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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12세기 건물로 곤돌라를 보호하기 위하여 세운 성당이라 한다. 성당 내의 기둥들은 그리스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왔다 하며 전부 백대리석조(造)로 참 장엄하다. 성당 내 성당 외의 지면은 전부 대리석 모자이크이어서 그것만해도 한 훌륭한 미술품이 성립되어 있다. 천정화는 신약전서의 마가의 행적이 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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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틴토레토의 그림이 두 장 있었다. 여기 온 후, 화제는 풍부하나 연일 강우(降雨)와 또 구경으로 인하여 마음만 안타까워할 뿐이요, 한 장도 못 그렸다. 이 날은 마침 볕도 나고 하기에 소품 1개를 그렸다. 걸작을 볼 때는 그리면 곧 그같이 될 듯하나 그리고 보면 생각하던 것과 판이하다. 이럴 때마다 대가와 걸작에 대한 존경이 더하여 간다. 그림은 감각적인 만치 과연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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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전에 공화시대 대통령의 관사였다 한다. 좋은 그림도 많았으나 별로 역사적 가치를 가진 것은 없었다. 다만 파올로의 「마돈나」가 유명하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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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서 구경할 곳을 찾다가 마침 영국인 관광단이 지나는 것을 보고 그 뒤를 따랐다. 골목으로 한참 가더니 어느 조그마한 2층집으로 올라간다. 이곳은 이미 안내자들과 내약이 있어 관객을 인도하는 소위 명산품 매점이었다. 영・미국인이 빈번히 출입하느니 만치 사치품이 많았다. 일찍부터 동방 제국과 교통을 열었던 이 무역항은 옛날부터 세공물의 산지로 유명하였다. 그리하여 목에 걸치는 줄에 끼운 구슬까지 모두 대리석 세공물이다. 이상한 꿈과 같은 이 도시를 회억하기 위하여 한 물건이라도 사가지고 가고 싶은 강한 집착심이 생겨 발길이 얼른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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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공화시대 국립 성당으로 여기서 대통령의 대관식을 하고, 그 시 관리들이 예배를 보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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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1902년 건물로서 매년 1차씩 4월로 10월까지 국제 전람회를 개최한다. 현대 회화로 가장 유명한 것이 많은 중에 내가 전에 책에서 많이 보아오던 파스티타의 「장막」이 있다. 그 외, 파리 로댕 뮤지엄에 있는 것과 같은 로댕의 「칼레 시민」과 「묵사(黙思)」가 있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중에 파리는 마치 고향과 같이 생각이 되어 이 작품만 보아도 매우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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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의 백포(白布)의 묘화(描畵)를 기묘하게 한 것과 라파엘의 「성모 승천」, 티티안의 「그리스도의 승천」, 틴토레토의 「그리스도의 최후」, 베로네제의 「지주(蜘蛛)의 소(巢)」와 「처녀」, 벨리니의 「마돈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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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랑에는 진열해진 회화가 750여 점이 있다. 대부분은 베네치아파의 대가의 그림으로 작자 중에는 역사적인 인물이 많다. 여기서 베네치아파의 특색과 그 후 피렌체파의 특징을 비교해 보면 전문가에게는 큰 흥미 있는 재료를 얻게 된다. 이 중에 가장 대표적 그림으로는 벨리니의 「성모」와 「산마르코 성당 전(前) 행렬」이 유명하다. 티티안의 「아담 이브」와 카르파치오의 「사셀도스의 경배(敬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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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치아파화(畵)와 피렌체파화의 비교와 그 대표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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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파의 회화는 피렌체와 중부 이탈리아 제파(諸派)에 비교하여 뒤져서 발달되었다. 그러나 다른 파와 다르게 베네치아파에는 특장을 발휘하여 르네상스 미술사 중에 독특한 지위를 점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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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파 회화의 특장은 선으로 된 윤곽의 완성과 육체의 묘사와 운동의 표현에 있어 고아한 기품으로써 전체를 조화한 것이요, 베네치아파 회화의 특색은 색채를 중요하게 여겨 명암의 색조와 광선의 음영으로 화면에 깊은 맛을 가하여 인간미와 인정애를 표현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유화의 신묘법(新描法)은 후자가 적당하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베네치아는 회화가 많이 발달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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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회화의 르네상스풍으로 발달되기는 15세기 말에 벨리니 형제로부터 시작되었다. 벨리니 회화 중에 가장 유명한 그림은 아카데미 화랑에 있는 「산마르코 성당 전(前) 행렬」이다. 원래 베네치아란 상업무역을 생명으로 아는 도시인만치 시민공화(市民共和)의 정치를 이상으로 삼았다. 