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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二十年前[이십년전] 일이다. R이 東京留學[동경유학]이엇다. R의 아버지는 兩班[양반]이고 富者[부자]고 爲人[위인]이 々하다는 바람에 M과 婚姻[혼인] 말을 거니고 R에게 速[속]히 歸鄕[귀향]하라 하고 甚至於(심지어) 學費[학비]지 주지를 아니 하야 할 수 업시 歸鄕[귀향]을 하엿스나 R에게는 임의 愛人[애인]이 잇서 鐵石(철석)같은 約束[약속]이 있든 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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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이 歸鄕[귀향]한 後[후] R의 아버지는 날마다 M에게 시집가라고 졸넛고, 甚至於[심지어] 회차리를 해 가지고 리며 시집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R은 敢[감]히 嚴父[엄부] 압헤서 言約[언약]한 곳이 잇다는 말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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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고 기가 막히고 드를 것 갓지 아니하야 고만 흐지부지하는 이엇다. R은 母校[모교] C學校[학교] Y先生[선생]에게 잠간 단녀가라고 편지하였다. Y先生[선생]은 R의 在學中[재학중]에 極[극]히 貴愛[귀애]하든 先生[선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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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生[선생]님 제 請[청]을 드러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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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집에 잇을 수는 업스니 어대로 敎員[교원]으로 보내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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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어렵겟소 마침 請求[청구]하는 곳도 잇으니 多幸[다행]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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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은 Y先生[선생]이 아버지에게 말삼듸릴거슬 일너주엇다. 조곰 잇다가 아버지가 드러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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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먹었습니다. 그런데 急[급]히 말슴드릴 거시 잇서々 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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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이 아니라요 學務局[학무국]에서 女敎員[여교원]을 擇[택]해 오라 하는대 令孃(영양)이 마침 歸鄕[귀향]해서 집에서 놀고 잇으니 보내줍시시는 말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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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말삼이오 인제 女功[여공]을 가라처 시집을 보내도록 해야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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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功[여공)]은 제게 닥치면 다 려 가는 法[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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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은 Y先生[선생]과 아버지와의 對話中[대화중]에는 안으로 드러가 잇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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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驪州公立普通學校敎員(여주공립보통학교교원)으로 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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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先生[선생]님이 그갓치 말삼하시니 안갈 수 잇습닛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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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은 Y先生[선생]과 눈을 꿈벅하며 우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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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先生[선생]이 서울 올너간 後[후], 몇칠 아니 되어 辭令書(사령서)와 旅費(여비)가 내려왓다. R은 驪州公立普通學校敎員[여주공립보통학교교원]으로 가서 R의 아버지의 親舊[친구]인 K郡守[군수] 집에 留宿(유숙)하고 잇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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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月[정월]이 되엿다. C 學務委員(학무위원) 집에서 敎員[교원] 一同[일동]을 請[청]하야 국 待接[대접]을 하엿다. 女敎員[여교원]으로 혼자인 R은 안으로 드러갓다. C氏[씨] 宅[댁] 마냄은 도라가고 안 게시고 젊은이들 이엿다. 그 中[중]에는 R과 同甲[동갑]인 H와 I, 四寸間[사촌간]의 두 妻女(처녀)가 잇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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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來[이래] 두 妻女[처녀]는 다토아가며 R을 사랑하엿다. 국을 리면 請[청]해다 먹이고, 을 하면 男[남]동생 T를 식혀 싸 보냇다. 客地[객지]에 외로운 R과 어머니 안게신 두 妻女[처녀]와는 情[정]이 오고가고 하야 날마다 맛나보다십히 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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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로는 달밤이엿다. R이 드러누어 잘냐고 할 달은 중천에 올라 R의 방창에 비최여 잇섯다. 이에 창을 々 뚜듸리는 자가 잇섯다. R은 처음은 바람에 문풍지인가 하다가 그거시 안인 줄 알자 창문을 열엇다. 