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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설야론(韓雪野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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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2.22~
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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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雪野論[한설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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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過渡期[과도기]」를 쓸 때까지 雪野[설야]는 아직 자기의 세계를 갖지 않었었다. 자기의 세계란 것은 작가가 독창적 가치를 창조하는 유일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젊은 작가가 文學史[문학사] 위에다 제 이름을 기입하는 유일의 방법은 항상 새 세계를 발견하는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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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란 물론 기존의 문학 영역이 모르던 세계다. 이 새 세계가 발견되지 않으면 작가들은 낡은 세계의 糟粕[조박]으로 만족치 않을 수 없으며, 독창 대신에 모방이 문학의 주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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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野[설야]는「過渡期[과도기]」를 쓰기 전에도 물론 경향작가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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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도 당시의 많은 청년들과 더불어 몇해 전 曙海[서해]가 개척해 놓은 세계 가운데를 齷齪[악착]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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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渡期[과도기]」가 발표된 것은 29년 초인데, 그때까지 曙海[서해]의 도달점은 조선문학에 있어 하나의 넘을 수 없는 한계가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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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나 亞流[아류]란 근본에 있어 그 스승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는 법이다. 부분적 加工[가공]이나 技法[기법]의 改良[개량] 쯤으로 기성의 권위를 넘어트릴 수 없다. 정신적인 의미에서 亞流[아류]는 항상 스승에 비하여 稚拙[치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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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시의 雪野[설야]가 曙海[서해]에 비하여 사상적으로 幼稚[유치]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雪野[설야]의 비평이나 이론에서는 물론 창작하는 의도에 있어서도 雪野[설야]는 曙海[서해]의 수준을 지내 온 사람이었다. 曙海[서해]에 있어 濛湾[몽만]하던 것이 雪野[설야]에 있어서는 명백해졌고 무의식적이던 것이 의식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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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요한 것은 曙海[서해]에게 있었던 사상과 예술과의 조화가 雪野[설야] 가운데는 없었던 일이다. 바꾸어 말하면 雪野[설야]는 아직 자기의 사상을 가지고 예술을 統禦[통어]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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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능력 없는 작가는 아직 진정한 의미의 사상을 가졌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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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사상이란 작가에게 한해서는 결코 훌륭한 책에 있는 내용을 옮겨 놓을 수 있는 기능을 의미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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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가 작품의 각 部[부]를 지배하고 또한 형상의 온갖 세부가 사상의 순수한 색체로 滲透[삼투]되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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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작품 가운데서 검증되고, 작품을 통하여 현실 위에 제 입장을 발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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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때만 예술 가운데 들어온 현실은 生彩[생채]를 잃지 않고 깊은 사상과 조화되고 작품은 아름답고 또한 뜻깊은 形象[형상]을 낳는 것이다. 그러나 雪野[설야]는 아직도 懷月[회월], 宋影[송영] 이후에 신경향파가 固持[고지]하고 있는 주관적 경향주의 전통을 飜復[번복]하고 있는 한 사람에 지나지 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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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曙海[서해]의「紅焰」[홍염] 一篇[일편]으로 破棄[파기]된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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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냐 하면「紅焰[홍염]」등에서 曙海[서해]는 초기 신경향파 작가들이 머리 가운데서 생각해 내던 갈등을 현실 가운데서 발견한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 雪野[설야]는「過渡期[과도기]」를 쓸 때까지「사냥개」에 비해서도「紅焰[홍염]」이나「飢餓[기아]와殺戮[살륙]」에 비해서도 일단 높아진 자기의 사상이 棲息[서식]할 곳을 현실 가운데서 발견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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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당시 雪野[설야]의 사상은 작품을 쓸 만치 성숙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실상은 아직도 현실을 파악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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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過渡期[과도기]」는 이리하여 雪野[설야]에게 제 思想[사상]이 살 수 있는 산 現實世界[현실세계]를 제공하였다. 반대로 새 현실은 雪野[설야] 가운데서 그것들을 통하여 제가 投影[투영]될 수 있는 진정한 작가의 정신을 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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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한 개의 記念[기념]할 예술이 안될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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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자에게 독자의 세계와 더불어 명예를, 그 나라 文學史[문학사] 위에 새 시대와 더불어 활기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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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過渡期[과도기]」는 이런 의미에서 여러 가지로 뜻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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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작가적 측면에서 생각해 볼 때 北満[북만]의 流浪[유랑]에서 돌아와 일찌기 저이를 내어 쫓는 고향에서 다시금 냉대를 받는 주인공‘창선’의 절박한 운명을 雪野[설야]의 정신적 운명 그것에 비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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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本[자본]의 足下[족하]에 유린당한 제 고향을 보고,‘창선’은 驚異[경이]를 느꼈을 것이다. 