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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시기(幻視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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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6
이상
1
환시기 (幻視記)
 
 
2
太昔에 左右를 難辨하는 天痴 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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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不吉한 子孫이 百代를 겪으매
4
이에 가지가지 天刑病者를 낳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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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 봐두 여편네 얼굴이 왼쪽으로 좀 삐뚤어징 거 같단 말야 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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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한 달쯤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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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가 아닌 대신에 고리키 전집을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독파했다는 처녀 이상의 보배가 송(宋) 군을 동(動)하게 하였고 지금 송군의 은근한 자랑거리리라.
 
8
결혼하였으니 자연 송군의 서가와 부인 순영 씨(이 순영이라는 이름자 밑에다 씨자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금 내 가엾은 처지가 말하자면 이 소설을 쓰는 동기지)의 서가가 합병할밖에 ―--- 합병을 하고 보니 송군의 최근에 받은 고리키 전집과 순영 씨의 고색창연한 고리키 전집이 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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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한 달쯤 해서 송군은 드디어 자기가 받은 신판 고리키 전집 한 질을 내다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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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만 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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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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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여편네 갖다 주어야지―--- 지난달에 그 지경을 해놓아서 이달엔 아주 죽을 지경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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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또 마누라 화장품이나 사다 주는 줄 알았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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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암만 봐두 여편네 얼굴이라능 게 왼쪽으로 '약간' 비뚤어졌다는 감이 없지 않단 말야―--- 자네 사 년 동안이나 쫓아댕겼다니 삐뚤어징 거 알구두 그랬나? 끝끝내 모르구 그만두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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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늘에 별까지 똑똑히 잘 박힌 밤이 사 년 전 첫여름 어느 날이었던지? 방송국 넘어가는 길 성벽에 가 기대 선 순영의 얼굴은 월광 속에 있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항라적삼 성긴 구멍으로 순영의 소맥빛 호흡이 드나드는 것을 나는 내 가장 인색한 원근법에 의하여서도 썩 가쁘게 느꼈다. 어떻게 하면 가장 민첩하게 그러면서도 가장 자연스럽게 순영의 입술을 건드리나―--- 나는 약 삼분 가량의 지도(地圖)를 설계하였다. 우선 나는 순영의 정면으로 다가서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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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참 이상한 것을 느꼈다. 월광 속에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순영의 얼굴이 웬일인지 왼쪽으로 좀 삐뚤어져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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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큰 범죄나 한 사람처럼 냉큼 바른편으로 비켜 섰다. 나의 그런 불손한 시각을 정정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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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위치의 불리로 말미암아서도 나는 순영의 입술을 건드리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실로 사 년 전 첫여름 어느 별빛 좋은 밤)경관이 무엇 하러 왔는지 왔다. 나는 삼천포읍에 사는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순영은 회령읍에 사는 사람이라고 그런다. 내 그 인색한 원근법이 일사천리 지세로 남북 이천오백 리라는 거리를 급조하여 나와 순영 사이에다 펴놓는다. 순영의 얼굴에서 순간 월광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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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삼천포에서 편지를 했다. 곧 돌아가게 될는지 좀 지체가 될는지 지금 같아서는 도무지 짐작이 서지 않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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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승낙 없이 한 아내의 외출이다. 고물장수를 불러다가 아내가 벗어 놓고 간 버선짝까지 모조리 팔아먹으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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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십 중의 다섯은 돌아올 것 같았고 십 중의 다섯은 안 돌아올 것 같았고 해서 사실 또 가랬댔자 갈 데가 있는 바 아니고 에라 자빠져서 어디 오나 안 오나 기다려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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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어서 나는 저녁이면 윤(尹)군을 이용해서는 순영이 있는 바 모로코에를 부리나케 드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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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달아났다는 궁상이 술 먹는 남자에게는 술 먹기 좋은 구실이다. 십 중 다섯은 아내가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눈치를 눈곱만치라도 거죽에 나타내어서는 안 된다. 나는 내 조금도 슬프지 않은 슬픔을 재주껏 과장해서 순영의 동정심을 끌기에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던적스러운 청승이 결국 순영을 어찌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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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순영은 광주로 갔다. 가던 날 순영은 내게 술을 먹였다. 나는 그의 치맛자락을 잡아 찢고 싶었다. 나는 울었다. 인생은 허무하외다 그러면서―--- 그랬더니 순영은 이것은 아마 술이 부족해서 그러나 보다고 여기고 맥주 한 병을 더 청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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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년 동안 나는 순영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동안에 십 중 다섯으로 아내가 돌아왔다. 나는 이 아내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지 않는 아내를 나는 전의 열 갑절이나 사랑할 수 있었다. 내 순영에게 향하여 잔뜩 곪은 애정이 이에 순영이 돌아오기 전에 터져 버린 것이다. 아내는 이런 나를 넘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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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만에 돌아온 순영이 돌아서서 침을 탁 배앝는다. 반년 동안 외출했던 아내를 말 한마디 없이 도로 맞는 내 얼굴 위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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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세월이 사 년 흘렀다. 아내의 두 번째 외출은 십 중 다섯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내 고독을 일급 일 원 사십 전과 바꾸었다. 인쇄공장 우중충한 속에서 활자처럼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똑같은 생활을 찍어 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순영이 그의 일터를 옮기는 대로 어디까지든지 쫓아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일급 일 원 사십 전에 팔아 버린 내 생활에 그래도 얼마간 기꺼운 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직 순영 앞에서 술잔을 주무르는 동안뿐이었다. 그러나 한번 돌아선 순영의 마음은―--- 아니 한 번도 나를 향하지 않은 순영의 마음은 남북 이천오백 리와 같이 차디찬 거리 저편의 것이었다. 그 차디찬 거리 이편에는 늘 나와 나처럼 고독한 송(宋)군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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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순영 앞에서 내 고독을 호소할 수조차 없어졌다. 나는 송군의 고독을 빌려다가 순영 앞에서 울었다. 송군의 직업은 송군의 양심이 증발해 버린 뒤의 것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몹시 고민한다. 얼굴이 종이처럼 창백하다. 나는 이런 송군의 불행을 이용하여 내 슬픔을 입증시켜 보느라고 실로 천만 어의 단자를 허비했다. 순영의 얼굴에는 봄다운 홍조가 돌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틈엔지 나 자신의 위치를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필사의 노력으로 겨우 내 위치를 다시 탈환했을 때에는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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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생님이세요? 이상(李箱) 씨하구 같이(이것은 과연 객쩍은 덧붙이개였다) 오늘 밤에 좀 놀러 오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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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화가 끝난 뒤였다. 송군은 상반기 상여금을 받았노라고 한잔 먹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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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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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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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한 가운데서 나는 이 땅을 떠나리라 생각했다. 머얼리 동경으로 가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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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테야 갈 테야. 가버릴 테야(동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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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더 놀다 가세요. 벌써 가시면 주무시나요? 네? 송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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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생님은 점을 쳐보나 보다. 괘(卦)는 이상에게 '고기'를 대접하라 이렇게 나온 모양이다. 그래서 송군은 나보다도 먼저 일어섰다. 자동차를 타자는 것이다. 나는 한사코 말렸다. 그의 재정을 생각해서도 나는 그를 그의 하숙까지 데려다주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하숙 이층 그의 방에서 그는 몹시 게웠다. 말간 맥주만이 올라왔다. 나는 송군을 청결하기 위하여 한 시간을 진땀을 흘렸다. 그를 눕히고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유월의 밤바람이 아카시아의 향기를 가지고 내 피곤한 피부를 간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멕시코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토하면서 울고 울다가 잠이 든 송군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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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영에게 전화나 걸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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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영이? 나 상(箱)이야―--- 송군 집에 잘 갖다 두었으니 안심헐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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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쩐지 그냥 울적해서 견딜 수가 없단다. 집으로 가 일찍 잠이나 자리라 했는데 멕시코에―---
 
