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저녁을 먹고 난 지가 옛일같이 까마아득컨만 안방의 낡은 시계는 한 시를 겨우 치고 만다. 가을밤은 유장(悠長)도 하다.
3
잠을 자보려고 초저녁부터 드러누워 다섯 여섯 시간을 별렀으나 잠은 어디로 갔는지 눈만 점점 새벽별같이 맑아진다.
4
곁가지에서 곁가지가 뻗어나오고 또 곁가지가 뻗고 손자 증손자 고손자까지 뻐질려나간 공상이 허무하게도 뻗어오던 줄기를 도로 밟아 원줄기로 돌아왔을 때에는 유리창같이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현실감에 옴짝 몸서리를 치며 돌아눕곤 한 것이 초저녁부터 되풀이한 짓이다.
5
밤은 영영 이 침묵과 이 적료(寂廖)를 그대로 가지려는 듯이 끝을 모르고 깊어만 간다. 밤에 새지 아니하고 이대로 깊어만 간다 하면 그 끝에는 무엇이 있으려는지?!
6
가을밤에는 흔히 달 밝은 하늘에 기러기가 울고 날아간다는데 그것도 자연과 인연이 멀어진 서울이라 그러한지 도무지 들어볼 수가 없고 벽틈에서 귀뚜라미만이 심심 파적(破寂)을 하는 듯이 신에 붙지 않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7
님 그린 상사몽(想思夢)이 귀뚜라미 넋이 되어
10
이러한 옛시조를 생각하며 귀뚜라미 소리를 속에 새겨 듣느라니, 하기는 어딘지 수심겨운 신세타령인 것같이도 들린다.
11
인류를 다 잊어버리고 우주를 잊어버리고 그리고 시간까지 잊어버린 듯이 소리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고 다만 끝없이 깊어만 가는 밤에 마음도 또한 끝도 없고 밑도 없이 꿈 같은 실마리를 타고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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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生[학생] 2권 8호, 193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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