사람이 심보두 삐뚤어졌느니란 건 말을 아니했으니깐……”
 
169
“황종택이가 애꾸면, 네게 무슨 상관야? 상관이. 매형 녀석이 애꾸면, 제가 출셀 못해 걱정야? 그 잘난 공산주일 못해 걱정야? 무슨 걱정야, 걱정이. 독립 방핼 못해 걱정이야? 소련에다 나랄 못 팔아먹어 걱정이야? 음? 응? 아, 황종택이가 애꾸눈인 말구, 참붕이면, 무슨 상관야, 글쎄 상관이.”
 
170
방바닥을 땅땅 치면서, 들이 몸부림을 치면서 조촘조촘 다가들면서, 그러다 마침내 최후의 고함과 더불어 밥상을 한머리를 불끈 들어 엎어 버린다.
 
171
문태석은 툴툴 털고 일어서면서 혼잣말로 두런두런
 
172
“이론으루 지면, 욕설, 욕설 끝엔 테로. 백색 테로의 발생학(發生學)한 막을 실연(實演)해 구경시켜 주느라구, 수고하섰소.”
 
173
최씨부인은 그동안, 어느 편을 편역 들고, 어느 편을 꺾누르고 할 수가 없는 사세여서, 아들을 타이르다, 딸을 만류하다, 팡져서 그만 역정을 내고 물러앉아 푸념과 신세자탄을 한바탕 떨이하였고, 마지막 엎드려서 주께 기도를 올리는 동안에 클라이맥스, 밥상은 테러를 맞았던 것이었다.
 
174
최씨부인은 그만 분통이 터지고 말았다.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손뼉을 두드리면서, 대체 이판이 어느 판이길래, 집안의 흥망이 오락가락하는 이판에 앉아서 마수없이 방정맞게 싸움들을 하고 있단 말이냐고. 누이를 누이로 여기지 않고 불측하게 구는 동생놈이나, 아무리 손아래 동생이라도 사내동생인데, 먹는 밥상을 둘러엎는 누이년이나 다같이 목을 썰어 죽여야 하지야고, 들이 집안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쳐 욕하고 저주하고 하였다.
 
175
문태석은 이내 저의 방으로 건너와 책상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것이나 책을 한 권 뽑아 들고 앉았다. 그러나 최씨부인의 야료 소리를 듣지 아니하려고 책을 읽자던 것이, 결국은 그 야료 소리에 방해되어 책은 한 줄도 제대로 읽어지지가 않았다.
 
176
이윽고 여자 특공대가 모여드는 기척이 들리고, 그러면서 최씨부인의 고함은 슬며시 그쳤다.
 
177
계속하여 여자 특공대가 패패이 모여들었고. 상당 수효가 모여가지고도, 그러나 전에 없이 조용한 가운데 한동안의 시간이 지나더니. 별안간 찬송가 소리가 일었다.
 
178
해방 직후에 문영환은 지금 그가 관리 경영하는 고무공장과 함께 이 일산주택을 접수하였다. 문영환에게는 좀 협착한 편이었으나, 집이 원체 이 ××부에서는 제일 간다고 이르던 잘 진 집이요, 특히 정원이 10만 원이 넘는다는 훌륭한 물건이어서, 장차 빈터에다 딴채라도 한 채 질 요량을 하고서, 그런 대로 제것을 만든 것이었었다.
 
179
현관을 들어서면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바른편이 응접실, 사랑을 겸해서 쓰는 대주 문영환의 방, 주장 문태석이 쓰는 아이들의 공부방, 식모랄지 아래청 사람이 쓰는 방, 조그마한 광방, 그리고 왼편이 아동실, 안방, 부엌, 찬방 대강 이러하였다.
 
180
이렇게 된 집이요 방들이기 때문에, 가령 문태석이 제 방에 앉았노라면 어떤 방에서나 소곤거리는 귓속말 외에는 환히 다 들리곤 하였다.
 
181
문태석은 안방으로부터 좌악 이는 찬송가 소리에 와락 구역질이 넘어 오려고 하였다.
 
182
보나마나 경자와 최씨부인, 여럿의 앞에서 방금 아까의 죄를 뉘우치는 고백을 하였고, 그래서 여럿과 함께 하나님께 죄의 용서를 비는 기도를 올렸고, 그러고 나서 죄를 뉘우치고 기도를 올렸으니, 죄를 용서 받았다는 안도(安堵)와 기쁨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183
죄를 지고라도 그를 뉘우치고 하느님을 부르며 용서의 기도를 올리면 사(赦)함을 받는다…… 그러하되, 죄를 지는족족 뉘우치기만 하고 하느님만 부르며 기도만 올리면, 그 번번이 다 사함을 받도록 죄의 반복에 있어서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아니한 이 규정은 일종의 안전지대의 설정이라 할 것이었다. 이러한 안전지대의 설정은 경우에 따라서는 죄악의 장려제도로 통용이 될 수가 있었다.
 
184
가령 경제상의 이해관계로 남을 속여야 할 경우라고 하자. 남을 속이는 것이 번연히 죄악인 줄을 알기는 아나
 
185
“쯧, 나중 가서 회개하고 하느님께 용서해 줍시사고 기도드리지.”
 
186
하고, 그대로 죄를 짓는 수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었다.
 
187
이와 같이 편리하고도 교활한 안전지대를 등뒤에다 숨겨가지고, 그리스도교 본연의 계명(戒命)을 방자로이 범하되 조금치도 거리낌이 없는 무리들. 그들에게는 보다 더 엄흑한 마약취체령(痲藥取締令)이나 그렇지 않으면 한 그램씩의 청산가리(靑酸加里)를 안기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태석은 손에 펴들었던 책을 내팽개치고 벌떡 드러누웠다.
 
188
찬송가가 끝나자 비로소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연방 그 욕망스런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터져오르면서 주거니받거니 쉴새없이 지껄이는 내용이란, 모두가 권유를 다니면서 겪은 이야기, 권유를 하던 솜씨 자랑, 그리고 다른 입후보의 운동 내막을 스파이한 이야기 이런 것들이었다.
 
189
때를 같이하여 자동차가 두 대나 들이닿고, 문영환을 비롯한 남자패들이 10여 명은 넉넉 되는 듯 요란히 떠들어대면서 사랑방으로 몰려들었다.
 
190
문태석은 저의 집이 전에 살던 집이었다면 멀찍이 뒤채의 딴 방에 가들어박혀 있고, 이런 시궁창같이 불결하고 장거리같이 시끄런 소음은 듣기를 면하였으련만 싶으면서 저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191
“아니 저앤, 물 건너 즈이 첩장인 죽었나아…… 얘, 태석아?”
 
