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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의 비애(悲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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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노자영
1
영원의 悲哀[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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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가도 언제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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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한 광야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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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길 멈추어 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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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벙지벙 쓸어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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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비애의 검은 눈물은
7
그의 눈에서 용솟음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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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어떤 젊은 시인의 애타는 푸념이었다. 어느때 인생의 영원한 쾌락이 있으며, 어느때 사람에게 무구한 만족이 있다고 하였을까마는,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갈수록 인생은 덧없는 것이라고 점점 깊게 느껴진다. 아, 영원의 비애! 누구인들 이 비애를 느끼지 않으며, 이 비애 밑에서 눈물 흘리지 않겠는가? 한송이 꽃이 뜰위에 필때나, 한 잎의 단풍이 산허리에 질때나, 영원한 불만을 가슴에 안고 덧없는 인생을 서러워 한자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그 몇 억만 사람이었으며, 지금부터 오는 세상까지 장차 그 몇 억만 사람이 되려는가? 폭풍우는 지나가고 물은 흘러, 영원으로부터 영원에 그 모든 소식을 전하니, 그 사이에 인간의 덧없는 설움은 그 얼마나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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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러진 달은 다시 딩굴고 떨어졌던 꽃은 다시 핀다. 그리하여 동산위에는 영원의 달이 비치고 앞산 아래는 꽃이 웃으니, 그들의 영화를 누가 부러워 하지 않으며 찬미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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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간! 인간은 심히 덧없는 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비애에 사는 것이다. 그의 눈에서는 비애의 눈물이 마를때가 없고, 그의 입에서는 탄식의 물결이 끊일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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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은 기뻐 뛴다. 그리고 젊은 남녀의 무리는 정열의 거리에서 사랑을 속삭이며 생의 만세를 끝없이 부른다. 아, 과연 유열과 감사의 물결은 그들의 가슴에 넘쳐 흘렀는가? 그리고 과연 향을 띄우고 꽃을 무는 듯한 달콤한 행복은 그들의 앞길에 길이 빛났을까? 아니다. 이것은 모두 일시의 환상이다. 타오르는 감정에 그의 의지가 환취(幻醉) 되었을때 잠깐 맛볼 수 있는 꿈이다. 불붙은 감정이 쓸어지기 시작하고 다시 시퍼런 의지의 칼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할때에는, 그들은 끝없는 권태, 하염없는 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생이란 한없이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따라서 영원한 비애에 눈물을 머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허무의 생! 고뇌의 생! 안식의 생! 아, 이러한 생에서 헤매는 이가 그 얼마나 많으며, 그 얼마나 허다한가? 진리를 찾을수록 의문이 생기고, 완전성을 찾을수록 공동(空洞)을 보게되며, 환락을 찾을수록 비애를 맛보게 된다. 아, 영원히 허무한 인간의 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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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생에 애착을 두고 모두 죽기를 슬퍼한다. 죽을까봐 주먹을 쥐고 바르르 떤다. 그러나 어찌 아니 죽으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사의 길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불사약을 찾는 사람도 죽었고, 승로반(承露般)을 만들던 사람도 죽었으며, 하느님을 찾던 사람도 죽었다. 절대의 힘을 가지고 모든것을 파괴하고 모든것을 삼켜버리는 사의 힘앞에 그 누가 능히 대적할 사람이 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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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같이 고운 인생이요, 꽃같이 젊은 시절로서 몸에는 자랑의 금비가 빛나고, 뒤에는 영광의 화환이 찬란하며, 앞에는 환호의 소리가 떠나지 않는 다하여도 그가 인간인 이상에는 그의 뼈를 쑤시고, 그의 가슴을 말리는 우수와 고민과 비애가 사무쳐있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것을 찾고, 값있는 영지(靈他)에 나간다하여도 즉시 우울과 탄식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아, 인간이란 어찌 싱겁지 않으며, 허(虛)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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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인간은 어디로 가야할까? 에덴에서 쫓김을 받은 우리 인간은 나갈 곳이 어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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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최고의 행복이라는 이성의 사랑속에서 우리의 도피성을 발견해 볼까? 그리고 그곳에서 죽는 날까지 엄벙덤벙 살아볼까? 그러면 그것이 행복이고 따라서 그곳에서 만족을 얻을 수가 있을까? 아니다. 이성의 허리를 껴안고 포도주같은 강렬한 육감에 취하는 순간에도, 다시 한편으로는 냉탄(冷炭)같은 의지의 속살거림 아래 한없는 생의 권태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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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눈치오(Dannuhsio)의 ‘사의승리’중에는 이것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곧 그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주인공 ‘이포리타’는 월하향(月下香)같은 강열한 살냄새를 태우면서, 육감에 타는 뜨거운 손으로 남자 주인공 ‘티올티오’를 껴안으려 한다. 