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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도기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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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백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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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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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랑아(放浪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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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때 북극(北極)의 오로라의 빛을 동경(憧憬)하여 외롭고 끝없는 방랑자(放浪兒)가 되어보고 싶어했었다. 낯설은 이국(異國)의 거리를 외로이 걸어가며 언어(言語)조차 한 마디 붙여 볼 수 없이 가다가 피로하면 희미한 가등(街燈)아래서 잘 곳을 찾아 방황하고, 발끝 향(向)하는 대로 어디든지 흐르고 또 흘러가리라고 늘 꿈꾸었던 것이다. 방랑자(放浪兒)! 방랑자(放浪兒)! 이 얼마나 나에게 매혹적(魅惑的) 어구(語句)이었던가. 따뜻한 어머니 곁에 누워 방랑자(放浪兒)의 가지가지의 애상(哀傷)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며 가만히 눈물 짓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 이러한 감상(感傷)을 함으로써 남보다 다른, 아니 평범(平凡)한 소녀(少女)가 아니다 라고 자부(自負)도 하였으며 그 얼마나 아름다운 시적(詩的) 감상(感傷)인가 하고 생각하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값싼 유행가(流行歌)로 이러한 종류(種類)의 감상(感傷)은 저락(低落)되어 버렸으나 나는 때때로 그때의 나의 센치를 더듬어 보며 못내 사랑한다. 이미 내 나이 반육십(半六十)이 되었어도 이십 년 전(二十年前)그때의 감상(感傷)에 젖기가 일쑤이니 웃는 자(者)는 우스워 하리라. 그러나 근간(近間)에 이르러서는 너무나 병약(病弱)하여지고 억센 현실(現實)속에 파 묻혀 있었고, 또 안타까운 여인(女人)의 몸인 줄 알게 되어 감상(感傷)은 감상(感傷)으로 슬픔은 슬픔으로 저 혼자 가만히 앉은 자리에서 정리(整理)해 버릴 줄을 알게 되어 적으나마 세상만사(世上萬事), 천사만○(千思萬○)을 모조리 불교적(佛敎的)으로 귀결(歸結)을 짓기가 일쑤기도 하여졌다. 나의 이러한 심경(心境)의 변화(變化)를 세상(世上)은 흔히 있는 패배자(敗北者)의 자위(自慰)라고 들릴지 모르나 나 자신(自身)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오척여촌(五尺餘寸)의 적은 몸뚱이 하나 속에다 이 세상(世上)을 모조리 정리(整理)하여 축종(畜種)하려는, 그리고 나 스스로를 ‘소(小)에 붙잡히지 않는 인간(人間)을 만드려는 그러한 체념(諦念)에서이다. 이번에 뜻하지 않은 먼 여행(旅行)을 하게 된 것도 내가 어릴 때의 감상(感傷)을 버리지 못하여 쥐어짜 만든 찬스가 아님이 기뻤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로 여로(旅路)에 오른 후 이윽고, 가다가 문득 옛 꿈이 실현(實現)되었구나…… 하는 느낌에 너무나 기쁘고 반가운 듯 하여 거리낌없이 어디든 그대로 휙 들어가 버려 마음껏 감상(感傷)하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위병(胃病)으로 입원(入院)하였다가 퇴원(退院)한 지 사흘만에 뜻하지 않은 먼 길을 갑자기 떠나게 되고, 또 가는 길이 하고 많은 곳을 다 버려두고 구태여 총탄(銃彈)에 해무리 지고 창검(槍劍)에 짓밟힌 패잔(敗殘)의 중국(中國)땅임이 얼마나 나를 기쁘게 하였는지 모른다. 참으로 형언(形言)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기쁨은 누구나 흔히 상상(想像)하는 그런 이유(理由)의 기쁨이 아닌 것은 이 여기서 말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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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낭만(黃海浪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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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기는 작년 구월 이십삼일(昨年 九月 二十三日)이었다. 가벼운 트렁크 한 개에 가득 위병약(胃病藥)과 몇 가지 의복(衣服)을 채워들고 기차(汽車)에 올라 우리 집 뒤를 지날 때, 언니는 과수원(果樹園)에 무르익은 새빨간 임금(林檎)나무 사이에서 머리에 썼던 수건을 벗어 높이 높이 흔들어 주었다. 대구(大邱)에서 잠깐 내려 투어리스트 뷰로에 문의(問議)하니 기선(汽船)이 인천(仁川)을 떠나기는 이십오 일 오전 팔시(二十五日午前八時)라고 하므로 나는 서울서 하루 쉴 셈 치고 즉시 승차(乘車)하여 상경(上京)하여 다시 기선회사(汽船會社)에 물어보니 이십오 일 오후 일 시(二十五日 午後一時)라 하였다. 