그 다음엔 일찌기 몇 년을 누리던 세계가 덧없이도 허무러지는데 대하여 금할 수 없는 애수와 더불어 깊다란 회의에 빠젔을 것이다. 㓊口[동구] 밖에서 옛 마을을 내려다 보며 감회에 빠진‘창선’夫妻[부처]의 추억과 形象[형상]의 묘사는 상당히 졸렬한데 불구하고, 독자를 공감시키는 것은 우리가 빈약하나마 그 속에서 시대의 호흡을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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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로 주인공은 그 사실에 한 개 운명인 것, 다시 말하면 그 곳에서 피할 길이 아무데도 없음을 ── 그는 처음 도피행에서 쫓겨 오지 않았는가? ──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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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때 사람은 生[생]과 死[사]의 十字路[십자로]에 서는 법이다.‘창선’에게 남은 길은 제 生[생]을 포기함으로서 도피를 결행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 세계에 적응하는 새 방도를 개척한다든가의 두 길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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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9년대의 조선은 新興運動[신흥운동]의 躍進期[약진기]였고 民衆[민중]이나‘인테리’가운데 비관주의가 만연되지는 않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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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野[설야]가「過渡期[과도기]」의 주인공을 후자의 길로 인도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었다. 그리하여 새 세계에 적응하려면 새 세계를 알아야 하고, 그 속에 몸을 던짐으로서 자기의 새 運命[운명]을 개척해야 한다. 이 십자로에서 雪野[설야]도 확고한 傾向作家[경향작가]로서의 제 運命[운명]을 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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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朝鮮文學史上[조선문학사상]에서 曙海[서해]가 군림했던 시대가 끝난 것이다. 동시에 신경향파가 예술적으로 ── 이론적으로 벌써 끝났건만 ── 제 역사의 幕[막]을 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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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향파는 자연주의가 현실의 汚穢[오예]를 辱[욕]하고, 낭만파 시인들이 하품과 탄식과‘힘’의 예술에의 待望[대망]을 부르짖을 때 문학세계속에 빈부의 갈등을 수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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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懷月[회월]도 八峰[팔봉]도 폭풍과 같은 선동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새 문학의 나팔을 분데 그첬고, 種子[종자]를 허친데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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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그 음악에 발을 마추어 걸을 街路[가로]도, 종자를 심을 大地[대지]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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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曙海[서해]는, 만주 황무지에다 씨를 뿌려보고, 宋影[송영]은 동경 街頭[가두]에서 새 곡조를 연습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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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대의 주린 문단은 曙海[서해]가 만주에서 실어 온 좁쌀일망정 맛있게 먹었고, 宋影[송영]이 동경서 건너 온 어색한 창가일망정 흥겨웁게 들었다. 이 시대는 조선문학의 정신적 放浪期[방랑기]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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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 曙海[서해]를 따라, 宋影[송영]을 따라, 만주와 동경으로 遊観[유관]하여 피로했을 때, 비로소 雪野[설야]의 손으로 다시 조선 땅에 돌아온 것이다. 정든 고향, 그러나 불행한 고향, 그러나 그 곳에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고향, 이 땅(이런 고향에서 한篇[편]의 佳作[가작]이「故鄕」[고향]이란 이름으로 창조됨이 어찌 필연이 아니랴?)에서 우리의 문학은 다시 재출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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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나는 언제나「過渡期[과도기]」의 처음 장면을 이중으로 감명 깊게 읽는 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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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느 때이고 그렇게 좋은 장면을 아름답게 그리지 못한 雪野[설야]에 대하여 한없는 불만을 품고 있는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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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소설「過渡期[과도기]」는 작가의 과도기임과 동시에 신문학 그것의 과도기였으나, 불행히 雪野[설야]는 새로 전개된 세계의 예술적 주인공이 될 이렇다 할 작품을 쓰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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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근이「過渡期[과도기]」의 속편으로 씌워진「씨름」한 편이 기억될 다름이다.「씨름」은 아직도 雪野[설야]의 창작적 高調期[고조기]의 열정이 식기 전 氣魄[기백]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過渡期[과도기]」와 더불어 雪野[설야]의 力作[역작]이고 佳作[가작]에 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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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30년대 이후‘카프’작가의 손으로 생산된 工場文學[공장문학]중 드물게 보는 현실성을 가지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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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渡期[과도기]」종말에서 한 사람의 新入[신입] 직공에 불과하였던‘창선’은 넓은 공장지대에 훌륭한‘코밋쌀’‘명호’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雪野[설야]의 예술을 통해서 알고 싶은 점은, 사회적으로 성장한 뒤의‘창선’이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창선’은‘명호’가 되었는가 하는 운명의 길, 성격적 개조의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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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가운데 선 새 인간의‘타잎’일 것 같으면 애써 우리는 雪野[설야]의 손을 빌 필요까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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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은 벌서 雪野[설야] 한 사람의 세계가 아니라 새로운 자격 있는 작가들이 雪野[설야]보다도 더 익숙한 솜씨로 신선한 세계를 전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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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天[남천]과 北鳴[북명], 두 사람만으로도 우리는 雪野[설야]가 그릴 수 있는 이상의 지도자와 대중의 성격과 생활을 알아 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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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南天[남천], 北鳴[북명] 두 작가의 가장 큰 결함이고, 내지는 경향문학 전반의 예술적 약점이, 이 성격의 개조, 운명의 변천의 미묘하고 깊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데 있는 바에야, 雪野[설야]와 같이 조선문학 가운데 이 과정을 표현할 드믄 자격을 가진 작가가 침묵을 지켰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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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野[설야]는 전력을 다하여 제 손으로 닦어 놓은 基地[기지]에다 몇해씩 집을 세우지 않고 내버려 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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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들이 지어 온 집들은 모두가 큰터에 맞지 않는 조그만 빠락들이다. 