거긔는 구십春光[춘광]의 흐느러진 머리를 척々 어느린 I이 서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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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대 엇덧케 왓서 門[문]이 다 닷첫슬터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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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 집 뒤담이 나직하고 좀 터저잇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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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이라면 엇절나고 월담을 해 백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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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송편 조곰 햇기에 친구를 생각하고 가저 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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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은 사발에 송편을 소복이 담고 뚜겅을 덥고 보재기에 쌋든거슬 풀너논는다 R은 고맙단말 아모말업시 多感多情(다감다정)한 I을 물그럼이 쳐다보고 안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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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이 지나면 이 굿을가보아 가지고 온 거시니 어서 좀 집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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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은 滿足[만족]히 권한다. 이 에 멀리서 닭 우는소리가 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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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고만 가 느저서 안되 아버니 아시면 큰일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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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지 I이 R을 차자보고 갓다가 커다란 게집애가 행길로 왓다갓다(씨게는 썻지만) 한다고 지람 밧엇단 말을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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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연회에 가서 늦게 드러오시고 H와 다 노코 왓스니 관계 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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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부다 내가 더 붓잡고 십다만 고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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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빗아래 두 妻女[처녀]는 보내고 가고, 그 의연한 정을 노칠 길이 업섯다. 안 보면 보고 싶고, 맛나면 러진 줄 몰느게 오고가고 오고가고 하야, R은 하학 후에 두 妻女[처녀] 만나보는 것이 큰 樂[낙]이엇고, I, H난 午后[오후]만 가디리고 잇섯다. 하로갓치 지낸 일년 동안이 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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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은 月給[월급]을 貯金[저금]하야 東京[동경]으로 다시 가서 배호든 學業[학업]을 繼續[계속]할 準備[준비]를 하고 一年[일년]만에 辭表[사표]를 提出[제출]하고 떠나왓다. 두 妻女[처녀]와 R은 날마다 울엇다. 그러나 난다는 事實[사실] 은 無情[무정]하엿다. 울고 매달리는 두 妻女[처녀]를 치고 날 수밧게 업섯다. 오직 두 처녀에게 치고 가는 것은 R의 寫眞[사진] 한 장과 住所[주소] 쓴 종의 한 장이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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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來[이래] 書信往復[서신왕복]이 數次[수차] 잇섯스나 R은 學課[학과]에 專力[전력]하는 外[외]에 이 事仵[사건] 저 事仵[사건] 接觸[접촉]하난 동안, 卽[즉] 現在[현재]에 切迫[절박]한 者[자]로 過去[과거]의 親舊[친구]를 生覺[생각]할 아모 餘裕[여유]가 업섯다. 그리하야 自然[자연] 絶信[절신]지 된 거시다. 間々[간간] 生覺[생각]나든 것도 아주 이저바리도록 되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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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餘[십여] 年[년] 後[후], R이 京城[경성] 崇二洞[숭이동]에서 살 意外[의외]에 I의 男[남]동생 T가 차자왓다. 조고마튼 그는 長成[장성]한 靑年[청년]이엇다. R은 퍽 반겨햇다. T가 R의 집에서 몃칠 묵으면서 R 內外[내외]의 周旋[주선]으로 商業學校[상업학교]에 들게 되엿다. 이 H와 I의 消息[소식]을 듯건대, 발서 시집가서 아이지 나핫다고 한다. 其後[기후] 다시 從無消息[종무소식]이엿다. R은 이 生活[생활]노 저 生活[생활], 저 生活[생활]노 이 生活[생활] 어, 다시 故鄕[고향]을 차자 水原[수원] 와서 五間[오간] 草屋[초옥] 가온대 업대려 身病[신병]을 蘇生[소생] 中[중]이엿다. 하로난 저녁 後[후]에 누웟으랴니 甥姪[생질]이 名啣[명함] 한 장을 들고 드러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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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이 사람이 차저왓서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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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城金融組合[화성금융조합] 副理事[부이사] C O T라고 씨워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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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은 얼는 알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生覺[생각]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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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치 안다 알어, 이 사람 어대 잇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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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只今[지금] 이 門[문] 압헤 섯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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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은 아모 말 업시 有心[유심]이 본다. 늙고 病[병]들은 R의 模樣[모양]이 초라하엿든 貌樣[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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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녜 나는 잘 지냇사외다. 아주 틀맨이 되섯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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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崇二洞[숭이동] 宅[댁]에서 뵙고 못 뵈왓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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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누님은 서울 사시는데 東一銀行[동일은행] 東大門支店[동대문지점] 代理[대리] 夫人[부인]이요, I누님은 利川[이천] 사시는대 설흔 둘에 과수가 되엿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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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祖合[조합] 滋味[자미]가 조흐십닛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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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밧붐니다. 