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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엽토만어(獵兎漫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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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1월
김상용
生活(생활)의 片想[편상]들
1
獵兎漫語[엽토만어]
2
(上下[상하], 文學[문학]과 토끼)
 
 
3
上[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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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일이다. 이미 가을도 꽤 늦어진 어느 날 오후 시간을 처치할 도리가 없어 나는 작지를 끌고 내 집에서 오 리 가량 되는 某[모]산꼴작이를 찾아 갓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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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가니 솔포기가 제법 다북이 들어선 곳이 된다. 무엇이고 숨어 잇을 것만 같애 다소 긴장이 돼서 걷는 길인데 아니나 다를가 후닥딱 무엇이 뛰는 소리가 난다. 잠시 머리털이 하늘로 뻗힌 것은 물론이나 얼른 숨을 돌려 소리나는 곳을 바라본 즉 회색 토끼 한 놈이 팔작팔작 솔포기를 띄어넘어 가는 것이 아닌가. 토낀 바에야 겁 대신 勇[용]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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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 봐라 뒤를 쫓치며 “토끼다” 소리를 첫다. 토끼란 소리에 근처에서 나무를 하든 아해들도 낫과 작심을 들고 모여들엇다. 5, 6인이 떼가 돼서 眞可謂東奔西馳格[진가위동분서치격]으로 몰아댓다. 그러나 兎公[토공]은 또 토공대로 南出北沒[남출북몰]하야 필경엔 어디론지 영영 형적을 감추어 버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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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餘[시여]를 驅馳[구치]한 몸은 옷이 찟기고 ‘왁새’날에 벤 혈흔이 손등에 淋漓[임리]할 뿐이라. 허로에 지친 몸을 잔디밭에 눕히니 과시 토끼가 얄밉다. 목숨 아깝기는 人兎一般[인토일반]일지라. 토끼도 제 살 양으로 도망을 한 것이나 어느 솔포기 밑에 숨어 앉어 “용용”우리를 놀리는 것만 같애 속이 불룩어렷다.
 
8
나는 이날 참으로 토끼를 저주하얏다. 20년을 지난 오늘 나는 무명의 訓學[훈학]으로 窮巷[궁항]에 늙거늘 그래도 저주는 보복의 길을 일치 안하 편집선생으로 하야금 내게 “토끼사냥”을 명케 한 것이다. 天網[천망]이란 과시 恢恢[회회]하야 疎[소]하되 漏[누]함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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債鬼[채귀]의 啾啾추추]와 신년호 준비의 喧嘩훤화]는 此所謂[차소위] 歲末[세말] 특유의 쌍주곡이라. 편집선생도 십수장의 백지를 묵찰할 비장·가련한 운명에서 부득이 이 부당· 잔혹한 명을 내게 발햇을 줄만은 알기로 나는 썩은 學杖[학장]과 설된 識[식]의 망을 펴고 書林[서림]간을 跋涉[발섭]한 지 凡有日[범유일], 哀哉[애재] 배낭은 너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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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나는 〈鼈主簿傳[별주부전]〉에서 첫 놈을 옮기는 햇다. 이 〈별주부전〉이 어느 연간에 누구의 손으로 된 것인지는 淺學[천학]의 容喙[용훼]할 세계가 아니다. 그러키로 且置[차치]하나 여하간 토공의 名毁功罰[명훼공벌]을 밝히랴는 이 마당에 잇어 이 一作[일작]은 별공에 대한 대작인 동시에 토공문헌 중 동서고금에 그 類[류]를 보지 못할 걸품인 것을 나는 솔직히 자랑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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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천하에 물이 四海[사해] 크고 사해에 물이 만키로 각각 용왕이 잇으니 東海[동해]는 廣州王[광주왕]이오 南海[남해]는 廣利王[광리왕]이오.” 