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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와 인생(人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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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노자영
1
詩[시]와 人生[인생]
 
 
2
“시를 가지지 못한 사람의 생활은 사막의 생활이다”
 
3
나는 Meredith의 이 말을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처녀 시인의
 
4
“미와 시와는 인생의 가장 위대한 자랑이다”
 
5
이말을 기억한다. 과연 시를 가지지 못한 사람의 생활처럼 천박한 생활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시라는 것은 전혀 문학상에 나타난 그것이나, 또는 그 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라는 것은 모든 생활표현의 근저적(根底的) 요소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라는 것은 생활배경의 최심소(最深所)를 말하는 것이다.
 
6
시는 모든 표현의 기초요, 생활이요, 빛이요, 힘이다. 이러한 까닭에 철학자도 시인이 되어야 한다. 소설가도 시인이 되어야 한다. 종교가도, 교육가도, 실업가도 모두 시인이 되어야 한다.
 
7
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가장 정화한 인간의 마음이다. 시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마땅히 미워할 만한 속인이다.
 
8
우리는 가장 순실(純實)한 농부에게서 시인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유를 가졌다. 그는 태양의 빛과 미풍과 들꽃과 청초와 작은 새와 창공의 노래를 들을 수가 있다. 그는 거룩하고 참다운 하나님의 마음에 돌아갈 수가 있다. 이슬지는 풀 한 포기에도 시는 있는 것이다. 시를 써야 시인이 아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둘째의 일이요, 먼저, 시인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를 쓰고도 시인이 아닌 사람이 있고 한 줄의 시를 쓰지 않고도 위대한 시인이 있다. 거룩한 마음, 참된 마음, 맑은 마음, 진실한 마음, 이러한 마음의 소유자에서 우리는 위대한 시인을 볼 수가 있다. 어여쁜 마음이 있다. 어린애의 미소와 같은 지순한 마음이 있다. 작은 새의 노래와 같은 경건한 마음이 있다. 시는 하나님의 목소리요, 시인의 성령의 왕국의 군주인 것이다.
 
 
9
나는 로마의 네로황제를 생각한다. ‘초로(草路)의 화사시(火事詩)’를 쓰기 위하여 로마성에 불을 지른 그는 결코 시인이 아니다. 그는 악마요, 도적이요, 짐승이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었다. 악마가 있었고, 독사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와 반대로 Assisi의 성자 성푸란시스(San Francese)를 생각한다. 푸른 하늘 아래서, 우거진 숲사이에서, 작은 새를 향하여 허리를 굽히고 설교한 그는 세상에 다시 보기 힘든 위대한 시인이었다. 그는 일행의 시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마음에서 샘솟듯 나오는 사랑과 평화와 지순과 성결의 시를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저 떨어진 꽃에게 입을 맞추고 그 꽃을 고이고이 땅 속에 묻었다는 Sarojini naidu의 마음에서 참된 시를 볼 수가 있고, 또는 매에게 상한 작은 새를 위하여 자기 다리의 살을 먹였다는 Sibi Jataka의 왕에게서 거룩한 시를 볼 수가 있다.
 
10
시를 쓰고 시집을 발행하면서도 그의 마음이 흐리고 그의 머리가 검은 이는 결코 시인이 아니다. 진주같이 흘러가는 맑은 물에는 시가 있으니, 시인의 마음은 그 물과 같아야 할 것이다. 푸른 뜨락에 흘러 내리는 하얀 달에는 시가 있으니 시인의 마음은 그 달과 같아야 할 것이다. 숲 사이에서 곱게 우는 작은 새의 노래에는 시가 있으니, 시인의 마음은 그 노래와 같아야 할 것이다.
 
 
11
우리는 이제 시인의 생활을 보고 거기 열린 시미(詩美)의 세계를 보자.
 
12
나는 먼저 저 사랑의 시인 셀리(Percy Bysshe Shelley)를 생각한다.
 
13
셀리는 물을 비상히 사랑하였다. 그는 생애의 반을 물에서 보내었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때부터 물을 사랑하여 물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배를 띄웠으며, 종이가 없을 때에는 오십 파운드의 지폐로 배를 만들어 물에 띄웠다고 한다.
 
14
지중해에서, 피사해안에서, 제네바 호수에서 그는 배를 띄우고 하늘을 바라보며 그날그날을 지냈다. 창공의 구름을 보고 배밑에 물소리를 들으며 책을 보고 시를 쓰는 그에게는 배가 오로지 다시없는 낙원이었다. 그러나 물을 사랑하는 그는 필경 물에서 죽었다. 그의 시체가 피사 해안에 밀려났을 때, 그의 벗인 바이런, 토리로니 등은 그의 시체를 불에 태워버렸다. 그러나 놀라지 말라. 그의 몸은 모두 불에 타버렸으나 그의 심장 하나만은 타지 아니하고 소리치며 튀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하아트를 수건(手巾)에 싸서 그의 부인인 메리에게 보냈다고 한다.
 