192
윤상수가 그렇게 소리를 질러서야 문태석은 정신은 들었으나, 대답도 않고 돌려다보지도 않는다.
 
193
꼬마 고영달이 윤상수의 옆구리를 꾹 지르면서 손가락으로 문태석을 가리키고 제 포켓을 가리키고 한다. 문태석의 포켓 속에 돈이 있다는 그 뜻이었다.
 
194
윤상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싱글싱글 웃으면서 문태석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195
얼마 전에 시험한 교내의 생도 인기투표에서 7할─6백 몇십 표를 득표한 윤상수였다.
 
196
앞뒤로 요란스럽게 내솟은 남북 대가리에, 어웅한 눈에, 주먹 같은 들창코에, 넓죽한 입과 기다란 주걱턱, 이 얼굴 생김새 그것부터가 우선 익살스럽기에 충분한 것이 있었다.
 
197
하는 짓, 하는 소리가 다 구성지고, 그러나 그러한 외에 의리와 남을 포용하는 너그러움이 있고, 그리고 당당할 때는 마호멧처럼 당당하고, 두루 이러한 것으로는 그는 전교 생도의 인기를 한몸에 지고 있던 것이었었다.
 
198
“자넨, 무슨 근심이 기신가? 혹은 사식을 골똘히 하구 기신가?”
 
199
윤상수는 문태석의 어깨에 한손을 얹으면서 연극조로 그렇게 수작을 붙인다.
 
200
문태석은 윤상수의 하는 소리는 못 들은 척, 바깥을 내다보는 채
 
201
“훨훨 여행이나 댕겼으면…… 맑은 하늘, 풍부한 햇볕, 그리구 신록(新錄) 다 좋잖으냐?”
 
202
“난, 자연이 아름답기 전에 배가 고프니, 아무 그런 경황두 없으이. 문도령, 우릴 질겁게 해줄 의사는 없는가?”
 
203
“우리, 자행거나 한 채씩 구해 타구, 여행이나 떠날까?”
 
204
“딴전 말구우, 요 막난아아……”
 
205
그러면서 윤상수는 덤쑥 문태석의 목을 그러안고, 수염 거슬거슬한 기다란 턱을 문태석의 볼에다 쓱쓱 비빈다.
 
206
“지겨워, 이 망할 것아.”
 
207
“빵 좀, 사줄늬? 안 사줄늬?”
 
208
“놔 이거.”
 
209
“빵 사줘예지.”
 
210
“안 놀 테냐?”
 
211
“빵.”
 
212
그러다 윤상수는 별안간 아이구아얏 소리를 지르면서 깡총 뒤로 물러선다. 문태석이 넓적다리를 꼬집어 배틀었던 것이다.
 
213
꼬마랑 여럿은 좋아라고 웃어대고, 윤상수는 꼬집힌 넓적다리를 엄살스럽게 우디고 뺑뺑이를 친다.
 
214
“연극이나 한바탕 하지?”
 
215
축에서 제일 어린 4년급의 박재춘이라는 아이가 그러는 것을, 윤상수는 배를 만지면서
 
216
“연극이구 막걸리구 배고파 못하겠다.”
 
217
하고 고개를 내젓는다. 그러다 달갑게
 
218
“연극하믄 네가 빵 낼늬?”
 
219
“잘만 하면.”
 
220
“정말 ?”
 
221
“정말.”
 
222
“그럼 했다.”
 
223
“그렇지만, 잘 해예지 해.”
 
224
“재주 있는껏 하자꾸나.”
 
225
“각본이랑 연기(演技)랑 수준에 떨어져선 안돼.”
 
226
“얘야, 능력껏 일하구, 필요한 만침 분밸(分配) 받구 하면, 천하가 태평이라구 아녀드냐.”
 
227
그러고는 윤상수는 잠깐 깜작깜작하면서 무엇을 생각한다.
 
228
어떤 선생이면 선생이, 교내에서 과외강연(課外講演)을 한 것에서든지, 혹은 어떤 명사나 지사라는 사람이 라디오 방송으로 시사문제의 강연을 한 것에서든지, 또 혹은 어떤 지도자라는 사람이 무슨 회합에서 강연을 하였다거나, 시사문제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거나 한 것에서든지, 두루 그런 것에서 이 축의 학생들이 저희가 보기에 불합리한 것이나 모순된 것이 있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곧 그들의 연극의 재료로 되던 것이었었다.
 
229
하나가 척 연단(교단)에 올라서서 강연이면 강연한 내용을, 성명이면 성명한 내용을 가지고 그럴듯이 한바탕 죽 지껄인다. 그런다치면 다른 하나가 불합리한 점이라든지 모순된 점이라든지를 지적하여 설명을 요구한다. 강사 녀석은 쩔매면서 우스꽝스런 답변을 한다. 여럿은 손뼉을 치면서 웃어젖힌다.
 
230
이것이 그들의 소위 연극이었다.
 
231
윤상수는 꼬마 고영달의 귀때기를 잡아당겨 입에다 대고 소곤소곤
 
232
“너, 저애 문태석이 즈이 아버지 정견발표 연설하는 거 가 들었지?”
 
233
“응…… 촌 농가집을 영을 죄 벳기구 함석이나 기와루다 이구, 그린다구 한 거 말이지?”
 
234
“그래 그래. 공출을 없인다구 하구.”
 
235
“촌이래두 집집이 전길 켜게 하구, 머 그린다구……”
 
236
“그래 그래, 됐어…… 그럼 잉, 내가 하께시니, 넌 있다 질문해. 잉?”
 
237
“오케.”
 
238
구누를 한 후에 윤상수는 교단으로 올라가고, 꼬마 고영달과 박재춘과 그 밖의 둘은 교단 앞으로 가까이 가 앉는다. 문태석은 여전히 그대로 유리창 문턱에 가 걸터앉았고.
 
239
“헴.”
 
240
윤상수는 밭은기침을 한번 하고 나서 들어단짝
 
241
“에, 내가 만일 당선이 되어 국회의원의 한 자리를 더럽히는 영광을 갖는다면……”
 
242
하고, 단박에 본대목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언제고 허두의 인사말 같은 것이나 중요치 아니한 잔사설까지 일일이 다 복창(復唱)을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었었다.
 