우선 선표(船票)를 예약(豫約)하고 일야(一夜)을 쉰 후 인천(仁川)으로 향(向)하였다. 인천(仁川)가서 다시 알아보니 오후 삼시(午後三時)라야 출범(出帆)하겠다고 하므로 시내(市內)로 한 바퀴 돌아서 다시 기선회사(汽船會社)로 가니 오후 육 시(午後六時)라야 출범(出帆)하겠다고 하므로 우선 저녁참으로 간단히 식사(食事)를 치른 후 승선(乘船)하였으나 육시(六時)가 지난 지 오래이므로 다시 또 선원(船員)에게 물어보니 팔 시(八時)라야…… 라는 대답(對答)이었고, 팔 시(八時)가 지나니 또 십일 시(十一時)라야…… 라는 대답(對答)이었으므로 기가 막혀 캐비넷으로 들어와 누웠다. 텅 빈 선실(船室) 안에 홀로 누웠으니 잠이 올 리 없고, 또 내가 그대로 잠이 들다가는 그대로 인천항(仁川港)에서 한번 출범(出帆)도 못해보고 마칠 것만 같은 불안(不安)에 다시 갑판(甲板)으로 나서니 고요한 물결에 흐르는 전등(電燈)빛이 가슴을 어이는 듯하여 두 눈을 꼭 감으며 다시 선실(船室)로 돌아왔다. ○의(○衣)로 갈아입고 드러 누으니 가슴이 저린 듯 아파 입술을 두어 번 물어뜯고 가만히 누웠다. 불행히 지식(止息)되어 있는 위병(胃病)이 다시 시작(始作)되면 아무래도 황해(黃海)바다 넓은 물결 위에서 내 영혼(靈魂)을 잃어버릴 것만 같아 얼른 두 가지 약(藥)을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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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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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애기 쓰다듬는 내 마음을 달래서 생각을 돌리려 했다. 무척도 지루하던 시간(時間)은 그래도 제 갈 길을 또박또박 흘러가 깊은 밤 새벽 한 시가 되었다. 그때야 비로소 동라(銅鑼울리며 닻 감는 소리가 들리고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정(情)들은 내 땅, 너무나 정(情)든 내 땅! 이 땅을 홀로 떠나는 이 깊은 밤중 나는 목석(木石)인 양 눈을 감고 자는 척 무감각(無感覺)하려 애썼었다. 바다의 하룻밤은 밝아, 세수(洗手)를 하니 아침 식사(食事)를 알린다.‘살롱’으로 나가보니 선장 외(船長外) 사오인(四五人)의 식탁(食卓)이 준비(準備)되어 있었다. 단 하나 여인객(女人客)으로서 무척 아낌을 받으며 식사(食事)를 하는 사이에 둘러 앉은 이들의 얼굴과 말소리가 퍽이나 평화(平和)롭고 부드러움이 또한 나를 기쁘게 하였다. 이들은 모두, 밤과 낮을, 그리고 더움과 추움을 가리지 않고 세상(世上)을 떠나 광활(廣活)한 창랑(滄浪)위에서 다만 한 척의 배에 운명을 생명(生命)을 맞기고 있는 터라 이 사이에 서로 뜯고 싸우고 할 무슨 이유가 있으리요. 식사 후(食事後) 오래도록 선장(船長)과 잡담을 교환한 후 갑판(甲板)으로 나오니 삼등객(三等客)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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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육(人肉)의 장으로 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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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 수십인(數十人)의 우리 딸들이 과장(誇張)된 화장(化粧)과 야릇한 양장(洋裝)으로 ○스런 ○을 주고 받으며 희희낙낙(喜喜樂樂)하는 것이 내 눈을 끌었다. 나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는 동안에 현기(眩氣)가 나므로 선실(船室)로 돌아와 잠깐 진정한 후 다시 갑판(甲板)으로 나서니 갑판(甲板) 한편 으슥한 곳에 고개를 숙이고 두 소녀(少女)가 울듯이 서 있었다. 이 두 소녀(少女)도 다 함께 팔려 가는 치임은 그 야릇한 양장(洋裝)이 증명해 주었다. 나는 가슴이 선뜻하여 그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위로(慰勞)할 말이 없어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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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꼬! 이 애는 미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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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대답하는 두 소녀(少女)의 눈은 아직 티끌이 없는 광채를 가지고 있었다. 더 묻지 않아도 그들의 가슴 속을 내다 알 수 있는 듯 하여 잠잠히 서있으려니 두 소녀(少女)는 깔으리질 듯한 침묵으로 그리고 은근스런 표정으로 애원(哀願)하듯 호소(呼訴)하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일등객(一等客)인 내가 무척 부자(富者)로 보였음인지 금방 그 맘속을 서리서리 풀어 내어 돈원(敦援)을 바라는 듯 하였으나 이 가엾은 두 딸을 위하여 내 일시감상(一時感傷)에 눈물이나 흘렀지 그 외(外)에 무슨 따뜻한 ○가 있으리요. 지군천지(支君天地)의 억세고 꺼칠은 성욕(性慾)의 대상(對像)으로 장차 이 아름다운 두 딸의 육체(肉體)는 허물어지고 말 것임을 미리 알고 전율(戰慄)짓는 기막히는 이 사실(事實)! 