한데 마츰 남해 광리왕이 늙게 우연 득병하야, 죽을 것이 설거늘 “九族[구족]을 모아 왈, 가련타, 내 몸이 한번 죽어, 북망산천 돌아가면 어느 친척 朋友[붕우] 날 차지리” “통일천하 秦始王[진시왕]도 不死藥[불사약]을 구하랴고 童男童女[동남동녀] 5백인을 三神山[삼신산]에 보냇더니 소식 망연하고 漢武帝[한무제]의 영웅으로도 栢粱臺[백량대] 承露盤[승로반]에 이슬을 받앗으되 驪山[여산]의 曉月[효월] 달과 무릉의 가을바람 속절없이 一坯土[일배토]만 되엇세라. 하물며 날 같은 이야 그 아니 가련한가. 雖然[수연]이나 명의를 광구하야 약이나 써보리라”해서 역䱾[루]공鯉魚[리어]의 出班奏[출반주]로 “세상의 군자·호걸 중, 하필, 越[월]나라 范相國[범상국]과 唐[당]나라 張使君[장사군]과 吳[오]나라 陸處士[육처사]”를 청해 왓다. 이 자리에 공교롭게 伍子胥[오자서]가 뛰어들어 范伍[범오]간에 자리 다툼이 일어낫다. 그러나 자서 능변으로 기어히 상좌를 탈득하야 座序[좌서] 정해지매 왕이 ‘말슴을 펴’치병의 도를 물엇다. 자서는 梟雄[효웅]이라 한번 왕을 다롸보는 수작으로 “壽夭長短(수요장단)은 임의로 못하는 것이니―과도히 마음을 상치 말고”죽을 때나 기다려보라 한다. 이 말에 왕은 “嗚呼[오호]라 과인이 한번 세상을 하직하고 寂寞空山[적막공산] 돌아가면 하일에 다시 올고”春桃李夏芳草[춘도리하방초]에 秋菊丹楓[추국단풍]과 冬雪梅[동설매]도 아깝거니와 못잊을손 저 삼천궁녀 아미 粉黛[분대]를 어찔 것인고 초연히 長嘆[장탄]을 한다. 그제야 자서 능청맛게 빙그레 웃으며 華佗화타]의 서를 보건대 만병에 만약이 이 잇으나, 왕의 병은 심상치 안하 百樂[백락]도 효가 없고 ‘다만 인간토끼 간’을 구하야 쓰면 신효를 볼 것 것이오, 왕의 덕으로 이만 것 구하기는 쉬우리란 말로 말을 맺엇다. 이러해 토공의 액운은 시작되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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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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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는 왕을 위하는 성충 일념으로 노모와 애처의 만류를 뿌리치고 一頭單身[일두단신] 海波萬頃[해파만경]을 헤어헤어 육지엘 나왓엇다. 그러나 대저 토끼잇는 곳이 어디멘고? 일등화공이 용궁에 모여 묘사한 此所謂[차소위] ‘토끼 화상’이 몸에 잇기는 하나 육상 즘생들과는 과시 초대면이라 노루, 너구리 등 딴 친구를 잘못 불러본 적도 무릇 여러 번이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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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츰 狐君[호군]의 지시로 청송 두어 주 벌려선 바위밑에 兎公宅[토공택]을 찾앗다. 별주부 속이 어웅해, ‘선생’의 호를 붙여 “兎先生[토선생]” 을 공손히 불럿겟다. 토공은 본성이 교만하고 속이 얕아 선생 호에 의기양양, 우선 사시교역의 山水樂[산수락]을 별공에게 자랑햇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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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만 변설에 질 병공이 아니라 짐짓 토군의 곤경을 열거해 그의 육상신세의 궁핍을 설파하고 일변 수궁의 부와 革麗[혁려]를 자랑한다. 겸해 자라등에만 오르면 수궁 만 리를 졸면서 갈 수가 잇다는 풍에, 이 유혹을 이길 만한 토공이 못 되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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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등에 올라 수궁에를 이르고 보니, 麗壯[여장]의 극은 별군의 말과 다름이 없으나, 어찌 뜻하엿으랴, 관대를 기다렷든 ‘토선생’은 일개 ‘토끼’로 나졸에게 묵여, 용왕탑전에 잡혀온 몸이 되엿다. 기어히 간을 내여 먹겟다는 왕의 수작이오, 사후 시신만은 錦繡[금수]로 싸고 琥珀棺槨[호박관곽]에 담아 안장해 주겟다 하나 대저 목숨이 잇고 금수도 호박도 귀할 것이 아니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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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벽력이 머리를 깨지는 듯, 정신이 아득하다―아모 재덕없이 名利[명리]를 탐해”온 것을 지금에 뉘우치나 이미 미칠 배도 아니다. 그러나 “陷之死地而生[함지사지이생]”은 옛글에 잇거니와 輕[경]하되 지략이 겸한 토선생이라, 이만 일에 당황해할 그가 아니엇다. 