243
“나는 무엇보다도 38선을 철폐시키고 남북통일을 달성하도록 혼신의 노력을 하겠읍니다. 남북통일과 자주독립, 이것은 우리 3천만 민족의 지상명령입니다. 이 민족의 대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나는, 가벼운 일명을 바치기를 사양치 않겠읍니다. 그 다음 나는 공출을 폐지시키겠습니다. 이 공출제도로 인해서 얼마나 우리의 농민이 울고 있읍니까. 조선의 농민을 가난과 불행의 구렁으로부터 건져내자면, 우선 무엇보다도 공출을 폐지시커야 합니다. 생산가격의 절반도 못되는 6백 60원이라는 헐값으로 농민에게서 공출을 받는 것은, 강제증발과 별로이 다를 것이 없읍니다. 농민들은 자기들의 피와 땀으로써 거둔 벼를 강제로 증발당할 아모런 의무도 이유도 가진 것이 없읍니다.
 
244
조선의 인구는 그 8할이 농민입니다. 그런 고로 농민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즉 조선사람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245
여러분, 보십시요. 조선의 농민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읍니까. 참으로 원시적인 비문화적 생활을 하고 있읍니다. 이 원시적이요 비문화적인 생활을 문화적인 것으로 개선치 않고는 농민문제는 해결을 했노라고 할 수가 없읍니다.
 
246
나는 첫째, 농민들이 집집마다 전기를 켜도록 농촌전화(農村電化)를 단행하겠읍니다. 방방곡곡이, 집집마다 빠짐없이 환히 전등을 켠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광경이 아닙니까.
 
247
둘째로, 나는 농민들의 지붕을 죄다 벳기고, 함석과 기와로 곤쳐 이도록 하겠읍니다. 함석집이나 기와집이 위생에도 좋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떤 외국 사람이 조선의 농촌을 보고, 조선에는 웬 도야지울이 그렇게 많으냐고 했다지 않습니까. 그 도야지울 같은 조선농민의 지붕을 하로바삐 함석과 개와로 곤쳐 이지 않고는 우리는 민족적 체면을 유지할 수가 없읍니다.
 
248
애, 이 사람의 주장과 포부는 이렇습니다. 질문하실 분이 있으면 하십시요. 얼마든지 답변은 해 드리겠읍니다.”
 
249
“여보, 연사 양반.”
 
250
꼬마 고영달이 부르고 일어선다.
 
251
“네. 말씀하시요.”
 
252
“그러니깐…… 나는 이와 같은 주장과 포부를 가졌으니깐 한표 줍쇼 그 뜻이겠다요?”
 
253
“말하자면 그렇죠.”
 
254
“동냥 댕기는 중이 남의 집 문전에 와서, 목탁 뚜드리면서, 정구업진 언수리수리마수리, 염불하구 나서 한푼 줍쇼 하는 뻔이군요? 실력 없는 헷념불 하구 나서.”
 
255
“그래두 할 수 없죠.”
 
256
시치미 뚝 따고 서서 대답하는 윤상수 하나만 빼놓고, 여럿은 어우러져서 한바탕 웃는다.
 
257
이 편을 돌려다보고 있던 문태석도, 따라서 싱그레 웃는다. 그는 꼬마 고영달의 재치 있는 비유가 재미있다고 생각하였다.
 
258
웃음이 그치기를 기다려 꼬마 고영달은 다시
 
259
“그건 그렇구…… 여보 연사 양반.”
 
260
“말씀하시요.”
 
261
“공출을 폐지시킨다구 했죠?”
 
262
“네.”
 
263
“우리가 알기엔 38 이남에서 나는 식량을 가지구 38 이남의 인구가 1년 동안 먹기에 모자라기 때문에 소비규정을 하느라구 공출제도가 마련됐다구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공출폐지를 했다. 두 달치구 석 달치구 모자라는 식량은 무얼루다 보충하나요?”
 
264
“조선독립 원하는 우리 미국에서 밀이랑 밀가루랑 강낭이랑 영양분 있는 캔디랑 설탕이랑 안 썩은 콩가루랑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읍니다.”
 
265
“또오, 농촌까지두 집집마다 전등을 켜구, 농민들의 도야지울 같은 지붕을 영을 벳기구서 함석이나 기와루다 인다구 했는데, 그 함석이랑 전등 가설에 필요한 재료는 어디서 나나요?”
 
266
“조선독립 원하는 우리 미국에서 얼마든지 가져올 수가 있읍니다.”
 
267
“그러면, 얼마든지 가져다 먹구 쓰구 한 함석값, 전기재료값, 밀과 밀가루값, 캔디랑 설탕값은 무얼루다 값나요?”
 
268
“외상이면 소두 잡아먹읍니다. 우선 먹긴 곶감이 달지 않아요? 나중 가서 졸리다 못하면 땅덩이루 갚으면 고만이죠.”
 
269
“옳아…… 연사 양반 성명이 무어죠?”
 
270
“문영환이요.”
 
271
“성이 문가두 있군요?”
 
272
또 한바탕 웃음이 터져나왔고.
 
273
“여보 연사 양반?”
 
274
“네.”
 
275
“마주막 질문인데, 38선을 철폐시키구, 남북통일을 한다고 했죠?”
 
276
“죽어두 하죠.”
 
277
“구체적 방법을 말씀해 주시오.”
 
278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째는 조선지도를 꺼내놓구 고무루다가 북위 38도선을 싹싹 닦아버립니다. 어떻습니까?”
 
279
“가든 중 걸작이구료…… 그 댐은?”
 
280
“둘째 안은, 국방군을 양성해 가지구 북벌(北伐)을 해서 김일성 이하 적색매국노를 깡그리 처형합니다.”
 
281
“좋습니다. 그러나 북벌을 갔다 이성계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이 돼버리면?”
 
282
“좌우간 결과는 38선이 없어지구, 남북은 통일이 되구 한 거 아뇨?”
 
283
일동은 빵집으로 가면서 윤상수가 박재춘에게 이성계 씨의 위화도회군에 대한 설명을 하여 주었다.
 
284
꼬마가 체는 작아도, 스물한 살에 6학년, 윤상수와 문태석이 스무 살에 5학 년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이 만일 이러한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면, 그들의 놀라운 재기(才氣)와 조숙(早熟)에 혀를 내두르지 아니치 못할 것이었다. 그들의 학교 성적은 결코 우수한 편이 아니었었다.
 
285
문태석은 빵집으로 가는 여럿과 중로에서 헤어져, 2킬로 가량 나가 있는 솔메라는 교외(郊外)로 경채를 찾아갔다.
 
