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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부러져 가는 초가집의 반간 앞마루가 정면으로 있고 우수(右手)로는 우중충한 부엌의 일부분이 보인다. 배경은 열린 쌍창으로 해서 방을 지나 다시 열린 뒷문으로 해서 안채가 조금 보인다. 마루 앞으로는 좁다란 마당이 있고 마당에서 좌수(左手)로는 기울어진 중문이 닫히어 있다. 살림은 별로 눈에 띄는 것이 없고 마루에서 우수로 장독간을 흉내내듯 빈약하게 꾸며놓았고 대뜰에는 부부의 헌 신이 놓여 있다. 막이 열리며 그는 문지방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책을 보고 있고 그의 안해는 그 옆에 앉아 빨래 빤 것을 노닥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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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한참 빨래를 만지다가) 다섯시까지 기다려 보라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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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참만에 겨우 고개를 들고)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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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안되면 어떡허우? (이마를 찌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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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혼잣말같이) 그이도 퍽은 실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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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실없잖어면? (아내를 치어다보며) 그 사람이 뭣 우리한테 빚을 졌소? 달리 그럴 의무가 있소? 되거나 안되거나 그만큼 우리를 보아 주겠다는 성의만 고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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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고맙고 무어고간에 당신네들 동지라고 원 한 사람도 믿엄직한 사람은 없읍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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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흥 어려운 살림을 보아주라는 동진가? 일하자는 동지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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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근추근하게) 모르는 걸 웨 애초에 알은 체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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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우수 부엌문 앞으로 해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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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댓돌 앞에 와 서서) 다섯점에 된다더니 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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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머뭇머뭇하다가) 저, 누가 다섯점에 돈을 좀 해다 준다고 했는데 아직 아니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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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원 참…… 그래 그 사람이 돈을 못해다 주면 오늘도 안될 테란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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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아녜요. 무슨 그럴 리가 있나요. 갖다 준다는 사람이 있으니까 기다리는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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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글쎄 누구가 갖다를 주건 져다를 주건 내가 알 며리가 있소.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나 받을 것이나 받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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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염려 말고 기세요. 오늘 못되면 내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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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와락) 또 그 내일 소리가 나오는구려! 발써 멫번째요? 응? 염체 글쎄 나더러 공으로 집을 달라지 응 발써 멫달째요? 남의 집을 살았으면 집세를 내야 하는 법이지 그래…… 그래서야 누가 셋집을 놓아 먹고 산단 말이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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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쎄 여보시요 마나님, 누가 안 드린답니까? 안 드린다고 하면 원 그러시겠읍니다마는 드린다고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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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준다 준다 하고 말만 하고 안 주니 그게 무슨 주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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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쎄 이거 보시요. 그것이 돈을 두고서 안 드렸으면야 나도 할 말이 없겠읍니다마는, 보시는 것같이 어데 돈이 있읍니까? 없어서 못 드린거야 죄야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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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글쎄 당신이 돈이 없는 것을 내가 없으라고 시켰단 말이요! 내가 당신 돈을 도적질을 해갔단 말이요. 돈 없다는 핑계만 하고 집세는 주질 아니하니 그래 나는 어쩌란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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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이거 보세요. 여러 말씀 하실 것 없이 들어가 계시면 그 사람이 가져오는 대로 곧 가져다 드릴께 잠깐만 더 참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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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원 그렇다면 모르거니와 (돌아서서 가면서) 내 한 시간만 더 기다릴테요. (우수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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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도로 자리에 와서 우두커니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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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라먹을 놈의 늙은이 ! 그렇게 지악스럽게 돈은 모아서 무얼 하랴고 그래 ! 자식도 없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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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괜히 남더러 욕만 해요 돈도 못 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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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눈을 흘긴다) 당신이나 수양아들로 들어가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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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도 고프지만 당신도 아니 고프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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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생각하다가) 무어나무어나간에 이애가 배가 오직 고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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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눈치가 그러지도 않는 것 같애요. (間) 그래도 저를 난 저의 어머니한테 갔으면 이런 고생은 안 허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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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좀 준절하게)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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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나는 내가 낳지 안했어도 어린것이 고생을 하는 꼴을 차마 못 보겠는데, 당신은 당신이 난 혈육이면서 그런 정도 없소?
