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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히 간 그대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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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노자영
1
영원히 간 그대에게
 
 
2
여기는 부전고원(赴戰高原)! 지금은 잎 떨어지는 가을──
 
3
가을은 이다지도 적막 합니까? 저는 지금 고원에 발을 붙이고 끝없이 펼쳐지는 창공의 저편을 바라 봅니다. 흰 구름은 자취없이 떠오르고 산골에 가을 물소리는 더욱 구슬프게 들려 옵니다.
 
4
貞子[정자]씨, 지금은 새도 울지 않아요. 꽃도 진지 오래됐어요. 다만 쌀쌀한 찬바람이 앙큼한 바위에 목메어 울 뿐입니다. 이렇게 쓸쓸한 곳을 나는 무엇하러 왔으리까. 손님이 끊어진 고원! 적막강산에 가을만 짙어가는 이 곳. 아, 정자! 나는 그대가 생각 날때 마다 내 가슴이 무너진듯하여 나는 여기를 찾지 않을 수 없어요. 그대와 나와 인연을 얻은곳도 이 곳이요, 우리 두 사람의 사랑이 작은 낙원을 만들던 곳도 이곳이 아닙니까. 바로 지금 서있는 곳은 날마다 같이앉아 속삭이던 넓은 바위랍니다. 정자! 벌써 해를 셋이나 거듭했구려. 내가 그대를 잃은지도! 아, 빠르다. 덧없이 가는 세월을 누구인들 잡으리까.
 
5
그 동안 세상이 변하고 내 환경까지도 변하였건만, 내 마음만은……. 나는 이런때에 당신 이름이라도 실컷 불러야 시원해요. 당신은 내 마음에 화석같은 존재였어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당신이라 생각지 말자고 여러번 결심하였으나 그 마음이 눈쓸듯 하는구려. 지금 이 글을 쓰면 무엇하리까. 붙일 곳도 없고 받아 볼 사람도 없으니…… 내가 당신을 잃은것은 내 몸의 반쪽을 잃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를 사내답지 못하다고 하지요. 그러나 아, 정자씨. 이 세상에서 당신을 다시 볼수 없다고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고 일하던 손에 맥이 풀려 다시 더하지 못합니다.
 
6
공산에는 서리찬 바람이 지나갈 뿐입니다. 울고 가는 기러기를 보고 슬퍼하리까. 흘러가는 물결을 쥐고 탄식하리까.
 
 
7
당신은 내 출세를 위하여 이 산골에서 코 흘리는 아이들과 추우나 더우나 땀을 흘리며 지냈지요. 그리고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도 달마다 내게 돈을 보낸 그 정성. 당신의 피와 땀으로 나는 지금 밥벌이라도 넉넉히 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내가 갚아야할 그 은혜의 사람은 지하에서 뼈만 남았으리라.
 
8
정자씨, 나는 당신이 그 육체만을 가졌다고 볼수 없어요. 그 아름다운 마음과 정성은 내가 오늘 여기와서 당신을 생각하는 이 자리에 나와함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좀 나은듯하여 정신없이 앉았다가 돌아보면 역시 허전한 나 홀로요, 형체없는 당신은 왔는지 말았는지── 아, 괴롭다. 역시 나도 인간인 이상 , 나와 같은 인간이 그립답니다. 아, 적막한 고원. 이 산에는 별빛이 울고 있어요. 그 별을 안고 호소나 할까?
 
9
발 앞에는 나뭇잎이 져요. 그 잎을 안고 울어나 볼까? 적막한 세상이 더욱 쓸쓸합니다.
 
10
그토록 아름답던 당신이 가다니……. 나는 이것이 꿈이라고 몇 번이나 소리쳐 보았읍니다. 내가 오면 반가워 할 당신은 없고, 당신의 움집위에서 자라난 갈대만이 휘적휘적 바람에 날리더이다. 정자. 내 사랑인 동시에 나의 은인인 당신을 잊지 않으려고 나는 당신의 고운 사진을 내 시계 딱지에 붙이고 시계를 꺼내 볼때마다 보지요만은 소용이 있읍니까
 
11
이 세상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당신이니.
 
 
12
인생의 허무를 부르짖으면 무엇하며 호소할것 조차 없는 이 설움을 쓴다면 소용이 무엇이리까. 정자, 나는 이름 만이라도 영원히 부르겠어요. 당신의 환영 만이라도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답니다.
 
13
아, 아름답던 당신이여. 당신은 나를 떠났으나, 당신이 남긴 그 향기만은 내게서 떠날 날이 없더이다.
 
14
10월 말
 
 
15
──1939년, 서간집 「나의 화환」에서
【원문】영원히 간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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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영(盧子泳) [저자]
 
  1939년 [발표]
 
  서한문(書翰文)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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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9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