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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덕조(張德祚) 여사(女史)의 진경(進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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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3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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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德祚 女史의 進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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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조(張德祚)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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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조에게 대한 공개장을 쓰라는 것이 편집자의 주문이었읍니다. 그리하여 표제도 상필(想必) 내가 장덕조 씨에게 보내는 공개장인 것으로 붙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일문(一文)은 결코 '공개장'이 아님을 보장합니다. 따라서 미리 안심을 하셔도 좋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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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나 개인이 장덕조 씨에서 공개장 같은 것을 쓸 아무런 결연(結緣)을 가지고 있지를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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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장덕조 씨는 세상이 두루 아는 바와 같이 시방 현숙한 남의 아내요, 두셋 애기의 착한 어머니입니다. 가령 모 여인작가처럼 어떠한 풍설(사실 유무는 불문하고) 그러한 풍설의 장본인인 바도 아니요 혹은 전년의 모 여사처럼 밤에 단잠이 한참인데 옆에서 어린아이가 깨어 울고 성화를 하고 하면, 그럴 때는 자식이 아니라 원수와 같더라는 글을 공공연하게 발표한 일도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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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장덕조 씨로 말하자면 아무 시비도 없는 한 점잖은 여인인 것을 무단히 그를 들추어내 가지고 공개장 운운 하자는 것은, 아무리 까십을 좋아하는 세상일값에 너무 터무니가 없을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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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컨대 장덕조 씨가 현재 여인작가들 중에서 매우 재기있는 작가의 하나라는 것, 하니 거기에 남자 작가 한 사람 - 중에도 입이 험하다는 한 사람을 내세워 편의상 공개장이라는 명목으로 무어나 씌울 것 같으면 혹시 흥미있는 토픽이 될는지도 모르겠다는 저널리즘의 일종의 악취미에서 나온 짓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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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댔자 실상 나올 것이라고는 커야 작가론, 작으면 작품평일 따름이겠으니 편집씨 실망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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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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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어느때는지? 아마 7년 아니면 8년 전인 듯합니다. 장덕조 씨가 처음으로 개벽사에 부인기자로 입사하던 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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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만 해도 장덕조 씨야 아직 문학적으로 완전한 골격이 짜인 것도 아니요, 단지 한 사람의 문학소녀일 따름이었읍니다. 그러했던 장덕조 씨가 겨우 7,8년을 지나 시방은 넉넉 현문단의 중견 수준에 참여를 하고 있으니, 생각하면 늙은 지 나이 부끄럽고 후생(後生)이 가외(可畏)라고 실례의 말이 부지중(不知中) 나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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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개성(육체적인 것)의 완성을, 발생학적으로는 몇백만 년이라는 시간을 요했던 것을, 태생학적(胎生學的)으로는 2백 9십 수일에 수행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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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런데 생물계에만 한한 것이 아니라 일반문화의 발생과 전통관계도 그러하여, 문학 또한 그와 같습니다. 해서 장덕조 씨가 혼자서 무슨 기적을 행한 소치는 아니요, 미미하나마 조선문학의 30년이라는 역사에 그 공의 반은 돌려보내야 하기는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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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나 같은 사람이야 장덕조 씨에게 문학론의 귀떨어진 한 구절이라도 이야기해 준 일도 없고 더구나 나의 작품이 장덕조 씨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다고는 꿈에도 없을 일이고, 공(功)이자면 분명 문단과 다른 분네나 선진대가(先進大家)네의 것이겠은즉, 가령 솜버선이라도 한 켤레 부조를 하겠다면 역시 그리로 보내야 할 것도 동시에 잊어서는 안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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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사 시절에 내가 겪어본, 작가 지망의 여인 중에 조금 앞선 간도(間島)의 강경애(姜敬愛) 씨와 그리고 장덕조 씨와, 이 두 분에게 나는 매우 촉망을 가졌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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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더니 아닌게아니라 두 분은 다같이 불출(不出) 10년에 제가끔 한몫을 할 수 있는 작가가 되었읍니다. 아무 이해도 없는 일이지만, 생각하면 희한하여 마음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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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깐으로 해서라도 이러한 때에 기회가 좋고 하니, 장덕조 씨를 그동안의 작품들을 통하여 한번 연구(?)랄까 그런 것을 시험해 보는 것도 나로서는 노상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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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라는 인물의 본시 두뇌가 그러한 일에 적합하도록 치밀하지 도 못할뿐더러 또 무책임한 말 같지만 그동안 나는 장덕조 씨의 작품들을 많이는 읽지를 못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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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내가 그때 당시 개벽사에서『제일선(第一線)』지의 편집을 담당하고 있을 때 장덕조 씨가 입사 마구(入社未久)의 선물로 내놓은「저회(低洄)」라는 단편(이 작품에 대해서는 그 뒤에 약간의 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이라든지, 그 뒤로 작가적 활동을 시작하여 발표하던 여러 작품 중 특히「어머니와 딸」이라는 단편이라든지에서 받은 극히 유쾌한 인상이며, 또 그 반대로「양말」이라든지 「???」