 
286
수리조합 똘뚝을 타고 들을 건너가면, 들 복판에 가 울창한 솔창을 가꾸고 있는 나지막한 구릉을 배경으로 조그맣게 마을이 이루어진 곳이 솔메였다.
 
287
아직 오후 세시…… 교외는 햇빛이 한결 더 맑았다.
 
288
초경(初耕)을 한 논이랑의 볏밥이 요새의 좋은 날씨에 부옇게 잘 타져 있다.
 
289
군데군데 잘 공력들여 가꾼 못자리판이 파란 모가 이쁘게 자라 있다. 황새가 긴 다리를 걷고 못자리판에 들어서서 긴 목으로 우렁을 쫀다.
 
290
가다오다 논 한 배미를 다 차지하고 환하게 연주자꽃이 깔린 것은 자운영(紫雲英)밭. 문태석은 곧 가 드러누워 놀고 싶게 꽃밭이 마음 탐탁스러웠다.
 
291
아름다운 꽃밭과 이쁘게 자란 파란 못자리판과 학과 이런 목가적인 한가로운 풍치와는 대조적으로, 여기저기 논바닥에서는 사람들이 엉켜질러 시꺼먼 토탄(土炭)을 파고 있었다. 때는 냄새가 코를 두르지 못할 만큼 고약하고, 젊은 여자가 3년을 계속하여 그 불을 때면, 임신을 못한다고까지 하는 독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냄새가 싫은 것이 아니지만, 3년을 계속해서 때면 젊은 여인이 임신을 못하도록 독한 것인 줄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장작이나 솔가지보다는 값이 헐한 토탄을 그들들은 때야 하던 것이었었다. 그는 고사하고 다른 고장의 농민들은 독하고 냄새 나는 토탄이나마 흔하게 나는 이 고장에서 사는 농민을 오히려 부러워할 지경이었다.
 
292
농민들의 찌부러진 토담집을 영을 벗기고 번쩍번쩍하는 함석을 인, 그래서 화성(火星)이나 가면 몰라도, 지구 위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문화주택’ 에서 누더기를 감은 여자가 고린내나는 토탄불을 부채질해 때고 있는 풍경이란 가물스럴 것이라고 문태석은 생각하다 문득 혼자서 피식이 웃는다.
 
293
‘조선의 농촌에는 도야지울이 많더라고 했다는 그 외국 나그네가 이번엔 그럼 조선 사람들은 도야지울을 함석과 기와로 이고 전등을 환히 켜고 하였더라고 대단히 탄복을 했다더라고 자랑스러할 양반이 생기겠지?’
 
294
이러면서 문태석은 실소를 하던 것이었었다.
 
295
마을 앞에서 마침 시내로 나들이를 나오고 있는 문주(文珠)와 그 어머니 임씨부인(그러니까 경채의 시누이와 그의 시어머니)를 만났다.
 
296
문태석은 경채를 찾는 것이 저 혼자만의 막연한 즐거움이었었다. 경채를 찾기가 막연히 그런 즐거움인 줄을 문태석은 저 스스로는 의식치 못하는 노릇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하였다. 무시로 생각이 나고, 그러나 퍼뜩 찾아와서 만나고 한다치면, 무엇인지 모르게 마음이 흥겹고 할 따름이었었다.
 
297
문주와 그 어머니가 나들이를 가는 것은 경채가 집에 혼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98
문태석은 무엇을 횡재한 것같이 느긋하였다. 그러나 역시 횡재한 것 같은 느긋한 상태일 뿐이지, 스스로 그것을 객관(客觀)토록은 하기에 이르지 못하였다.
 
299
임씨부인이나 문주는(혹은 경채까지도) 문태석이 문주를 만나러 다니는 것으로 알았다. 모녀에게는 그것이 환영스러운 일이었다. 문태석이 장차에 좋은 신랑감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임씨부인은 그래서 언제나 그러한 듯이, 오늘도 문태석에게 끔찍이 흔감스러웠다. 어쩌면 그렇게도 한번도 아니 오느냐고. 어머니 아버지 다 안녕하시고 동생들도 잘 있느냐고. 참 아버지는 선거에 얼마나 앨 쓰시느냐고. 시방 정거장에 누구를 배웅을 가는 길인데, 아, 모처럼 온 손님을 떼어놓고 가 어떡하느냐고. 딴데 볼일은 그만두고 정거장에만 얼른 다녀 저물기 전에 돌아오께시니 아주머니하고 놀고 있으라고 부디 가지 말고 놀고 있으라고. 가뜩이나 다변한 여인이 들이 흠선을 피우면서 신신당부를 하였다.
 
300
문태석은 이 여인의 지지리 그 말이 많은 데는 머리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301
‘자라면 따님도 저렇겠지?’
 
302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문주가 눈에 고이지 않는 것이 아슬아슬하게 다행스러웠다.
 
303
문태석은 그러나 그들의 오해와 그 오해로부터 오는 ‘목적 있는 환대’가 경채를 만나러 다니기에 편리를 끼쳐 주는 것이어서 차라리 무방하였다.
 
304
문주는 열여덟이라는 제 나이보다 월등히 잔착하였다. 주근깨 있는 가무잡잡한 얼굴과 배내털이 가시지 아니한 것과 여학교의 제복과 이런 것이 한결이나 더 어리어 보이게 하였다. 그러나 속조차 어린 것은 아니었다. 문태석과 주쩍 마주치자 모닥불을 끼얹은 것처럼 얼굴이 귀밑까지 새빨개서 허리로 인사를 하는 시늉 하고는 저기만큼 먼저 가 버리고 있었다.
 
 
305
경채는 그의 약간 눈웃음을 지닌 눈과 시원스런 입으로, 너붓한 얼굴에 하나도 거리낌새 없는 웃음을 가득 흐트리면서 마당으로 들어선 문태석을 맞는다.
 
306
“내 오늘 석이가 올 줄 알았지.”
 
307
경채는 문태석을 그의 집안에서 어렸을 적의 습관으로 석이라고 부르는 본을 따 역시 석이 석이 하고 불렀다.
 
308
문태석은 경채를 만나기가 즐거웠다. 언제나 반가이 맞이하여 주는 그 시원한 웃음이 즐거운데, 겸하여 기다렸다는 것이 더욱 즐거움이 아닐수 없었다.
 
309
“점을 치섰던감?”
 
310
“아니, 절루 거저, 올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311
“그럼 오길 잘했군요?”
 
312
“아뭏든지 잘 왔어. 혼자 적적하든 참에…… 오다 어머니랑 문주랑 만났지?”
 