그러나 육적향락(肉的享樂)에, 그리고 단조로운 변애생활에 그만 허무를 느낀 ‘티올티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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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요, 그만 두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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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 여자를 밀쳐버린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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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혼자 죽지 않으면 않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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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탄식하였다. 이성의 가슴에서 멀미를 당한 ‘티올티오’ ─ 남녀의 사랑이란 어디까지나 무의미하고 가소롭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세상의 공허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영원한 비애에 가슴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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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자! 영원한 불만에서 돌아가자! 죽음으로써, 그 무슨 신비의 전당을 발견해 보자고 ‘티올티오’는 죽기를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육(肉)에 도취한, 그리고 영원한 허무에 묻혀있는 그의 애인 ‘이포리타’를 데리고 사의 피안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들의 최후 순간을 보면 ‘티올티오’는 ‘이포리타’를 데리고 핀티오 정상으로 갔다. 그 정상 아래는 무서운 바위가 벼랑을 깎아놓고, 다시 그 아래는 시름없이 흘러가는 물결이 하늘에서 흘러오는 별들을 고요히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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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올티오! 티올티오! 이쪽으로 오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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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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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올티오는 목쉰 소리로 대답한다. 개는 올리브 숲 옆에서 소리쳐 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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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어부의 횃불이 보입니다. 이포리타씨, 이쪽으로 오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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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싫어요. 어지러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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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 없습니다. 내가 붙잡아 드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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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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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서 이쪽으로 오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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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올티오의 목소리는 심히 이상하게 그 여자의 귀에 울려, 그 여자로 하여금 불안을 느끼게 하였다. 그 여자는 어쩐지 알수 없는 무서움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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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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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올티오는 그 여자를 억지로 껴안고 바위 아래로 떨어졌다. 이포리타는 붙잡혀 벼랑으로 떨어지면서 번개같이 모든 것을 깨달았다. 생을 떠나려는 끝없는 무서움은 이포리타의 혼을 차디차게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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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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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포리타는 아픈 부르짖음을 외쳤다. 그리고 야수와 같이 손톱과 이로 자기의 위급을 막으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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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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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두번째 부르짖었다. 자기의 전 존재가 절벽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번개같이 의식했을때, 개는 미친듯이 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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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극히 짧은, 혹독한 싸움이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죽음의 나라로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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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보면 사람은 연애에서도 만족하지 못하는것을 알수 있다. 달고 단 육체의 향기도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못한다. 사람은 육체의 향기에도 족히 배부르게 되고 따라서 허무를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영원히 흐르는 비애의 눈물만이 그의 가슴을 스치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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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 인간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어디로 가야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 신비스럽고 거룩하다는 진리를 찾아서 그곳에서 만족을 얻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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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진리! 진리! 하고 떠든다. 그리고 불멸의 진리를 찾아 그곳에 영원한 세계를 만들고 무한의 열락(悅樂)을 맛보고자 한다. 그러나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종교인과 철학자가 과연 진리를 발견 하였는가?