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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경기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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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2
여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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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기행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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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가 나에게 동경, 대판 등지에의 여행을 권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벌써부터 신문 경영의 중요한 경제적 공작으로서 주요한 광고주의 방문 계획을 세운 신문사는 동경을 위시한 중요 도시에서 이 계획을 수행키 위하여 나에게 필요한 사무적 여행을 요구하여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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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반의 정치적 정세에 대한 고려도 있었거니와 내가 정치인으로서 일찍이 이와는 판이한 입장에서 찾아갔던 그 땅을 밟기를 쉽사리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러한 고려도 그대로 용인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적어도 그것이 부자연한 태도인 것이 반성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그를 지배하는 환경의 제 조건에 대하여 자유롭고 신축성 있는 적응의 힘을 가질 줄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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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나는 3개년 간을 두고 현안이 되어 왔던 그 여행을 쾌락하고 일개 상인의 자격으로 나의 생애에 다양한 인상과 감명을 남겨준 그 땅에 세번째로 발을 딛게 된 것이다. 최초는 25,6년 전에 일개 야구선수로서, 그 다음에는 3ㆍ1운동의 고조된 동요가 전국을 휩쓸던 때에 일개 정치인으로서 그 땅을 방문한 일이 있는 나에게 이번은 실로 세 번째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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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명은 물론 순전히 상업적 사무로서 광고주들의 초대에 응한 것에 불과하였다. 신문의 광고 효과를 선전하고 동경, 대판 등지의 상인들에게 우리 신문의 지면을 통한 광고를 권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동경, 나고야, 대판의 3대 도시에서 열린 광고주 초대연을 통하여 이 사무적 직책을 다하느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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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무적 임무를 위하여 다소간의 날짜를 머물지 않을 수 없었던 이곳이 고국에서 유랑해 가 있는 수많은 형제들의 거류지인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던 나는 출발할 때부터 이 여행을 통하여 수행된 다른 한가지의 일을 스스로 마음속에 계획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들 각지의 재류 동포들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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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3주간에 달하는 여행을 다 마치고 귀로에 올랐을 때에 나는 이 말하자면 부대적 계획을 가지고 갔던 것을 마음속으로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류 동포들의 방문은 그렇게 나에게 교훈적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쓰는 짧은 수기는 내가 얻은 유형무형의 깊은 교훈과 감동에 비할 때 극히 단적이고 부분적인 묘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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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생활의 철편(鐵鞭)에 몰려 현해탄을 건너기는 하였으면서도 이곳의 노동시장에 흘러들어가 있는 조선인 노동자는 그 생활에 대한 태도, 그 가지고 있는 인생관, 세계관에 있어서 아직도 아시아적 농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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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기를 통하여 그들에게 그렇게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굴욕의 멍에를 씌어오던 온갖 풍습과 그들의 황당한 미신, 몽매한 무지가 보장하여 온 가지가지의 무의미한 관습과 의식의 전 계열의 어느 하나이나마 그들은 버리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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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사람이 죽으면 순 조선식의 상여를 매고 '저 건너 북망산'의 몇 세기를 통하여 변하지 않은 조선식 만가를 부르며 전차와 자동차가 오가는 근대적 포도를 태연하게 정거장이나 혹은 항구를 향하여 행진하고, 거기서 그들은 시체를 고향의 묘지로 운반하기 위하여 혼례가 있을 때에는 역시 그들의 고향에서 그렇게 좋아 보이던 고래의 풍습은 한 번 더 시험하고 맛볼 좋은 기회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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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관대를 한 신랑과 족두리를 머리 위에 얹은 신부를 중심으로 한 순 조선식 결혼 행렬의 일대가 그들 X(일)인의 호기심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에게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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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곳 근대적 대도시의 한 모퉁이에 그 특이한 존재를 주장하고 있는 이 ‘조선인 거리(鮮人街[선인가])’에 볼 수 있는 이러한 옛 생활 양식의 강렬한 잔존은 결코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왜곡된 문명의 오히려 가장 일반적인 특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골드의 ‘돈 없는 유태인’을 읽은 사람은 아메리카의 노동시장으로 몰려간 중국과 각국의 농민들이 뉴욕의 한 모퉁이에 형성하고 있는 극히 뒤떨어진 농민적 생산양식에서도 용이하게 ‘센징마치(조선인거리)’의 미국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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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만일 이 ‘조선인거리’에 다만 이러한 뒤떨어진 옛 생활양식의 기묘한 지배만을 보았다면 나의 관찰은 확실히 불확실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곳에 이미 수십여 년의 광휘 있는 역사를 가진 진보적 노동운동과 그 운동의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헌신과 희생을 주저하지 않았던 선구자들에게 조소의 대상이 되더라도 나는 일언반구도 항의할 권리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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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생활습관에의 집요한 그들의 애착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머물러 있는 조선 민중은 확실히 진보적 운동의 광범한 저수지였다. 