나는 감연(敢然)히 고개를 돌려 이 딸들을 낳아준 땅, 길러준 땅, 그 땅이 있는 동(東)편 하늘 아래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다만 눈에 보이는 것은 막막(漠漠)한 수평선(水平線)이 구름 하늘을 잠그고 선미(船尾)를 따라 솟았다가 잠겼다 할 뿐이요, 이대로 보아도 조그만 섬 하나 없으니 묘묘(渺渺)한 창랑(滄浪)뿐이다. 어느 곳에다 이 딸들의 설움을 호소(呼訴)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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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만두(靑島灣頭) 마음은 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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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룻밤은 새어갔다. 애틋한 가지각색의 운명(運命)을 실은 이 배는 지금 멀리 청도만(靑島灣)을 바라고 시속 십리(時速十里)로 달리고 있다. 서로 평온(平穩)한 항로(航路)이었음을 축복(祝福)하며 마지막 점심(點心)을 먹으며 내 인생(人生)의 항로(航路)는 거칠고 사나웠으나 지금 내가 가는 이 항로(航路)의 평온(平穩)하였음이 기적(奇蹟)같이 느껴졌다. 트렁크를 수습하여 갑판(甲板)에 나서니 우편(右便)으로 깎아 세운 듯한 ○산(○山)의 준봉(峻峰)을 끼고 좌편(左便)으로 대소(大小)의 아름다운 섬들을 돌아 청도만(靑島灣)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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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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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히 감탄(感歎)하며 바라보았다. 풀은 수림(樹林)속에 붉은 기와 한 벽(壁)에 즐비한 양옥(洋屋)들이 궁형(弓形)으로 둘러앉은 청도(靑島)! 새파랗게 잔잔한 청도만(靑島灣)의 아름다움! 한번 안산(岸山)을 바라보니 수백(數百)의 고력(苦力)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들의 얼굴과 몸뚱이는 동시(同時)에 생기(生氣)란 것을 모조리 잡아 빼 버린 듯 하였다. 야위고 생기(生氣)없고 더러워 보이는 고력(苦力)들을 맞아 자욱이 널어두었던 빨래를 몰아 걷듯이 좌르륵 한 아름씩 사몰아다 차곡차곡 싸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저렇듯 반송장 같은 동물(動物)로라도 인간수효(人間數爻)를 채워야 되는가……. 인간수효(人間數爻)가 많으면 좋을 것이 무엇이랴, 조물주(造物主)의 ○작(○作)인 저러한 인간(人間)의 제조(製造)는 그만두는 것이 어디로 보든지 상책(上策)일 성 싶다. 나 일개 인간(一個人間)으로서 조물주(造物主)에게 항의(抗議)하고 싶었다. 극도(極度)의 무력(無力)하고 극도(極度)로 비굴(卑屈)하고, 사람다운 생기(生氣)라곤 티끌만치도 없는 저 많은 고력(苦力)들을 지나(支那)의 넓은 땅 어느 구석진 곳으로 일속(一束) 식 여어가지고 착착 쌓고서 말갛게 채워버리고 싶었다. 일보(一步) 청도(靑島)땅을 밟고서 세관(稅關)으로 들어가니 지나인 관리(支那人官吏)가 짐을 조사하였다. 나는 트렁크를 일 지나인 관리(支那人官吏)앞에 내밀고 서 있었다. 그는 미남(美男)이라기보다 호남자(好男子)타입으로 장대(丈大)한 사나이였다. 나는 얼마만치 겸손한 태도로 내 짐을 조사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먼저 가져다 놓은 지나인(支那人)들의 짐을 샅샅이 조사하느라고 좀처럼 내 차례에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조금 강(强)한 태도로 고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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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야! 워디 쾌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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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내 트렁크를 가리키며 내 짐부터 조사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들고 나갈듯한 기세를 보이니 그는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트렁크를 열어 재쳤다. 그리고 분홍색 백목을 든 손으로 의복(衣服)을 뒤적거리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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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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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되던 안되던 아무렇게나 그래도 무게 있게 한마디를 부르짖고 그의 손을 떨쳤다. 말하자면, 내 의복류(衣服類)가 그의 손으로 더렵혀지니 그만 보고 치우라는 뜻이었다. 