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광려귀래기(匡麗歸來記) ◈
카탈로그   본문  
1937.10.14
이병각
1
匡 麗 歸 來 記[광려귀래기]
2
― 잃어버린 故鄕[고향]을 찾아서
 
 
3
수나!
 
4
내가 열다섯에 故鄕[고향]을 떠나서 이날 수 ― 코스모포리탄으로 自處[자처]한지도 이로써 十年[십년]이 넘었소. 그러나 해가 거듭하고 철이 들면 들수록 故鄕[고향]은 어머니처럼 그리워지는 것.
 
5
이렇든 그리웁던 故鄕[고향]을 찾어서 길 떠나는 마음은 웬일인지 묵직한 짐을 지고 가는 것 같소.
 
6
수나! 나는 旅行[여행]을 싫어하오. 旅行[여행]에 對[대]한 倦怠[권태]를 가지고 있소. 그러나 故鄕[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故鄕[고향]엘 가기가 싫다는 것은 내 天性[천성]인 倦怠[권태]가 아니요. 그보다도 내가 찾어가는 故鄕[고향]에 對[대]한 나의 知識[지식]이 지나치게 徹底[철저]한 까닭이라고 생각하오. 그 곳에는 아무런 新奇[신기]도 없을게요. 내 知識[지식]의 圈外[권외]에 나설만한 事實[사실]이 하나도 없을게요. 내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는 故鄕[고향]일게요. 이렇게 보잘 것 없는 故鄕[고향]에로 내 天性[천성]인 旅行[여행]의 倦怠[권태]를 참어가면서까지 가기는 실소. 더욱 반겨주는 사람조차 없을 그곳일까!
 
 
7
공갈못
 
 
8
수나! 서울서 밤 열한時[시] 十五分[십오분] 南行車[남행차]를 타고 金泉[김천]에 내리니 뿌옇 ― 케 날이 새였소. 여기서 곧 慶北線[경북선]을 바꾸어 타고 그만 잠이 들어버리었소. 오슬오슬 찬 기운에 못 이겨 잠을 깨니 해가 떴고 안개는 걷히기 시작하였소. 車[차]안에 손님이 五六人[오륙인]밖에 없으니 쓸쓸하오. 더욱 늦가을 아침의 싸늘한 바람이 스며드오. 車[차]는 지금 크다란 池畔[지반]을 달리고 있소. 이 못이 有名[유명]한 尙州咸昌[상주함창]의 공갈못이요. 어느때인가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해 들리던 傳說[전설]의 못이요. 나는 이 못에서 蓮[연]ㅅ밥을 따던 처녀들의 로맨딕한 옛 이야기와 民謠[민요]를 되풀이해 보았소.
 
9
못기슭 갈대 그늘에 쪽배가 졸고 있소. 이것이 낚시배라면 이 못에 고기가 사는 것을 짐작할 수 잇소. 湖水[호수]를 보지 못하고 자란 나는 이렇게 큰 못을 보면 湖水[호수]인냥 생각되오. 안개가 자욱하여 저편은 보이지 않소.
 
10
그윽한 느낌이요. 어쩌면 神秘[신비]롭기도 하고…….
 
11
공갈못이 眼界[안계]에서 사라지자 車[차]는 다시 끝없이 넓은 벌을 달리고 있소. 보이는 것 모두 누렇게 익은 벼, 벼. 이슬방울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소.
 
12
이것이 慶北[경북]의 穀鄕[곡향]으로 이름난 尙州[상주]ㅅ벌이오. 때는 아침나절이 훨씬 넘엇는냥 普通學校[보통학교] 아이들이 車[차]에 오르니 車[차]안은 떠들썩해졌소.
 
13
車票[차표]를 調査[조사]하던 車掌[차장]에게 한 소녀가 問招[문초]를 當[당]하고 있소. 少女[소녀]는 울기만 하고 車掌[차장]은 욕을 퍼붓소. 事實[사실]을 알아보니 이 少女[소녀]의 동생이 定期乘車券[정기승차권]을 잊어버리고 車[차]를 탔는데 동생의 탈날 것을 볼 수가 없어서 自己[자기]의 乘車券[승차권]을 동생에게 빌려주고 自己[자기]는 車票調査[차표조사]에 걸리게 되였는 것이요.
 
