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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무감(虛無感)을 받은 그 시절(時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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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김상용
生活(생활)의 片想[편상]들
1
虛無感[허무감]을 받은 그 時節[시절]
 
 
2
이미 9년전 처음으로 대학을 마치고 B 高普[고보]에 영어교원으로 있을 때의 일기의 몇 절이다. 너머나 허무감을 받은 그 시절의 일이 지금에 도리허 貴[귀]엽게 생각되기에 초해보기로 했다.
 
 
3
4월 1일(昭和二年[소화이년])
 
4
오늘로 내 생의 한 계단은 변하였다. 昨日[작일]의 학생으로 금일의 선생, 일생의 큰 혁명이란 말도 들었다. 과연 그럴지 모른다. 지난날에 나는 해논 것이 없다. 오늘을 경계로 무엇을 하야볼까, 쓸데없는 소리다. 인생은 허무다. 지나노면 형적없는 과거가 될 뿐이 아니냐? 나는 지금 친구도 없고 지위도 없고 권력도 금전도 없다. 고독중에 고독하다. 어찌할고? 어찌 살아갈고. 처음 교단에 서니 좀 얼떨하다. 그러나 무지한 소위 선배란 자들과 떠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어린 생도들과 사굄이 얼마나 즐거우냐?
 
5
조선은 생기가 없다. ‘하―트’가 없다. 도대체 사람이 없는 땅과 이런 강마른 속에서 무슨 시인, 무슨 예술가가 날고.
 
 
6
5월 16일
 
7
지난 밤에 늦게 자서 그런지 몹시 졸렸다. 2학년 생도에게 ‘봄의 音聲[음성]’ ‘水仙花[수선화]’를 가르쳤다. 될 수 있는대로 그들의 정적 방면을 고취하야 후일 문학방면의 큰 인물들이 되게 하자. 학교당국이 이를 좋아하지 않는 줄도 안다. 그러나 내 소신대로 해볼 뿐이다.
 
 
8
10월 19일
 
9
내 생활은 어지럽고 게으르다. 허위와 과장이 있다. 진실로 나는 무엇을 아는가? 진실로 나는 무슨 목적을 세우고 무슨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일시의 평온, 무사, 안일을 구해 營逐[영축]하는 외에 무엇이 있는가? 참으로 세사를 慷慨[강개]하야 악과 허위를 적으로 싸우랴는 진실한 자각이 있는가? 세사는 춘몽이라(아닌 것은 아니나) 하야 鼓膝大喝[고슬대갈]함이 과연 사람의 유일한 할일일가? 나는 내 무력을 부끄러워하고 내 무성을 꾸짖는다. 조선이 구하는 인물, 세상이 찾는 인물은 결코 지금의 내가 아니다.
 
10
근실하자. 침착하자. 말이 적고 행함이 있자. 나는 지금의 나를 비웃고 미워한다.
 
 
11
8월 5일(同三年[동삼년])
 
12
나의 한일 한 가지가 있다. 우선 朝鮮[조선]을 살리는 일 따라 조선의 꽃인 어린 생령을 힘껏 북도다보는 일이다. 내 직업이 이 방면이니 내 심신을 다해보자. 그리고 틈있는 대로 글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하고 수양하자. 적으나마 우리 민중에게 무슨 이바지함이 있자.
 
13
그러나 때때로 불같이 이러나는 울분은 종내 가실 줄을 모른다. 무엇을 동경하는 마음 그러나 동경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나는 모른다. 다만 희미하게 내 마음의 빈 곳을 채워줄 무엇이라 생각될 뿐이다.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한다. 내 자신의 존재부터 의심하는 터에 외타물을 어이 의심치 아니하랴? 의심하면서도 허무라 하면서도 나는 의연히 사물에 집착되고 희노애락의 지배를 받는다.
 
14
어느 편으로 철저히 나가지 못함이 즉 심적 주저 혹은 분열이 항상 나를 괴롭히는 유일한 근원이 된다. 선악간에 是否認間[시부인간]에 한 방면을 매진할 수가 없을가? 과연 나는 괴롭다. 가련한 혼아! 너는 영원히 고독할 뿐이다.
 
 
15
10월 25일
 
16
〈태스〉를 읽다. 1학년의 英作[영작]이 네 시간, 그들의 천진스런 동자가 더 없이 귀엽다. 다름질, 투창, 철봉운동. 책상을 위지하고 나도 불원에 늙을 것을 생각했다. 그 동안에 무엇을 해보자! 몹시 조급하다.
 
 
17
11월 27일
 
18
모든 것이 자라고 자라선 쇠한다. 우주란 무대우에 蜉蝣[부유]의 생성사멸이 있을 뿐이다. 나도 떼하루사리의 하나다. 하염없는 목숨! 白頭翁[백두옹]의 쇠잔한 꼴이 곧 내일의 내 모양이오 청산의 일분토가 곧 나의 화할 것이 아닌가? 인류여 强[강]과 優[우]와 富[부]를 자랑하는 어리석음을 취치 말라. 우주생명이 더욱이 나의 일생! 아! 알 길이 없다.
【원문】허무감(虛無感)을 받은 그 시절(時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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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