그는 무엇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트렁크위에다 싸인을 해 주었다. 그 순간 나는 구역이 날 만치 불쾌하였다. 사나이답게 생긴 그의 얼굴이 멍텅구리같이 보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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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絢爛)·려사(旅舍)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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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관(稅關)을 나와 인력차(人力車)를 잡아 타고, 시내(市內)로 들어왔다. 아스팔트의 도로(道路)며 눈에 보이는 한(限)모두 깎아 세운 양옥(洋屋)뿐이요 어디하나 조선(朝鮮)이나 내지(內地)에서 보는 나직나직한 집이라고는 약(藥)에 쓰려고 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옛날 동경(東京)‘마루노우찌’를 걸어보며 꼭 외국(外國)과 같다고(본적이 없긴 없었지마는……) 생각도 했고 듣기도 하였던 것이 지금 생각나며 정말 외국(外國)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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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느낌이었다. 다만 내가 상상(想像)하던 중국(中國)의 정서(情緖)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섭섭하였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이 인력차(人力車)는 내달리고 있었다. 문득 헐떡이며 땀을 흘리며 나를 끌고 가는 차부(車夫)의 모양을 바라보니 겨우 지나(支那) 땅임을 말하는 듯하여 홀연 긴 한숨을 내뿜으며 고개를 드니 노독안약(老篤眼藥)이라고 크게 붙인 광고(廣告)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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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독안약(老篤眼藥)!로 ─ 도안약(眼藥)이란 거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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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스스로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삼십 분 이상(三十分以上)을 가도 가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거리를 달린 후 겨우 내가 찾던 집이 수림중(樹林中)에 솟아 있는 것을 발견(發見)하고, 조선(朝鮮)서 백만장자(百萬長者)도 저만한 집에 살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보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날 밤 삼층동남향(三層東南向)의 일실(一室)이 내방으로 정(定)해지자 식당(食堂)에서 화식(和式)저녁을 먹고 내방으로 올라갔다. 혼자 자기 아까운 넓고 푹신한 침대에 먼저 뒹굴어 본 후 그냥 잠들기 아까워 창문을 여니 베란다가 보였다. 나는 곧 도어를 열고 베란다에 나섰다. 희미한 전광(電光)에 비치는 베란다 난우(欗于)에는 각색화초분(各色花草盆)이 놓여 있어 그 사이를 이윽히 왕래(往來)하며 사방(四方)을 둘러 보았다. 이곳 청도(靑島)는 평탄(平坦)한 도회(都會)가 아니고 고저(高低)가 심(甚)하여 무수(無數)한 기복(起伏)으로 형성(形成)되어 밤의 경치(景致)가 버릴 수 없었다. 낮에 보아도 수림(樹林)속에 혹은 연분홍 혹은 하이얀 벽(壁)에 붉은 기와 자색(紫色)기둥이 사○(社○)이었지마는 밤에 보는 청도(靑島)는 혹은 반공중(半空中)에, 혹(或)은 저 깊은 곡간(谷間)에 시선(視線)이 닿은 곳까지 수우만(數于萬)의 창(窓)들이 깜박이고 있으며 집 앞 길 위에는 조용히 이야기 하며 쌍거쌍래(雙去雙來)하는 양인군(洋人群)이며 또 한편은 잔잔한 바닷물이 보여 도시(都市)라기보다, 항구(港口)라기보다, 별장지(別莊地)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있는 집의 바로 옆집이요,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집은 불국국기(佛國國旗)가 달려 있고 창(窓)으로는 희고 고운 레이스 커튼이 각층(各層) 방마다 밝은 전등(電燈)에 비쳐 있고 현관 앞과 베란다의 대리석 원주(大理石圓柱)가 무척도 그 집을 호화스럽게 보이게 하였다. 나는 발 앞에 끌리는 치맛자락을 걷어쥐며 어느 집, 어느 창에서 흘러나오는지 피아노 소리와 조용한 삼부합창(三部合唱)이 들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서 있었다. 조선(朝鮮)서는 아무데서나 들을 수 없을 멜로디이다. 