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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계 청년에게 참고를 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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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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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계 청년에게 참고를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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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5, 6년 전이지만 그때는 조선 전폭(全幅) 안에 돌아다니는 신문이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每日申報)》 하나뿐이었고, 잡지는 최남선의 간(幹)하는 《청춘(靑春)》이 있을 뿐이요, 조고계가 적료하여 지명하는 인사를 치자면, 2, 3 손가락을 꼽게 될 뿐이었었다. 5, 6년 내에는 수명이 짧으나, 그러나 각종의 잡지가 산출한 중 지금까지 유지하여 오는 잡지도 있으며, 신문이 또한 2, 3종이 되니 이를 가지고 남에게 비교할 수 없지만 다만 자가(自家)의 금석(今昔)을 대조하여 보면, 반도 문운이 거의 흑운(黑雲)을 헤치고 돋아오는 달과 같다 할 수 있다. 이제야 청년 재자(才子)가 글 쓸 곳이 있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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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이 무엇으로 그렇게 된 줄 아느냐? 간접으로 선민·선열, 직접으로 독립선언, 그 양방면의 흘린 피로 매득(買得)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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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2, 3종의 신문의 대가가 또한 적지 않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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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속에 반생명을 부탁한 문예계 청년들이여! 응당 나의 말을 시인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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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어느 도서관을 지나다가 중국 청년 1인을 만났다. 나는 설재가 없어 재중국 10년에 지금까지 손으로 입을 대신하는 자라. 필담(筆談)으로 그 청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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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중국 청년계가 이렇게 오래 적막함은 무슨 까닭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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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으니, 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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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문(白話文)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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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내가 경괴히 여기어 그 이유를 힐문(詰問)하였다. 저가 한참이나 잠잠히 있다가 붓을 들어 써 가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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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문은 중국의 문운(文運)을 촉진하는 신기계라. 그러나 아무리 좋은 기계라도 악용하면 사람만 상한다. 편이한 백화로 간삽한 고문을 대신하니 어찌 좋지 않으냐마는, 백화문이 난 이후에, 연애 편지 한 장만 쓰면 남녀 학생의 결혼이 당장에 성립하고, 연애소설 한 편만 지으면 야유호탕할 꺼리가 생기고, 약간의 고저 없는 시와 구속 없는 문을 쓰면 문인 학사의 명예도 가질지니, 그 누가 이 같은 온유향중의 취미 있는 세월을 버리고, 손이 발이 되며 대가리를 도끼 삼아 쓴 정치·혁명·사회·운동 등 백사일생(百死一生)의 장중(場中)에 출입하리오? 그러므로 중국 근일 청년계의 적막은 백화문의 까닭이라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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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말을 듣다가 ‘우리 조선 청년계의 아무 운동에든지 거기에 대한 흥미가 냉담하여 감히 문예운동의 영향이 아닌가’ 경의하였노라. 문예파, 더욱 연애(戀愛) 문예파의 재삼 고려할 바라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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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수십 년 전에 오향에 있을 때에 ‘가래울’이란 이웃마을에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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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룡 아비란 한 노인이 자기 동리의 폐풍(幣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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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가지고야 살 수 있습니까? 누구든지 신발을 삼아 이익을 보면 온 동리가 신 장사가 됩니다. 떡을 팔아 이익을 보면 온 동리가 떡장사가 됩니다. 무엇이든지 한 사람이 이렇다 하면 온 동리가 우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장사커녕 죽도 밥도 안 되고 너나 내나 다 못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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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이를 회상하니, 마치 조선 근세사의 강연을 듣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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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근세의 인심이 매양 한 곳으로 몰리어 불교시대에는 모두 불교, 유교 시대에는 모두 유교, 심성(心性)·이기(理氣)의 촌중(村中)에는 모두 심성이기, 행시(行詩)의 촌중에는 모두 행시가 되어, 그 권외(圈外)에는 조금도 머리를 들어 살피지 못하다가, 아산(牙山)이 무너지고 평택(平澤)이 깨어진 뒤에야 이것이 무슨 세상인가? 눈을 비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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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예도 이런 풍기(風氣)에서 유행됨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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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동(鄭壽銅)은 거금(距今) 6,70년 전의 시인이었었다. 자기의 아내가 산기(産期)를 당하여 난산증(難産症)으로 죽네사네 하므로 정이 약국으로 불소산을 지으러 갔었다. 돌아오는 길에 어떤 친구가 나귀를 타고 금강산을 간다 한다. 그를 본 정씨가 시흥(詩興)이 도도하여 그만 불수산은 도포 소매에 넣은 채 금강산으로 달아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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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일에 연애문예에 취심한 이가 이와 방불하지 않을까? 