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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開闢)』이 창간된 지 어느덧 10주년이 되었다 한다. 세월의 빠름에 아니 놀랠 수 없다. 위대한 기백과 청신한 자태로 우리 앞에 나타난 첫 인상이 어제 같거든 그 사이에 벌써 3천 6백 5십여 일이 지났단 말인가. 더구나 감개무량한 것은 동지(同誌)가 오늘날 그 형체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짧으나마 굵게 살고 옥쇄(玉碎)할지언정 와전(瓦全)치 않은 그 정신과 기백만은 햇발과 같이 길이길이 우리의 앞길을 비칠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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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에 동지에 기고하기는 「희생화(犧牲花)」란 단편이었다. 명색 창작으로 활자가 되어 보기는 이것이 처음이다. 타는 듯한 의기와 조 비비는 듯한 공구심(恐懼心)으로 나는 밤잠도 못 자고 그 발표 결과를 기다렸던 것이다. 내가 쓴 글자가 의엿하게 뚜렷하게 동지상에 나타난 것을 볼 때에 나는 까닭 모를 눈물까지 흘렸던 것이다. 그 후 나의 중요한 창작은 대개 동지를 통하여 세상에 얼굴을 내어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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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 조그마한 문명(文名)이라도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동지를 모반으로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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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화」가 발표되기는 동지의 창간 당년인 듯하니 그러면 내가 문단에 제일보를 들이민 지도 어느덧 10년이 지난 모양이다. 이 10년 동안에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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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일소년 홀홀이삼십(如何一少年 忽忽已三十). 어릴 때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에서 읽은 이런 시가 문득 생각나며 반성과 감개를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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