홀연 우리 땅을 멀리멀리 떠나왔음이 새삼스레 알려지며 눈을 들어 동편을 멀리 바라보니 주먹만큼한 흙담집과 까무락 거리는 호롱불 아래 이야기책 읽고, 바느질하는 모양이 꿈 속같이 어두운 하늘 저쪽 밑에 보이는 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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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췐크라씨바야’ 치마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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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튿날 아침식사가 끝나자 곧 나로서는 과(過)한 피로(疲勞)임에 위통(胃痛)과 현기증(眩氣症)이 날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집을 나섰다. 홀몸으로 인력차(人力車)를 잡아 타고 제일 번화(繁華)한 산동로(山東路)를 찾아갔다 . 양녀(洋女)의 고운 자태(姿態)를 나는 혼(魂)을 잃고 바라볼 뿐 두 눈이 혼돈하였다. 양녀(洋女)는 물론(勿論)이요, 지나 여인(支那女人)까지 파마먼트 웨이브 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의복(衣服)의 찬란함과 체격(體格)의 훌륭함이며 지나 여인(支那女人)의 곡선미(曲線美)를 그대로 나타내는 의복미(衣服美)하며 모두 시골뜨기 나에게는 구경거리였었다. 나는 인력차(人力車)를 내려 걷기 시작하였다. 길가 쇼윈도에 비치는 내 모양이 내 스스로 부끄러운 듯 하여 화장(化粧)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後悔)났다. 나의 이런 마음은 처노심(處勞心)에서가 아니다. 내 옷이 세계(世界)에 자랑하는 우리 조선(朝鮮)옷이었던 까닭에 중복(中服), 양복(洋服)에 손색 없음을 자랑하려는 심리(心理)였으니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얼굴 모양이 더러우면 그 옷 모양까지 무시 받을 염려(念慮)가 있었던 까닭이다. 오고가는 사람이 나를 바라보지 않는 이 없었다. 이윽고 걸어가는 중 한 떼의 양녀군(洋女群)이 나와 스쳐 지나게 되자 그들은 발을 멈추며 돌아서 나를 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귀에 이미 조금 아는 노어(露語)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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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시 ─ 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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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단어가 날려들었다. 나는 불쾌하지 않았다. 우리 옷을 좋지 못하다는 이보다, 비록 그따위 백계노인(系露人)에게서라도 아름답다는 말을 듣는 편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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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육림(肉林)과 네 사람의 지나 남자(支那男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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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솥과 누렇게 기름에 띄운 아부라아게(유게(油揭))라는 것 비슷한 것을 놓고 팔고 있는데 그 주위(周圍)에는 고력(苦力)들이 둘러 앉아 사발에다 미음 같은 것을 한 사발씩 들고 마시고 있다. 더럽기 짝이 없는 손으로 그 아부라아게 같은 것을 지끗지끗 뜯어서 대접에 주어 담은 후 솥뚜껑을 열고 미음 같은 것을 떠 부어서는 얼마씩에 파는 것 이었다. 나는 위(胃)가 늘 아픈 터이라 미음이나 죽 같은 것을 즐기는 까닭에 그것이 깨끗한 것이면 그것만 사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향 없는 내 발끝은 되는대로 길 난데로 자꾸 이편으로 저편으로 걸어가다가 한 소로(小路)로 들어갔다. 그곳은 좁은 길 좌우에 고기의 집적(集積)이라고 해야 옳을지 어디로 보아도 먹음직하게 구운 것, 삶은 것 각색 육류(肉類)가 쌓여 있어 실(實)로 내 위병(胃病)이 원망스러웠다. 대체 이 많은 고기를 누가 다 먹는가, 하는 의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참을 수 없어 용기(勇氣)를 내어 한가가로 들어가서 그 중에도 갓 구워서 내놓는 우육(牛肉)을 조금 사겠다고 하니 그들은 이층(二層)을 가리켰다. 쳐다보니, 기름과 때와 연기에 쩔어 있는 그야말로 숨이 막힐 듯한 이층(二層)이었다. 나는 호기심(好奇心)이랄까, 획기심(獲寄心)이랄까 좌우간 서슴지 않고 층층대를 올라가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과 의자, 벽과 기둥, 어느 곳에도 손을 대이면 느낏 느낏 들어붙을 것 같아 뾰족하게 걸어 앉아 있으려니까 네 사람의 인상(印象)이 아주 험악한 지나인(支那人)이 들어와 나를 아주 재미적은 시선(視線)으로 바라다 보며 곁에 테이블에 가 둘러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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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럽쇼, 내가 돈 가진 줄 알고 달려 들어온 거로구나. 지나인(支那人)은 먼저 죽여 놓고 난 후에 도적질을 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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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생각에 몸이 오싹하여졌다. 