더구나 이 빠락들은 본시 雪野[설야]의 세계에 들어앉을 집들이 아닌지도 모른다. 역시 이 세계 가운데 인간의 성격과 생활의 커다란 역사적 過渡[과도]의 장대한 건물이 들어설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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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들이 이것을 깨달으면 제각기 빠락을 뜯어 가지고 새궁전을 세울 터를 찾어 떠날 것이며 새 터가 발견되면 猶豫[유예]없이 그리로 옮길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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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總工會[총공회]」기타 이와 유사한 몇 작품은 雪野[설야]가 不絶[부절]히 새 시대의 변천에 발을 마출려는 청년의 용기를 잃지 않었다는 증거 밖에 작가로서의 雪野[설야]를 이야기 하는데 하등 힘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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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그 속에 젊은 작가들의 조그만 노력을 모방한 자취까지도 찾어 낼 수가 있다. 나는 성실한 작가들의 용기를 賞讃[상찬]하면서도 이런 시대성을 높게 사는 者[자]가 아니다. 作家[작가]란 훌륭한 군인처럼 그 시대를 참되게 살아가는 고유한 방법이 있는 법이다. 전쟁엔 步兵[보병]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砲兵[포병]도, 騎兵[기병]도 輕重兵[경중병]까지도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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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한 때 기병이 보병에 가세함은 필연한 일이다. 그것을 拒絶[거절]치 않는 아량 있는 分科[분과]의 정신을 이 때문에 우리는 賞讃[상찬]한다. 그러나 역시 騎兵[기병]은 기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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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도로 세련된 分科[분과]의 정신을 沒却[몰각]하였을 때 작가는 자기의 고유한 세계에 대한 자각을 잊고 혼란 가운데 방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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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敵[적]의 不意[불의]한 強襲[강습]을 받을 때 군인 같으면 보병으로서의 성능도, 기병으로서의 능력도, 다같이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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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野[설야]가 全州[전주]에서 돌아온 이후에 발표된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이러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장편「黄昏[황혼]」이 雪野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원인은 결코 작자가 과도기적인 옛 전통을 고집했기 때문도 아니며, 더 한거름 새 세계를 개척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때문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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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野[설야]는「黄昏[황혼]」가운데서 두가지를 다 성숙시키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어느 것에도 충실치 못했고, 아무것도 충분히 나타나지 않었다. 女主人公[여주인공]‘麗順’[여순]이가 눈뜨는 과정도 명백히 드러나지 않았고, 남주인공이 사회인으로 자기를 완성해 가는 힘찬 형상도 우리는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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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이 작품을 살리는 부분은 雪野[설야]가 생활을 보는 直観力[직관력]이 등장인물들의 주위를 비칠 때「黄昏」[황혼]은 비로소 제 아름다운 노을의 광채를 發[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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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직관력이 찾아낸 산 생활세계가 등장인물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작품 가운데서 예술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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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어 말하면 인간과 환경과의 조화! 그러므로 이 동안의 雪野的[설야적] 혼란은 인물과 환경과의 乖離[괴리]에 있다. 인간들이 죽어가야 할 환경 가운데서 雪野[설야]는 인간들을 살려 갈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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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鐵道交叉點」[철도교차점]등 일련의 작품은 이 혼란의 중요한 표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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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일찌기 사회운동자이었던 주인공들이 소시민화 해가는 가정, 시민생활 등을 통하여 작가는 그 인간들의 몰락상을 表面[표면]하는 대신, 그들의 再生[재생](시민적인 아닌?)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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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러한 俗物的[속물적] 환경 가운데서도 사람에 따라선 강한 반발력과 理智[이지]을 가지고 別[별] 인간이 되는 수도 있으며 직업을 갖는다고 인간은 다 凡人[범인]이 되는 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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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雪野[설야]도 잘 알듯 그것이 보편성을 갖느냐? 이 시대에서 전형적일 수 있느냐 하는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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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펜을 그만 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착실, 근면, 노력이란 것이 항상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도 우리가 10년 전에 졸업한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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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새로운 성격의 형성을 위하여서는 언제나 새로운 환경이 필요한 것이다. 雪野[설야]는 새 성격의 의의를 깨닫고, 그 가치를 평가하고 그 가운데 鎖沈[쇄침]해 가는 시대의 의지를 바로잡으려는 존귀한 의도를 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간들이 서식할 진정한 세계를 찾지 못하고 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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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模索[모색]은 언제나 실패란 高價[고가]의 희생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편「青春記[청춘기]」는 암담한 혼돈 가운데 一條[일조]의 광명을 던지는 작품이다. 다행히 우리는「青春記[청춘기]」속에서 인물과 환경의 모순이 조화될 새로운 萠芽[맹아]를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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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순이 구제되지 않으면 雪野[설야]는 참담한 예술적 파산에 직면하지 아니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상적 동요란 두려운 위기를 체험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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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작가에게 있어 이중의 비극임과 동시에 死[사]의 宣告[선고]라 할 수 있다.
 