시(市) 중앙인 산마르코성당에서 행하는 종교적 제식(祭式)은 시민 전체의 제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벨리니의 그림은 15세기 베네치아 풍속화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벨리니의 장년의 기력이 창일한 「성모」는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것인데 성모는 초속적(超俗的) 기분보다 인간적 친근한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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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폴로의 「십자가의 발견」이 있다. 이런 그림과 같이 베네치아 회화 중에는 시(市)의 광영(光榮)을 기념하는 역사적 그림이 많다. 이와 같이 도시 생활과 미술의 관계는 베네치아에서 많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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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안은 베네치아에 거주한 화가로 벨리니의 제자였으며 100세까지 장수하면서 노쇠를 모르고 그림을 그렸다 한다. 티티안이 당시 얼마나 그 명성과 화계 지위가 있었던 것은 씨가 불행히 흑사병으로 사거하였을 때, 전 베네치아 시민은 애도의 의(意)를 표하고, 또 당시 흑사병자는 성당 내에서 장의를 엄금함도 불구하고 원로원의 명령으로 프라리 성당 내에 장엄하게 매장한 것을 보더라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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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안은 많은 여성을 그린 화가이다. 특히 풍부히 원숙한 중년 여성을 즐겨 많이 그렸다. 씨의 그린 여성의 육체미에는 용렬(勇熱)한 건강이 있다. 실로 색체의 화인(畵人)이라 할 만치 색채의 심미(深味)와 시적 구조가 있다. 작품 중에는 「제단(祭壇)」과 「성녀승천」과 「성녀(聖女)와 성자(聖子)」 등이 있는데 모두 명확한 감상과 기품에 부(富)한 침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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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토레토는 베네치아파 최후의 명성을 가졌던 귀재다. 씨의 화실 벽에는 ‘미켈란젤로의 윤곽, 티티안의 색채’라고 표어를 써 붙이고 공부를 하였다 한다. 그가 티티안의 제자로 너무 폭행을 하다가 쫓겨나와서 그같이 열심으로 공부를 하여 놀랄 만치 대작품 「최후의 심판」 「천국」 「산마르코의 기적」 등을 차례로 그려냈다. 이 중에 「천국」은 놀랄 만치 커서 세계상 최대 희화로 이름이 났다. 씨의 특징은 생명의 약동을 그대로 화면에 표현해 놓고, 성전(聖傳)이든지, 신화든지, 역사든지, 모두 운동체로 그려내고 또 일상생활의 이면을 그리기에 도움을 두었다. 그리하여 그 표현 방식에는 대필촉(大筆觸)을 사용하여 광선을 적확(的確)히 그려 명암의 대조를 강조하여 종래 있던 온은(溫隱)한 그림에 동요와 활기를 가한 신표현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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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서 레스토랑에 가 이탈리아 명산(名産)으로 유명한 마카로니와 생선으로 저녁을 먹었다. 질기고도 맛이 붙는 마카로니도 먹어보지 못하던 맛이 있거니와 이 운하에서 잡은 생선 맛은 생전에 잊을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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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의 피곤도 부부 마주앉아 식사할 때에는 멀리멀리 물러가고 한갖 단락(團樂)의 행복이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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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5분 차로 피렌체로 향하였다. 듣던 바에 의하면 이탈리아는 광선의 나라요, 광선이 없고는 이탈리아 풍토의 감이라든지 미술의 미를 알 수 없다 하는데 떠난 이후 불행히 연일 강우로 하여 음습한 일기에 아무 유쾌한 맛을 모르겠다. 게다가 팔자에 없이 모양을 내느라고 엷게 입고 왔더니 한기(寒氣)로 자못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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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는 일명 플로렌스라고도 부른다. 그 의미는 ‘화(花)’라 하여 피렌체를 ‘화도(花都)’, ‘춘도(春都)’라고도 부른다. 피렌체는 북으로 아페니노 산맥과 남으로 갼지 산맥이요, 그 사이로 아르노 천(川)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그리하여 아르노 내 뒤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피렌체 전 도시는 꽃으로 덮여 있다. 과연 화도라고 부름이 적절한 명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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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다른 곳에도 다 있는 이 꽃을 꺾으러 온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피어 이곳에서 쓰러진 근세 문화의 제일 화도를 찾아온 것이다. 실로 중세기의 문화가 열리고 인간 능력이 절정에 달한 예술의 꽃이 이곳에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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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먼저 이곳에 왔던 어느 우인(友人)의 소개로 바로 아르노 내를 앞에 둔 호텔에 투숙하였다. 천변으로 향한 1실에 들었다. 그만치 걸었으면 나렴직도 하련마는 구경 전문하기에도 매우 피곤해졌다. 촌분(寸分)을 아껴 돌아다니던 구경도 오늘은 실창(室窓)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반일(半日)을 소비하였다. 맞은 편 언덕 위에는 수풀이 우거지고, 아래에 고성(古城) 터가 있고, 거기 우뚝 서 있는 미켈란젤로의 설계함(피아찰레 미켈란젤로)이 있다. 그 아래로 10여 칸 폭이나 됨직한 아르노 천의 탁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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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는 예술의 시가라, 시가를 걷는 것은 마치 미술관을 걷는 것 같다. 