14
그리하야 이 責望[책망]을 全部[전부] 自身[자신]이 떠맡어서 事實[사실]을 말하지도 않고 울고만 있는 것이오. 車掌[차장]은 少女[소녀]의 事情如何[사정여하]를 不問[불문]에 부치고 規定[규정]을 방패로 입에 못 담을 욕을 퍼부으며 少女[소녀]를 威脅[위협]하였소. 나는 車掌[차장]에게 어린이를 威脅[위협]하지 말어달라고 溫順[온순]한 交涉[교섭]을 해보았으나 車掌[차장]은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强硬[강경]할 뿐 아니라 語調[어조]가 제법 村官吏[촌관리]가 百姓[백성]을 對[대]하는 듯. 나는 그 少女[소녀]의 타던 곳에서 내릴 곳까지의 車票[차표]를 사서 少女[소녀]에게 쥐여주고 겁낼 것이 없다고 달래여주니 少女[소녀]는 아까보다 더 소리를 높여서 울기 시작하였소. 나는 옆에서 이것을 보고 섰는 車掌[차장]을 그냥 둘 수 없어서 그만 여러 어린이와 乘客[승객] 앞에서 前後[전후] 事情[사정]을 따지고 그의 沒人情[몰인정] 沒常識[몰상식]을 꾸짖어 주었소. 事理[사리]가 뚜렷하고 내말의 調理[조리]가 바른 탓인지 乘客[승객]들의 共鳴[공명]이 있어서 그로 하여금 少女[소녀]에게 謝過[사과]를 시켰소.
 
15
수나! 눈물겨운 일이오. 어린이들은 車掌[차장]을 대단히 무서워하였소.
 
16
그들은 家庭[가정]에서 아버지를 學校[학교]에서 先生[선생]을 車[차]안에선 車掌[차장]을 이렇게 무서워하며 자라나야만 할 것을 생각하니 나는 다음 停車場[정거장]에서 車[차]를 내리는 그들의 뒤 모양을 바라보고 눈어귀가 뜨까워졌소.
 
 
17
돌아온 不肖子[불초자]
 
 
18
수나! 나는 疲困[피곤]하여졌소.
 
19
열한時[시] ― 여기는 慶北線[경북선]의 終點[종점] 安東[안동]이요. 내가 서울서 車[차]에 올라 實[실]로 열두時間[시간]만에 내리였소. 점심때가 다 되었는데 아직 나는 얼굴도 씻지 못하고 車[차]안에서 자다가 일어난 채로 그냥 거리를 걷고 있소. 勿論[물론] 아침도 먹지 않었소. 그러나 조금도 시장한 氣[기]는 없고 그저 머리가 휭 나리쪼이는 가을 볕살에 눈이 시오.
 
20
나는 여기서 自動車[자동차]로 百餘里[백여리] 險路[험로]에 시달일 것을 생각하니 코에는 까소링의 야릇한 냄새가 숨어드는 것 같소.
 
21
내가 어렸을 때 이곳 普通學校[보통학교]엘 다닌 일이 있음으로 퍽이나 낯익은 곳이요. 뿐만 아니라 邑[읍]에서 멀지 않은 東[동]쪽 바로 洛東江邊[낙동강변]에 잇는 塔[탑]골이란 마을은 나와 퍽 因緣[인연]이 깊은 곳이기도 하오. 이 마을에는 新羅[신라]때의 큰 塔[탑]이 있소. 이 집 近處[근처]에는 無窮花[무궁화]나무가 둘러싸고 있는데, 내가 어릴 때 妹兄[매형]을 따라서 놀던 곳이요. 이 집 무궁화 씨는 누님이 나에게 보내주어서 우리 집 祠堂[사당]마당에 심어 두었소. 벌써 그것이 十五年前[십오년전]일인가보오. 이 塔[탑]골 마을에 東興講習所[동흥강습소]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때 敎舍[교사]로 쓰이던 집은 하루 밤 사이에 독갑이들이 지었다는 九十九間[구십구간]의 큰집이였소. 이 學校[학교]엔 故羅稻香[고나도향]이 先生[선생]으로 와서 있었소. 그리하여 이 學校[학교]에서 배우던 나의 妹兄[매형]은 稻香[도향]과 더불어 洛東江邊[낙동강변]을 거르며 춘원의 泗[사]자水[수] 노래를 부르던 것을 내가 보았소.
 
