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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2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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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우(朋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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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여 놓은 차라고 반드시 먹어야 되랄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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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한 것이라 먹고 나왔으면 그만이련만 조군은 금방 문을 삐걱 열고 들어서는 것만 같아, 기다리기까지의 그동안이 못 견디게 맘에 조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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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도 만나고자 애타던 조군이었던가. 주일 나마를 두고 와 줄까 기다리다 못해 다방을 찾아왔던 것이 와 놓고 보니 되레 만날까 두렵다. 가져온 차를 계집이 식탁 위에 따라 놓기도 전에 백통화 두 푼을 던지다시피 쟁반 위에 떨어뜨리며 나는 다방을 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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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군이 나를 찾기까지 기다려 봐야지 내가 먼저 조군을 찾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야 자존심이 허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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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방을 나와 놓고 보니 조군의 자존심 또한 나를 먼저 찾아 줄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경우에 나를 먼저 찾아 줄 조군이었더라면 벌써 나를 찾았을 그이었을 게고, 또, 우리의 사이가 이렇게까지 벙으도록 애초에 싸움도 없었을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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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또 이렇게 뒤재어지니 내가 그를 먼저 찾지 않는다면 서로의 자존심은 언제까지든지 벗걸려 조군과의 사이는 영원히 멀어지고 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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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사이란 이렇게도 벙으는 것인가, 우스운 일에 말을 다투고 친한 사이를 베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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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은 로맨티시즘이어야 된다거니 리얼리즘이어야 된다거니 다투던 끝에 조군의 가장 아는 체하는 태도에 불쾌해서 “조군은 아직도 예술을 몰라.”하고, 좀 능멸하는 듯한 태도로 내받은 한마디가 조군의 비위를 어지간히 상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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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안색이 말없이 변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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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아직 예술의 그 참맛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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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에 돌리려고 맘에 없는 농을 붙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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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잔뜩 건방져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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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군 역시 농담 아닌 농담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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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게 아니라 군은 모른달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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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데 건방지다는 건 다 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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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지다는 건 모르고도 아는 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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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과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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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가 할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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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튀기는 동안 좀 불쾌한 말이 오고가게 되니 남 듣기에는 제법 정식으로 하는 싸움이나 같았던지 때마침 찾아오던 손군이 싸움으로만 알고 왜들 이러느냐고 영문도 모르고 꾸짖으며 말리는 서슬에 피하면 누구나 지는 것 같아 서로 달려들어 어성은 높아지며 말은 격렬하게 되어 결국은 정말 싸움처럼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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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조군에게는 그렇게 보였겠지만 실상 혼자만 아는 체하는 조군이 얄밉기는 했다. 이 때문에 참다 못해 가다가 한 번씩은 누구나 말을 튀기고 진정으로 불쾌한 기색을 서로 감추지 못하는 적도 한 번 두 번에 그친 것이 아니었으나, 그런 티도 없이 조군은 나를 찾고, 나는 조군을 찾았다. 각별히 언쟁이 격심했다고도 볼 수 없는 이번 일에 날마다 오던 우리 집을 조군은 주일 나마를 찾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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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군은 나를 그처럼 아니꼽게 보았나 하니 조군에게 향하는 내 마음 또한 좋지 않다. 조군의 모든 단처가 얄밉게 드러나며 허하지 않는 자존심에 나도 일체 그를 찾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벗과 벗 사이는 끊으랴 끊을 수 없는 무슨 탄력이 있는 듯싶게 조군에의 우정은 날이 갈수록 그립다. 벗이 많되, 내 마음에 위안을 주는 벗은 없다. 예술을 이해하는 진정한 벗이 없을 때 마음의 어느 한 구석은 비인 듯이 공허함을 느낀다. 예술상 견해는 달리 가지면서도 예술 그 물건에 있어선 무슨 공통된 정신이 떨어질 수 없게 머리를 서로 맞매어 놓은 듯도 하다. 군과 밤낮 마주앉았을 때 못 느끼던 조군에의 우정이 알뜰함을 이제 알았다. 생애에 둘도 없을 영원한 반려를 잃은 듯도 싶어 오늘은 기어이 그를 만나고야 말리라 그의 전용 휴게실과도 같은 다방 장미원을 찾기로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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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군도 내가 군을 그리듯 나를 이렇게 그리워할까. 그리우면서도 자존심이 허하지 않아 지금껏 찾아 주지 않을까. 군에게도 군을 이해할 벗은 오로지 나밖에 없을 텐데……. 그 저주할 자존심이 적용되지 않을 방법으로 이렇게 그를 만날 수가 없을까? 그리하여 피차의 부끄러움도 없이 그만 만날 그러한 방도를 나는 거리로 걸어나오면서 꾀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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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늘도 으레 이때쯤은 조군이 장미원을 들를 것이 빤한 일이다. 