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寢房客[침방객] 겸용의 칸반에 불과한 書室[서실], 이 방을 지키는 無二[무이]한 화분 하나가 있다. 말이 화분이지 실인 즉 한평생 꽃 한송이 피어볼 줄을 모르는 八葉樹[팔엽수]라는 데서 할일없이 내 서실의 貧出[빈출]은 폭로된다. 그러나 영하 10도의 삭풍이 창 밖에 매워 木丁香[목정향] 오동등의 뜰 앞 나무가 벌거벗고 떨고 있을 살벌의 시절에도 그 팔엽수만은 푸른 절개를 지키고 내 床頭[상두]를 꾸미니 寒王[한왕]의 청렴한 부함이 여기 있다 할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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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팔엽수를 기른지도 임 5,6년, 해마다 이만 때면 보는 이 나무의 한가지네 이 한 정취가 있다. 겨울이 다 지나고 외투무게가 어깨에 약간 무거워지면 봄 소식을 언제 들었는지 이놈 팔엽수가 의례히 새싹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그 싹이 버들가지처럼 보드랍고 또한 두릅같이 탐스러워 문득 보이는 마음에 따뜻한 무엇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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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이 활짝 새잎으로 되어 나는 동안이 근 한달이 걸리고 그 새에 낡은 잎새들은 누렇게 팔엽수의 일년 換易[환역]이 끝났는데 그 변천이 이 나무를 사랑하는 내 마음에 과이 기묘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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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내 서실 팔엽수에 온다. 그러나 봄은 나물캐는 처녀의 대바구니에 냉이 달래를 담으며 오고 밭 두둑 밟는 더벅머리 입에 버들피리를 불리면서도 온다. 흥이 더해지면 버들은 푸르게 진달래는 붉게 꾸미고 한갓 화려하게 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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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때 낮에 놀고 낮이 부족해 촛불을 돋우고 밤의 宴樂[연락]의 도취경을 한껏 迷路[미로]해 봄도 미상불 그럼즉한 일이다. 그러나 내 심정은 오히려 깨달음이 일지 않는 한가롭고 아담함만을 기원하니 王性善[왕성선]의 그림인지 나이 어린 이의 소치인지 그 어느 것을 물어선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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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원 조춘을 찾아 꽃방울 묵묵한 빈 樹園[수원]을 걸음이 人海[인해]의 꽃시절보다 더 꽃답더란 고백으로 내 심경의 표현은 족하리라. 아! 얼마나 조용히 맞기를 기다리는 봄인고! 親患[친환]에, 兒患[아환], 내 신병에 너무나 피로하던 지난 반생을 회고하며, 나는 명랑한 그러나 한적한 봄맞이를 고맙게 기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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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의 칠명’의 쾌보가 옆집 라디오에 요란할 때 봄은 내 맘속에 이런 희망의 씨를 뿌리며 온다. 멀지않아 문풍지를 뜯고 憂苦[우고] 의 먼지가 나가도록 문을 크게 열어 젖힌다. 뻐꾹이란 놈들은 어디서 무슨 쑹쑹이를 하고 있는지? 새 세기, 새봄의 발자욱을 나는 님 못지 않게 고대고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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