都會地[도회지] 갓흔대서는 事務時間[사무시간]만 직히면 그만이지만 地方[지방]에서는 細々[세세]한 事務[사무]지 責任[책임]지게 되니 滋味[자미]있고 구치안타면 구치안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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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事物[사물]을 藝術化[예술화]하면 辛酸[신산]이 업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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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는 約[약] 한 時間[시간]쯤 놀다가 도라갓다. R은 그 잇흔날노 I에게 편지 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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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시 二十年[이십년]만 아니오 信義[신의] 잇는 季氏[계씨] T氏[씨]에 차져주심으로 나는 친구의 消息[소식]을 알게 되엿소.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운 양반인지 모르겟소. 季氏[계씨] 말삼이 친구를 오시라면 곳 올 수 잇다니 나를 맛나러 곳 와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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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三日後[이삼일후]에 왓다는 通知[통지]가 왓다. R은 여갓다. 살이 포군々々하고, 빗치 윤택하고 얼골이 하고 치렁々々 느리엿든 처녀는 아니엿고 주름살이 잡히고 얼골빗이 검고 머리를 인 中年夫人[중년부인]이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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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손을 붓잡고 눈물이 글성글성해진다. 둘이 어 안는다. 두 뺨이 서로 다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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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제면 그러케 消息[소식]이 업섯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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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문지상, 잡지상으로나 인편으로 친구의 장하게 출세한 말은 드럿스나 어대 잇는 줄을 알어야지. 이금 사진을 듸려다보고 혼자 울고 웃고 하엿슬 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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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 잇섯서 그러나 혼자 되엿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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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은 I의 뺨을 어루만진다. I은 눈물이 글성々々 해진다. R도 눈물이 핑 도랏다. 한참 默(묵)々 하엿다. 날마다 오고가고 가고오고 하야 或[혹] 水原城[수원성]을 一週[일주]하기, 或[혹] 西湖[서호] 模節場[모범장] 求景[구경], 或[혹] 절에 갓다오다가 외탕 기, 或[혹] R의 寫生處[사생처]를 차자와 畵具[화구]를 드러다주기, 或[혹] 밧뚜덩 논뚜덩으로 다니며 쑥 어다가 해 먹기, 或[혹] 가서 자기, 或[혹] 와서 자기, 이러케 두 사람 사 이의 友情[우정]은 날로 두터워갓다. I은 女[여]동생을 데리고 와서 가려운 症[증]으로 溫陽[온양] 溫泉[온천]을 간다고 하엿다. R도 마침 몸이 개려워서 同行[동행]하엿다. 溫泉[온천]을 하고 와서 밤에 느런이 두러누엇슬 세 女子[여자]는 사접씨를 깨틔리엇다. R이 어린애를 고 두러누운 I의 동생을 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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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케 이틀 밤을 허리가 부러지도록 웃고 지내고 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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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은 自己[자기] 살님사리 關係[관계]로 오래 잇지를 못하고 도라갓다. R 사이에는 다시금 그리움이 막혀 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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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上[세상]에는 親友[친우]가 從々[종종] 잇다. 일을 爲[위]한 親友[친우], 趣味[취미]가 갓흔 親友[친우]이다. I과 R사이 友情[우정]은 이 모든 條件[조건]을 超越[초월]한 親友[친우]일다. R이 쏘들대 업는 情[정] I가 쏘들대업는 情[정]이 合[합]하야 아람다온 友情[우정]이 될 이다. 그러나 遺憾[유감] 되는 거슨 멀니 잇서 자조 못 보난 것일다. 世上萬事[세상만사]가 다 하고저 하는 대로 될진대 不平不滿[불평불만] 업시, 恨[한] 업이, 사람을 怨罔[원망]할 것 업시, 便安[편안]하게 世上[세상]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마음대로 못 되는 것은 世上事[세상사]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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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우리는 어대지든지 現狀[현상]을 維支[유지]할냐고 하는 것이 아니다. 넘오 조혀 지내고 십지 안타. 언제지 갓가이 지내는 동안은 반드시 소오함이 오난 거시다. 우리는 큰 눈으로 크게 깊게 넓게 보고 십다. 四方八面[사방팔면]을 보고 십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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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肉[육]의 世界[세계]와 靈[영]의 世界[세계]가 잇다. 肉[육]의 世界[세계]는 좁고 얏흔 反面[반면]으로 靈[영]의 世界[세계]는 넓고 크다. 우리는 肉[육]의 世界[세계]에서 살아오지만 그 以上[이상] 靈[영]의 世界[세계]가 잇슴으로써 사람으로서의 사는 意義[의의]가 잇다. 어대지든지 無盡藏(무진장)으로 사러갈 수 잇는 이 靈[영]의 世界[세계]에서 노는 I, R, 사괸 I, R, 肉[육]의 외롭고 그리운 情[정]을 가진 I, R, 靈[영]으로 매진 友情[우정]이 以後[이후] 어느 모에 가서 그 彼此(피차)의 生[생]을 도읍게 될지 뉘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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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은 오직 沈黙[침묵] 가온대서 그림을 그리고 잇슬 이오 영리한 I은 어려운 시집사리에 올망졸망 子息[자식]들 다리고 沈默[침묵] 中[중]에 무슨 決心[결심]을 품고 希望[희망]을 좃차 날마다 일하고 잇다. 하누님, 이 외로운 두 님의게 오래々々 健康[건강]을 베프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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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千里[삼천리]』, 193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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