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길거리에서 만난 여자(女子) ◈
카탈로그   본문  
1933.4
채만식
1
길거리에서 만난 女子
 
 
2
이런 이야기도 주문하신 ‘춘소(春宵) 로맨스’축에 듭니까?
 
3
벌써 오륙 년이나 지난 옛이야기입니다. 2월 그믐께쯤 되었던지요.
 
4
(아니 2월 그믐이 무슨 봄이냐……고요?글쎄, 그렇지만 뭘 정월 초하룻 날 세배 자리에서 ‘봄’ 수필을 쓰라고 강제( ? )하는 편집선생보다는 덜 엉터리지요.)
 
5
누가 잊어버리고 간 듯이 들 가운데 오도카니 섰는 임시정거장이건만 육중스런 차는 잊지 않고 머물러 주었읍니다.
 
6
나는 고마운 생각에 트렁크를 집어들고 황황히 내렸지요.
 
7
내린 사람이라고는 나 하나뿐이었습니다.(정거장도 하나 나도 하나) 차는 바쁨 듯이 뒤도 아니 돌아보고 달아나 버렸읍니다.
 
8
황혼이 어슴푸레 내리고 쌀눈이 바늘끝같이 찌르는 찬바람에 홱홱 날렸읍니다.(아니 눈이 오는데 봄이요? 네 춘설이 날리었읍니다)
 
9
나는 트렁크 속에 넣었던 두터운 스웨터를 꺼내어 외투 밑에 껴 입고 길을 걷기 시작하였읍니다.
 
10
주막이라도 있으면 막걸리라도 한잔―――꼭 한잔만―――먹었으면 몸이 후끈거려 길 걷기가 한결 나을텐데 아무리 둘러보아야 있는 것 같지도 않았읍니다.
 
11
이 추운데 삼십리길을 어찌 가나…… 몸에 지닌 것은 없지만 노상군자(아십니까? 양상군자의 동일 부류입니다)나 만나면 어쩌하나……
 
12
그렇다고 길거리에 주저앉는 수도 없고 해서 총총걸음을 연해 쳤지요.
 
 
13
후유 후유 들길을 건너 산기슭까지 가까이 가니 한 십여 간(間)앞에 사람이 걸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14
호젓한 때에 사람을 만났으니 응당 반가우련만 그와는 반대로 가슴이 상큼해졌읍니다.
 
15
좀더 따라가면서 보니 촌여인이었읍니다. 못생긴 소리지만 여인인 줄 알고 보니 마음이 놓이던걸요.
 
16
나는 사내라서 앞선 여인보다 걸음이 빨랐읍니다.
 
17
애기 울음소리가 들렸읍니다.
 
18
그 여인의 등에 업힌 애기의 울음소리였읍니다.
 
19
젖에 주린 애기가 추워서 우는 울음소리였읍니다. (소아과 의사가 아니라도 그것쯤은 알아챕니다)
 
20
애기 울음소리에 뒤에서 사람이 따라오는 것을 모르고 가던 그 여인은 내가 등 뒤에 딱 당도했을 때에 비로소 돌아보고는 원 어쩌면 그렇게도 질겁하게 놀라는지?
 
21
황혼이라지만 눈발이 날리고 해서 얼굴도 볼 수가 있는데 그 여인의 얼굴에 나타나는 놀라는 빛이라니 참 보기에도 딱하였읍니다.
 
22
그리고 추워서도 그랬겠지만 와들와들 떨면서 그렇게 한사코 걷던 걸음을 걷지 못하고 비실비실 옆으로 비껴서려고 합니다.
 
23
애기는 불에 덴 것같이 웁니다.
 
24
그런 중에도 그것이 사내녀석들의 통성(通性)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여인의 얼굴을 본 인상은 퍽도 유쾌했읍니다. 그저 촌여인인데 아주 인상적으로 된 얼굴이었읍니다. 그러나 미인은 아니었읍니다.
 