그가 오는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오다가다 만나는 것처럼 만나는 것이 어떨까, 만일 만나고 보면 조군도 나를 보고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한번 입만 떨어지면 화해는 되는 날이다, 생각하니 그것이 가장 묘한 방법도 같다. 나는 시험하여 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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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원의 골목을 나서 큰 거리로 걸어나오던 나는 가장 분주한 체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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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군은 아직도 오는 사람이 아니다. 순식간 종로다. 종로는 필요없는 길이다. 나는 다시 온 길로 돌아섰다. 안국동으로 내려오면 정면으로 만날 수 있으나 종로로 들어오면 나의 뒤에 달리리라. 나는 몇 발걸음에 한번씩 뒤를 돌아보며 빨리 걷는 체 활개를 놀리면서도 걸음은 될 수 있는 데 까지 속력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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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놀림과, 걸음에 조화되지 않을 나의 이 걸음은 거리 사람들에게는 무던히도 우스운 꼴일 것 같다. 나와 같은 경우에서 나와 같은 행동으로 취하는 사람이 이 거리에도 있을까? 사람마다의 걸음에 부질없는 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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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원을 거의 다달아 다시 돌아서려 할 무렵이다. 나의 시야에는 틀림없는 조군이 날아든다, 금방 안국동 사가에서 꺾어 내려오는 골목길을 조군의 조고마한 뚱뚱한 체구는 아그작아그작 사람들 틈을 새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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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장 급한 볼일이 있는 사람처럼 속력을 다하여 활개를 치며 마주 걸어올라갔다. 조군도 나를 본 듯 하다. 금시에 머리가 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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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점점 가까워온다. 가슴이 후득후득 뛴다. 할 말의 준비가 가난을 느껴 어리둥절하는 동안, 휙 하고 바람이 얼굴에 씌운다. 벌써 조군과는 어느덧 지나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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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도 말할 수 없었음이 이를 데 없이 안타깝다. 조군의 마음도 내 마음과 같을까? 아니 조군은 미련도 없이 나를 지나쳐 버린 것은 아닌가? 그랬다 하더라도 지나치고도 혹시 마음이 언짢아 나를 돌려다 볼는지 모른다. 나도 한 번 돌려다보고 싶다. 그러나 마주칠지 모를 시선이 두렵다. 마주치면 고의로 지나쳤음이 증명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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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조군을 못 보고 지나친 체 고개를 숙이고 달아날 수밖에 없다. 몇번이나 돌려다보고 싶은 나는 눈앞만 바라보고 그저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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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도 또 그 다음날도 조군은 찾아 주지 않는다. 만나고도 모른척하고 지나치게 되었음이 더욱 조군과의 사이를 멀리하게 만드는 짓이 된 것은 아닌가. 나 자신조차도 그 후부터 조군을 만나야 그때에 지나쳐 보내고 지금 만나기가 더욱 어색할 것 같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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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일상 와 주던 시간이라고 아는 열 시로부터 오전 동안, 그동안을 나는 오늘도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건만 조군은 얼씬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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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이 아니면 다방, 다방이 아니면 본정의 서점 주유 - 그것이 그의 날마다의 하는 버릇이다. 지금도 다방이 아니면 서점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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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미원에 전화를 걸었다. 조군이 거기에 있다 해도 만나러 갈 것 같지는 않으면서도 왠지 그저 그가 거기에 있나 없나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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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가 장미원이죠? 저 조우상 씨 거기 안 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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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다녀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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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장미원엔 틀림없이 조군은 다녀갔다. 그 길로 어디를 갔을까, 나를 찾아오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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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서요! 나가신 지가 얼마나 오래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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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십 분 가량 아니, 한 십오 분 가량은 될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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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신지는 모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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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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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원에서 나의 집까지 삼십 분이며 올 게다. 나를 찾아나선 것이라면 이제 십오 분이면 조군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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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당장 와 주겠다고 약속이나 하여 준 것같이 초조하게 조군이 찾아 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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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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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찰나, 문을 밀고 나타나는 것은 뜻밖에도 손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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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보 안 가려나? 날이 좋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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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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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부라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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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않아도 한 십오 분 동안 기다려 보아 조군이 오지 않으면 본정으로 가 보려던 참이다. 