313
“바루 요 앞에서.”
 
314
대청마루에는 벌써 등으로 한 여름 응접 세트가 나와 놓여 있었다.
 
315
이 집은 여자들만의 집이었다. 경채는 과부였다. 임씨부인이 역시 과부였다. 문주는 처녀였다. 경채나 문주가 신교육을 받은 여자라고는 하지만, 이런 촌 가정에서 여자들만이 자기네들의 필요로 대청마루에다 응접 세트를 꾸며놓도록 그들의 생각과 생활이 구미화(歐米化)한 것은 아니었었다. 그렇다면 정녕 손님─손님이로되 남자 손님을 위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316
설마 문태석 저를 기다리는 마음성이라고는 여겨지지 않고.
 
317
‘어떤 누구를 소중히 맞이하기 위한 이 마련인고?’
 
318
할 때에 문득 무어랄 수 없는 불쾌함이 속으로 솟아올랐다.
 
319
“참 아버지랑 어머니서껀 선거에 무척 골몰하시지?”
 
320
경채가 그렇게 인사삼아 묻는 것을 문태석은 불쑥 쏘아 부딪는다.
 
321
“모르죠. 그 야만인들.”
 
322
“온, 저렇게 어머니 아버지허구 으이가 아니 맞아 어떡하나아.”
 
323
“……”
 
324
문태석은 말없이 서서 경채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다본다.
 
325
경채에게서는 그의 얼굴과 표정 가지는 것에서도, 살과 살결에서도, 말과 음성에서도, 옷과 옷감이나 문채나 옷 입은 맵시에서도, 걸음 한 번 옮겨놓고 손 한번 드는 것에서도, 통틀어 그의 전체에서 마치 잘 익은 과실에서와 같은 풍만함과 안존하니 초조 없는 여유스럼과, 무긋하면서도 데데함이 없고, 연삽함과 이런 한말로 형용키 어려운 일종의 포근하고 감칠성 있는 맛이 저절로 풍기어나는 것이 있었다.
 
326
경채는 본시도 타고난 천품이 소탈하고 생김새도 미운 데가 없이 푸짐스럽고 한 여인이었다. 그런 그가 정신적으로나 신체로나 여자로써 바야흐로 가장 발육이 원숙(圓熟)하여지는, 그래서 비로소 한 ‘부인’ 으로서의 태와 자리가 잡히는 갓서른을 금년에 맞이하였었다. 문태석의 소위 형용키 어려운 포근하고 감칠성 있는 맛이란 경채의 이 ‘부인’ 으로서의 태와 자리가 잡힌 30세 여인의 살과 정신과 그리고 타고난 자연스럼과에서 발산되는 무형의 체취인 것이었다.
 
327
아직 스무살박이의 순박한 총각 문태석쯤으로는 그렇듯 미묘한 여자의 생태(生態)를 이해할 지혜는 미처 없었으나, 하여간 그것이 감각에 유쾌한 것은 사실이었다.
 
328
유쾌하면서 그러나 일변 궁금한 것이 있었다.
 
329
문태석의 개념으로 하면 젊은 과부라고 하면 어디라 없이 추레하고 슬픔이 드리워 있는 것이라야 하였다. 경채에게서는 그러나 그런 추레하고 슬픔과는 반대의 그와 같은 유쾌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나 있을 따름이요 하던 것이었었다.
 
330
문태석의 외가 즉 최씨부인의 친정집과 경채의 친정집은 서울서 가까이 지내던 집안끼리였었다. 그러한 관계와 반연으로. 최씨부인은 경채를 이곳의 강씨네 집에다 중매를 섰다. 그래서 친정끼리의 가깝던 것이 이번에는 두 여인의 시집으로 연장이 되었다.
 
331
경채는 스물두 살에 결혼을 하였고 이듬해에는 남편 강준성을 따라 만주로 갔다. 목단강이라는 곳이었다.
 
332
경채의 남편 강준성은 재산의 기초도 약간 있었거니와 30 전의 젊은 사람답지 아니하게 민첩한 수완이 있고 하여, 거판지게 제재소를 한다. 개간사업을 한다, 일본군에다 군용품을 용달한다, 그 밖의 여러 방면으로 활약을 하면서 전쟁 중의 그 흔한 돈을 무더기로 벌었다.
 
333
최씨부인은 강준성을 경채에게 중매서면서 ‘다시 없이 좋은 신랑감’이요, ‘장래가 유망한 청년’이요 하다고 하였다. 중등의 상업학교를 마친 것과 일본서 대학을 다닌 것과(사립대학의 전문부에다 학적을 걸어놓고 3년 동안 마작과 빌리어드와 술과 계집질과 이것으로 펀둥거리고 지냈다는 것은 규수집에서만의 비밀이었고) 재산이 있고, 근지가 좋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인이요, 또 무엇보다도 멀끔한 허위대가 함빡 최씨부인 자신의 눈에 들었고(때에 최씨부인의 나이 40이었다. 40의 여인이 스물일곱의 멀끔하니 허위대가 좋고 세파트같이 정력적인 수양 오랍 동생 강준성이 함빡 눈에 들었다는 것은 노상 부자연한 생리가 아니었다) 이리해서 강준성은 소위 ‘다시 없이 좋은 신랑감’이요 ‘장래가 유망한 청년’이요 한 것이었었다.
 
334
그러나 소위 그 학벌이 있고, 재산이 있고, 근지가 좋고, 야소교의 신자요, 또 그리고 허위대가 멀끔하고 하다는 것이 최씨부인 등속에게는 눈에 들고 탐탁하였을는지 몰라도, 막상 좋은 신랑감이나 장래가 유망한 청년일 조건까지도 된다는 법은 없는 것이었었다.
 
335
강준성은 미상불 돈은 그렇게 잘 벌었다. 그러나 그는 돈과 좋은 음식과 화려한 옷에 술과 아리따운 계집과 이것밖에는 모르는, 그것에서 밖에는 생활의 낙과 의의를 발견할 능력이 없는,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한낱 속한에 지나지 못하였다.
 
336
매일같이 술 먹고 계집질하고, 하르빈이나 장춘(신경)으로 술과 계집을 원정 가고, 이것이 일이요 천하에 없는 낙이요 커다란 생(生)의 가치(價値)요 하였다.
 
337
아내 경채에게는 애정도 존경도 가지지 아니하였다. 무릇 아내라는 것은 남편의 애정이나 존경 같은 것은 생각할 것이 아니요, 오직 가정을 지키고 남편을 시중들고 하면 그만이라는 것이 다시 없이 좋은 신랑감이라던 강준성의 말없은 주장이요 요구요 하였다.
 