67
왜 그것이 思想[사상]의 동요와 나가선 信念[신념]의 懷疑[회의]가 되느냐 하면, 제가 호흡할 현실세계를 얻지 못하면 사상은 제 가치를 의심하게 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頑昧[완매]한 고집이 되어 作家[작가]의 머릿속에 化石化[화석화]되고 마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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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青春記[청춘기]」가 찾아낸 세계는 불행히도 일찍이 雪野[설야]가 사랑하는 인물이 살아갈 그런 행복된 세계는 아니었다.
 
69
雪野[설야]는 내내 자기가 사랑하는 인물들이 살아갈 세계를 찾지 못한 채 그 인물들과 결별하고 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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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발견된 세계에는 벌써 雪野[설야]가 사랑하는 인물은 하나도 없었던 때문이다. 그는 새 인물에 適応[적응]한 새 세계를 찾은 것이 아니라, 뜻하지 않은 새 세계를 발견하면서 새 인물들과 邂逅[해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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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우수와 암담과 희망 적은 세계였고, 그곳의 시민들은 無爲[무위]와 피곤과 辯說[변설]의 인간들이었다.
 
72
이리하여「青春記[청춘기]」는 「黄昏[황혼]」보다도 성공하였고, 우리들이 사는 현대를 가장 넓은 폭에서 그린 아담한 작품이 되었다.
 
73
문장도 平淡[평담]해졌고, 묘사도 정밀해젔으며, 소설의 구조도 한층 합리화 하였다. 그러나 반면에 雪野[설야]의 문장에서 고유의 뚝뚝한 맛과, 묘사의 質朴味[질박미], 구조의 장대한 건축성은 감소되었다.
 
74
이곳에 雪野[설야]가 성공한「青春記[청춘기]」보다 실패한「黄昏[황혼]」을 사랑하는 이유가 있지 않은가 한다.
 
75
나는 일전 여러 해만에 그를 만나「黄昏[황혼]」을 아끼는 雪野[설야]의 綿綿[면면]한 情懐[정회]를 들은 하룻밤을 가졌다.
 
76
그의 반 넘어 늙어 가는 주름진 얼굴에는 일찌기 자기가 사랑하던 인물들과 이별한 무한한 적막이 흐르는 듯하였다.
 
77
이곳에 실상은 우리들의 오랜 작가 雪野[설야]의 면목이 躍如[약여]함을 또한 즐거이 바라볼 수 있지 않은가 하고, 나는 그를 보내며 혼자 생각한 일이 있다.
 
78
끝으로「青春記[청춘기]」와 더불어 雪野[설야]는 한동안 이 憂愁[우수]한 세태를 그려나갈지, 또는 제 사랑하는 인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한평 땅을 찾아 다시 모색의 길을 갈지, 혹은 눈을 감고 자기의 반생을 회상하여 10년 전‘창선’이가‘명호’된 길고 복잡한 과정으로서 한 篇[편]의 壯大[장대]한 敍事詩[서사시]를 구상할지 그것은 全[전]혀 오는 날의 문제다.
 
79
(1938.3.)
【원문】한설야론(韓雪野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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