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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9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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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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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어 날씨가 상량(爽凉)해지면 무엇보다도 독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이란 말은 낡은 말이면서, 가을이 되면 누구나 한마디씩 해보는 말이다. 신문의 사회면, 학예면이 각각 한번씩은 뇌어보고야마는 말이고, 신문사설이 으레 한 번쯤은 걸어보는 말이다. 소학교, 중학교의 교단이 시간마다 타이르는 말이며, 서울로 유학을 보낸 시골 있는 아버지가 편지 사연 마지막엔 꼭, “시절이 바야흐로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니 명심하여 공부에 열심키 바라는 바이며……” 운운을 넣고, 심하면 “뒷날의 성공이 되기를 이 아비는 단 하나의 여생의 즐거움으로 생각하고 있노라”고 까지 첨부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걸 쓰고있는 동안도 아마 수십마디의 이 숙어가 입으로 붓으로 불려지고 씌어지고 하리라 생각하니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라 어쩐지 세속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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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을이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을 것인가 두루 생각해보면, 말만이 많았지 실상인즉 별것이 없을 것처럼 생각키인다. 역시 언제든지 독서를 취미로 하는 이가 읽게 될 뿐이지, 새로운 독서자(讀書子)가 많이 생길 것 같지가 않다. 더구나 독서의 습관이 태무(殆無)한 현대 조선의 시대에는 이 말이 쇠구에 경 읽기 격이나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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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어쨌건 사람이 열심히 책을 읽는다면 얼마나 읽을 수 있는 것일까, 나처럼 놀기를 좋아하고 나태한 자를 표준으로 할 것은 물론 아니나, 가령 버쩍 느려서 한 달에 열 권이라 치자, 그러면 1년에 120권, 10년에 1200권, 20년에 2400권이다. 잡지까지를 합쳐서 한 달에 10권이 되나마나한 나같은 놈이 일생에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이란 말할수없이 초라하다. 옛날에는 독서 만권이란 말이 보통이었던 모양이고, 이즈음에도 수만권의 책을 읽은 이가 드물지 않을 것을 생각하며, 또 어떠한 한 부분만을 대충 통독하려고 하여도 천여 권은 될 것이라 생각해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세상이 복잡하지 않고, 먹기에 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옛날에 몇 페이지씩 안되는 책을 일생 걸려 만권쯤 읽기는 그리 큰 난사(難事)는 아니었을는지 모르나, 지금 나와 같은 처지로서는 생각조차 못할 말이다. 책을 살 돈도 없다. 그러나 재산보다도 욕심이 나는건 역시 많은 책을 간직해 둔 서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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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도 못할 책을 많이 갖고 있으면 무엇할 것이냐. 아닌게 아니라 적독(積讀)이란 말이 있다. 묵독도 아니오, 낭독도 아니오, 정독도 아니오, 적독(積讀)이란 말이다. 쌓아두고 보는 것을 이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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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광고 같은 것을 보아도 가끔 “응접실의 장식품으로도 훌륭하다”는 말이 있다. 생각해보면 우습고도 낯간지러운 말이지만, 적독(積讀)적독이란 말이란 이런 것을 말함이 아닐것인가. 서울서도 웬만한 실업가의 응접실을 엿보면 한편쪽에 아담한 책장이 있고 제법 훌륭한 책들이 들어있다. 물론 그는 매일처럼 있는 연회에 바쁘고, 축첩에 바쁘고, 사무궁리에 골몰하여 책같은 것과는 인연도 멀다. 이런 때 그집의 책장을 가리켜 적독(積讀)이란 말을 붙이고 보면 어지간히 풍자성 있는 재미난 말이다. 박사의 병원 진찰실에도 원어(原語)의 커다란 책이 주르니 꽃혀 있다. 대부분은 적독(積讀)이란 말을 붙이고 보면 어지간히 풍자성 있는 재미난 말이다. 박사의 병원 진찰실에도 원어(原語)의 커다란 책이 주르니 꽃혀 있다. 대부분은 적독(積讀)이다. 허영이거나, 체면유지거나, 장식이거나, 광고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적독(積讀)이란 말은 퍽 재미있는 사회적 술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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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술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을 제법 학적(學的) 체계를 세워 독구(讀究)해 본 사람도 있다. 호판(戶坂)씨 같은 이는 이런 걸로 책까지 내었다. 그 많은 서적의 범람 속에서 어떠한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을 것인가 하는 것은 중대한 사회적 문제이다. 돈과 시간과 정력 문제로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읽을 수는 없다. 읽고 나서 아무 이득도 감흥도 못 받았을 때처럼 약이 오르고 화가 나는 때도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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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사람의 글을 몇 번 읽었으면, 대개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으니까 안신하고 사게 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은 하는 수없이 북ㆍ리뷰를 볼밖에 없다. 독서신문이던가. 각 신문의 신간평이던가, 잡지의 신간소개던가를 하는 것이다. 추천한 사람을 보면 책은 어느 정도까지 신용해도 좋을 것이다. 이즈음 나도 더러 신간평을 썼는데, 그럴때마다 공연히 광고문으로 되어버리지 않도록 항상 책임을 느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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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寅[무인] 9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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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 1938년 9월)
【원문】독서(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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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1938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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