338
강준성이 아내 경채에게 보내는 서비스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주악한 화류병의 선사였었다. 덕분에 경채는 그것을 치료하기에 두 달 석달씩 번번이 고생을 하곤 하였다.
 
339
강준성은 마침내 첩을 얻어 딴살림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340
애초에 경채편에서도 무슨 애정이 있어가지고 결합이 된 부부는 아니었었다. 또 결혼 후에도 애정은 우러난 것이 없었다. 오직 ‘법’에 좇아 형식적인 아내 노릇을 하여왔을 따름이었다.
 
341
그러자 강준성이 첩을 얻어 본집보다는 훌륭한 딴살림을 차렸다.
 
342
가정을 지키고 남편을 시중들고 하는 소임을 면하였다고 생각한 경채는, 기후 풍토가 맞치 않는다는 핑계로 시원히 조선으로 돌아와 버렸다. 어떻게도 후련하고 다행스러웠던지 몰랐다.
 
343
돌아와서는 친정집 서울서도 지내다 과부 시어머니가 딸 하나를 데리고 외로이 지내는 이곳 시집에도 와서(시어머니와 와락 의는 맞지 않았으나) 한동안씩 지내고 하였다.
 
344
한 1년 그러는 동안 1945년의 8∙15 해방이라는 것이 왔다. 이어서 만주에서의 험한 소식이 들리었다.
 
345
약한 여자의 마음이라 경채는 남편의 안위가 매우 걱정스러, 생각 같아서는 곧 가기라도 하고 싶었다.
 
346
그러자 한 달 가량 지나서 제재소의 지배인 셈으로 데리고 있던 사람이 강준성의 유골을 가지고 돌아왔다. 숨어 앉았던 집에서 만주 사람 폭민의 엄습을 받아 참혹한 죽음을 하였다는 것이었었다.
 
347
이리하여 경채는 남편이 애정이 없고 방탕하던 덕분에 목숨은 건지고 과부는 되고 한 것이었었다.
 
348
경채의 남편 강준성과의 사이에 엉클어진 부부문제의 세세한 내용까지는 몰라도, 아뭏든 불행한 결혼생활이었다는 정도로는 문태석도 짐작은 할 수가 있었다.
 
349
결혼생활이 불행하였고, 그러다 새파란 나이에 과부가 되었고 하니 일반적으로는 침울하고 비관적이기에 족한 재료였었다. 그러나 경채에게는, 적어도 문태석이 보기에는 하나도 그런 기색은 없고 차라리 명랑함이 있을 뿐이었었다.
 
350
문태석은 모를 일이기는 하면서도 다행스러웠지 싫을 것은 없었다.
 
351
응접탁자에는 방금 경채라도 읽다가 놓아둔 듯, 헤벨의 희곡「유디트」가 펼쳐진 채로 놓여 있었다.
 
352
“유디트?”
 
353
문태석은 가벼운 놀람과 더불어 책을 집어든다.
 
354
「유디트」는 문태석도 바로 얼마 전에 읽었다. 읽고 난 감상은 자극이 강렬한 심각한 작품이라는 것뿐이었었다. 그러나 과부 경채가 「유디트」를 읽고 있다는 데는, 여주인공 유디트가 역시 과부였다는 것이 생각히면서, 전혀 무심한 독서라고는 여겨지지를 않는 것 같았다.
 
355
“유디트는 경채라고 하고…… 그럼 악마보다도 더 지독한 놈 홀로펠네스는? 있을 수 있을까?…… 있다면, 에푸라라임은 또 누구?”
 
356
책이 펼쳐진 데가 공교로이 또 유디트가 시녀(侍女)더러
 
357
“나의 아름다움은 벨라돈나의 아름다움이란다. 먹으면 미치거나 죽거나 한다는……”
 
358
이 말을 하는 대문이었다.
 
359
문태석은 등골이 오싹하였다.
 
360
경채가 부엌으로조차 나오는 기척에 문태석은 고개를 돌렸다. 경채는 부엌에서 차를 만들어가지고 나오고 있었다.
 
361
문태석은 경채의 얼굴을 파듯이 짯짯이 바라다보았다. 그러나 벨라돈나의 독한 자주황갈색의 꽃이 아니고 역시 설토화(雪吐花)처럼 무심하고도 번화스런 웃음이 있을 따름이었다.
 
362
“촌이라 얼음이 있어예지. 우물물이 시언하긴 해두.”
 
363
경채는 그러면서 하얀 백자기의 차관에서 놀면한 레몬수를 세트글라스의 컵에다 따른다.
 
364
“아주머니 이것 재밌어요?”
 
365
문태석은 컵을 집어들면서 묻는다. 경채가 무심코「유디트」를 읽는 것인지, 혹은 무슨 동기가 있어 읽는 것인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366
“글쎄…… 재밌다구 할는지, 온 무섭다구 할는지. 허긴 아직 절반두 못 읽었으니깐 어떤진 모르겠어두, 아뭏든 여자헌텐 너무 강렬한 것 같아…… 왜?”
 
367
“아뇨. 명작이란 말은 들었길래 재밌으면 나두 한번 읽어볼 영으루요.”
 
368
“나두, 누가 그래요. 재밌으니 읽어보라구. 아 그래 읽어보았더니, 하하하, 유디트가 과부겠지, 나처럼…… 아마 그래서 날더러두 읽어보라구 위정 그이가 책꺼정 가져다 준 모양야.”
 
369
문태석은 아마도 책까지 가져다 주면서 읽어보라고 한 그이라는 게, 그 녀석이 정녕 홀로펠네스 놈일 거라고, 어떤 녀석이드냐고, 들이대고 싶은 마음이야 더럭하였지만, 차마 입을 열어 물을 수는 없었다.
 
370
문태석은 제가 읽지 아니할 줄로, 거짓말을 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371
‘읽지 마시오. 해로왔지 유익할 건 없으리다.’
 
372
이렇게 경고처럼 말리고 싶었던 것이었었다.
 
373
“참 깜빡 잊을 뻔했군.”
 
374
경채는 저의 컵에다도 차를 따르면서 말한다.
 
375
“집이 가거든 어머니더러 도야진 말을 해뒀읍니다구. 열이튿날 새벽에 실어 들여보내겠읍니다구, 그 말씀 잊지 말구 이쮜요, 응?”
 
376
“도야지라뇨?”
 
