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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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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12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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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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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적 조직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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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 밥먹는 기(記)’를 쓰라고 한다. 된장에 장아찌나 먹는 걸로 어엿하니 밥 먹노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그것조차 못 먹는 이가 많고, 끼니를 땅따 굶는 사람이 수두룩한 세상이니, 이야기책이나 짓고 앉았는 놈들이 된장에 장아찌면 그만이지, 그 이상 무슨 잔소리냐고, 그런 걸랑 아예 염도 내지 말라고 말할 이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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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느 정도까지의 영양가를 섭취하여야 정신이나 육체를 정상한 상태대로 보전해 나갈 수가 있겠느냐는, 아마 사람이나 체질을 따라 각각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가령 돈 많고 귀인(貴人)으로 태어난 이는 고기나 우유를 하루라도 못 먹으면 곧 약 떨어진 아편중독자(阿片中毒者) 모양으로 펄펄 뛰고 야단이 나겠으나, 가난뱅이는 고구마나 감자알이 떨어질까 마음을 졸이고 있는 그런 여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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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에든지 최저한도(最低限度)와 최소한도(最小限度)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래서 작가라면 작가가 계속하여 정신적 노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생활은 사회에서 보장해 주어야 않겠느냐는 것이 비로소 시비문제(是非問題)로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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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本是) 문학을 한다고 뜻을 세우던 소년시절에 일생을 청빈(淸貧)으로 지낼 각오는 누구나 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가난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 것을 똑똑히 알지도 못했었고, 또 생활이 어떤 것이라는 것도 모르는 시절의 이야기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아이가 학교에를 가고, 시골 있는 친척이 내왕(來往)하고 이렇게 되면 일가(一家)의 집주인이다. 아침저녁의 끼니, 아이의 교육비, 가을이면 신탄(薪炭)과 김장 걱정, 의복 걱정-이런 걸 자나깨나 생각해야 할 그런 책임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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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잡지에서 유행가수(流行歌手) 아가씨들의 수기를 읽어보니, 모두 수입으론 한 달에 2, 3백원은 된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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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대가(大家)라 할지라도 우리 작가에 이러한 보수를 사회로부터 보장받은 이는 단 반(半) 사람도 없다. 영화를 원작(原作)한 작가가 출연 여배우의 10분지 1의 보수도 못 받는 것이 세계적인 상습(常習)이니, 이제 새삼스럽게 모순은 지껄여 보아도 진부하기 짝없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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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러므로 대회사(大會社) 중역이나 가까이는 우리 유행가수(流行歌手) 아가씨들 같은 사치(奢侈)한 생활이나 호화롭고 안일(安逸)한 생활을 희망하거나 요구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작가생활을 계속하여 영위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최저한도의 양식(糧食)은 보장해 주어야 할 것이며, 또 우리들 작가로서도 그만 정도의 것은 어엿하니 요구할 수 있다는 데 개재(介在)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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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작가로서 밥 먹는 기(記)」는 어느 정도로 밥을 먹고 살아 있느냐 하는 것을 말하는 동시에 어떻게 해야만 어느 정도까지의 밥을 먹을 수 있겠느냐 까지를 함께 묻는 제목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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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중견층의 작가로서 1년에 6, 7백원을 벌려면 상당한 노동을 치러야 할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그것도 신문에 연재소설을 쓰면 비교적 용이할는지 모르나 그렇지 못한 경우엔 별 잡문(雜文)을 다 써야 그만큼 되나마나일게다. 빤한 회계(會計)쪼니까, 좀 창피한 일이지만 하나하나 주판을 따져보자. 연재장편을 150회로 잡고, 1회분 2원 내지 3월이니 2원으로 쳐서 3백 원, 3 원으로 쳐서 4백 5십 원, 이밖에 단편 다섯 편을 썼다 치고 4백자 1매 50전 쳐서 한 편에 20원을 잡으면 도합 백원이다.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거나 정력이 비상(非常)한 축들은 이밖에 논문이던가 감상문이던가 계절수필(季節隨筆)이던가, 기행문이던가를 써서 겨우 그 나머지 액수를 채워서 총 수입 6, 7백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문연재든지 잡지연재의 기회가 매년 오는 것도 아니고, 1년에 몇 차례씩 오는 것은 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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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1년에 단편 열 편을 썼다 치면 2백원이던가 2백 5십 원, 이 정도로 되면 창작집이나 단행본이 있다 쳐서 그 인세를 한 백원 잡아도 3, 4백 원이 되나마나다. 시골 면서기(面書記)의 봉급보다도 못하다. 그리고 실인 즉 1년에 단편 열 개를 쓰는 작가란 이 고장선 대단히 희소(稀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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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창작 한 편을 써내는 작가에게 그 이상의 작품을 요구하는 건 무리고 이 이상 더 무리를 하면 부득이 태작(駄作)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준을 단편 열 개로 쳐서 그 고료(稿料)가 천 원은 되어야 이럭저럭 담배값이나 얻어 피우며, 잘 절약하면 커피잔이나 얻어먹으면서 최저한도(最低限度)의 생활을 영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가족이 많던가, 학교에 다니는 아동이 있던가 하는 경우엔, 여름에 간복(間服), 늦은 가을에 맥고자(麥藁子), 옆구리 터진 구두는 면하기 어려울 것이며, 그달 그달 월간 잡지 사 읽기도 곤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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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인즉 천 원은 샘스러 낮을 밤으로 바꾸어 허덕여도 5, 6백 원을 넘을 수 없으니, 작가로써 신문기자나 잡지기자나 그밖에 딴 부업(사실은 정업(正業))을 갖게 되는 것이 무리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어떠한 정신적 활동이 영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쪼들린 생활 속에서 어떻게 정신과 육체가 정상(正常)을 보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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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대체 어찌하여야 하느냐. 사회 자체가 이런 것을 고려할만한 문화적 아량이 없는 이상, 우리의 직접 대상인 원고료와 인세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 출판기관이 문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즈음 일반 독서층의 점앙(漸昻)하여가는 관심과 아울러, 전집 간행열(刊行熱)이 상당하여 출판사는 이럭저럭 적지않이 이윤(利潤)을 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작가나 비평가에 대한 대우는 점점 야박해가고 있다. 이들에게 자각을 갖게 하려면, 호소나 개인적 교섭으로 될 리 만무하다. 역시 작가는 직업적인 조직을 가져야 할 것이 초미(焦眉)의 과제로 아니 될 수 없다. 문화적 성질이나 문학적 정책적 의의는 생각지 말고, 우리 작가가 최저한도의 생활이나마 보장하기 위하여 우리의 생활권의 옹호를 목표로 하는 직업적 조직이 있어서, 우리의 요구를 조직화하여 사회나 출판기업(出版企業)에 조처(措處)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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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수차(數次)의 문예가협회(文藝家協會)가 실패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나 지금과 같은 사회적 환경에서는 우리의 생활을 옹호하고 확립하는 것이 어떠한 역사적 순간보다도 비상한 의의를 띠게 되는 것을 망각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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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나는 「작가로서 밥 먹는 기(記)」를 써나가다가 결국 작가의 직업적 조직의 필요에까지 이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제현(諸賢)의 삼사(三思)를 촉(促)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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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지』19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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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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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