아무리 소리쳐도 길가에 들릴 리(理)도 없을 것 같고, 또 그 근처(近處)에는 단 한 사람도 외국인(外國人)은 지나가는 것을 못 보았던 것이 홀연 생각나며 나는 침착을 잃을 지경이었다. 손에 쥐인 지갑에 든 돈은, 다 빼앗기면 그것도 아까울 일이었다. 손이 비일 백원지화(白圓紙貨)가 몇 장 들었으니 나에게는 큰 돈이었다. 그러나 벌떡 일어나서 나올 기력(氣力)도 없고 하여 좌우(左右)간 당(當)하는대로 당(當)해 보자고, 한번 턱 버티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가져온 고기와 만두를 먹을 정도 없는 것을 간신히 조금씩 맛을 본 후 회계를 하라고 명했다. 보이가 오더니 젓가락으로 만두를 세어 보고 내 얼굴을 바라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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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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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한다. 그들은 내가 먹은 것만 값을 치는 것이요, 먹지 않은 것은 값을 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얼른 일금 십오 전(一金拾五錢)을 내던지고 바삐 층층대를 뛰어 내려 그 소로(小路)를 벗어났다. 등에서는 찬 땀이 나는 것 같았다. 대로(大路)에 나선 후 휘 ─ 한숨을 쉬고 지금 나온 그 골목쟁이를 돌아보았다. 컴컴하게 기름 연기 속에 복닥거리는 지나인(支那人), 길 좌우(左右)의 그 많은 고기들이 보였다. 고력(苦力)들이 그같이 굶주리고 조식(粗食)을 하면서도 그 고기를 훔쳐가지 않는 것이 기특하다고 생각이 들며 경우 바른 우리들은 먹던 안 먹던 한번 청했던 음식(飮食)은 꼭꼭 제 값을 다 받는데 그처럼 엉큼한 지나인(支那人)이 꼭 먹은 음식(飮食)만을 값지는 상법(商法)이 기이(奇異)한 느낌이었다. 이것은 상인(商人)이 그런 법(法)을 만들어 낸 것이리라고 어디까지든지 나는 지나인(支那人)을 오해(誤解)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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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 분 사진(十五分寫眞)·독일소년(獨逸少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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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인력차(人力車)를 타고 해변(海邊)으로 나가 십오 분간 사진(十五分間寫眞)이란 것을 박았다. 풍경(風景)좋은 곳에는 사진사(寫眞師)가 얼마든지 있어 ○시(○時)로 응(應)하는 것으로 밀감상자(蜜柑箱子) 이 배(二倍)나 됨직한 상자(箱子)에 길다란 삼각(三角)이 달린 것과, 조그마한 소학생(小學生) 손가방 같은 것 일개(一個), 물주전자 일개(一個)이것이 즉 십오 분간 사진사(卽十五分間寫眞師), 아니 가두 사진사(街頭寫眞師)가 가진 바 전부(全部)이다. 좌우간(左右間) 사진(寫眞)을 찍은지 십수분 후(十數分後)에는 내 손에 지금 박은 사진(寫眞)을 쥐어 주며 소중판 사매 오십 전(小中板四枚五十錢)이 정가(定價)이니 그들의 그야 바위 같은 기술(技術)에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사진(寫眞)을 받아 쥐고 심(甚)하여진 위병(胃病)까닭에 집으로 돌아와 진정(鎭定)하려 했으나, 아까 먹었던 고기와 만두냄새가 사라지지 않아 무려(無慮) 감○(甘○) 시간고통(時間苦痛)을 하였다. 창(窓)을 열고 아픔을 참으며 조용히 누워 길을 내려다 보노라니 새빨간 자켓을 입은 양녀(洋女)가 자전차(自轉車)를 타고 비호(飛虎)같이 내닫고 있으며 자전차(自轉車)앞에 소형(小形)의 독일기(獨逸旗)를 달아 재미있는 소리를 내며 달리는 김○소년(金○少年)도 있었다. 건너편 테니스 코트 앞에는 어여쁜 양녀(洋女)들이 자가용 자동차(自家用自動車)를 운전(運轉)하여다가 주릇이 늘여놓고 희희낙낙(喜喜樂樂)하니 테니스를 하고 있다. 인간세상(人間世上)에 좋은 것이란 모조리 외국인(外國人)들만이 다 하고 있구나! 하고 나는 장탄식(長歎息)을 불○(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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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다한(多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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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어 무료함을 참을 수 없어 거리에 나서니 흐린 하늘엔 조각달이 비꼈는데 해안도로(海岸道路)를 걸어가니 발 아래 흰 물결이 깨어지며 해상(海上)에 찬란한 불은 섬인가 하였더니 각국기선(各國汽船)이었다. 너무나 감상(感傷)에 흘러감을 걷잡으려 인력차(人力車)를 타고 영○(映○)으로 갔었다. 로메 ─ 르, 테일러 ─ 를 구경한 후 나오니 기어이 짙었던 하늘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음인지 비가 쫙쫙 내렸다. 인력차(人力車)를 타려 하니 차부(車夫)들은 청기(晴氣)때의 그 굽실거리던 태도는 탈(가면(假面))을 벗어 던진 듯 아주 버티었다. 