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만족을 주고 무구의 동경을 주는 불멸의 진리를 발견하였는가? 예수, 마호메트, 소크라테스, 석가, 공자나 기타 누구누구하는 사람들이 진리를 발견하였다고 하자! 그러나 그 진리라는것은 극히 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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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에 불타고 움직이는, 우리의 가슴에 조그만 바람을 불어 넣어 잠정적으로 위안을 주는 미미한 진리이다. 저울 추위에 티끌같은 극히 작은 철학이다. 누가 이 진리를 만족하여 비애의 노래를 안 부를 자가 있는가? 생각컨데 이 진리를 발견하였다는 그들도 영원한 비애에 가슴을 썩이다가 그만 최후의 눈을 감았을 것이다. 영원한 진리는 인간으로써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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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사실은 톨스토이(Leo Tolstoy)의 일생을 보면 자세히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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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백작으로서 많은 유산을 가진,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행복스러운 사람인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인간으로써 많은 열락(悅樂)을 취할데로 취하였는데, 그 열락에 불만을 느낀 후에는 진리를 찾아 ‘최선을’다한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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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는 처음에 진리를 예술속에서 발견하려하여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작품으로써, 많은 환영을 받았고, 따라서 일반 대중에게도 많은 교화를 주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는 예술에서도 진리를 찾지 못하고 따라서 만족을 얻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종교의 문으로 들어가서(종교적 생활중에서도 예술을 던진것은 아니요, 따라서 작품을 안낸것도 아니지만) 그곳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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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나야 포리야나에서 그의 부인 소피아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일반 빈민을 구제하고, 교화사업에 힘을쓰며, 성자의 생활을 한것은, 이 사이에 소식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필경 이 종교의 문 아래서도 진리를 찾지 못하였다. 정말 그의 가슴에는 채울 수 없는 공허의 구름만이 비애의 빛을 가지고 뭉게뭉게 돌고 있었다. 여기에 그는 인생의 불만을 느낄데로 느끼며 덧없는 설움에 헤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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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공동의 생 아래서 비애의 눈물을 머금은 톨스토이는 야스나 포리야나를 떠나 여러곳으로 방황하였다. 그가 80세 되던해 10월 10일에는 늙은 몸을 이끌고 오히려 무슨 진리를 얻으려는지, 그의 사랑하는 야스나야 포리야나의 집을 영원히 떠났다. 그가 의사 마코이키 박사와 사랑하는 여자 써─샤와 함께, 그 집을 도망쳐 나오며 그의 애처 소피아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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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10월 10일 아침 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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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외로울 것이요. 그러나 나는 가겠소. 섭섭한 일이나 어떻게 할 수 없소이다. 잘 이해해 주시요! 가정에 대한 나의 마음은 차마 견딜수가 없으리만큼 권태를 느꼈소. 나는 이제 더이상 그러한 생활을 단속할 수가 없소. 나는 늙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나의 여생을 평화와 정온속에 보내려는 것입니다. 後略[후략]…… ―레오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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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보면 그가 생에 대하여 얼마나 쓰린 불만을 느낀것을 가히 알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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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그는 그 편지에서 언급했듯이 남은 생에서 오히려 무엇을 발견해 보려고, 의사와 애인을 데리고 비밀의 집을 떠나 옵틴 사원과 사말디 승원을 거쳐서 남으로 남으로 향하여 가다가, 필경은 아스타 포오라는 시골 정거장에서 그만 병들어 죽고 말았다. 그가 죽기 전날까지 여러 번 부르짖은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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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은 단순하다. 그렇다. 별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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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말이었다. 그가 일생을 두고 찾으려는 진리는 별것아니다. 그저 단순하고 허무한것 뿐이었다. 톨스토이도 영원한 허무, 끝없는 비애를 가슴에서 지우지 못하고 그만 최후의 눈을 감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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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다면 인간은 어디로 가야할까? 달콤한 이성의 품에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진리의 전당을 찾지 못하니 인간의 갈 곳은 그 어디던가? 아니다. 그도 역시 허무하다. 진시황(秦始皇)은 부와 영화가 없었을까? 그러나 그는 천자의 높은 지위에서서 가슴을 조리며 불사약을 구하다가 그만 허무하게 죽었다. 석가는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산속으로 도망가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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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끝없는 불만, 영원한 비애! 이러한 검은 물결은 우리 인간을 둘러싸고 영원히 소용돌이 치고 있다. 울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서러워하지 않는자가 어디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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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많은 사람들아. 우리의 생에는 진리도 없고 사랑도 없고 부와 영화도 없다. 영원한 비애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곳으로 가자. 그리하여 그곳에서 울고불고 서러워하자!
【원문】영원의 비애(悲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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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9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