(무어라더냐, 아무튼 어떤 젊은 여자가 남편과 다투고서 아주머니라는 좀 수상한 중년 여자를 찾아가고, 그에게 하찮은 반지를 주고 하는 단편)에서 받은 불쾌한 인상이며가 머리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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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단지 인상일 뿐이요, 기억이 몽롱해서 그에 의하여 장덕조 씨의 작가적인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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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시방 신변에 놓고 참고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입원(入院)」「부부도(夫婦道)」「창백한 안개」외에 최근의 것으로 「한야월(閑夜月)」이 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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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두루 작가 장덕조 씨를 논하기는 난감한 형편이고, 이에 간단하게 작품의 평이라고 할까 인상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나 약간 적어보고 말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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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야월」은 아믛든 흥미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한야월」은 언뜻 눈에 띄지는 않게 실패한 작품이라고 나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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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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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우리 문학은, 이미 생겨 있는 현실 또는 벌써 죽어진 성격임에 불구하고, 일방 작자가 따로이 만들어 가진 바 어떠한 관념의 샘플을 가지고 나서서 그 샘플에만 꼭 들어맞도록 그 이미 생겨 있는 현실이나 벌써 이루어진 성격을 고치고 줄이고 깎아서 써 형상화하기를 애쓰던 시절이었지 않습니까? 장덕조 씨는 그러한 문학을 마땅찮아하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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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면서도 장덕조 씨 자신, 더구나 남은 그것을 벌써 청산한 이때에 새삼스럽게 그러한 한 개의 공식주의를 범했다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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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관념의 종류는 물론 과거 경향문학(傾向文學) 시절의 그것과 다르기야 합니다. 그러나 역시 작자가 만들어 가진 바 어떠한 관념의 샘플이라는 것인 데는 다름이 없읍니다. ‘휴매니티’ 혹은 ‘인간성’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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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그가 악인이더라도 안해 된 여자로서는(혹은 부모와 자식으로서, 혹은 형제나 친구로서 기타) 그를 사랑할 수가 있는 게 사실인데, 그것을 갖다가 휴매니티라고 불러, 시방 세상에는 그 휴매니티의 공식화한 관념의 한 샘플이 득세를 하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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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휴매니티의 관념의 샘플을 가지고서 장덕조 씨는 대담하게도 연산조(燕山朝)의 사실(史實)에 붓을 시험해본 것이 소설「한야월」이 아니던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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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나 주왕(紂王)에게 비할 수 있는 연산, 군왕인 동시에 사람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갖추갖추의 비행을 저지른 악의 화신인 그이를, 일변 자신이 번연히 덕이 높고 인후(仁厚)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용으로는 결점이 허다한 한낱 여인인 비(妃) 신씨(愼氏)가, 그러나 그는 아내로서 남편 연산을 능히 사랑한다는 것 이것은, 인간현실에 있어서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따라서 사실(史實)로도 그러했을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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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덕조 씨가 소설「한야월」에서 보여준 비 신씨의 성격과 행동과 사건들에 의하면 도저히 그는 연산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지를 못했읍니다. 그러한 것을 갖다가 작자 장덕조 씨는 신씨로 하여금 연산을 사랑하게 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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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딜레마가, 즉 이미 생겨 있는 현실이나 벌써 죽어진 성격을, 일방 작자가 따로 만들어 가진 바 어떠한 관념의 샘플(휴매니티)로써 재단을 한 데로부터 온 것이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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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결국 장덕조 씨는 비 신씨의 휴매니티를 살리려고 한 것이 도리어 그것을 죽인 것이 되고 말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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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매니티를 찾으려다가 도리어 그것을 무시 말살하기는 신씨에게서뿐만 아니라 연산도 그래 놓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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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이 비록 젊어서는 총명하고 어진 이로서 생모(生母) 되는 이의 원통한 한이 가슴이 사무쳐 그 복수를 하느라고 시작한 잔학한 가면의 광태(狂態)라고는 하지만, 12년이나 두고 그 짓을 해온 터인데 8월 30일 하룻밤 별안간 취중에 기러기 소리를 듣고서 전비(前非)를 모조리 뉘우치고 당장 결심까지는 몰라도 밝는 날부터 성군(聖君)이 될 징조를 보이는 것 같은 것은 그야말로 작자에 의한 인간성의 무시도 태심(太甚)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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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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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조 씨는 신씨를 통하여 보여진 그러한 딜레마를 구하려고, 늙은 나인 양씨(楊氏)와의 최후 장면의 대화를 통하여 신씨의 ‘고집’이라는 것을 느닷없이 만들어보았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작품을 더욱 어색하게 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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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작품을 가지고 또 연전에 장덕조 씨가 어느 좌담회에서 주장한 심리주의에 대해서도 좀더 이야기를 하자 했던 것인데, 벌써 한정받은 지수(紙數)도 많이 넘쳤고, 미흡한 대로 여기서 붓을 놓겠읍니다. 혹 망언이 있었다면 사(謝)를 하든지 반박을 달게 받든지 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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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0월 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