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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의 그 새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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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1
나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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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그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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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역(異域)의 신년 새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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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찍 파리에서 8개월을 지내고 그 뒤 두 해 동안 구미 만유(歐美漫遊)를 하는 중에 한 번은 독일 베를린에서 새해를 맞게 되고 또 한 번은 미국 뉴욕에서 새해를 맞은 일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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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각국은 크리스마스에 새해 겸한 축하가 있고 선물이 있어 크리스마스와 ‘송구영신’의 구별을 할 수 없을 만치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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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축하 편지에도 으레 둘을 겸해 쓰는 것입니다. 12월 초순만 되면 각 상점 점두에는 소나무가 늘어서고 그 속에선 프레젠트를 팔고 프레젠트 야시(夜市)까지 열리어 부녀들은 덜덜 떨면서도 한 짐씩 사갑니다. 그리하여 그 아이들로 길이 메이는 것입니다. 과연 그 광경은 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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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날 밤입니다. 나 있던 집주인 부인은 맥주를 사가지고 들어오더니 언 손을 화덕에 쪼이며 훌쩍훌쩍 웁니다. 나는 깜짝 놀라 오다가 어디 상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옆에 있던 S군이 눈짓을 합니다. 나는 S 곁으로 가서 귓속말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죽은 남편을 생각하고 그러니 가만두시오" 합니다. 나도 어느덧 눈물이 돌았습니다. 그 부인은 우리 세 사람을 위하여 눈물을 멈추고 테이블 위에 꽃을 꽂고 촛불을 켜 놓고 맥주와 포도주를 차려 놓고 고기를 준비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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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 둘러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 부인을 웃기며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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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날 밤 12시외다. 조용하던 밤은 사방으로서 울려나오는 성 마리아교회 종소리로 요란한 채 또한 엄숙해집니다. 주인 부인은 술잔을 듭니다. 우리도 들었습니다. 모두 일어서서 새해 축하를 하였습니다. 주인 부인은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아납니다. 우리는 그 뒤를 쫓아갔습니다. 마침 준비해 놓았던 납(蠟)을 불에 녹이며 스푼과 찬물을 가져오더니 우리들에게 다 각각 한 숟갈씩 그 녹은 납을 떠서 찬물 그릇에 넣으라 합니다. 그랬더니 그는 찬 물 속에 굳어지는 납의 모양을 보고 너는 부자가 되겠다, 너는 애인이 있겠다, 너는 성공을 하겠다 하고 점을 쳐줍니다. 어찌나 재미스러웠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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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유리창이 다 열립니다. 사람들은 몸을 창에 걸치고 색지 끄나풀을 던져 이 집에서 저 집에 걸치도록 하고 새해 축하들을 합니다. 악을 꽥꽥 쓰며 깔깔거리고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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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S군을 졸라 중앙 시가로 구경을 나갔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발에는 색종이가 퍽퍽 걸려 걸을 수가 없고 사람이 너무나 빽빽하여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취한 사람, 고깔 쓴 사람, 꽹과리 두드리는 사람, 북 치는 사람, 이리 닥치고 저리 닥쳐 수라장을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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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어떤 남자든지 어떤 여자에게나 키스를 할 특권이 있다 합니다. 그리하여 쫓아가는 남자, 쫓겨가는 여자, 이리 툭 튀어 나오고, 저리 툭 튀어 갑니다. 깜짝깜짝 놀랄 만치 꽥꽥하는 소리가 옆에서 뒤에서 앞에서 납니다. 나는 같이 가던 S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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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소 여보, 부럽지 않소? 내 특허할 터이니 당신도 한 번 실행해 보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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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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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지 않는 행동으로 어떤 여자 하나를 쫓아갑니다.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쫓겨갑니다. 그리고 돌아서 오는 그와 나는 마주쳤습니다. 서로 잠깐 서게 되자 S는 깔깔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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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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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떻게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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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년 소리를 지르고 달아나기에 정말인가 했더니…… 그리고는 떨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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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깔깔 웃었다. 웬일인지 웃은 죄가 내렸는지, 웬 남자가 내 어깨를 툭 칩니다. 나는 깜짝 놀라 달아났습니다. 쫓아옵니다. 달아납니다. 할 수 없이 붙잡혔습니다. S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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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보오, 나를 놀리더니 죄가 내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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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사람은 그들의 흥겨워 노는 것을 옆으로 버려두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어디서 온지 알 수 없는 적막과 애회가 머리 속을 채웁니다. 눈을 감고 먼 고국의 쓸쓸한 풍경을 그려보는 때 소리 없는 한숨이 목구멍을 감돕니다. 그러는동안 환락의 밤은 새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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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家庭[신가정]』(1933. 1)
【원문】베를린의 그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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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를린의 그 새벽 [제목]
 
  나혜석(羅蕙錫) [저자]
 
  # 신가정 [출처]
 
  1933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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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1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