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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 종종 혼자서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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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는 가을이 되면 강남으로 가고 기러기는 봄이 되면 북쪽으로 가고 참새는 늙으면 새자개(貝)란 것이 되고 매암이는 알을 낳고 죽어버리고 배암은 가을이 되면 흙 속으로 들어가고 하는데 종달새는 여름이 지나면 어디로 가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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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었다. 학교라고는 내 평생을 도합해 보았자 불과 사 년도 채 못다녀봤고 그저 완고하게 글씨나 쓰고 큰 소리로 쫙쫙 한문이나 읽어 왔던 터임으로도 내 머리 속에 선생이란 무서운 것 귀찮은 것이라는 생각밖에 없었음인지 천진스런 어린 때의 회의(懷疑)를 맘 놓고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므로 어른이 다 된 요즈음까지도 종달새는 가을부터 봄까지 어디가 있다 오는 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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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기 꾀 나니까 별 망령을 다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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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튀방만 톡톡히 얻어먹고 뾰루통해져서 죄 없는 책장만 쥐여 뜯었으므로 다시 더 묻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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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일곱 살인가 여덟 살 때 무엇이든지 잘 안다는 복순이 라는 동무에게 한번 물어보았던 것이다. 벌써 근 이십 년이나 되는 오늘까지 그때의 복순의 대답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껏 복순의 말을 믿는 것이 되겠으며 따라서 종달새를 얼마나 좋아했다는 것임을 알겠다. 이것을 보면 나라는 인간도 제가 젠 척은 하면서도 어리석고 몽상을 좋아하는 이지(理智)없는 팔삭둥이임이 상당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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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몰라. 노고지리(종달새)는 저 건넛산 속에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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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물캐러 가니까 저 산 속에 아주 큰 ‘굴’하나가 있는데 그 ‘굴’에는 겨울이 되면 노고지리가 가득 채워 있다더라. 온 세계 노고지리는 모두 그 속에 있는가 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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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인 줄 아는구나. 너는 몰라도 노고지리는 울면서 자꾸 하늘로 올라간단다. 왜 하늘로 올라가는고 하면 저 건너 산이 하늘에 딱 대어 있거든. 그러니까 하늘로 올라가서 하늘 길을 걸어서 저 산굴로 들어가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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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지? 저 산이 그렇게 높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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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말고. 지금 여기서 보니까 하늘이 높은 것 같아도 저 산에 가면 하늘과 산이 딱 달라붙었단다. 나도 하늘을 맘대로 만져 보았는데 그래 나는 무서워서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지 않고 조금 낮은 곳에서 만져 보려니까 키가 모자라더란다. 그래서 나물 바구니를 엎어놓고 올라서니까 맘대로 만져지던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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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물렁물렁하고 차가웁지. 좀 떼어먹어 보니까 아주 달디 달고 조금만 먹어도 아주 배가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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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보여. 좀 떼어먹고 그 구멍으로 들여다보니까 참 좋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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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말을 듣고 어떻게 그 산에 가보고 싶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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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큰일날 소리를 다 하네. 그때 내가 하늘을 좀 떼어먹고 구멍을 뚫었다고 이번에는 가면 붙들려 막대를 맞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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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딱 잡아떼었다. 그래서 나는 멀리 그 산을 바라보니 과연 하늘은 그 산꼭대기에서 대여 있는 것 같았으므로 더 앞을 떼지 않았던 것이었다. 복순이는 지금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나 오직 그가 가르쳐 준 종달새 겨울집 이야기와 물렁물렁하고 달콤한 하늘이야기는 해해마다 생각이 난다. 저 지난달 어느 날 이른 아침 아직 추운 겨울이 남아 있는 날 들길을 산보하다가 한 마리의 종달새를 발견했다. 그래서 집에 들어오자 곧 일꾼들에게 물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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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지리는 겨울 동안 내내 보리밭에 있구마. 보리가 패고 날씨가 따뜻하면 재잘거리지만 추워지면 재잘거리지는 않아도 있기는 늘 들판에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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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그 후도 집 근처에서 자주 노래를 잊어버린 종달새를 보았다. 푸른 들판 위에 우뚝 서 있는 집 위에 광휘 있고 윤택한 햇빛이 자혜롭고 내릴 때 강가의 버들은 늘어지고 못물은 잔잔하고 잔디 깔린 집 뒤 산기슭에 솔나무를 벗하여 선 꿀밤나무 새나무 갸울한 새잎사귀의 녹색의 정령들이 나를 부른다. 긴 치마 벗어버리고 짧은 옷 꿰어 입고 산기슭으로 달려간다. 명랑하게 광활한 눈을 뜬 오월의 내 고장 하늘은 미친 봄바람을 고요히 진정시키고 내 반생 동안에 그 겨울 집을 저 멀리 뵈는 앞산 속에 숨겨 두었던 종달새를 쫙 ─ 두 활개 펼쳐 주어 즐거운 노래를 들리게 한다. 부드러운 잎사귀는 땅 우에 얇은 그림자를 내려 놓고 향기로운 시록의 정령들은 소리 없이 손뼉 치며 복순이가 가르쳐 주던 이야기를 나에게 속삭인다. 지금도 저 명랑한 하늘은 앞산 위에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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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알지 못하나 멀리 산과 산이 경계해준 내 고장 반야월의 광활한 하늘 무르녹는 녹색의 신영(新影) 그 속에 안기운 내 가슴은 온 들판에 퍼져 울리는 종달의 노래 소리에 까닭없이 희열(喜悅)과 약동(躍動)에 깨어질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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