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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정당 수뇌 간담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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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10.15
여운형
1
각 정당 수뇌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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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환 : (발언생략)
3
최근우 : (생략)
4
양근환 : (생략)
 
5
여운형 : 최근우 씨 말씀도 계셨지만 오늘의 이 화합이 양(근환) 선생 개인의 주최이신지 또는 단체인지 이것을 묻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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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환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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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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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환 : (생략)
9
송진우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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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로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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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 (생략)
12
송진우 : (생략)
13
양근환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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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 주최자 측의 의도는 임시정부 지지문제 여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군이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하고 있으나, 이것은 그리 오래 가리라고는 생각 안 됩니다. 어제도 군정청에서 그네들과 만났지만 그네들도 이렇게 말합니다. 진주한 우리들은 미국사람이지만 이것은 4개국 대표로 온 것이다. 하루 바삐 국가를 건설해서 우리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미군이 고마운 손님이며 여기 와 있는 것은 좋을지 모르되 우리 살림은 우리 손으로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손님들이 하루 바삐 돌아가실 수 있도록 초당파적 견지에서 우리는 국가건설에 힘을 합하는 것이 오늘의 이 모신 이의 취지이지, 결코 정당을 통일하자는 것은 아닐 줄 압니다. 지금 송(진우) 선생 말씀에 지식 있는 사람을 외국에 파견하여 연구조사를 하게 한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매우 지당한 말씀으로 압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완성된 국가가 된 후에 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동일 민족 사이에서 더구나 국가 건설 도중에 국민대회를 두 군데서 소집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요? 중경에 계신 임시정부 선배들의 여러 가지 일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인민공화국을 조직하였다는 한 사람인 이 여운형이로서도 모든 것을 국민의 총의에 물어 하루 바삐 의견을 일치하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대회를 소집해야 임시정부를 지지하느냐, 인민 공화국이냐, 또는 새로운 무엇을 만들 것이냐를 국민의 총의에 물을 것입니다. 즉 최후의 재판은 반드시 국민이 내려야 할 것입니다. 무슨 주장이나 명령보다 지금이 조선에는 복종이라는 것이, 즉 결의에 따라간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대표가 뽑히든 간에 하루 바삐 국민의 총의를 듣는 것이 긴급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무슨결의라도 나는 것이 있다면 나는 여기에 절대 복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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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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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헌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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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 어저께 하지 중장을 만나니까 다른 말은 다 제쳐놓고 당신 일본사람한테 돈을 얼마나 받았느냐고 묻습디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얼른 대답도 못했습니다. 아주 액수까지 말합디다. 3백만원이라구. 그리고 민주당 성명서에도 나를 보고 일본 제국주의의 주구라니 말이 됩니까. 어떠한 의미로 하시는 말씀인지 모르나 조선을 사랑하는 동지로서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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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 : (생략)
19
최근우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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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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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헌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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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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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수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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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우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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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 임시정부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입니다. 여기 계신 최근우 씨나 조동호 씨도 그 정부조직의 내용을 잘 아시지요. 여기서 잠깐 그 경과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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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동경 유학생들이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도화선이 되어 이에 호응하여 상해에서 정부를 조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도 만주, 시베리아를 경유하여 상해로 갔었습니다. 거기서 정부로 하느냐, 의정원으로 하느냐는 것이 문제가 되었지만, 운영의 편의상 정부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국호는 뭐라 하느냐 하는 때도 여러 가지 설이 나왔었지요. 대한이냐, 조선이라구 하느냐, 또는 고려·동진, 이렇게 설이 구구했습니다만 잃어버린 한국을 다시 찾는다는 일본에 대한 정치적 의미에서 대한민국이라고 국호를 지었지요 . 그러한 경우 그런데 경성에 한성정부라는 것이 손병희 씨 그 외 동지로 성립되자 이것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가 되어 토의한 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해외에서 된 것이고, 한성 정부는 국내에서 13도 대표가 모여 그 총의로 된 것이라 하여 국내 동포의 의지를 존중하자고 한성정부를 상해로 모시어 받들었지요. 그랬는데 그 후 상해에서 만든 정부는 상해에서나 승인받았지 북경·시베리아·만주에서는 승인을 안 했습니다. 그리하여 정부의 개조파(改造派)가 생기어 창조냐 개조냐 하고 격론했으나 나중엔 피스톨까지 등장하였었지요. 그런데 만주·서간도에서는 이것을 승인하고, 이상룡 씨가 대통령 노릇을 하셨지만, 그 후에 헤어진 후에는 간판도 못 걸고 당시의 애국자로서 제1인자이던 노백린씨가 굶어 돌아가실 때에는 그이에게 밥 한 그릇 갖다드리는 동지 한 사람도 없었고, 돌아가신 후에는 중국 사람한테 돈을 빌려서 장례를 지냈지요. 시라카와(白川[백천]) 살해사건에 윤봉길 씨 이름이 퍼지자 중국 사람의 조선 사람에 대한 태도의 인기가 갑자기 달라져 극장 같은 데서까지 무료로 조선 사람을 입장시키곤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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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 : (생략)
28
최근우 : (생략)
29
송진우 : (생략)
30
최용달 : (생략)
31
송진우 : (인공을 배척하고 임정을 받들자는 요지의 발언)
32
최용달 : (생략)
33
양근환 : (생략)
34
김병로 : (생략)
35
이현상 : (생략)
 
36
여운형 : 남조선에 있는 일본군이 문제가 큽니다. 미군이 지금 각지에 진주 중이지만 그것 가지고도 모지라지요. 어제 군정청에 갔었을 때 본 일이지만, 조선의 생산기구 문제에 관한 포스터를 많이 놓았습니다. 거기에는 산 공장과 죽은 공장이라는 두 가지를 그려 놓고, 이 공장의 기능을 운용 발휘하자면 조선 사람은 기술이 없고, 미국사람은 수효가 적으니 일본 사람하고 일해야겠다, 공원들은 모두 나와 일하라고 되어 있더군요. 이것은 다행히 조선 사람들의 반대로 군정청도 즉시 그것을 찢어 불태워 버렸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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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 (생략)
38
김병로 : (생략)
39
일 동 : (생략)
40
송진우 : (생략)
41
양근환 : (생략)
 
 
42
(―《조선주보》, 1권 1호, 1945년 10월 15일)
【원문】각 정당 수뇌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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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운형(呂運亨) [저자]
 
  1945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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