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만나자 떠나고 떠나면 소식없는 순이(順伊)에게 ◈
카탈로그   본문  
1936.12
이병각
1
만나자 떠나고 떠나면 소식없는 順伊[순이]에게
 
 
2
칠년 전 일이니 지금쯤은 거의 잊혀지려는 때이다. 원망스러운 순이야 무엇하려 너는 모르고 지나가는 나를 따라와서까지 만나려 했으며 만나보고는 왜 또다시 떠나버리느냐 말이다. 네가 경성역에서 마지막으로 띄우고 간 편지를 받고야 네가 정말 서울을 떠나고 말었구나, 하고 나의 마음은 새삼스런 파도가 일어나고 있다. 너의 편지에는 가장 평온하고 냉정한 너의 심경을 말하였었다마는 낸들 어디 흥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냉정과 평온을 꾸미는 너의 마음은 어쩌면 흥분하는 나 이상으로 흥분하였을지도 모른다.
 
3
생각해 보려무나! 칠년 전 여름에 너와 내가 한 곳에 같이였다면 너는 서류만 넘어가고 나는 다른 동무들과 함께 송국되던 날이다. 이때가지 씩씩하게 굴던 네가 끌려서 나가는 나의 발목에 매여달여서 울던 그때 나는 사나이답게 너의 약함을 질책하고 노치잔는 너의 손을 뿌리치면서 늠름히 끌여 갔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울고 있는 너 이상 ― 안이 너는 울음이라도 울 수 있었다마는 나는 울 수도 없이 속으로 울었으며 그 속에서도 너를 그리워함으로서 다른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었섰다. 이 말은 너와 내가 친하게 지나든 가운데서도 나는 너에게 이야기하기도 헛섯다. 그해 가을이다. 다행이라 할까 불행이라 할까 기소유예로 나오게 된 나는 나오던 걸음으로 너를 찾었다. 집에 있지 아니하고 어느 일터에 가 있었으므로 나는 일터로 찾어가서 중학생의 정복, 정모로 여러 사람들이 둘러선 가운데서 너의 손목을 잡고 반기였으며 너는 소리를 내어가며 울지 않었나
 
4
그러던 우리가 그해 겨울 내가 소속되어 있던 청년동맹에서 너의 가맹권유를 나에게 명령하였다. 그때 너는 남의 권유가 아니면 가맹하지 않을 처지가 아니었고 너는 너의 소속된 여학생단체의 위원으로서 안팎 간에 너의 활동은 인정을 하고 잇던 차이라 말만하면 가맹하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말을 발언하였다. 그러나 순이야! 그것은 지금 생각하야도 의외였다. 가맹할 생각은 벌써부터 있었으나 나의 학비를 대이는 사람이 반대하니 하는 수 없다고 너는 나의 권유를 거절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나로서도 용량할만한 근거있는 이유일지 모르나 그때의 나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것이 위원회에서 문제가 되였으며 나와 너의 절교를 지시하였다. 나로서는 위원회의 지시가 아니라도 너와 절교를 할 작정이였었다. 그 후 사실을 자백하면 너가 관계하고 있던 여학생단체에서 너가 위원에 낙선되게 된 것도 나의 책동이였으며 내가 적을 두었던 단체의 영향으로 말미아마 일어난 일이였다 . 너와 나는 완전한 적이 되고 말았었다. 그 뒤에 너는 몇 번이나 너의 동무를 통하여 복교를 원하였으나 나는 종시 거절하였고 사실 단체의 명령이 없는 이상 불가능하였다.
 
5
몇 달이 지난 뒤에 나는 또다시 영오의 몸이 되었고 내가 그곳에서 놓여나오던 때는 그 이듬해 겨울 ― 음력으로 섣달 그믐적이였었다. 신경통으로 거의 반신불수가 되여 나온 나는 그날 밤차로 고향에 돌아가려던 때다. 그때 나로서는 정말 그리운 것이 고향밖에는 없었다. 조용히 쉬여 볼 생각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마음과 몸이 모다 피곤하여졌었다.
 
6
내가 고향 갈 채림을 하려 종로로 나가던 길에 견지동을 지나느랴니 너는 전찻길을 건너와서 나에게 매여달이지 않었나? 너로서도 그것이 마지막 용기였던 모양이였었다.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찾어갔으나 집에 있지 안하기에 못 만났다 하면서 저녁거리 행인들이 보고 있는데도 불고하고 울면서
 
7
「그저 죽여주세요.」
 
8
만 되풀이 하였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모다가 꿈이였다.
 
9
나는 울며 매여달이는 너의 손을 뿌리치고
 
10
「못된 계집애!」
 
11
한마디 말로 나의 갈 길을 걸어갔었다. 차디찬 전차길뚝에 쓰러져 우는 너를 돌아보지도 않고! 이것이 마지막이였었다. 그러한 뒤부터 나는 여러 해 동안 방랑생활을 계속하면서 해마다 섣달 그믐 날이면 너의 그 뒤가 궁금하였고 그리울 때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엇지 뜻하였으랴. 며칠 전 청년회관 압을 지나다가 너를 다시 맛날 줄이야! 너도 말이 없었으며 나도 말하래야 할 수 없었다. 양식집에 들어가서 서로 쳐다보기만 하고 밥도 먹지 않으며 묵묵히 앉었던 너가 마지막으로
 
12
「지금은 용서하였습니까」
 
13
하고 이말 한마디만 남겨놓고는 헤어지지 않었나.
 
14
나는 가끔 후회하고 있다. 떠나갈 줄 알았던들 나는 왜 너에게 너가 즐거워할 대답 한마디도 들려주지 못하였을까. 그리고 너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 것도 알아보지 못한 것이 다시 궁굼하며 안타까웁다.
 
15
지금으로부터 또다시 네가 나의 머리에서 사라지려면 몇 해의 지릿지릿한 세월이 흘러야 하겠느냐!
 
 
16
《女性[여성]》(1936. 12)
【원문】만나자 떠나고 떠나면 소식없는 순이(順伊)에게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수필〕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7
- 전체 순위 : 5592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1213 위 / 1809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이병각(李秉珏) [저자]
 
  여성(女性) [출처]
 
  1936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만나자 떠나고 떠나면 소식없는 순이(順伊)에게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2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