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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야장(秋夜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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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9월
김상용
生活(생활)의 片想[편상]들 (人物[인물]잇는 가을 風景[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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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夜長[추야장]
2
(人物[인물]잇는 가을 風景[풍경])
 
 
3
上[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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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인생]이 一場[일장]의 헛된 꿈이라” 슬픈 노래로 부르지 말라… ― 롱펠로
 
5
그는 星座[성좌]에 십자로에서 대담히도 이러한 ‘생의 철리’를 獅子吼[사자후]하고 시장거리 거리에, 장미송이를 뿌렷엇다. 나는 지금 너무나 씩씩하든 그의 철혈의 심정을 부러워한다.
 
6
범(虎[호])으로 알고 獵夫[엽부]가 시위우의 살(矢[시])을 노앗을 때, 시위를 떠나 달린 살은 굳은 바위를 뚤엇엇다. 한다. 신념은 마침내 못하는 것이 없다. 수령길이라도 ‘신념의 발’은 마마 반석의 固[고]로 걸어갈 수가 잇을게다. 그 근원이 우둔에 잇건, 예지에 잇건을 구태어 물어 무엇하랴?
 
7
지난 밤은 할 수 없는 가을인 밤이엇다. 밤이 맑앗엇고, 쌀쌀할 만치 밤이 서늘햇엇고 하늘에 별이 참 만핫엇고, 별들이 어찌나 내게 가까운지 몰랏엇다. 바람이 좀 산들거려, 나무닢엔 소리가 잇엇다. 이밤에 내 뜰에서도 이 철의 감상인 귀똘이가 울엇엇다. 똑 한 놈이 컴컴한 뜰 한 구석에서 유난히 잘 울어주든 것을 생각한다. 반디ㅅ불같이 내 청각에 그 소리는 밝앗엇다.
 
8
내 무슨 ‘쇼―펜하우어’의 五味子湯[오미자탕]을 음미한다거나 ‘가비라’왕자의 得覺[득각]의 오뇌를 발효시키려 한다거나 하는 분외의 자부에서가 아니라 하여튼 창틀에 몸을 의지한 채 한참이나 잠이 안들고―혹 못들고―귀똘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잇엇다. 아츰이 되어 금속성의 햇볓이 섬돌 우에 잇엇다. 자연 나는 지난 밤 한 놈의 귀똘이가 울던 뜰구석을 바라본 것이다. 화초포기에 이슬이 매쳐 잇다. 귀똘이는 아니 운다. 화초포기를 뒤진대도 귀똘이가 무얼 잇겟는고?
 
9
지난 밤 유난이도 잘 울든 귀똘이는 그저 하로의 가을밤을 그것도 이상하게 내 뜰 한구석에 와서 울다 간 것이라 나는 그저 그러케 생각해 버린다. 지난 밤엔 분명히 들린, 그러나 지금엔 분명히 아니 들리는 귀또리소리! 현실이란 무엇? 또 꿈이란?
 
10
淑[숙]은 5일 전 일말의 연기로 스러젓다. 남같이 배호고 남같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살아보랴 끔즉이도 애를 쓰든 그는 지금에 조고만한 상자에 담긴 한줌의 재로 변해 納骨室[납골실] 아마 어느 음암한 層架[층가]두에 언처 잇으리라. 7년 전 그가 날새게도 필기장우에 펜을 달리든 일을 나는 기억한다 그의 두 눈은 . 희망에 빛낫엇다. 또 그는 일주일 전까지도 그의 스승에게 그의 친구에게 그의 격거온 고생 설음을 말하고 다시 이러나면 쓰라린 채로 생의 길을 걸어보겟노라 하지 안헛는가? 그러나 지금 그는 없다.
 
11
꿈은 이 시초가 아련한 만치 그 깬 뒤의 공허도 그저 아련하다. 북소리가 끗치면, 그 뒤의 적막은 더 크듯, 현실의 꿈은 깬 뒤 그 공허가 더 크도다. 이 아츰, 또 다시 한 수의 〈루바이얕〉을 읽어 보랸다.
 
 
12
해뜨자 천 송이 꽃이 피는 곳, 저 보오 천 송이 꽃이 덜엇오. 첫녀름 薔薇[장미]의 철이 지나면, 꽃은 덧나니 英雄[영웅]도 가오.
 
 
13
下[하]
 
14
‘터머스·하―디’는 명상속에 인생의 암흑을 응시한 시인이다. 그는 인생의 숙명을 그렷다. 운명의 심술구진 作戱[작희]를 人意[인의]가 어찌 못 할 때 우리는 그 비극에 오열할 뿐이다. ‘하―디’는 이런 것을 그렷다. 하―디의 작품에서 우리는 여러 불상한 인물을 찾는다. 더욱 숙명에 철궤에서 우는 수다의 여성, 그들의 생애에 대해 우리는 허공을 향하고 주먹을 두르리라.
 
15
‘테스’를 보라, 또 ‘앨리스’는 어떠한가? 그들은 明敏[명민]하엿다. 덕이 잇엇다. 유순하고, 달같이 둥글기까지 안햇는가? 그들은 기어코 복됏어야 할 여성들이다. 그들은 세상에 대해 선의 밖에 가저본 것이 없엇다. 침묵과 인고속에 약한 몸에 나려지는 쇄챗죽을 울엇을 뿐이다.
 