어느 건물, 어느 성당, 어느 문, 어느 창, 어느 조각이 예술품 아닌 것이 없다. 물론 우리는 이 맛을 보러 왔겠지마는 저 아르노 냇물로 생육한 단테, 미켈란젤로, 조토, 마사치오, 보티첼리, 도나텔로 등 귀재의 자취를 보러 온 것이다. 그들이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땅을 밟았겠지 할 때 부지불각 중 이상한 환희를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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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조(翌朝)에 시내 지도를 들고 각 진열관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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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당은 피렌체파의 설계로 유명한 성당이다. 전면은 색대리석으로 간소하게 된 이탈리아 고딕식으로 되었다. 앞 광장에는 단테의 석상이 있다. 성당 안은 어두컴컴하였다. 후면에 있는 페루치 예배당과 바르디 예배당을 찾아 조토의 벽화를 보러 들어서니 불구자의 신부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설명을 하겠노라고 따라다닌다. 이탈리아 전국 유명한 화랑에는 이렇게 상매적(商賣的)인 안내자가 있어 관객을 괴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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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년에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는 포교하기 위하여 제자 일단(一團)을 피렌체에 보냈었다. 8년 후에 성 도미니크도 역시 이곳에 포교하기 위하여 일단을 보냈다. 그러나 이 두 파는 다 달랐으니 프란체스코 일파는 치의(緇衣)를 입는고로 흑사제(黑司祭)라 하고, 도미니코 일파는 백의(白衣)를 입어 백사제라 하였다. 흑사제의 포교는 ‘실행’ , 즉 ‘동(動)하라, 일하라’ 한 것이요, 백사제의 포교는 ‘정(靜)하라, 성(省)하라’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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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루치 예배당과 바르디 예배당에 있는 벽화, 조토의 걸작은 위에 든 하나는, 프란체스코의 일생 행적을 주제로 그려 있고, 하나는 그리스도 및 사도(使徒)의 행적이 그려 있다. 그 외 에로의 「음악」이 보기 좋았고, 미라노의 작품과 인털데다의 「마리아의 혼인」이 매우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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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성당 안에는 유명한 이탈리아인의 기념 묘가 많이 있었고 미켈란젤로의 기념 톰(묘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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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화계 비조(鼻祖) 조토와 그의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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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렌체 시외에서 어떤 날, 어느 양치는 소년이 자기가 몰고 온 양떼를 돌 위에 그리고 있었다. 이 때에 한 대화가(大畫家)가 지나면서 보다가 그 필재에 놀라 곧 자기의 제자를 삼았다. 이 소년이 즉 후일 근세 화가의 비조(鼻祖)가 된 조토요, 대화가는 그의 스승 치마부에였다. 그리하여 조토가 25세에 그린 걸작이 아시시 성당 벽화에 있는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다. 이것은 지금까지 있는 감입세공적(嵌入細工的) 화풍에 대한 큰 혁명이었다. 이와 같이 조토가 그린 인물에는 육(肉)이 있고, 생명이 있고, 성격이 있고, 인(人)과 인(人) 사이에 감응이 있어 전체가 현실적이요, 인간미가 있고 희곡적 활기가 있다는 평이 있다. 조토는 조각가인 동시에 대건축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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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술관에는 그림만 4천 점 진열해 있는데(조각도 그만치 있다) 양으로 보든지 질로 보든지 세계에 제일가는 미술관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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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의 걸작이 많은 중에도 가장 유명한 것은 치마부에의 「마돈나」와 조토의 「마돈나」,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춘(春)」,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안드레아의 「마돈나」, 라파엘의 「마돈나」, 티티안의 「비너스와 연애」, 리피의 「마리아」, 혼데오레의 「예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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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들의 그림은 입으로는 말을 하는 듯하고, 눈으로는 웃는 듯 혹은 우는 듯하며, 살은 뛰는 듯하고 피가 끓는 듯하였다. 너무 많아서 보고 나니, 모두 그것이 그것 같다. 그의 확실한 윤곽, 단순한 듯하고도 복잡한 색채, 명암의 조화, 입이 벌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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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3백 년 전, 이탈리아가 도리에 저 비너스의 상과 기원 전 2백년 전에 만든 낭(狼)의 석상이 있다. 16년 동안 만든 흑대리석 모자이크도 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작인 「일(日)과 야(夜)」 「여명(黎明)과 석모(夕暮)」의 대리석 조각이 있다. 보볼리 공원에서 보면 피렌체 전시(全市)가 보인다. 여기 미켈란젤로의 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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