조군을 만나는데 동무가 있음이 더욱 도움이 될 것 같고 또 일부러 조군을 만나러 간 것처럼도 아니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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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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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에 없는 것을 끌리어 가는 사람처럼 마음을 속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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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서 옷 갈아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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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독촉하는 것을 십 분 또 십 분 이렇게 손군을 속여 가며 시간을 지체케 하여 조군을 기다려 보았으나 역시 필요 없는 시간의 낭비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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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정은 나 역시 책전에 마음이 끌린다. 새로 난 레코오드를 듣자고 조르는 손군을 나는 책전으로만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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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좀 차진 탓인지 거리에 사람은 알아보게 드물다. 사람 틈에 잃기 쉬운 작은 체구의 조군을 찾기에는 그리 복잡한 인파는 아닌데 조군은 찾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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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나의 앞을 서 다녀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뒤로 따로 따라오나 다녀온 책전을 다시 한 번 훑어서도 역시 조군의 빛은 보지 못하고 되돌아 전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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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에 조군이 나의 하숙으로 찾아오지나 않았을까. 손군은 종로에서 보내고 나는 바쁘게 집으로 돌아오다가 정말 나는 하숙집 문전에서 저걱거리고 섰는 조군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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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골목 안으로 몸을 숨기고 그의 행동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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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군은 하숙집 대문을 들어서려고 머리를 기웃하고 발을 떼는 듯하더니 다시 돌아서 두어 걸음 내려오다가 아무래도 미련이 있는 듯이 되돌아서 들어서려 야붓야붓하더니 아주 지나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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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군은 분명히 나를 찾아왔다. 찾아왔으나 차마 어색하여 망설이다 돌아가는 눈치다. 조군도 차마 나를 못 잊고 그리워하는 것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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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군이 그대로 돌아감이 더할 수 없이 안타깝다. 내 마음이 이렇거늘 조군의 마음인들 안 그러랴. 조군 하고 불러 볼까 하나 차마 입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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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군은 다시 찾기는 단념한 듯이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잰걸음으로 그냥 골목을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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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바재다 못해 골목으로 빠져들어가 마주 올라오다 만나리라 십여 집을 싸고 앉은 골목을 뛰다 싶은 걸음으로 어이돌아 천변길을 걸어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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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군은 벌써 어디로 빠졌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그동안에 이 골목길을 어느새 다 추어 큰 거리로 나섰을까. 혹시 내가 뒷골목을 어이도는 동안 나의 하숙을 다시 들어간 것은 아닌가. 나는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러나 나의 방문은 여전히 덧문까지 닫히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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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나 찾어오지 않었읍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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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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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금방 왔든 손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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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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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시 그대로 간 조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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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군을 못 잊어 하듯 조군도 나를 그렇게 못 잊는다면 혹시 군은 오늘도 나를 찾아 줄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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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은 전에 다른 기대를 가지고 나는 아침부터 조군을 기다리며 문 밖을 들락날락하였다. 그러나, 오라는 벗은 아니 오고 뜻하지 않았던 가끼도메 한 장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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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설을 꼭 받아가지고야 편집에 착수하겠다는 ××지의 원고 독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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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생기는 일이니 아무렇게나 끄적여 보냈으면 그만이련만 예술적 양심은 차마 그렇게까지 허하지 않는다. 오늘까지 써 온 과거의 작품을 모두 불살라 버리고 싶은 충동을 못 참는 나다. 이제 게서 더 일보를 나아가지 못한 필법은 차마 손에 붓이 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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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일년 내 소설 제작에 있어 커다란 고민을 느끼어 온다. 그것은 소설이란 무엇인지가 비로소 알아진 때문도 같다. 그러나, 알아진 그 소설을 시험하기에는 자신의 역량에 쓴웃음을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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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위 저널리즘 위에서 총애를 받는 작품들이 나의 수준에서 뛰어남을 찾지 못할 때 나의 용기는 확실히 되사나, 나는 여기에 집필에의 위로를 얻기보다 오히려 폭소를 금지 못한다. 그것도 소설이요 하고 침묵을 못 지키는 그들의 낯이 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82
조군과 나와의 사이에 가끔 언쟁이 있게 되는 원인도 그 실인즉 이러한 관계에서였거니 조군도 어쨌든 쓰고야 보는 작가의 한 사람이므로서다. 그러나, 조군의 작품은 발표할 때마다 월평가의 붓대 끝에 찬사의 표적이 된다. 그러면 일반은 그 작품을 믿고 저널리즘은 그 이름을 안고 춘다. 그리하여 그는 확실히 인기 작가의 한 사람이다.
 