16
그러나 그들의 생은 너무 고달팟다. 검은 旗[기]발이 감옥 첨루우에 날린 때, 살인녀의 죄목을 입고 ‘테스’는 絞首臺上[교수대상]의 이슬이 되엇다. 달려든 애욕의 풍랑을 피하랴 피하랴 백방으로 ‘치’를 돌려도 ‘앨리스’는 기어코 最愛[최애]의 그사람을 일코 동생의 애통하는 영을 구치 못하엿다.
 
17
우리는 솔직하게 우리가 이해치 못할 망막한 피안을 인식할 것이 아닐까. 우리 의도의 연당은 몇 평이나 되는지 그 의도를 조소하는 ‘大意圖[대의도]’의 영해는 너머나 아득하게 천외에 浩浩[호호]하다. 대의도는 그저 운명의 줄을 작란해 본다.
 
18
淑[숙]의 생도 그러하엿을 뿐이라 한다. 나는 그의 생이 그저 숙명적이엇든 것인 밖에 달리 이해할 도리가 없다. 숙의 생을 적는 것이 차라리 부지러운 짓일지도 모른다.
 
19
숙은 산골에서 낫엇다. 여름이면 강냉이와 감자와 비탈 채마밭에 자라고 밤에 부엉이가 우는 그러한 산골이엇다. 아즉 어렷을 때 숙은 남다른 비극 속에 먼저 아버지를 뒤니어 어머니를 일헛엇다 한다. 薔花[장화]에 紅蓮[홍련]이가 잇듯 숙에겐 여동생 하나가 남엇엇다.
 
20
천애에 내쳐진 두 고아를 거두어 줄 뿐으론 숙의 임종을 지켜준 당시도 이미 60을 넘은 홀할머니가 게섯을 뿐이다. 이 홀할머니 손에 숙과 숙의 동생은 귀엽게, 그러나 설업게 길렷엇다. 어찌어찌 숙은 보통학교를 맛치고 耶蘇敎[야소교]에서 심령의 안위를 얻엇엇다. 숙은 拔群[발군]의 총명이 잇엇다. 이 총명 덕에 H여고를 맛칠 수 잇엇고, 이에 E전문학교로 배움의 길을 찾게 되엇다. 부족한 채 내가 6년간 그의 스승이 되엇든 것도 이때다.
 
21
빈색햇든 숙의 집―아니 숙의 몸은 모든 學資[학자]를 공화간 남에게 빌 밖에 없엇다. 이런 경우에 맛보는 심령의 괴로움을 경험한 이는 알 것이다. 숙은 한껏 괴로웟다. 그러나 맵고 명랑한 기질의 숙은 그저 웃고 학업을 맛젓엇다. 이제는 숙의 전도에 빛나는 희망이 잇엇을 뿐이다.
 
22
학창을 나와 숙은 몇 해의 교원생활, 모교의 사무원, 마지막으로 某[모]여성 기관의 간사직을 지냇엇다. 그는 절약에 절약을 더하엿다. 전차탈 길을 것고 끼니를 걸른 적까지 잇엇다 하다. Y사무실에 다닐 때 점심때면 무엇인지 제혼자 도라앉어 먹는 체 해서 그 끼니를 넘기드란 말을 나는 숙의 어느 선배에게서 들엇다.
 
23
숙은 얼마 못되는 수입에서 기여코 얼마간에 저축을 하엿다. 이야말로 피와 땀의 모딤이든 것이다. 숙은 마침내 혼인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나아 일반부녀의 길을 밟앗다. 잠시나마 그는 여성으로 갖는 어떤 만족감을 가젓엇을 것이다.
 
24
그러나 숙에겐 복이 없엇다. 차차로 숙에겐 경제적 궁핍이 오고 慘感[참감]이 오고 건강의 쇠퇴가 왓엇다. 한때 개랴는 희망의 하늘엔 다시 검은 구름이 덮이든 것이다. 초조할스록 숙의 병은 더 하엿다. 살아보겟다는 의욕은 강하나 초ㅅ불은 바람앞에 흔들리고 잇엇다.
 
25
첫 참감뒤에는 아이가 마자 병들고 숙이 戶庭出入[호정출입]을 겨우 할 때 부군마저 자리에 누어 인사를 차리지 못하엿다. 돌봐주든 친척도 그의 옆을 떠나고 심부름할 사람도 이 집을 시려하엿다. 숙은 군소리만 하는 남편을 옆방에 그리고 숨지는 己出[기출]을 품에 안고 이틀밤을 세웟다 한다.
 
26
그후 남편은 치료차로 향리로 가고 숙 혼자서 돌바주는 이 하나 없이 횡한 집에 남아잇엇다. 숙은 이런 사정을 아모에게도 알리랴 하지 아니하엿다. 숙은 이때 死[사]를 결심햇엇다 한다. 그의 조모가 어찌어찌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오기 전 삼일간 숙은 기동도 못하고 혼자 굶은 채 이 집을 지켯엇다.
 
27
며칠후 숙은 길이 세상을 떠낫다. 긴 가을밤, 나는 가엽슨 숙의 일생을 슬퍼한다.
 
28
權顯[권현]의 빛남, 勢力[세력]의 자랑,
29
美[미]와 富[부]의 이루는 모다가
30
避[피]치 못할 한때만을 기다려……
31
榮光[영광]길은 무덤으로 가도다.
 
32
―터머스·그레이
 
 
33
(「東亞日報[동아일보]」, 1937년 9월 11, 14일)
【원문】추야장(秋夜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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