태연자약, 안색을 변하는 일이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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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은 水國王乘之君[수국왕승지군]이오 小兎[소토]는 산중의 조고마한 즘생이라. 만일 소토의 간으로 대왕의 병세 나으실진댄 어찌 감히 사양하오며 또 소토 죽은 후 심지어 사당을 세워주시리라 하시니 이 은혜는 하늘과 같이 크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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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토 죽어도 한이 없아오나 다만 애처로운 바는 소토는 비록 즘생이오나 심상한 山獸[산수]와 다르와 본대 房星精氣[방성정기]로 세상에 나려와 날마다 아침이면 옥같은 이슬을 받아 마시며 주야로 奇花瑤草[기화요초]를 뜯어먹으매 그 간이 진실로 靈藥[영약]이 되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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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하므로 세상 사람이 모두 알고 매양 소토를 만난 즉 간을 달라 하와 보챔이 심하옵기로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와 염통과 함께 꺼내어 청산 녹수 맑은 곳에 두고 다니옵든 터에 마침 자라를 만나 왓사오니 만일 대왕의 병세 이러하신 줄을 알앗드면 어찌 안 가저 왓으리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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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해 도리어 미리 이런 말을 하지 아니한 별공을 꾸짖은 것이다. 얼마나 지혜로운 토선생의 총명이뇨. 더욱 아래의 세 구멍을 실증으로 들어간 출입을 능히 할 수 잇음을 말하는 통에 용왕도 어지간이 속아 그러면 부디 육지에 다시 나아가 간을 갖다 달라는 부탁으로 별주부를 시켜 토선생을 육지로 모셔다 드리게 햇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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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인 놈을‘속임’으로 갚앗는지라 다시 간을 내들고 死地[사지]를 찾아갈 토선생은 물론 아니엇다. 그러해 이 설화는 동화인듯 우화인듯 이곳에서 끝이 나거니와 하여튼 兎公文學[토공문학]의 대작이 이 별주부 일편에서 이루워진 것은 ‘토끼’를 마지한 이 해의 우리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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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代朝鮮文學[고대조선문학]의 대부분이 그러한 것같이 풍자 해학이 도처에 미만해 씹을수록 새 맛이 진진하다. 다만 현기가 날 정도로 漢學的[한학적] 史實[사실]을 내적은 것이 작품의 큰 병폐이다. 다음으로 나는 擣藥[도약]하는 玉兎[옥토]를 五經通義[오경통의]에서 잡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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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가운데 한 마리 토끼 잇으니 이를 옥토라 한다. 밤이 돼 달빛이 넓은 천공을 비치면 토끼는 굉이를 들고 부지런이 약을 찟는다. 세상사람에게 행복이 나리는 것은 이 토끼가 애써 약을 찟는 때문이다. 옥토끼는 밤새 것 애써 약을 찟고 낮이면 피곤해 까닥까닥 졸고 잇다. 그리다가 해가 질 임시면 다시 일어나 또 약을 찟기 시작한다.”
 
25
‘李太白[이태백]의 노든 달’의 노래를 들으며 계수와 옥토끼의 전설을 생각함은 우리 특유의 아동적 시세계다.
 
 
26
(「東亞日報[동아일보]」, 1939년 1월 5일)
【원문】엽토만어(獵兎漫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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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용(金尙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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