그 꼴이 괘씸하다느니 보다 나는 지나인(支那人)의 일면(一面)을 비로소 보는 듯한 느낌에 입을 담은 채 짧은 고소(苦笑)를 지은 후 말 없이 한 차(車)에 올라앉았다. 이윽고 달리다가 생각하니 와락 무서운 정이 들어 호로를 거들치고 내다보니 거리는 자는 듯 어두워졌고 차(車)를 누가 뒤에서 밀며 따라오는 기척이 있으므로 비를 노맞으며 내다보니 조그만한 소년(少年)이 차(車)를 밀며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다시 앞을 바라보니 끄는 차부(車夫)역시 연약한 이십 전후(二十前後)의 조그마한 소년(少年)이었음에 잠깐 놀라 뿌려대는 비를 관계치 않고 호로 한 자락을 걷은 후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이따금 끄는 소년(少年)은 기침을 심히 하며 찬 비가 새어드는 목덜미를 움츠리곤 하면서도 그래도 쉬지 않고 내달렸다. 정문 앞에 내려 차부(車夫)에게 삯값을 후하게 준 후 뒤를 밀던 소년(少年)에게도 백동전(白銅錢)몇 개를 쥐어주고 나는 그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겨우 열두셋 밖에 되지 않은 이 소년(少年)의 비에 젖은 웃는 얼굴이 희미한 전등(電燈)에 비쳐 미목(眉目)이 청수(淸秀)함에 가슴이 아파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방으로 들어오니 나갈 때 그대로 열어둔 채였던 창에서 뿌려든 비가 창(窓) 앞 테이블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나는 피로를 겨우 참으며 팔짱을 끼고 한편 창(窓)에 가 기대 섰다. 바로 눈 아래 있는 ××부대(部隊)의 군마(軍馬)의 코를 울리는 소리가 처참하고, 문전(門前)에 총검(銃劍)으로 보초(步哨)를 서고 있는 병사(兵士)의 그림자가 전광(電光)에 비쳤다. 나는 문득 이십 년 전(二十年前)에 애상(哀傷)하던 꿈들이 생각나며 가슴이 찡 ─ 하여져 움직일 줄을 잊고 가끔 번쩍번쩍하는 보초병(步哨兵)의 총검(銃劍)에 혼을 빼앗기고 있었다. 거리 어귀마다 지키고 서 있는 황군 병사(皇軍兵士)며, 중요 건물(重要建物)앞에 쌓아 놓은 토양(土壤)이 내지(內地)보다 다른 전시적 기분(戰時的氣分)을 말하고 있는 듯 할 뿐이지 그 외(外)는 어디든지 평화(平和)한 청도(靑島)이다. 무서운 전화(電火)가 스쳐 지난 곳 같은 느낌은 찾아 볼 수 없게 완전(完全)히 일본(日本)이다. 순사파출소(巡査派出所)가 곳곳이 있으나 모두 지나인(支那人)으로서 입구(入口)에‘문사처(問事處)’라는 목찰(木札)이 붙어 있다. 사가로(四街路)에 서 있는 교통순사(交通巡査)역시 깐층하게 차린 지나인 순사(支那人巡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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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과 청도포대(靑島砲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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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팔 월 십 오일 (○歷八月十五日)! 추석(秋夕)이다. 거리마다 곱게 단장한 남녀노유(男女老幼)의 지나인(支那人)들이 삼삼오오(三三五五)로 쌍두마차(雙頭馬車)에 빗겨 타고 왕래(往來)가 자뭇 많았다. 나 역시 집을 나서 인력차(人力車)에 편안히 재껴 앉아 청도명승(靑島名勝)을 샅샅이 뒤져보려 하였다. 극채색(極彩色)의 미려(美麗)한 해군잔교(海軍棧橋)를 배경(背景)으로 군인(軍人)들 틈에 끼여 십오 분간 사진(十五分間寫眞)을 박은 후 그 길로 우수(右手)에 바다를 끼고 이윽고 달리다가 해빈공원(海濱公園)의 청수(淸秀)한 풍경(風景)을 두루 구경하였다. 그 곳에서 멀지 않은 수족관(水族館)의 굉장(宏壯)한 건물(建物)을 지나는 동안 가로(街路)의 아름다움에 정신(情神)이 까무러질 지경이었다. 층층(層層)이 깎아지른 양옥(洋屋)의 멋진 배○(配○)며 우거진 아카시아 나무의 사이사이로 흘러나오는 가로(街路)의 고저(高低)가 기막히게도 아름다웠다. 나는 혼(魂)을 잃고 차부(車夫)의 끌고 가는대로 몸을 맡기고 있는 사이에 제일공원(第一公園)의 기묘(奇妙)한 화초수목(花草樹木)을 살펴본 후 일로(一路)로 포대(砲臺)를 향(向)하였다. 눈 아래 내려다 보이는 잔잔한 해변(海邊)! 부드러운 모래는 어디까지 이어져 있고, 각색형(各色型)으로 만들어 세운 흰 판자의 집들이 얼마든지 들어서 있다. 바깥 벽에는 각국문자(各國文字)로 만화영화(漫畵映畵)에 나오는 집 모양으로 익살맞게 씌워져 있다. 해수욕 시절(海水浴時節)에 이 곳의 놀음이 그 얼마나 유쾌할까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듯 하였다. 포대(砲臺)에 올라 사방(四方)을 둘러보면 눈 아래 장엄(莊嚴)한 파도(波濤)가 노○(怒○)하고 기암층○(奇巖層○)의 굴곡(屈曲)사이로 물결은 부딪혀 백화(白花)로 깨어지며 그칠 줄을 모르니 조선(朝鮮)의 해금강(海金剛)에 비(比)해 본들 죄(罪)되지는 않을 것이다. 포대(砲臺)는 청도만(靑島灣)을 지키고 선 한 개의 산(山)이지마는 그 내부(內部)는 전부(全部)가 철근(鐵筋) 콘크리트와 강철(鋼鐵)로 되어 있어 어떠한 ○격(○擊)에도 꼼짝하지 않고 수우병사(數于兵士)가 몇 날이든 들어앉아 응전(應戰)해 나갈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그 산(山) 속에서 일생(一生)을 살아도 무자유(無自由)함이 없으리만치 완전(完全)한 설계(設計)로서 생활(生活)에 필요(必要)할 제반시설(諸般施設)이 만단(萬端)으로 구비(具備)되어 있다. 