40
와두 좋지―--- 헐 이얘기두 좀 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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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마주 보는 순영의 얼굴에는 사 년 동안에 확실히 피로의 자취가 늘어 보였다. 직업에 대한 극도의 염증을 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호소한다. 나는 정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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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군과 결혼하지 응? 그야말루 송군은 지금 절벽에 매달린 사람이오―--- 송군이 가진 양심, 그와 배치되는 현실의 박해로 말미암은 갈등, 자살하고 싶은 고민을 누가 알아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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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생님이 불현듯이 만나 뵙구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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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분 후 나와 순영이 송군 방 미닫이를 열었을 때 자살하고 싶은 송군의 고민은 사실화하여 우리들 눈앞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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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날 서른여섯 개의 공동(空洞) 곁에 이상의 주소와 순영의 주소가 적힌 종잇조각이 한 자루 칼보다도 더 냉담한 촉각을 내쏘으면서 무엇을 재촉하는 듯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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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밤 깊은 거리를 무릎이 척척 접히도록 쏘다녀 보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명은 병원을 가진 의사에게 있어서 마작의 패 한 조각, 한 컵의 맥주보다도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한 시간 만에 나는 그냥 돌아왔다. 순영은 쩡쩡 천장이 울리도록 코를 골며 인사불성된 송군 위에 엎뎌 입술이 파르스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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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코고는 '사체(死體)'를 업어 내려 자동차에 실었다. 그리고 단숨에 의전병원으로 달렸다. 한 마리의 셰퍼드와 두 사람의 간호부와 한 분의 의사가 세 사람(?)의 환자를 맞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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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약은 위에서 아직 얼마밖에 흡수되지 않았다. 생명에는 '별조'가 없으나 한 시간에 한 번씩 강심제 주사를 맞아야겠고 또 이 밤중에 별달리 어쩌는 도리도 없고 해서 입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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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들고 송군의 어지러운 손목을 잡아 맥박을 계산하면서 한밤을 새라는 의사의 명령이다. 맥박은 '130'을 드나들면서 곤두박질을 친다. 순영은 자기도 밤을 새우겠다는 것을 나는 굳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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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자고 아침에 일찍 와요. 그래야 아침에 내가 좀 자지 둘이 다 지쳐 버리면 큰일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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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훤―히 터왔다. 복도로 유령 같은 입원 환자의 발자취 소리가 잦아 간다. 수도는 쏴― 기침은 쿨룩쿨룩― 어린애는 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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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는 완연 석탄산수 냄새 나는 활지옥에 틀림없었다. 맥박은 '100'을 조금 넘나 보다.
 