25
나는 그 여인과 잠시 나란히 서서 가다가 너무도 떨고 무서워하는 것이 미안해서 걸음을 빨리하여 앞으로 나섰읍니다.
 
 
26
앞으로 나서서 가면서도 업은 애기다 추워서 그렇게 우는 것이 퍽이나 맘에 걸렸읍니다.
 
27
그것은 내 마음이 착해서……가 아닙니다. 그 여인의 얼굴이 좋은 인상을 주어 그런 것입니다.
 
28
한 십여 보 앞서 갔을 때에 갑자기 애기 울음의 방향이 바뀌는 것 같았읍니다.
 
29
그래 궁금해서 돌아보니까 그 여인은 애기를 등에서 내려안고 길 옆에 가 쪼그리고 앉겠지요?
 
30
애기가 너무 우니까 젖을 먹이는가 했는데 그렇지도 아니했읍니다.
 
31
애기가 추워서 울고 또 가기도 추우니까 그러고 있으면 괜찮으려니 하고 그러는 것 같았읍니다.
 
32
그러나 만일 그렇게 추운데 쪼그리고 앉았으면 죽는 법입니다. 꼭 얼어죽는 법이에요.
 
33
나는 염치없이 그 여인에게로 달려갔읍니다.
 
34
그는 놀라 벌떡 일어서 망지소조하였읍니다.
 
35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다해 가지고 상냥한 말을 건넸읍니다.
 
36
“아마 치워서 그러는 모양인데 이러고 앉었으면 못씁니다. 그대로 얼어바립니다.”
 
37
나의 보드라운 말에 그는 조금 마음을 놓았으나 그래도 경계하는 듯 눈치를 보면서 말대답이 없읍니다.
 
38
“뭣 나를 무서워하지 마시요. 그러고 어서 일어나서 갑시다. 어디까지 가서요?”
 
39
이렇게 반 명령적으로 말을 하고는 나는 입은 외투를 벗었읍니다.
 
40
“자, 애기가 추워서 우는 모양이니 이것을 덮어주시오. 그리고 내가 바래다 드릴께 어서 갑시다.”
 
41
그는 비로소 미안하고 감사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읍니다. 내 마음은 퍽 유쾌했읍니다. 그 여인은 외투를 받으려고는 아니하였읍니다.
 
42
나는 그냥 애기를 안은 위네다 외투를 씌워 주었읍니다.
 
43
그랬더니 모기만한 소리로 “업어야지……” 하였읍니다.
 
44
나는 애기를 받아 등에 업혀주고 포대기――퍽 얇은 것이었읍니다.―― 를 두르고 그 위에다 내 외투를 씌우고 다시 띠를 매어주었읍니다.
 
45
내가 앞에 서니 그도 따라섰읍니다.
 
46
좀 따라오다가 “그것――짐――이리 주세요” 하고 내가 들고 가는 트렁크를 청하였읍니다.
 
47
나는 또 속으로 기뻤읍니다.
 
48
“아니요.”
 
49
또 한동안 걸어갔읍니다. 애기는 겨우 울음을 그쳤읍니다. “어데까지 가시오?” 내가 물었읍니다.
 
50
“×골로 가요.”
 
51
×골이면 한 십리길밖에는 아니 남았읍니다.
 
52
나는 외투를 뺏겼으니 그다지 추운 줄도 모르고 ×골 마을 앞에 당도하였읍니다.
 
53
그 여인은 몹시 조심하면서 외투를 나에게 돌려주었읍니다.
 
 
54
그 여인은 누구였는지 그 뒤에는 만나지도 못하였읍니다. 원체 만나질 리가 없는 것이지만 한번 만났으면, 만나서 그 얼굴을 한번 보았으면……합니다.
【원문】길거리에서 만난 여자(女子)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수필〕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9
- 전체 순위 : 5062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1077 위 / 1835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1) 편자박기
• (1) 토끼의 꾀
• (1) 제향날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채만식(蔡萬植) [저자]
 
  1933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길거리에서 만난 여자(女子)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2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