83
그러나, 나는 그와 같은 작품을 내어놓으므로 자신에 만족을 느끼고 명예를 얻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자신이 허하는 작품은 쓸 수가 없다.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원인이다.
 
84
나는 이제 나의 소설 못 쓰는 마음을 솔직하게 적어 놓아 내 마음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충동을 못 참는다. 그리하여 이해할 수 있는 벗으로 손뼉을 같이 쳐 주는 공감을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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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득 그것의 소설화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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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붓끝은 나의 마음을 충분히 그려내기에 충실한 사자가 되어 줄까 신용되지 않는 자신의 역량이 몇 번이나 머리를 흔들어 대건만 참을 수 없는 창작욕에 마침내 원고지 위에 하필을 하여 본다. 일 년 만에 처음으로 든 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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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한 일이다. 내 마음을 살리기엔 조군이 상대가 아니 되고는 내 뜻을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 곤란한 일인 것이다. 조우상이라 똑바로 그대로 이름을 끌어다 대고 쓰자는 것은 아니로되, 조군이 보면, 아니 벗들은 누구나 보아도 그것이 조군인 줄은 알 것이다. 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벗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은 마땅한 일이 될 수 없다. 될 수 있는 대로 조군의 신상을 생각해 가며 쓰고자 하나 내 뜻이 옳다는 것을 표백하려니 조군은 언제나 거기에 눌리우고, 나를 내세울수록 그는 떨어진다.
 
