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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12
이병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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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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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누어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아내는 아내대로 동무 이야기, 활동사진 이야기 등으로 한참 짖거리다가 내가 들은 체만체 책만 읽고 있는 것을 알고 그냥 잠잠해버린다. 어느 때는 신문지를 덮어쓰고「비가 오시네, 비가 오시네」하면서 어리광을 떨다가 그냥 지쳐져서 잠이 들곤 한다. 아내가 잠이든 뒤 나는 그의 자는 얼굴을 내려다보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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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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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이면 아직 아버지와 어머니 무릎 밑에서 어리광이나 떨고 먹을 것이나 졸라대일 어린이, 학교를 갓 나온 열아홉 처녀로서 온갖 아름다운 꿈을 꾸어야 할 아내가 가난한 나를 따라 이렇게 남의 삭월 방구석으로 돌아다니면서 왼종일 고역살이를 하고 밤이면 고단한 잠을 자는 것. 더욱 해산할 달이 가까운 몸으로 한시라도 편케 누었을 여유가 없이 온갖 일을 혼자서 맡아본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을 지을 때면 구격이 맞지 않고 모자라는 것이 많은 살림살이라 부엌도 부엌같지 않고 밥짓는 솥도 솥같지 않아 도모지 불이 잘 들이지 않는데 연기를 마시고 눈물을 씻으면서 고생고생 밥을 짓는 것이라든지 저녁때 쌀팔러 갈 시간이 되면 전표와 쌀주머니를 가지고 싸전 앞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열에 끼여서서 기다리는 것 이게 모다 고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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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내는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오히려 기쁜 얼굴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모도가 애정의 힘임에 틀림없다. 애정을 위하여 모두를 버리고 애정을 위하야 모두를 바친 것, 이것은 한 개의 높다란 순교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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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도웁고 서로 강제하지 않고 서로의 결점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자기란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이 이것으로 가난하고 누추한 현실을 물리치고 싸워나가면서 아무런 실망과 불평이 없이 아름다웁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애정에 대한 탐구가 있었다면 학교에 다닐 때 읽은「아리샤」의 전설이었을 것이요 생활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면 요리시간에 배운 아름다운 소꿉장난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가장 로맨틱한 소녀의 꿈, 결혼 이전에 그의 눈에 비친 나는 아름다운 구름과 꽃을 노래하는 시인이었을 것이오, 생활이 너그럽고 현실에서 떠나 오직 정신을 높게 가지려는 청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렇던 것이 결혼한 지 일년 안에 그가 꿈꾸었을 나는 그의 꿈과는 전연 다른 것, 그날그날의 생활에 쪼들리는 가난뱅이로서 생활의 근거가 없고 현실에 휩쏠려서 시도 쓰지 않고 짜증과 담배로 일과를 삼는 어쩔 수 없는 망나니임을 알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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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이 나가면 밤이 늦어야 돌아오고 돌아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 담배만 태우고 밤을 새우는 것, 불규칙한 생활을 즐겨하는 못된 버릇, 가지가지 들면 한이 없을 만큼 나는 결점투성이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실망하고 환멸하는 빛을 보이지 않고 도로혀 내가 실망하고 기운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여 이따금 어린아이처럼 날뛰어서 간조한 분위기를 명랑하게 만들어 준다. 이래서 나는 아내를 가리켜 어른 같은 어린애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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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 한 해 전만 같어도 다른 사람과 내 자신이 알다시피 악마파에 가까운 사나이였고 형편 모르고 날뛰는 패기있는 젊은이였었다. 그렇던 것이 요즈음 나는 내 자신의 허무주의적인 것을 청산하고 무엇인지 모르게 안착되려는 경향을 발견하고 있다. 사는 보람이 있어 보일 것, 무서운 정신의 파탄과 방황 속에서 헤매이던 그때와 달리 분해해 버리려는 잠재의식을 찾게 되었다. 세계에 바치려고 몸을 제단에 올리던 사나이가 조고만한 한 사람의 여자에게 모두를 바치게 된 것, 생각하면 우스운 것 같아도 여기에도 무척 노력이 필요하였다. 어디에든지 바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것, 이 정렬을 방황시키기에 견디기 힘들어서 한 여자에게 바쳤다고 웃을 친구들도 있을 것이나 큰 것을 할 수 없으면 적고 값없는 대상에라도 생의 윤리를 얽매어 감에 나는 커다란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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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믿고 받들던 진리, 그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고 날뛰던 영웅적인 노력을 가지고 우리의 애정을 받들고 믿는다면 파탄이 없을 것을 생각한다. 천하의 동지들이 모여서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고르고다」의 저녁 무렵이라면 내가 그리스도가 아닌 범인이라도 나는 웃으면서 못을 박고 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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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여 우리에게 참되게 살려는 뜻을 저버리지 말고 행복 된 앞날을 주소서. 건너편 회나무가지에서는 부엉이가 울고 있다. 불길한 새인지 복을 가져오는 새인지는 알 수 없다. 달빛이 흘러 아내의 자는 얼굴을 새하얗게 비춰주고 있다.
【원문】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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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엉이 [제목]
 
  이병각(李秉珏) [저자]
 
  여성(女性) [출처]
 
  1940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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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2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