22
지금은 커다란 敎舍[교사]집만이 남아있고 稻香[도향]은 地下[지하]로 간 지 오래며 妹兄[매형]은 지금 東海岸[동해안]에서 金鑛[금광]을 하고 있소. 누님만이 이 마을에 남이 있음을 내 알기는 하나 時間關係[시간관계]로 찾아 뵈옵지 못하고 그 집 앞을 그냥 지나게 되오. 집엘 가면 어머님은 『너 누이를 찾어 보았느냐』하실테니 무엇이라고 대답할 지 미리 걱정이 되오. 여기서 自動車[자동차]로 왼 終日[종일] ― 午後[오후]네時[시]가 넘어서 집엘 到着[도착]하였소.
 
23
아버지의 수염은 퍽도 희여졌소. 아마 故鄕[고향]에 와서 내가 뜻하지 않었던 것은 아버지의 수염이었소. 七十[칠십]이 가까우신 아버지의 수염이 희다는 게 무어 異常[이상]하겠소.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客地[객지]에 쏘다니며 아버지의 수염에 對[대]하야서는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소. 實[실]로 不肖[불초] 莫甚[막심]한 아들이였소. 이러한 不肖子[불초자]는 지금 흰 수염의 아버지 앞에 꿇어앉아 그의 얼굴에 그려진 주름살을 살피고 있소 불초자 . 不肖子[ ]가 아버지에게 올린 것이라고는 銀行[은행]에서 얻어 쓴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소. 十年[십년]동안에 그 빚을 갚으려고 허우덕거리던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이 흰수염만을 쓰다듬고 계시오. 『큰 물건이 되리라』― 이것은 나에게 가지시던 아버지의 期待[기대]였소. 그러나 그의 앞에 지금 꿇어앉아 있는 子息[자식]은 벌써 옛날 아버지가 期待[기대]하시던 子息[자식]이 아니요.
 
24
오랜만에 돌아온 아들이 비록 不肖子[불초자]라 하더라도 귀여운 모양이요. 三年前[삼년전]에 아버지께서 不肖子[불초자]를 찾어 서울에 왔다가 하룻밤을 자고 떠나실 때 이야기를 생각하오. 七十[칠십]이 가까웁도록 한번도 서울을 와보지 못한 그가 모든 구경을 다 그만두고 다만 내가 다니던 學校[학교]구경을 하시였소. 『어떻게 생긴 學校[학교]기에 나를 이다지 괴롭히도록 가르쳐 주었나』하는 것이 아버지가 學校[학교]구경을 간 動機[동기]라면 수나! 그대는 웃어치우지는 못할게요. 이러한 아버지의 흰수염과 주름살 ― 그리고 어머니의 눈물. 나는 그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소. 내 어렸을 때 모양과 꼭 같이 생겼고 性質[성질]도 닮았다는 어린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고 어머니는 어렸을 때의 나를 아버지가 저렇게 귀여워하더니 오늘 와서 그 자식은 父母[부모]의 걱정을 시키는 不肖子[불초자]가 되였는지라 나를 닮았다는 조카만은 길을 잘 들여야겠다고 눈물 속에서 微笑[미소]를 띄우시였소. 그 微笑[미소]는 어머님의 조고만 幸福[행복]의 表示[표시]였소.
 
 
25
匡 麗 山[광려산]
 
 
26
秀那[수나]!
 
27
匡麗山[광려산]은 우리 마을 뒷山[산]이오. 이 山[산]허리에는 크다란 잔디밭이 運動場[운동장]처럼 널려있소. 여기에 앉어서 마을을 나려다보면 마을 가운데 일이 한눈에 보이오. 이 山[산]은 내 어린 몸을 길러주었고 내 어린 靈魂[영혼]은 이 山[산]에서 자라났소.
 
28
나는 이 잔디밭에 누어서 少年[소년]다운 온갖 空想[공상]을 푸른 하늘로 날개처럼 펼치였었소. 멀리 落照[낙조]를 바라보고는 하날 저편에 열려 있을 未知[미지]의 世界[세계] ―꿈의 나라를 憧憬[동경]하였었소. 내가 여닐곱살적이였소. 나는 아버지를 졸라서 그때 돈으로 四百兩[사백냥] ― 우리 故鄕[고향]돈으로는 이것이 八百圓[팔백원] ― 을 주고 빛깔이 흰 망아지를 샀소 그리하야 . 이 망아지에게 各色[각색]치장을 시키고 우리 우리 先祖[선조]때부터 내려오던 馬具[마구]를 입혀가지고 이 잔디밭에 나와 함께 뛰놀았소.
 
29
망아지와 뛰놀다가 疲困[피곤]하여지면 망아지를 放牧[방목]해놓고 나는 잔디밭에 누워서 渭水[위수]가 동쪽으로 흘러서 어느 바다에 들어가는가를 생각해 보았소. 그리고 史略[사략]에서 배운 伏義氏[복의씨] 神農氏[신농씨]들의 갸륵한 造化[조화]에 感激[감격]해 보았소.
 
