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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부만필 (豆腐漫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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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4
홍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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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만필(豆腐漫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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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밤에 봉창을 두드리던 빗소리는 봄을 재촉하는 소리려니. 아침에 외치는 장사치의 소리에도 어느덧 봄빛이 짙었다. “엊저녁 남은 밥이 있어서 오늘 아침은 그대로 먹겠는데 온 더운 반찬이라군 아무것도 없으니 어떡하나.” 하는 빈처(貧妻)의 을시년스러운 탄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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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 걱정할 것 있소. 오 전(五錢)이 있으면 두부를 사고 일 전만 있거든 비지나 사구려.” 멋없는 남편의 배포 유(柔)한 소리이다. “그나마 돈인들 어디 있어야지요.” “아따 그럼 외상으로 얻지.” “그럼 두부나 한채 받을까?” “외상이면 소두 잡아먹는다구…… 이왕이면 두부나 비지나다 ⎯ 사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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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납(禪納)은 두부를 ‘보살’ 로까지 봉찬(奉讚)하기도 하였다. ‘보살’ 이라는 것은 범어로 “보제살타(菩提薩埵)” 라고 이르는 것을 약칭한 것인데 ‘보제(菩提)’ 는 ‘각(覺)’ ‘살타(薩埵)’ 는 ‘유정(有情)’ 으로 역(譯)하게 된다. 말하자면 대도심인(大道心人)으로서 원(願)과 행(行)이 확대해야만 바야흐로 이 칭호를 받게 되는 것인데 각유정(覺有情) 삼자(三字)에도 삼의(三義)의 해석을 붙인다 한다. 즉 “일약자리(一約自利)는 발심수행(發心修行)하여 단혹증진(斷惑證眞)이라 수기분증불각(雖己分證佛覺)이나 상유식정(尙有識情)이 미진고(未盡故)요 이약이타(二約利他)는 현신설법(現身說法)하며 수기이도(隨機利導)하여 각오법계(覺悟法界)의 무량유정고(無量有情故)요 삼약양리(三約兩利)는 광수육도(廣修六度)하며 번흥만행(繁興萬行)하여서 상구불각(上求佛覺)하며 하도유정고(下度有情故)” 라고 말한 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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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는 값이 염(廉)하면서도 영양 가치로는 아주 중보(重寶)라고 이르니 아무라도 쉽사리 사귀일 수 있는 매우 훌륭한 대의적 보물이다. 원래가 일종의 가공품이건마는 그래도 메마른 건물(乾物)과는 성질이 아주 달라서 생선의 산뜻한 미취를 넌지시 맛볼 수도 있으며, 그러나 그것이 물론 생물은 아닌 것이 더욱 묘한 것이다. 더구나 아무라도 그 진미를 한 번 맛들여 본이면 아마 그처럼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은 매우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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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면서도 본디 밥과 같이 담미(淡味)인지라 일상 섭취하건마는 그리 물리는 법도 없다. 두부 자신이 비상(非常)히 청정담백하여 일점(一點)의 진기(塵氣)도 없건마는 또 두부처럼 도처춘풍(到處春風)으로 상대를 까다로웁게 가리거나 싫어 않는 것은 아마 드물 것이다. 어류를 만나면 어류와 조화하고 육종(肉鍾)과 만나면 또한 육종과도 협조를 잘 보전한다. 수처(隨處)에 수순(隨順)하건마는 그렇다고 대상을 따라서 오염해 버리는 것도 물론 아니다. 다만 남을 여기거나 자기만을 내세우라고 들지 않는 것이 그의 본성이어서 매우 너그러웁게도 자기라는 것을 텡 하니 비워 놓았을 뿐이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를 죽이지 않으면서도 용하게 남을 살리는 동시에 자기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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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욕심이 없다고 할는지 소아(小我)를 버린 것이라고 어를는지 아무튼 무쟁삼미(無諍三味)를 얻은 조욕하라한(雕欲河羅漢)의 경계를 어렴풋이 엿볼 수가 있다. 물 속에 사각사면의 멋없는 자태가 돌처럼 무거웁게 잠기어 있건마는 그렇다고 정말로 방정맞거나 딱딱한 것이 아니라 천광운영(天光雲影)이 임거래(任去來)하는 유유한 도인(道人)의 심경이다. 그러나 일단 일이 있어 몸을 미진(微塵)으로 부수어버리더라도 본래의 면목은 조금이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그러한 독특한 본색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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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자재하고 그처럼 무고애(無辜礙)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두부는 그 얼마나 훌륭한 것이랴. 아무리 주물러 부스러뜨려 놓더라도 본면목을 잃지 않고 철저한 ‘아(我)’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 ‘아’ 라는 것에 아무러한 집착도 갖지 않는 동시에 또한 저절로 아무러한 규구(規矩)도 세워두지 않는다. 그저 시절과 인연을 따라서 그 ‘아’ 를 자재하게 놀리울 뿐이다. 그래서 ‘소아(小我)’ 를 버리고 ‘대아(大我)’를 잘 살리면서 대경(對境)에는 붙들리게 않겠마는 그 경(境)과 그 경을 따라 순응해서 자기를 활동시키는 ‘응무소신이생기심(應無所信而生其心)’ 의 보살행을 체득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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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혹 두부가 아직 보살위(菩薩位)에 오를만한 불과(佛果)를 얻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변환무궁(變幻無窮), 통달무소(通達無所), 원융무애(圓融無碍)한 대덕(大德)의 면영(面影)은 분명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항상 활달자재하게 자기를 살리어가는 그 정신은 뚜렷이 대오철저(大悟徹底)한 쾌남자의 심경이 아니랴! 더구나 본래는 각지에 쌓였던 콩의 몸으로 거친 마(磨)돌을 들어나오느라고 분골쇄신‥‥‥ 화진(火盡)을 거치며 고즙(苦汁)도 맛보고 또다시 억세인 포대(布袋)에 쌓여 압착을 받던 고행? 청한자(淸寒子), 설령(雪嶺, 매월당[梅月堂])이 ‘당불경보살품(當不輕菩薩品)’ 을 찬(讚)한 끝에 이러한 송(頌)을 드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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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석년선정지 편기군생무물아 능인매욕광겁수 질득보제성도과(不輕昔年善精持 遍記群生無物我 能忍罵辱曠劫修 疾得菩提成道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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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新報[매일신보]』, 1939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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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0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