377
“아따 그런 게 아니라, 접때 나헌테 기별을 내보내섰어. 도야질 한 3백근짜리든지, 그보다 더 큰 것두 조니 동네서 알아보아, 판다는 것이 있거들랑 이 돈으루다 계약금을 주구서 마춰놨다 열이튿날 새벽에 실어 들여보내 달라구. 남겨지 돈은 그 사람헌테 치루두룩 하시겠다구. 그러자 마침 이웃에서 큰 도야질 팔 영으루 한다길래, 산피(山皮)루 매근 백 5원씩 흥정을 해서 계약금 5천 원은 먼점 주구, 남겨진 열이튿날 도야질 싣구 들어가서 근대를 달아서 얼마가 됐든 찾기루, 다 그렇게 약졸 해놨어요. 그러니깐 집이 가거든 어머니헌테 그 말씀 좀 사뤄 달란 그 말야.”
 
378
문태석은 속으로 내 위정 말 못 들은 척할걸 하면서
 
379
“흥, 떡 사줄 놈 맘두 안 먹는데, 김칫국 먼점 마신다구, 당선두 되기 전에 당선 축하잔치에 쓸 도야지 사놓구. 흥.”
 
380
“그래두, 넉넉 자신들이 기신 모양이든데? ××부가 도통 2만 푠데 아버지 말씀이 그중 1만 표 하난 염려 없다구 그리섰다면서?”
 
381
“만 푠커영, 단 3천 표가 어려울 테니, 인제 두구 보시우. 2천 표나 3천 표 겨우 얻어가지구 뻥 나가떨어질 테니, 두구 보아요 인제.”
 
382
“어떻게 2천 표니 3천 표니 숫자꺼정 정확하게 알아맞힐까?”
 
383
경채는 문태석의 하는 양이 재미가 있어서 일부러 말을 시키던 것이다.
 
384
문태석은 남은 차를 마신 후에, 자신 있이 천천히 설명을 한다.
 
385
××부의 등록된 유권자를 2만으로 치고, 그중에서 이번의 선거를 지지하는 파 즉 ××××당원과 ××××회원과, 그리고 그 두 단체와 노선을 같이하는 개인과 이렇게들 전 유권자의 1할 ─ 2천 명을 잡는다.
 
386
이 2천 명은 아무려나 문영환에게 투표를 할 것이었다. 그것이 2천 표.
 
387
그 밖에 잘하면 정실관계의 표와 장님표(盲目票)가 천 표 가량은 될터. 그래서 도합 3천 표요, 3천 표만은 절대로 틀림이 없을 터이었다.
 
388
만일 등록 때처럼 경찰에서 내사를 하네, 쌀통장을 빼앗기네, 기권하는 자는 빨갱이요, 민족반역자네 하면서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끌어내다 투표를 시키지 않고, 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말고 싶은 사람은 말고 하도록 일체로 방임을 한다면…… 그런다면 투표장에는 그 이번의 선거를 지지하여 문영환에게 투표할 사람과 약간의 부동층만이 모일 것이요, 그리하여 문영환은 3천 표를 얻고, 무소속 두 사람은 불과 몇백 표를 얻고 함으로써, 승리는 단연 문영환에게도 돌아갈 것이었다.
 
389
그러나 보나마나 투표 때에도 등록 때처럼, 유권자라는 유권자는 무슨 짓을 해서든지 빠짐없이 죄다 끌어낼 방침으로 나갈 것이었다. 하면 유권자 2만 명의 대부분은 얼굴을 찡그리고 투표장으로 나가기는 나간다. 나가지만 그중 3천 명이나를 빼놓고는 1만 7천 명은 약속이나 한 듯이 ××××당이 아닌 사람, 즉 무소속인 두 사람 가운데 아무나 한 사람에게 투표를 할 것이었다. 1만 7천 표를 무소속 두 사람이 꼭같이 나눈다고 하더라도 8천 5백 표. 문영환의 3천 표를 가지고는 생심도 못할 참패일 것이다.
 
390
일반이 생각하기는 이번의 선거란 ××××당이 꾸며낸 조작이요, ××××당 저희들 하나만 좋자는 놀음이라고 대게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억지로 등록을 시킨다. 억지로 투표를 시킨다 하는 것도 그래서 ××××당이 등뒤에서 부리는 자깝이라도 역시들 생각하고 있었다.
 
391
이 인식이 바른 것이냐 바르지 못한 것이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기 때문에.
 
392
“흥, 저희들 좋아하라고 문영환이한테 투표해 주어?…… 네, 미워서라두 딴 사람한테 해줄걸.”
 
393
하고 심술을 부리는 것도 하옇든 당연한 일일 것이었다.
 
394
문태석의 설명은 대강 이러한 것이었었다.
 
395
경채는 어린 문태석이 하는 양이 재미가 있어서 말을 시켜본 것이지, 별양 흥미를 가지는 문제가 아니어서 엔간히 화제를 돌리고 말았다.
 
396
경채는 문태석이 칼국수를 좋아하던 것을 생각하고, 부랴부랴 놋양푼에다 밀가루를 꺼내가지고 와 마룻바닥으로 내려앉아 반죽을 하기 시작하였다.
 
397
“석이, 닭 좀 잡아 줄 테야?”
 
398
경채가 그러는 것을 문태석은 곧 울상을 하면서
 
399
“닭국물에 만 칼국순 못 먹어두 닭은 못 잡겠수.”
 
400
“온, 사내가 그렇게두 맘이 약해?…… 그럼 멸치국물야?”
 
401
“……”
 
402
문태석은 밀가루 뭉치를 두 팔에 힘을 주어 야긋야긋 누르고 앉았는 경채의 옆볼을 한참이나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다가
 
403
“아즈머니.”
 
404
하고 부른다.
 
405
“응.”
 
406
“지끔두 신식여자루 말이죠, 과부가 되면 새루 결혼 아녀기루 마련인가요?”
 
407
“?……”
 
408
하 당돌한 질문이어서 저애가 무슨 뜻으로 불쑥 그런 소리를 하는가 싶어 경채는 고개를 들고 짯짯이 문태석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409
문태석의 얼굴에는 약간 당황하여 하는 부자연스런 미소가 떠돌고 있었다.
 
410
경채는 그것을 못본 체 도로 고개를 숙이면서
 
411
“마련은 무슨 마련?”
 
412
“그럼?”
 
413
“누구 말야? 일반으루 말야? 나 말야?”
 
414
“가령 아주머니라면?”
 
415
“난 싫여.”
 
416
“왜요?”
 