30
저 서쪽 하늘이 닿는 곳 ― 저 누런 구름이 뜬 곳엔 여기서 멀다는 西天西域國[서천서역국]과 “뽕나무쟁이”라는 곳이려니. 망아지가 자라서 駿馬[준마]가 되려면 나는 말을 타고 그곳에 가보리라 하였소.
 
31
이렇게 공상을 하다가 망아지가 제대로 달아나면 망아지를 찾어서 온 산과 온 들을 헤매였소. 한번은 망아지를 찾어서 五里[오리] 남짓한 물건너 마을엘 갔다가 해는 저물고 망아지의 간곳은 알 수가 없었소. 집은 千里[천리] 바깥에 있는 것 같고 해가 저물어 어두우니 어린 마음에 그만 길가에서 울고 섰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끌려서 집에 돌아온 일이 있소. 어떻게 기막히고 슬프던 일이었든지 지금도 해가 저문 뒤에 길을 거르면 반듯이 그 때 일이 생각나오.
 
32
내가 일여덜살 되여서는 이 잔디밭에서 “杖[장]”을 치고 자라낫소. “杖[장]”이란 것은 지금의 “골프”와 같은 것인데 “杖[장]방울”이라 하야 솔공이로 만든 공을 杖[장]채로 때려서 勝負[승부]를 다투는 내기요. 이것은 다른 곳에도 있었는지 모르나 그때 나에게는 唯一[유일]한 運動[운동]이였소. 날마다 공에 맞어서 얼굴이 부르트면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담터진 구녕으로 집엘 들어가서 숨었던 것이오.
 
33
나는 오랜만에 故鄕[고향]을 온 김이라 나를 이렇게 키워준 匡麗山[광려산] 잔디밭에 올러왔소. 들에는 五穀[오곡]이 익어서 누런 방석을 덮었고 마을 앞을 둘러싼 屛風岩[병풍암] 絶壁[절벽]에는 돌옷이 빨갛게 丹楓[단풍]들었소. 마을에 煙氣[연기]가 자우룩한 저녁물 망아지 소리는 들을 수 없고 어디서 송아지가 우오.
 
34
저기 우리 집 뒤 안에는 감(柿)이 붉게 익었구려.
 
35
나는 여기서 내 어렸을 때의 일을 생각하고 다시 어느 때 누워볼지 모르는 옛날의 그 잔디밭에 누워서 하늘을 치어다 보오. 산도 그 산 하늘도 그때처럼 푸르고 落照[낙조]도 옛날 그 落照[낙조]요. 그러나 여기에 누워서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나는 옛날 그 少年[소년]이 아니오. 망아지도 지금은 누구의 손에 팔려가서 어디서 어떻게 늙었는지 알 길이 업소.
 
36
제법 컴컴하게 저물어 산을 나려서 집엘 돌아와 보니, 나의 방문 위에 새까맣게 거른 立春[입춘]종이가 문득 눈에 뜨였소.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어렸을 때의 내 글씨로 『倚汝千里駒[의여천리구] 何必待加鞭[하필대가편]』이라고 쓰여있소. 이것은 내가 아홉 살 때 나를 몹시 사랑하는 伯父[백부]께서 이글 한 句[구]를 지어주었다 하여 그 뒤부터는 立春[입춘]날 늘 나의 방문 위에 이글 한 구를 써서 부치기로 習慣[습관]이 되였던 것이오.
 
37
생각하면 눈물겨운 일이요. 千里駒[천리구]와 같았던 조카는 오늘날 凡俗[범속]한 젊은이로 아무것도 못가지고 故鄕[고향]에 돌아왔는데 이 글을 지어주신 鶴髮[학발]의 伯父[백부]께서는 빈손으로 돌아온 족하를 어떤 心情[심정]으로 맞이하였겠소.
 
 
38
잃어진 고향
 
 
39
『나의 슬픔과 즐거움은 내가 故鄕[고향]을 思慕[사모]하는 마음 가운데 숨어있다.』
 
40
秀那[수나]! 푸 ― 쉬킨은 偉大[위대]한 詩人[시인]이였소. 그리고 故鄕[고향]을 사랑하며 그리워할 줄 알았소. 詩人[시인]으로서의 푸 ― 쉬킨과 나와는 하늘과 땅의 差[차]가 있으나 故鄕[고향]을 思慕[사모]하고 사랑하는 마음에 있어서는 나도 그에게 지고 싶지는 않소.
 