53
병원 문이 열리면서 순영은 왔다. 조그만 보따리 속에는 송군을 위한 깨끗한 내의 한 벌이 들어 있었다. 나는 소태같이 써들어오는 입을 수도에 가서 양치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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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밥을 먹고 와도 송군은 역시 깨지 않은 채다. 오전중에 송군 회사에 전화를 걸고 입원 수속도 끝내고 내가 있는 공장에도 전화를 걸고 하느라고 나는 병실에 없었다. 오후 두시쯤 해서야 겨우 병실로 돌아와 보니 두 사람은 손을 맞붙들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당장에 눈에서 불이 번쩍 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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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신―--- 아니 나는 대체 지금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냐. 순간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 얼마든지 나 자신에 매질하고 싶었고 침 뱉으며 조소하여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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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다란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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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미친놈인가? 그럼 천친가? 그럼 극악무도한 사기한인가? 부처님 허리토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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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부르짖는 외에 나는 내 맵시를 수습하는 도리가 없지 않은가. 울음이 곧 터질 것 같았다. 지난밤에 풀린 아랫도리가 덜덜 떨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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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이 무너지는 줄만 알구 나는 십년감수를 하다시피 했네―--- 그래 이 병실 어느 구석에 쥐 한 마리나 있단 말인가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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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영은 창백한 얼굴을 푹 숙이고 있다. 송군은 우는 것도 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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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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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이상 더 이 방 안에 머무를 의무도 필요도 없어진 것을 느꼈다. 병실 뒤 종친부로 통하는 곳에 무성한 화단이 있다. 슬리퍼를 이끈 채 나는 그 화단 있는 곳으로 나갔다. 이름 모를 가지가지 서양 화초가 유월 볕 아래 피어 어우러졌다. 하나같이 향기 없는 색채만의 꽃들―--- 그러나 그 남국적인 정열이 애타게 목말라서 벌들과 몇 사람의 환자가 화단 속을 초조히 거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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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나는 하는 족족 이 따위 못난 짓밖에 못 하나―--- 그렇지만 이 허리가 부러질 희극두 인제 아마 어떻게 종막이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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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 위에 앉아서 볕을 쬐었다. 피로가 일시에 쏟아지는 것 같다. 눈이 스르르 저절로 감기면서 사지가 노곤해 들어온다. 다리를 쭉 뻗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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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야말루 동경으루 가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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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 위에는 곳곳이 가제와 붕대 끄트러기가 널려 있었다. 순간 먹은 것을 당장에라도 게우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울 것 같은 극도의 오예감(汚穢感)이 오관(五官)을 스쳤다. 동시에 그 불붙는 듯한 열대성 식물들의 풍염한 화판조차가 무서운 독을 품은 요화(妖花)로 변해 보였다. 건드리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손가락이 썩어 문드러져서 뭉청뭉청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67
마누라 얼굴이 왼쪽으루 삐뚤어져 보이거든 슬쩍 바른쪽으루 한번 비켜 서 보게나―---
 
68
흥―---
 
69
자네 마누라가 회령서 났다능 건 거 정말이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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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샌 또 블라디보스톡에서 났다구 그러데―--- 내 무슨 수작인지 모르지―--- 그래 난 동경서 났다구 그랬지―--- 좀더 멀찌감치 해둘 걸 그랬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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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허구 동경이면 남북이 일만 리로구나 굉장한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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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삐뚤어졌다구 그랬더니 요샌 곧 화를 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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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바른쪽으루 비켜 서란 소리는 괜헌 소리구 비켜서기 전에 자네 시각을 정정―--- 그 때문에 다른 물건이 죄다 바른쪽으루 비뚤어져 보이더래두 사랑하는 아내 얼굴이 똑바루만 보인다면 시각의 직능은 그만 아닌가―--- 그러면 자연 그 블라디보스톡 동경 사이 남북 만 리 거리두 베제처럼 바싹 맞다가서구 말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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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李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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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9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