66
그 괜히 속도 모르고 쓸데없는 소리를 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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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나는 당신이 속 속 하는 그 속이 웬 속인지 모르겠읍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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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일상 묻는 말이지만 무엇 때문에 당신네…… 당신뿐 아니라 노동자도 아닌 당신네 지식계급 사람들이 그렇게 목숨까지 내여걸고 생활을 온꼿 바쳐서 그 운동을 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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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모리 이야기를 해주어도 모르면서 왜 또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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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밤낮 말해준다는 게 언제 알어듣게 조리있는 이야기나 해주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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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농하듯이) 그러니까 인제는 조리있게 이야기를 해주면 들어서 배워서 동지가 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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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그건 제발 싫어요. 당신네들이 하는 속이 하도 답답하니까 물어보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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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러면 그렇게 들띄어놓고 묻지를 말고 대문대문을 들어서 묻기를 조리있게 물어요. 그러면 대답도 조리있게 똑똑 부러지게 시원스럽게 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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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생각하다가) 당신네들이 바라고 있는 그…… 무엇인가…… 이상인가? …… 그것은 언제나 실현이 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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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것 봐 조리있게 묻기부터 하라니까 뛰염 뛰듯이 훌쩍 뛰어서 그것부터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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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그래도 나는 무엇이 무언지 모르니까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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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말두 말어요. (間) 나도 이게 무슨 죄담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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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당신이야 주의에 대한 신념이 있어서 하는 일이니까 고생도 낙으로 여겨지겠지만 나야 무슨 신념이 있소? 무엇이 있소? 털어놓고 말이지 나 같은 사람은 크게 넉넉한 것이야 바랄 수가 없지만 일정한 수입이나 있어서 과히 군색하지나 않고 남의 시비를 받지 않고 남의 시비도 하지 않고 안온하게 자식이나 낳아서 길르고 그러고 살어갈 소망밖에는 더 없는데 (間) 자, 보시요. 생활은 이렇게 모래밭같이 바싹 말렀지요, 게다가 또 당신이 오늘 붙들려 갈지 내일 어데로 망명을 가야 할지 모르지요, 이런 고달푸고 불안한 세상을 어떻게 살어가란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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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전히 추렷이) 그러니 내가 가끔 말하지 않습디까? 한때의 마음 아픈 것을 참고 갈려서는 것이 차라리 당신한테는 앞날을 위해서 좋은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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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혼잣말같이) 그럴 수가 있으면 작히나 좋겠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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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렇게 못할 것은 무엇 있소? 더구나 지금도 당신을 잊지 못하고 있는 K군까지 있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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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이대로 앉어서 죽어도 그건 싫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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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천고의 수수꺼끼야! (안해를 보고) 아직도 철을 모르고 고생을 덜 해서 그렇소. 그런 센티멘탈은 그만 청산해 바리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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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칠전이라고 쓰고 이릅 쓰고 날짜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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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이담에도 아침 아니 먹고 벤또 아니 가지고 가거든 그렇게 먹어라 응?
105
그 아침에도 우동 갖다 달라면 갖다 주지?
107
그 그러면 집에서 밥 아니 먹고 가거든 거기 가서 아침도 먹어라.
110
안해 그래라. 오 원이라니까 그렇게 하면 너 먹는 것은 되겠다. 이담부터 그래라 응? (머리를 어루만져 준다) 올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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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벌떡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가 의관을 차리고 손에 책을 두어 권 들고 나온다)
118
그 응. (댓돌에 내려서서 신을 신는다)
120
그 (책 뒷장을 넘기며 마슬러보다가) 장작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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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일 아침까지는 먹어야 하고 또 오늘 저녁에 몹플 사람이 서넛이 올텐데 모다 배고픈 사람들인데…… (생각하다가 도로 방으로 들어가서 책을 두어 권 더 가지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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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쌀은 양쌀하고 반씩 사가지고 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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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아들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한숨을 쉰다) (193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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筆者[필자]의 謝[사] : 중간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약하게 되고 보니 작품의 생명이 없어졌다. 빼어버리려 하였으나 예정한 지면 관계로 마지 못하여 그대로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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