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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송(牛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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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8.7
홍사용
1
우송(牛頌)
 
 
2
개울물이 얼마나 불었을까. 밤을 새워 훌쩍이는 낙수(落水), 하 그리 처량도스럽더니……. 해돋기 전 이름 아침에 보슬비 맞으면서 나는 개울섶으로 거닌다. 연기인지 안개인지 아마나 뒷재에서 쉬어가는 뜬구름인지 건너마을에서 게산이 우는 소리는 요란스럽게 들리어도 사람의 자취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산울타리 호박덩쿨 반쯤 열린 싸리문짝 ─ . 그런 것도 꿈속같이 어렴풋 건너다 보일 뿐.
 
3
소나무잎에 이슬지는 물방울 소리 “뚝 뚝 뚝” 허울좋게 널브러진 토련(土蓮)잎에 수은(水銀) 같은 물방울이 구슬을 굴린다. 진주! 진주보담도 더 묘한 보주(寶珠)가 백광(白光)을 이루며 융통무애(融通無碍)의 법상(法相)을 굴린다. 아침 공기에 깨끗이 씻어 놓은 청청한 정취는 애오라지 가을날 선량(鮮涼)한 아침이나 아닌가 의심할 듯. “뎅그렁” 우령(牛鈴) 소리가 들린다.
 
4
비는 멎었다. 안개도 걷힌다. 아마 이제 해가 돋으려는지 동령(東嶺)에 발돋음한 중방구름에는 붉은 놀이 선다. 그리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부채살같은 방광(放光)이다.
 
5
성자의 거룩하고 도울함한 상호(相好)와 보서(寶瑞)을 갖추느라고 하늘과 땅을 한창 바쁘게 차릴 제 그 밑으로 푸른 풀 우거진 언덕머리에 흰 소 한 마리가 저두묵념(低頭默念), 고요히 양을 삭이고 섰다. 푸른 잎 토련 밭뚝에 흰 소 한 마리가…….
 
6
“신희편원 구획백우지차 견문수희 진수청련지기 일사일상 무비묘법 일찬일양 개시묘심(愼喜偏圓 俱獲白牛之車 見聞隨喜 盡授靑漣之記 一事一相 無非妙法 一讚一揚 皆是妙心)”
 
7
나는 소 앞으로 걸어갔다. 가장 경건한 걸음으로…… 하늘과 땅 사이에 흰 소 한 마리! 거암(巨岩)처럼 억세이고 태산같이 무거우매 유(柔)한 듯 강(剛)한 듯 성이 난 듯 조으는 듯 만상지중(萬象之中)에 독로(獨露)한 저 몸!
 
8
나는 본디 흰 소를 몹시 좋아한다. 그래서 십여 년 전에는 내 당호(堂號)를 ‘백우서당(白牛書堂)’ 이라고 지었던 일도 있었다. 사람도 저 소의 기상(氣象)과 같이 천상천하에 독로신(獨露身)이 되었으면……. 어느 적 우주에나 나 한 몸으로 일체의 기반을 훌쩍 잊어버리인 독로신(獨露身)의 심경을 갖게 되었으면……. 그러나 인간이란 이 생애의 모든 현실상이 좀처럼 그 독로신(獨露身)도 허락을 않으려드니 진실로 안타까웁고 구슬픈 일이 아니냐. 소는 금강부동(今剛不動)의 자세로 음전하게도 서서 느린 호흡에 고요히 양을 삭인다. 아직 아침외(喂)○도 먹지 않았는지 풀은 뜯어 먹은 자리도 보이지를 않는다.
 
9
탐진치지독(貪瞋癡之毒)에서 벗어나온 경계라 “아시끽반권래면지차수행현갱현, 탈여세인혼불배, 극종신외멱신전(俄時喫飯倦來眠只此修行玄更玄, 脫與世人渾不倍, 郤從身外覓神佃)” 이라는 셈으로 시장하면 밥먹고 고달프거든 잠자면 그만 태평일 것이다. 그런 것을 사람들은 공연히 허둥지둥 헤매이며 갈팡질팡 아귀 다툼을 하고 사질러 다니는 것이 아닌가. 오늘 아침에 먹으려다 먹을 것이 없으면 내일 아침에 그나마 내일 아침도 거리가 없으면 모레 아침 혹은 글피, 그 글피 아침……. 만사 평안이지 무슨 걱정이 있으랴. 찬송가에도 “내일 근심 내일 하라. 오늘 근심 묘하다.”나 “들에 피는 백합꽃도 솔로몬의 영화보담 더 고이 꾸미어 주었다.”는 뜻이나 그보다
 
10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청정한 심경을 이름이 아니랴.
 
11
“천군(天君)이 태연하면 백체(百體)가 종령(從令)”이라거니와 심경이 거룩하면 가미로운 복도 저절로 있는 것이로세. 이 푸른 풀 언덕을 보라. 밤마다 내리는 기름진 비에 부드러운 잎이 얼마나 소담스럽게 우거지는가를……. 만 년을 먹어도 먹고 남을 양식이라 “야화소부진춘풍취우생(野火燒不盡春風吹又生)”이라 하거니 먹어서 없애고 불에 타 사라지더라도 다하지 않는 것은 자연의 힘이리라. 대자연계의 생명이리라.
 
12
어허 거룩한 소! 시원스러운 심경! 어제까지 고역에 당하고 무거운 짐을 운반할 제 억세인 채찍 밑에 신음하던 괴로움도 “언제 그랬더냐” 다― 잊어 버린 듯 유순하고도 정완(靜緩)한 성자(聖姿)……. 나는 저 덕용(德容)을 송찬(頌讚)하기를 마지 않노라. 간밤에 드리우던 기름진 보슬비여! 성자의 양식을 아무쪼록 소담스럽게 해드리자는 그윽한 뜻이었건마는 새망 궂은 첨하 낙수(檐下落水) 부질없는 청승을 떨었도다.
 
 
13
(『每日新報[매일신보]』 1938년 8월 7일)
【원문】우송(牛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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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사용(洪思容)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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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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