41
秀那[수나]! 내가 故鄕[고향]이 그립다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면 그대는 나를 어린 아이 같다고 비웃어 주지 않었든가.
 
42
눈물을 빼앗긴 사나이였건만 故鄕[고향]을 爲[위]해서는 울어도 보았소. 그러한 思慕[사모]가운데는 故鄕[고향] 또한 나를 사랑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던 까닭이요. 그래서 나는 어머니 품안을 그리는 어린 아이의 어리광도 가질 수 있었소.
 
43
그러나 秀那[수나]! 故鄕[고향]은 웬일로 나를 쌀쌀하게 對[대]하야 주었소.
 
44
꿈에도 잊어본 적이 없던 나의 故鄕[고향]은 나를 敬遠[경원]하오.
 
45
얼음보다 더 싸늘한 觸感[촉감]!
 
46
어머니 품안과 같다던 故鄕[고향]이 왜 이리 차디차오? 나는 永遠[영원]한 뽀헤미안이오. 옛날에 나를 사랑해주던 老人[노인]들마저 그들의 쌈지주머니를 뒤지러온 專賣局官吏[전매국관리]처럼 對[대]해주오. 같이 자라나던 옛 동모들은 그들의 去來[거래]하는 장사치보다 더 凡然[범연]하오. 낯모를 어린이들은 저이가 『누구의 아저씨란다』하고 수군거릴 따름이요.
 
47
나는 故鄕[고향]을 정말 잃어버리었소. 鄕愁[향수]는 他鄕[타향]에서보담 故鄕[고향]에 돌아오니 더해지는 것 같소.
 
48
지금부터는 어느 편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고 어디를 그리워해야 될지? 나의 鄕愁[향수]는 對象[대상]을 잃은 채 永遠[영원]히 彷徨[방황]할게요.
 
49
그러나 秀那[수나]! 이처럼 쌀쌀하고 이처럼 나를 敬遠[경원]하는 故鄕[고향]을 원망하지 않으려오.
 
50
그리고 잊어버리지도 않으려로. 어떻게 원망하며 어떻게 잊어버린단 말이요.
 
51
그가 나를 멀리하면 할수록 나는 그를 갓가흰수염 할테요. 他鄕[타향]이 나를 반기여 준다면 그것은 나를 미워하기爲[위]한 準備[준비]일 것이며 故鄕[고향]이 나를 敬遠[경원]한다면 그것은 나를 사랑하기 爲[위]한 準備[준비]일 것이오.
 
52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어렸을 적 어머니 등에 업혀서 듣던 여름 저녁 매아미 노래는 아직도 저 대초나무 기지에서 들려오는 것 같소.
 
53
동쪽 두던 밤나무 사이에서는 옛과 다름업시 가을 벌레들의 우름 소리가 들리고 있지 않소? 屛風岩[병풍암] 그 바위도 옛날 그 바위 石浦川[석포천] 맑은 물에 옛고기 그대로 헤엄쳐 놀지 않소? 어린 魂[혼]이 기리워진 곳! 이것은 永遠[영원]한 어머니오.
 
54
나는 約束[약속]한 時日[시일]을 옛 산과 옛 물에 안겨 있다가 또다시 이곳을 떠나야 하오. 큰길가엘 나가려면 十里[십리]를 걸어야 하고 아침 일찍이 떠나는 自動車[자동차]를 가야함으로 새벽에 떠나야 하오. 더운 국물이라도 많이 먹고 가거라. 어머니는 나의 밥상머리에서 눈물을 지우시고 아버지는 『世情[세정]이 들어라. 世情[세정]이 들어라』당부하면서 旅裝[여장]을 챙겨주었소. 늦은 가을 새벽안개는 짙어 보이기도 하오.
 
55
감나무 잎사귀는 이슬이 무거워라 투닥투닥 떨어지는구려.
 
56
안개 속에 잠든 마을을 남겨놓고 떠나는 마음은 쓸쓸하오.
 
57
(了[료])
 
 
58
《朝鮮日報[조선일보]》(1937. 10. 14)
【원문】광려귀래기(匡麗歸來記)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수필〕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17
- 전체 순위 : 2816 위 (3 등급)
- 분류 순위 : 395 위 / 182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1) 부록
• (1) 매천야록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광려귀래기 [제목]
 
  이병각(李秉珏)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7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광려귀래기(匡麗歸來記)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2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