88
나는 몇 번이나 이래서는 안 된다. 붓대를 내던져 보았건만 나의 이 생명인 창작 충동은 벗에 관한 한 개의 악감, 그리고 신의를 생각하기보다 예술 사상인 창조 충동이 보다 더 강렬한 힘으로 붓 끝에 열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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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닭이 울 무렵까지 조군에게는 재미롭지 않은 한 편의 짤막한 소설이 짜여지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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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발표해서 옳은가 몇 번이나 읽어 보아도 조군이 걸렸으나 내 생명이 담기운,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은 그대로 내 생명이라 아니 차마 버리고 싶지 않다. 이렇게 글로는 조군을 비웃었다 해도 지금도 나는 조군을 진심으로 그리워하거니, 결코 무슨 악의에서 비웃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한 개의 사상이요, 주의의 싸움이다 하는 생각은 마침내 발표에까지 마음을 정하게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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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나는 이 소설을 ××지에 부치고 우편국을 막 돌아나오는 무렵 공교하게도 조군과 서로 문을 밀거니 당기거니 하고 있었다. 내편의 밀음이 좀 세었던지 문고리를 비슷이 놓고 몸을 비키며 내가 먼저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뜻밖에도 조군이었던 것이다.
 
93
“요우!”
 
94
나를 보기가 바쁘게 조군은 조금도 어색한 티 없이 나의 손을 붙든다.
 
95
순간, 반가우면서도 당황하던 나의 마음에 비춰 보면 조군의 인사법은 확실이 나보다 단련된 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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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참 오래간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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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보름 됐을까?”
 
98
비로소 어색한 입을 나는 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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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소 출입을 할 땐 호경긴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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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 원고 하나 잠깐…… 오래간만에 소설 하나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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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102
내가 소설을 썼다는 말에 조군은 닁큼 놀라며,
 
103
“소설! 물론 역작이겠군. 일 년 동안이나 닦고 닦은. 그래 어디야?”
 
104
“저 거시기.”
 
105
“으 - ××지 아닌가? 거긴 나도 썼는걸!”
 
106
“군도 소설인가?”
 
107
“아니 평론, 이달 창작평야.”
 
108
“이크! 그럼 이기영(李箕永)이가 또 비행기를 타겠구먼.”
 
109
“그야 군이 창작평을 쓴다면 이효석(李孝石)이가 체베린을 안 탈 겐가?”
 
110
“이 사람, 선 자리에서 복수인가. 어쨌든 나의 창작이 이달에 없었던 것 만은 천만다행이군. 군의 붓끝에서 천길 만길 뚝 떨어질걸.”
 
111
“그럴 수 있나. 그런 경우면 쓱 지면이 모자라서 하는 의미로 척 빙그러쳐서 빼어 놓거든.”
 
112
“하하하 - .”
 
113
“아닌 게 아니라 친지의 작품을 지상으로 내려 깎고 만인의 앞에 공개하기란 참 거북한 일이거든. 그러기에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근자엔 뭐, 월평가의 레투가같이 되어서.”
 
114
“그러면 이번에도 군은 또 누구에게든지 지면이 모자라겠구먼.”
 
115
“하하하.”
 
116
우리는 그동안 서로 틀렸던 티도 없이 천연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는다.
 
117
그러나 사이가 벙으렀던 원인, 그리고 그리웠더라는 말은 안 하기를 서로 내기나 한 듯이 누구나 입 밖에 내려고 하지 않는다.
 
118
그렇게 그리워하는 벗 사이라도 자기의 위신을 위하여 굳이 감추고 비밀을 지키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러고도 벗일까. 그러면서도 그리워는 서로 한다! 나는 우리들 사이의 그 심리의 작용이 묘하게 움직이는 것을 들여다보며,
 
119
“우리는 그동안 어쩌면 거리에서 그렇게도 한 번도 못 만났담.”
 
120
나는 관훈동 거리에서 만났던 일을 생각하고 은근히 그의 마음을 엿떠 보았다.
 
121
그러나 조군은 글쎄 하고 다른 아무 말도 없더니,
 
122
“언젠가 한 번 관훈동 거리에서 지나치고 보니 그게 군이라고 보았는데 군은 나를 못 봤나?”
 
123
도리어 나의 마음을 엿뜬다.
 
124
그러나 나 역시 그의 말에 넘어갈 내가 아니다.
 
125
“나는 군의 그림자도 못 봤는걸.”
 
126
“못 봤어?”
 
127
하는 것은 너도 어지간히 속을 안 주누나 하고 속으로는 입을 비쭉 하는 것 같다.
 
128
“참 군은 다니는 길목이라 우리 집 앞을 더러 지났을 텐데 그렇게도 한번도 안 들린담?”
 
129
“지날 턱 있나 그동안은 참 꼭 집안에 백혀 있었네.”
 
130
조군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 입 밖에 내려고 하지 않는다.
 
131
우리는 그 다음으로 바아로 들어가 얼근히들 술이 취하여 못 하는 이야기가 없이 지껄여 대면서도 그렇게 그리워하였더라는 이야기는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생각하면 그것은 우리들의 영원히 지켜야 할 비밀일 것도 같다.
 
 
132
〔발표지〕《비판》(1939. 2.)
133
〔수록단행본〕*『병풍에 그린 닭이』(조선출판사,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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