15
사랑의 철학을 고조(高調)하고 풀과 나무와 하늘과 물을 영원히 사랑한 그는 세상에 다시 없는 열정가였다. 그의 하아트가 불에도 타지 않을 만치 그만한 강력한 사랑을 가졌던 사랑의 시인이었다. 불쌍한 거지를 만나 그는 그가 가졌던 여행비를 모두 주고 마침내 그 여행을 연기하였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을때 셀리의 그 고운 시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16
우리는 다시 목가시인 Merike를 생각하자. 작은 새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수평선 위에 떠도는 구름을 보며, 시를 쓰고 진리를 전도한 그의 고운 마음을……. 그는 그의 애인 페레그리나에게 들꽃과 시를 보내며
 
17
“사랑은 시와 같이 거룩하고 들꽃같이 순실(純實)하라. 네위에 하나님이 있느니라”하였다 한다.
 
 
18
이슬에 미소하는 들꽃을 보며
19
하나님 마음을 찾았었노라
20
이 몸에 버섯돋고 어둠이 와도
21
들꽃의 마음 속에 내 마음 있으리!
 
 
22
그는 자기의 처세관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시인의 마음은 얼마나 거룩하며, 그 마음에서 쏟아져 나온 시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23
우리는 다시 여러 시인을 생각할 수가 있다. 조국의 정신을 노래한 아메리카의 Walt Withman을, 혁명과 반역을 노래한 영국의 Byron을, 동방을 노래한 인도의 Tagore를, 우리는 그들의 마음에서 정열과 순실(純實)의 세계를 찾을 수가 있고, 따라서 하느님과 성주(聖酒)를 마시는 듯한 참된 기분을 엿볼 수가 있다.
 
 
24
이제 우리는 몇몇 시인의 시를 생각하고 따라서 그 위에 나타난 시미(詩美)의 세계를 보자.
 
 
25
늦은 가을 남겨놓은 슬픈 노래가
26
갈대밭 속에서 떠나지 않으니
27
친구여 쓰러진 갈대를 일으켜
28
물가에 울고있는 기러기를 날리자
29
     ─ William Butler Yeats
 
 
30
달이 밝아서 뜰앞에 풀 이슬을 웃기고 있으니
31
그대여, 그대의 뜰앞에도 달이 뜨거든
32
구슬 맺은 달이슬에 손을 대어서
33
한 방울을 가만히 받으며
34
멀리있어 못가는 내 눈물로 알으오
35
     ─ Novalis
 
 
36
하늘이 붉으며 아침 해가 뜰때에는
37
숲새의 작은 새도 날개를 틀며
38
장미빛에 높아지는 하늘을 향하여
39
즐겁다는 ‘그날’을 찬미합시다
40
     ─ Alfred de Musset
 
 
41
장미꽃을 꺽으니까 가시가 있고요
42
고운 달이 떠오르자 구름이 덮입니다
43
그러나 가시없는 장미에는 고운 꽃이 안피고
44
구름없는 하늘에는 달이 안 뜬다오!
45
     ─ Robert Burns
 
 
46
지새는 아침에 풀 이슬을 밟으며
47
밭과 논에 호미를 휘날릴때
48
풀벌레 조이삭에 하품을 하며
49
쭈쭈 찍찍 그네들도 노래합니다
50
     ─ Alfred P. Graues
 
 
51
산에 올라 풀피리에 노래를 높이며
52
바다 저 쪽 안개 묻힌 수평선을 보네
53
작은 배가 꿈같이 꺼졌다 잠겼다
54
우리 님 그곳에 가신적 없건만
55
어찌도 그렇게 그리운지요!
56
     ─ Shelly
 
 
57
우리는 이제 이러한 시를 읽어볼때 어떠한 마음을 가진다고 할까. 갈대밭에 흔들리는 가을호반에서 가엾은 생의 설움을 맛보는 그 마음도 알 수가 있고, 달 밝은 뜰 앞에 외로이 거닐며 풀 위에 내리는 이슬을 보고 멀리 간 님의 소식을 기다리는 그네들의 마음도 알 수가 있다. 아침날 붉은 그날을 위하여 힘껏 살고져 하는 생의 찬미나, 장미꽃에도 가시가 있고, 고운 달에도 구름이 있는 것 처럼, 세상의 모든 일은 뜻 같지 않다는 무상의 그 마음엔들 누구 아니 느끼지 않으랴. 그리고 순진한 농부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나, 멀리 바다를 보며 영원의 무엇을 동경하는 마음을 노래한 것이나, 어느 것이 우리 사람다운 울음이 아니랴. 우리는 그네들 시인의 마음과 그 네들의 노래에 의하여 인생의 미와 선과 진을 엿볼 수가 있고 그와 동시에 인생의 슬픔과 눈물을 생각할 수가 있다.
 
 
58
셀리는 바다를 보고 그 바다에는 자기의 사랑이 있다고 하였다. 인도의 사로지니 나이두는 흘러가는 달을 보고 그 달을 자기의 벗이라 하였다. 하이네는 별을 보고 그 별에게 자기의 설움을 통정 하였다.
【원문】시(詩)와 인생(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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