혹 가로되 이것이 무슨 말이냐? 정수동은 썩은 한시의 시인이요, 근일의 문예파는 새파란 신시(新詩)·신문(新文)을 가진 자니 어찌 서로 비기리오? 하나 나는 오직 현실을 도피하는 꼴이 피차 일반이라 함이로다. 이를테면 한강의 철교가 현실이 아니냐? 인천의 미두(米豆)가 현실이 아니냐? 경제의 공황(恐慌)이 현실이 아니냐? 상공 각계의 소조가 현실이 아니냐? 다수 농민의 서북간도 이주가 현실이 아니냐? 만반(萬般) 위험의 현실이 정씨 일가의 난산증보다 더하거늘, 이를 버리고 속문예(俗文藝) 속에서 금강산을 찾으려 하니 또한 가련하도다. 만일 인격으로 말하면 ‘三角山崩五湖退[삼각산붕오호퇴] 吾儕方有可爲時[오제방유가위시]’가 정(鄭)의 시가 아니냐? 정수동은 오히려 이와 같이 현실에 불복하는 혈성(血性)을 가진 남아이며, 또 불평강개(不平慷慨)의 유희를 작(作)할 때에는 왕왕 유심자의 눈물을 내릴 만하던 기인(奇人)이니 어찌 용이히 정씨를 따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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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예술을 위하여 존재’라 하지만,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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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예술일수록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그 부론(附論)이 있으므로 그 말이 얼마큼 승인됨이니, 만일 예술이 인류에게 해가 되어 그 진보를 따라 인류의 행복이 감소될진대 인류의 예술을 증오하여 멸망시키었을지니 어찌 존재의 여지가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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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山如此好[강산여차호] 無罪義慈王[무죄의자왕]’을 지은이가 이(李) 무엇이든지 《해이총서(解頤叢書)》에서 그 성명을 알았더니, 이제 그 성만 기억되도다. 이(李)가 이런 시만 지었을 뿐 아니라 또 그 동무에게 한 편지가 이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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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신라나 7백 년을 지난 고구려나 7백 년을 바라던 백제나 수십 년에 망한 후백제가 그 연조의 장단이 다르다 하나, 구경은 다 일장의 춘몽이라, 같은 춘몽 중에서 그래도 지금껏 살아 있는 이는 의자왕인가 하노라. 살아서는 미인의 손을 잡고 ‘대왕포상(大王浦上) 임류각(臨流閣)’ 중에서 일생의 염복을 누리고 그 망국의 때에는 만고에 향내나는 낙화암의 염적(艶蹟)을 끼쳐, 후인의 시 자료(詩資料)를 만들어 주니 이는 신라의 천 년과 고구려의 7백 년의 복록(福祿)으로 바꾸지 못할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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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일시에 경박자의 지목을 받아 도처에서 척축하므로 유락(流落)하여 죽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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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고(往古)의 재자가 그 재기가 발월할 때에 자유로운 언사를 토하다가 협착한 사회의 배척을 입어 인간의 활지옥(活地獄)에서 죽은 이가 얼마이냐? 금일에는 편복의 신분에 간첩의 행동을 가질지라도 그 의초부목의 생활을 의구히 하게 되니, 금일 조고계(操觚界)의 풍기가 너무 타락됨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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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조사가 죽을 때에 그 제자들과 이렇게 문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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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 죽은 이는 있지만, 앉아 죽은 이도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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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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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죽은 이는 있지만, 서서 죽은 이도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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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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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서서 죽은 이는 있지만, 거꾸로 서서 죽은 이도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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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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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는 거꾸로 서서 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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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머리를 땅에 박고 두 발로 하늘을 가리켜 거꾸로 서서 죽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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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噫)라! 이는 남대로 하지 않는 일종의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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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이와 반대가 되어 남이 체증으로 밥 먹을 때에 간장을 떠 먹으면 나도 간장을 떠먹어 죽기를 한하고 남을 따라가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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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돌아다니던 지사(志士)는 모두 애국자이며, 금일은 모두 공산당이며, 10년 전에 배우려던 청년은 거의 병학(兵學)이러니, 금일은 거의 문학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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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이고 시대의 조류를 안 밟으랴마는, 그러나 그 무슨 주의, 무슨 사상이 매양 그 사회의 정황을 따라 혹은 성하고 혹은 쇠하거늘,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아서 발이 아프거나 말거나, 세상이 외씨버선을 신으면 나도 외씨버선을 신나니, 이는 노예의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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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미 사람 노릇을 못할진대, 노예와 괴물에 무엇이 더 나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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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라리 괴물을 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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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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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