417
“결혼생활 5년에 아주 진절머리가 난걸.”
 
418
“그건 결혼생활이 불행했기 때문에 그런 거 아녜요!”
 
419
“혹시 그런지두 모르지…… 그렇지만 행복했다구 치드래두, 난 도무지 결혼생활의 행복이라구 하는 게 와락 그대지 탐탁스런 거 같지가 않으니.”
 
420
“그럼 인제버틈 한평생 혼자 사시나요?”
 
421
“못 살 건 있나? 수녀(修女)들은 어떻게 사는구?”
 
422
“수녀야, 도나 닦는 재미루다 그런대지만.”
 
423
“난 혼자 사는 그 재미루다 혼자 살구. 하하하, 그렇잖아?”
 
424
“그럴까요?”
 
425
“이거 봐요 석이. 지끔두 조선서는, 아직두 재혼하는 여자라구 하면 남잔 고물상에 가서 헌옷 한벌 사 입는 그런 기분으루다 나오거든. 그러니깐 여자가 한번 결혼에 실패를 했다는 흠점보다 몇 곱절 불쾌한 흠점이 있는 남자만이 과부면 과부, 이혼한 여자면 이혼한 여잘 찾게 마련야. 대개 그래서 재혼하는 여자의 상대자는 여자에다 비해서 김 들기가 쉬어요. 돈이 모자라서 새걸루다 마쳐 입지 못하구 고물상에 가서 사 입는 양복이, 실상은 그 사람의 재산 정도나 신분엔 과한 옷인 수가 많드끼.”
 
426
“그럼 아주머닌 결국 재혼을 해두 신통할 거가 없을 테니깐, 아야 혼자 살구 만단 그런가요?”
 
427
“그런 점두 없잖아 있지만. 아뭏든 난 이거가 젤 좋아. 편쿠. 자유스럽구 하하하.”
 
428
문태석은 안심이 되었다. 아직 그는 여자의 이런 경우, 이런 문제에 있어서의 하는 말을 에누리 없이 곧이곧대로밖에는 알아들을 줄을 모르는 숫보기였었다.
 
 
429
문태석이 말한 그러한 조건과 이유로 인함인지 아닌지는 모르되, 하여커나 문영환은 보기 싫게 낙방이 되었다.
 
430
5월 열하룻날 오후까지에 완전히 결판이 났고. 밝는 열이튿날 이른 아침이었다.
 
431
밤새도록 한잠도 잠을 이루지 못한 문영환은, 경황중에도 주판을 앞에 놓고는 당시랗게 쪼글트리고 앉아 생각나는 대로 한알 두알 주판알을 퉁기고 있었다. 이번 선거에 든 비용을 대강 놓아보던 것이었었다.
 
432
가뜩이나 얼굴에 살이 많지 못한 그는, 여러 달 중병을 앓고 난 사람처럼 볼이 훌쭉하고 살결은 까칠하였다. 그런 사람이 충혈한 눈엔 일종의 살기를 머금어 닿으면 곧 부어질 듯 무싯한 것이 있었다.
 
433
이윽고 주판알은 3 7을 보였다. 3백 70만 원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된 것은 아니었다.
 
434
깜짝깜짝 생각을 한다.
 
435
그러자 안방에서 아내의 보풀스런 소리가 별안간 들려왔다.
 
436
“넌 자행건 해 무얼 하니?”
 
437
정녕 큰아들 문태석더러 하는 지청구인 듯싶었다. 아니나다를까
 
438
“타구 학교 댕길 영으루 그러지, 무얼 해요.”
 
439
“엎어지면 코 달 델 자행걸 타?”
 
440
“요새 괜히 대리가 무겁구 해서.”
 
441
“호강스런 소리 내지두 마라. 이게 시방 어느 판이길래. 에구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시상은 온 그렇게두 무심하실 데가 있어. 넌 괜히 속두 모르구 자행걸 사내라, 무얼 사내라 해두 시방 살림을 못하게 됐어요, 느이 아버지 선거에 떨어지는 바람에. 돈이 얼마가 든 줄이나 알아? 모두 해 4백마 원두 더 들었어. 암만 우리기루서니 한목 4백만 원이나 내다버리구 살림이 온전할 줄 아니?”
 
442
문영환은 저 지각머리 없는 여편네가 어떡허자고 그 녀석 앞에서 저런 소리를 하는가 싶어, 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지는데, 과연 아들의 잔뜩 비꼬는 말조가
 
443
“그럼 당선이 됐으면 큰술 볼 뻔했나요? 그러니깐 선거운동을 한 거가 아니라, 옛날 같으면 미둘(米豆) 한 심이군요?”
 
444
문영환은 비수로 가슴을 가르는 것같이 저렸다. 일변 분이 솟고.
 
445
바로 어제만 같았어도 손에 잡히는 대로 주판을 움켜쥐고 쫒아들어가 아들을 죽어라고 실컷 두들겨팼을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오늘 아침껏의 문영환은 그럴 기력조차 나지를 아니하였다.
 
 
446
문태석은 저의 방으로 가 책가방을 챙겨들고 현관으로 나왔다.
 
447
현관 밖에는 리어카에다 커다란 도야지를 꽁꽁 묶어 싣고 두 사람의 촌사람이 와서 있었다.
 
448
최씨부인이 나서서 그들과 대응을 하고 있었다.
 
449
“그럼 도야지두 낙방인갑쇼? 그럼 도루 실구 가는갑쇼?”
 
450
최씨부인의, 이번 선거에 그만 낙선이 되어서 쓰자던 도야지도 못 쓰게 되었노라는 발명에 대한 촌사람의 대꾸가 그것이었다.
 
451
문태석은 허리를 꾸부리고 구두끈을 매면서, 그날 경채가 모친 최씨부인한데 전하여 달라는 부탁을 전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전하기만 하였다면 어제 낮으로 낙선은 거의 결정적이었은즉 이 집에서도 도야지를 창피스럽게 들여보내 주지 말라는 기별을 경채에게 내보냈을는지도 혹시 몰랐을 것인데, 문태석 제가 일부러 아뭇 소리도 않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도야지 낙방’의 웃음거리 한 막을 구경할 수가 있었던 것이라고 혼자 속으로 씨익 웃었다.
 
452
오늘은 참 오후에 경채나 또 찾아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문태석은 가방을 집어 들고 이슬이 함빡 머금은 울창한 정원수가 5월의 아침공기로 더불어 상쾌하기 다시 없는 정원 사이의 통로를 성큼성큼 걸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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