곳곳에 있는 조그마한 어느 철문(鐵門)을 들어가 내부(內部)에 이르니 끝간 데가 어디인지 불과 사오실(不過四五室)만을 ○중전등(○中電燈)으로 비춰본 후 그 전부(全部)를 탐험(探險)해 볼 용기(勇氣)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는 모양인 것 같아 뒤돌아 나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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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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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감수시여(感數時餘)에 포신(砲身)에 걸터 앉으니 석일(昔日)의 독일(獨逸)이 일독전쟁(日獨戰爭)에서 이러한 포대(砲臺)를 가지고도 그 위력(偉力)을 감(敢)히 발휘(發揮)치 못하였고 금일(今日)또한 지나사변(支那事變)에 서주(徐州)의 여차(如此) 한 포대(砲臺)가 역시(亦是) 여차(如此)한 운명(運命)으로 떨어지고 말았으니 비록 적군(敵軍)의 일일지라도 가엾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청도만(靑島灣)의 그 무수(無數)한 지나군○(支那軍○)이 자침(自沈)하여 황군(皇軍)의 입항래격(入港來擊)을 방지(防止)하려 하였으니 그들은 대항(對抗)하여 싸워보려 하느니보다 스스로 자침(自沈)되어 그 길만을 막아서도 청도(靑島)를 보전(保全)하려 하였던 것인데 지금 도리어 황군(皇軍)의 손으로 인상(引上)되고 있으니 한숨 쉴 일이리라. 귀로(歸路)에 인력차(人力車)위에서 문득 차부(車夫)를 바라보니 여위고 가늘은 차부(車夫)의 등은 허묵이 땀에 젖었으나 그는 쉬지 않고 달리고만 있다. 무려 삼십 여 분간(武旅 三十餘分間)을 내달리고 있는 그 에네르기가 대체 그 여위고 말라빠진 차부(車夫)의 어느 구석에 숨어 있는지가 알고 싶었다. 이들의 놀랄 만한 인주성(忍酎性)과 항○(港○)된 주력(走力)은 나를 문득 고소(苦笑)케 하였다. 그 이유(理由)는 지나병사(支那兵士)나 순사(巡査)들이 아랫도리가 지나치게 경미(輕微)한 단속임에 비(比)하여 황군(皇軍)의 묵중스런 아랫도리를 연상(連想)케 하였음이니 이들 지나인(支那人)들은 미리부터 달아나기 편하게 봉오(鋒仵되어 있는 듯 하였다. 전장(戰場)에서 삼십팔계중(三十八計中) 주계제일(走計第一)로 유명(有名)함과 유기적 관련(有機的 關聯)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 밤에 나는 중추명월(中秋明月)을 그대로 보내기 아까워 해군잔교(海軍棧橋)로 나갔다. 꿈같이 아름다운 거리! 아카시아에 머리를 스닿 기우며 흐르는 달빛을 바라 양편 포켓에 손을 꼽고 천천히 걸어갔다. 젊은 남녀들은 빈틈 있을까 두리는 듯 굳게 서로 팔을 끼고 무엇을 속삼임인지 지극히도 정다워 보이게 쌍거쌍래(雙去雙來)하는 데를 나 홀로 걸어가기 체면에 안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나 같은 이름조차 없는 미미한 방랑객(放浪客)을 조롱이나 하듯 발길을 멈추고 소리가 들리도록 입을 맞추는 모양은 내 얼굴이 붉어지누나, 라고 말하더니 내 너머 속(俗)된 듯 하여 미소(微笑)하고 지나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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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유수(離別有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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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월 십오 일(十月十五日) 청도(靑島)를 떠나려고 부두(阜頭)에 나가 이층(二層)의 길고 긴 행○(行○)을 각국인(各國人), 그 중(中)에도 다수(多數)한 백계○인(白系○人)들과 한 가지 어깨를 스쳐가며 걸어가는 동안 나는 방랑자(放浪者)의 애수(哀愁)와 이국표랑(異國漂浪)의 정서(情緖)를 가슴이 아프게 맛보았다. 승선 후(乘船後) 캐비넷에 행구(行具)를 두고 갑판(甲板)에 나서니 양인(洋人)들의 입 맞추는 모양이 수없이 눈에 띄고, 멀리 잔교○우(棧橋○于)에, 케리 ─ 쿠 ─ 빠의 모습을 가진 외국청년(外國靑年)한 사람이 턱을 괴고 열어 앉아 물끄러미 이 편을 바라보고 있어 사진기(寫眞機)가 있으면 한 장 박아보고 싶은 풍경(風景)이었다. 나는 가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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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도(靑島)여, 내 다시 너를 찾을 때, 너 아름다운 아카시아의 수보○(數步○)를 함께 속삭이며 걸어볼 동무를 찾아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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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에게 이러한 생각을 잠시나마 가지게 해준 것은 청도(靑島)의 매력(魅力)이 얼마나 깊은지를 말함이리라. 이리하여 이십 여 일(二十餘日)간 정(情)든 청도(靑島)를 뒤로 하고 그 이름 이미 세상(世上)에 떨친 오래인 ○ 상해(○上海)로 향(向)하였다.
【원문】청도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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