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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직(殉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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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7월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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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殉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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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시골서 우인(友人)이 한 분 상경해서 그를 모시고 나는 명소(名所) 안내를 나섰었다. 덕수궁을 보고 오정(午正)이 가까운 시각에 한강 철교를 구경한다고 우리는 대한문 앞에서 전차를 탔다. 좁은 전차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서 쇠고리를 하나 얻어 잡고 자세를 바로 세우는데 낯익은 얼굴을 하나 내 앞에서 발견하였다. 국민복에 전투모를 쓴 완강(頑强)한 체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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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어 오래간만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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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차(彼此)에 이렇게 인사는 나누었으나 나는 누군지 딱히 기억이 소생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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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 도무지 뵈올 수 없는데 요즘은 내근(內勤)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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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렇게 물어서 나는 그와의 기억을 이내 회상할 수 있었다. 4, 5년전 내가 신문사 사회부 기자로 외근(外勤)을 할 때에 본정서(本町署)에서 몇번 만난 일이 있던 조선신문사(朝鮮新聞社)의 기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직업으로 해서 알게되었던 지난날의 동료를 반갑게 쳐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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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뒤 신문사를 그만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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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세요. 그럼 무어 다른데 봉직(奉職)하셨던가 혹은 장사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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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이렇게 한일월(閑日月)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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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는 웃으면서 “참 팔자가 좋으십니다”하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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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동안 도무지 거리에서도 뵈올 수 없으니 웬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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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물었더니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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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戰場)에 나갔다가 얼마 전에 돌아왔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나는 다소 놀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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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십니까, 나는 도무지 모르고, 그럼 무어 종군(從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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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출정(出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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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잡았던 쇠고리를 놓고 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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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서 감사의 뜻도 표하지 못했습니다. 무사히 귀환하셔서 만행(萬幸)이올시다”하고 건네는 말에 그도 기척하고 경례를 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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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그리고는 무안한 표정으로 나직이 “시니소코나이 마시다” 다시 말을 이어서 “귀환하기 전에 부상을 당했었습니다”하고 바른손으로 얼굴을 가리켰다. 딴은 남의 얼굴이라 물어볼 수도 없었지만 나는 그를 만나는 처음부터, 얼굴이 화상을 당하였다가 겨우 붕대가 끌어놓은 직후처럼 푸릿푸릿하고 벌겋고 한것을 눈여겨 보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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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내 조일신문(朝日新聞)의 오까베(岡部[강부]) 씨를 생각하고 그의 죽음을 말하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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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용감한 순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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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차가 남대문엘 와서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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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社)에 들어갈 일이 있어서 여기서 내립니다. 그럼 또다시 뵈옵겠습니다”하고 인사하고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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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발련이 되어서 나는 한강에 차가 이르기까지 또다시 줄곧 오까베 씨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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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까베 씨는 나와 동시기(同時機)에 신문기자가 되어서 대조(대조) 경성통신국에 봉직(奉職)하고 외근(外勤)을 하였었다. 동지사(同志社) 대학을 나온 분으로 유도도 잘하고 몸이 몹시 튼튼하게 생겼었다. 처음 조선에 건너온 지식인이 다 그런 것처럼 씨는 퍽 편견이 없고 순정이 있어서, 내가 신문기자 생활 양년(兩年)간에 친교를 맺은 가장 적은 몇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었다. 씨도 나를 좋아해서 우리는 언제나 기사를 서로 나누고 연회같은 때엔 곧잘 취해서 함께 거리를 쏘다니며 대언장언(大言壯言)하고 그랬었다. 생각이 퍽 솔직해서, 씨는 입버릇처럼 조선 건너와 있는 내지인(內地人)들에게는 나쁜 버릇이 있다고 분개하면서, 그런 근성을 버리지 않고는 어디 가서든지 큰 경영은 못할 것이라고 개탄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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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는 노교구(盧橋溝)에서 사건이 터져 가지고 점차로 북지(北支)에 전화(戰火)가 퍼질 때에 종군기자로 출전하여 나도 씨의 통신을 몇 개 얻어 읽었는데, 씨는 얼마 아니해서 남원(南苑) 전선에서 적의 총탄에 넘어졌다. 시의 사진과 씨가 남긴 최후의 통신을 신문에서 읽고 나는 한참 동안 감격하였었다. 씨의 시체는 제일선과 적군의 중간, 다시 말하면 병대(兵隊)들보다도 훨씬 전진한 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평상시에 그렇게 침착하였던 씨이다. 종군기로서는 너무 지나치는 전진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는 모양이고, 또씨의 남긴 최후의 통신을 보면 적지않게 흥분된 필치(筆致)로 쓰여진 것도 사실이었으나, 나는 이 때에 술에 취해서 세사(世事)를 강개(慷慨)하던 씨의 열혈(熱血)이 튀어나오는 면모만을 눈앞에 선하게 그려보고 있었다. 탄환이 빗발치듯하는 가운데를 연필과 사진기계를 들고 일선서도 훨씬 앞선 곳을 용감히 달리고 있는 아름다운 청년의 정열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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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거고 벌써 만 3년이 흘러갔다. 그 많은 전몰장병 가운데 한 사람의 친지도 갖고 있지 못하는 나는 위령제라던가, 정국신사(靖國神社)의 대제(大祭)라던가, 그밖에 영령을 제사지내는 여러 가지 절차가 있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오까베 씨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 사변 3주년의 수감(隨感)을 쓰라는 통기(通寄)에 접하고도, 다른 모든 감상을 젖혀놓고 나는 우선 오까베 씨에 대해서 써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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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에게는 부인과 나서 얼마 되지 않은 여아(女兒)가 하나 있었는데 그 뒤의 안부는 알지 못한다. “집의 여편네가 군함을 낳았어!”하고 기뻐하던 씨의 옛날이 생각나서 나는 유족에게 다행(多幸)이 있기를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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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나는 지금 공습경계 하에서 쓰고 있다. 차광장치(遮光裝置)를 해 놓은 어둑시근한 방 밖에는 가정방호조합(家庭防護組合)의 부인 연락원들이 무어라 지껄이면서 뛰어나는 발자취 소리가 들려온다. 책상 밑에는 동서의 양처(兩處)에서 긴박하게 전하는 전쟁통신을 만재(滿載)한 신문이 흩어져 쌓여있다. 나는 어떤 엄숙하고도 긴장된 마음을 느끼면서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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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까베 씨를 눈 앞에 선하게 그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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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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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평론』제10호 1940년. 7월)
【원문】순직(殉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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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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