최근 이곳의 좌익운동에 있어서 조선의 노동대중이 표시한 한두 가지가 아닌 히로이즘은 그들의 강렬한 정치적 의욕과 자체의 역사적 사명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의 좋은 예증이었으며, 또 조선의 사회운동사에 남긴 재류 조선 노동운동의 XX한 XX과 역사적 역할은 그들의 이곳 노동시장에의 유입이 다만 이곳의 자본가에게 값싸고 저항력 없는 노동력만을 제공한 것이 아님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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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조선인거리’를 찾았을 때도 이러한 진보적 정신의 맥박은 이 악취가 코를 찌르고 위생시설이 도무지 없고 기묘한 옛 생활관습이 완강히 잔존하고 있는 거리의 이곳저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 땅을 풍미하고 있는 파쇼적 XX과 모든 진보적 운동의 완전한 지하적 잠복의 정세는 이 조선인 사회에도 그 특수한 표현을 발견하여 내가 접촉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생명 있는 전체의 편린적 표현에 불과하였으나, 그래도 나는 XXXXX 질식할 듯한 그들의 참담한 생활을 꾀고 흐르는 XXXXXX 광선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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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생활에 미래를 약속하는 이러한 진보적 동향과 아울러 오직 노동대중을 지배계급을 위하여 또는 지도자들의 도량이 대중을 괴롭게 하고 있는 것도 물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조선인 대의사(국회의원)의 선거를 위하여 광범한 노동대중을 이용해먹은 XXX(박춘금)을 비롯하여 실로 다종다양한 XX적 여러 집단이 그 집아(執牙)를 벼르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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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날이 그 자신의 계급적 지위와 역사적 사명에 눈뜨기 시작한 대중은 더욱더욱 이들 가증한 무리에게서 자신을 방어할 현명과 예지를 배우고 있는 것도 나는 그다지 곤란 없이 인정할 수 있었다. 내가 담화를 같이 나눌 수 있었던 몇 사람의 꼭 같은 나에게의 부탁은 무엇보담도 이들 비열한 XX배의 폭로와 박멸을 위하여 우리의 신문이 일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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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문준 씨의 노력의 결정인 《민중시보》와 같은 진보적 신문이 이미 그들의 사이에 광범한 침투력과 영향을 획득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나, 그래도 조선에서 발행되는 일간신문의 그들을 위한 진보적 역할의 가능성은 실로 무한에 가까운 것임을 나 역시 맘속으로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는 바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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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대중과 아울러 이곳에 가 있는 조선 사람에 유학생들이 있다. 나는 그들의 일반적 동향을 주로 동경에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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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유학생이란 것은 조선의 모든 진보적 운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3ㆍ1운동 전후의 저 낭만적 계몽기에 있어서, 또 그 뒤를 이은 사회주의의 성장기에 있어서, 또는 최후의 사회주의의 노동자 대중화……있어서 동경 재류의 조선 학생 대중은 실로 후세사에 남길 만한……공적과 역할을 수행한 것이며 조선 지식계급의 모든 진보적 운동을 위하여 동경 유학생계는 확실히……온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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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금후의 그들에게 기대되는 것도 결코 과거 그들의 선배가 남기고 간 XX에 지지 않을 만큼 중대하고 광휘 있는 것임을 믿는 나는 이러한 의미에서 많은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그들을 대한 것이었다. 내가 이번 여행을 통하여 직접 대할 수 있었던 것은 일부분의 학생들에 지나지 않았으나, 일부와의 접촉과 교담(交談)을 통하여서도 일반적으로 전체 동향의 주요한 제 경향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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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유학생계를 확연히 양대 진영으로 분할하는 하나의 선이 있었다. 그 선이란 표현의 막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진보적 운동에의 지식인적 의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이 굵은 선을 중심으로 하여 학도와 노는 이의 양대 분야로 나누인 것이 동경의 조선 유학생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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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시민적 학문이 젊은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의 권외로 쫓겨 간 지는 이미 오래다. 그러나 학교가 가르치려는 정통적 학문이 한가지로 동경에 가 있는 조선 유학생들의 무관심한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하여 그대로 그들 전체가 학문 일반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태만하다고 속단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중략) 내가 접촉하고 이야기를 같이 한 학생 제군은 주로 전자의 진영에 속한 청년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도 전반적으로 냉정한 정체적 기분의 일반적 지배가 느껴지는 것은 나에게 마음 괴로운 일이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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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대신에 보다 더 견실하고 침착하고 집요한 저력이 그들의 동정에 느껴지는 것은 심히 고마웠다. 이러한 변화는 물론 객관적 정세의 변화가 그들에게 요구한 적응의 새로운 형태일 것이다. 그리고 더욱이나 금년 초 이래로 그들 사이에 새로운 노력을 발견할 수 있음도 무던히 기쁜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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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들 학생 제군 이외에 수인의 성실한 청년 학구자를 동경에서 만날 기회를 가졌었다. 그 중에는 벌써 조선 역사에 관한 그 처녀 업적을 이곳과 조선의 XXX 대중 앞에 선보인 유능한 청년학도도 있었으며, 또 오랫동안 영어(囹圄)의 고통에 시달리던 병약한 몸으로 조선의 제 문제에 대한 진보적 견해의 노작을 진보시키고 있는 약속 많은 젊은 학자도 있었다. 진보적 입장에 선 문학비평가도 있었다. 이들 수효는 적으나……오늘의 조선의 문화를 위하여 확실히 약속하는바 많은 귀중한 우인들과의 접촉은 확실히 나의 이번 여행의 중요한 수확의 하나인 줄 믿는다. 그들의 부탁은 주로 우리가 계획 중인 중앙학단에 관한 것에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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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나는 고도 나라(奈良[나량])의 여자고등사범학교에서 배우는 일단의 여학생들과 만날 기회를 가졌다. 그들의 여성다운 예민하고 순결한 감정에 시대의 선풍이 던져주는 파문이 상당히 심각한 것임을 발견한 것도 나에게는 감명이 깊었다. 나는 조선의 젊은 지식 여성의 임무와 사명에 대하여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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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제4권 2호, 1936년 2월호)
【원문】동경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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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운형(呂運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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