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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 ― 라고 하여도 우스우리만큼 다 떨어져서 몸 하나 싸일 데도 없는 ― 섶襟[금] 목을 될 수 있는 대로 깊이 싸고 쌀쌀한 바람에 대항하면서 그는 골목을 벗어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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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듯이 쓸쓸한 거리는 점점 깊은 침묵 속에 끌려 들어가고 찬바람에 잠 못든 전등은 눈을 더 밝게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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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술집 주인에게 모욕을 당한 생각을 하니 이가 부르르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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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놈의 늙은이 같으니, 술 좀 달라니 물을 먹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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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가난뱅이 주제에 술이 다 뭐야?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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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웃음 속에는 참을 수 없는 울분이 가득하였다. 더구나 애써서 외상 말한 노력도 주인의 한 번 웃음에 깨트려진 생각을 하니 더욱 분한 마음이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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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몽롱한 눈앞에 나타난 술집 주인의 환상에 침을 탁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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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좀 있는 놈들은 다 그 모양이지, 어디 보자 요놈의 늙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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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골목을 다 벗어져 나오자 웬 양복장이 하나가 비틀거리면서 저쪽 길을 간다. 그러자 또 하나 시커먼 것이 그 건너편에서 굴러온다. 확실히 빈 인력거다. 둘이 한데 다닥치자 잠깐 머무르더니 또다시 한 동체(動體)가 되어 양복장이가 가던 방향으로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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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그 자리까지 오자 시커먼 것이 번뜻 눈에 띄었다. 그의 호기심은 그만 그의 보조를 머무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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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어 보니 돈지갑, 그의 호기심은 오히려 냉담하여 집기는 하였으나 그것을 열어 보기에는 아무 주저도 안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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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은 무섭게 빛났다. 그러나 태연히 양기 있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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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이것 가지고 한껏 요릿집 밖에 더 가겠니. 어디 가서 경 좀 쳐보아라.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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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발꿈치를 돌려서 오던 골목을 도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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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빛과 어두운 빛이 번차례로 그의 얼굴을 덮었다. 그러나 마침 결단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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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기게 주저할 것은 없다. 하늘이 준 것이니까. 술 먹으라구 당연히 준 것을 인제야 주웠을 뿐이지만……. 그래, 그래, 하하하하, 너는 가야 혼자 먹을 터이지? 나는 우리 동료들과 함께 ── 가만있거라, 몇 사람이냐? 하나, 둘, 셋……. 오라! 김서방까지 넣어서 여섯 사람. 한 장 어치씩 먹으면 꼭 알맞는구나. 지금 가서 깨울까? 아니 좋은 수가 있다. 먼저 먹고 가서 술값으로는 안주면 되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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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긴 골목을 다 지나서 술집에 다다르자 그는 결심이 식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이 조금도 주저 않고 대담스럽게 술집에 쑥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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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코밑에 지갑을 쑥 내밀면서 명령하는 듯이 부르짖었다. 미리 맘먹었던 대로 목소리도 위엄 있게 잘 나온 것을 그는 속으로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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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그를 ‘가난뱅이’라고 조소하였던 때와는 아주 딴판이요, 마치 새로 탄생한 듯도 하였다. 굴복한 듯이 쪼그라들어 갖은 아양을 다 떠는 주인의 태도가 그에게 무한한 우월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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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시고 또 마셨다. 얼굴은 빛 좋게 붉어지고 마음은 활연하여졌다. 불과 술 몇 잔에 그는 지배감을 훌륭히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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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 가난뱅이라구, 날더러?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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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폐 한 장을 홱 던지고 술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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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에게 도전(挑戰)하여 그것을 정복하였다는 과긍과 만족에 얼굴이 보기좋게 빛났다. 그리고 술로 인하여 생기는 체열과 쌀쌀한 의기가 알맞게 조화하여 무상의 쾌감을 그에게 주었다. 거리는 죽은 듯이 고요하고 뾰족이 빛나는 달이 구름 사이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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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하하하, 이만하면 훌륭하게 갚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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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커다랗게, 커다랗게, 마치 승리자의 그것과 같이 거리 한복판에서 홍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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