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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7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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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배(珈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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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알베르 티보데의 책을 한 권 사서 『소설독자론』의 첫 혈(頁)을 펼치니까 이런 글이 나왔따. 피에르 루이가 어던 재미스런 콩트 속에서 희랍 문명과 근대 문명이 쾌락(그에 의하면 유일의 가치 있는 것)의 수확으로서 선물한 것을 비교해 보고, 근대인의 새로운 일락(逸樂)을 단 하나밖에는 발명하지 못했다, 그것은 담배다, 라고 결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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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 시대에는 자연(紫煙)의 취미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티보데는 이 담배란 말을 끌어 온 다음에, 희랍인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취미로 ‘독서’를 하나 더 예로 들고, 이러한 이야기를 통하여 가면서 그의 『소설 독자론』을 전개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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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읽다가 나는 펀뜻 벽초 선생의 「임꺽정」을 생각했다. 임꺽정과 그의 일당이 두주로 유흥을 하는 장면은 많지마는 담배를 피우는 대목은 본기억이 없는 것 같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이조 명종 전후에도 끽연의 풍속은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언제부터 우리에게 담배 피우는 습관이 들어왔는지 물론 나 같은 가히 알 바 아니오, 그러니 소설 쓰는 것이 직업이어서 동물에게 약을 먹이듯 하여 겨우 독서의 취미는 약간 붙여 놓았지만, 나는 아직 담배의 맛도 모르고, 또 그것을 상습으로 하지도 않으므로, 피에르 루이의 논조로 한다면, 나는 현대인으로 살면서도 저 희랍인이 갖지 못하였던 단 하나의 취미에조차 참여하지 못한 것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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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즐겨 피우지 않는 관계로 나는 집에서 머리를 쉬일 때 아무것도 입에 넣는 것이 없다. 글을 읽든가, 무엇을 쓰다가 머리가 무거워지면 사람들은 곧잘 담배를 피워서 피곤을 덜고 정신을 소생시키는 모양인데, 나는 아무것으로도 그러 효과를 낼 취미나 습관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중학 시대에 시험공부할 때엔 커다란 눈깔사탕을 입에다 물고 수학을 풀던 기억이 있으나, 아이들의 눈도 있고 한데, 나의 30이 되서 눈깔사탕을 끼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술은 겨우 그 맛이나 안다고 할 정도이지만 혈기가 혈기라 한두 잔으로 걷어치지 못하고, 그것도 요즘 같아서야 어디서 일적(一適) 이나 손쉬웁게 구해 올 수가 있는가, 딱이 그래서 먹어보기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틈틈이 차를 마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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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고 하면, 퍽 전에 고 호암 선생의 글에서, 이것이 이 땅에 들어오게 된 유래를 읽었던 것처럼 어렴풋이 생각되기는 하지만 기억이 도무지 확실치가 못하다. 그러니까 차에 대해서도 재미난 이야기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임꺽정의 일당이 숭늉을 마셨던 것은 확실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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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코코아나 가배도 차라고 할 수 있을는지. 차나 마시러 가자고 나서서도, 소다나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으니까, 가배도 차라고 해 두자. 여하튼 나는 흥분제를 약간 필요로 하였던 만큼 가배를 쓰기로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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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브란데스가 그 유명한 『19세기 문학주조사』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 미슐레라는 역사가가 그의 저서 가운데서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블란서의 역사 가운데서 가배의 수입과 함께 국민의 지식생활에는 새로운 기원이 열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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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데스 자신도 이건 좀 허망한 소리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초기의 작업의 문체에서 술의 향훈을 느낌과 동양(同樣)으로, 볼테르의 문체에서는 가배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조선에서도, 신문학 있어 불과 30년이지만, 초기 시인의 시에는 술냄새가 풍기는 것 같고, 요즘 신세대의 시에는 가배 냄새가 풍기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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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배를 가장 애음(?)한 사람은 아마 오노레 드 발자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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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만 배(杯)의 가배로 생활하고, 오만 배의 가배로 죽었다”는 말도 있다.. “나는 야반에 기상한다, 그리고 17시간 동안 원고를 쓴다” “나는 다섯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야반으로 정오까지는 제작에 소비하고 정오로 부터 네 시까지 교정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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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격렬한 노동 가운데서 그의 의식을 지탱해 준 것은 45배의 가배였다고 한다. 51세에 드디어 죽었으나 20년 동안 백 권의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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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 따위가 이런 거장을 흉내내는 것은, 영웅호색이라고 영웅은 못되면서도 호색만은 본따려 하는 것이나 진배 없는 노릇, 가배를 그렇게 마시고서 단 하루를 견뎌 배길 턱도 없지만, 또 먹을 수 있다기로니 무슨 작품이 생겨 나올 수 있을 것이냐. 벌써 4, 5년 전에 아내가 신경에 갔다가 우연히 러시아인 상점에서 가배 한 폰드를 사들고 왔는데, 이것도 물론 발자크 모양으로 소설을 잘 쓰라고 그런 것도 아니오, 신혼 출하로 어떤 신식 부인이 커피 포트를 하나 선물해서, 이와 그릇이 있으니 한 번 끓여 본다고 가방 속에다 넣어 가지고 왔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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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끓일 줄도 몰라서 감초국 같이도 만들고, 팥뜨물처럼도 끓였었으나, 2, 3년 지나니까 곧잘 맛있는 모카나 브라질을 먹여 주었다. 물론 나는 체질이 그렇게 생겼는지, 4, 5년 그 본새로 먹으면서도 담배와 한가지로 인이 배기질 않았다. 얼마간 준비해 두었던 것이 작금에 다 없어지고 이제 다시 구할 길이 망연해졌다. 그러나 물론 거리의 신식 청년들처럼 겁은 나지 않는다. 그저 심심할 땐 군입만 쩍갑 쩍갑 다시게 된 게 어쩐지 서운하다. 그렇다고 흥분제는 일적(一適)도 안 마신다고 손님에겐 홍차를 주면서도 자기는 백비탕(白沸湯)을 마시는 장개석의 기질은 또한 나의 본 받을 바 못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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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 194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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