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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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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 11
현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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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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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厥)은 가정의 단란(團欒)에 흠씬 심신(心身)을 잠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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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하여도 지긋지긋한 형식상의 안해가, 궐이 일본 xxx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불의에 죽고 말았다. 궐은 중등교육을 마친 어여쁜 처녀와 신식 결혼을 하였다. 새 안해는 비스듬히 가른 머리와 가벼이 옮기는 구두 신은 발만으로도 궐에게 만족을 주고 남았다. 게다가 그 날씬날씬한 허리와 언제든지 생글생글 웃는 듯한 눈매를 바라볼 때에 궐은 더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었다. 살아서 산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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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덕택으로 궐은 날 때부터 수만 원 재산의 소유자였다. 수 년 전 부친이 별세하시매, 무서운 친권(親權)의 압박과 구속을 벗어난 궐은 인제 맏형으로부터 제 모가치를 타기도 되었다. 새 안해의 따뜻한 사랑을 알뜰살뜰히 향락하기 위함에 번루(煩累) 많고 방해 많은 고향 ××부를 떠난 궐은 바람 끝에, 꽃 날리는 늦은 봄에 서울에서 신살림을 차리기로 하였다. 위선 한 스무 남 간 되는 집을 장만한 그들은 다년의 동경대로 포부대로 이상적 가정을 꾸미기에 노력하였다.―마루는 한복판에 도화심목(桃花心木) 테이블을 놓고, 그 주위를 소파로 둘러 응접실로 맨들었다. 그리고 안방은 침실, 건넌방은 서재, 뜰아랫방은 식당으로 정하였다. 놋그릇은 위생에 해롭다 하여 사기그릇, 유리그릇만 사용하기로 하고, 세간도 조선의(朝鮮衣)걸이, 삼층장 같은 것은 거창스럽다 하여 전부 폐지하였다. 누구든지 그 집에 들어서면 첫눈에 뜨이는 것은 마루 정면 바람벽 한가운데 놓인, 큰 체경 박힌 양복장과 그 양편, 화류목으로 맨든 소쇄한 탁자에 아기자기하게 얹힌 사기그릇, 유리그릇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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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라야 단 둘뿐인데 찬비(饌婢)와 침모를 두고 보니 지어미의 할 일도 없었다. 지아비로 말하여도 먹을 것이 넉넉한 다음에야 인재를 몰라 주는 이 사회에 승두미리(蠅頭微利)를 다툴 필요도 없었다. 독서·정담·화투·키스·포옹이 그들의 일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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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그들의 일과가 있다고 하면 이상적 가정에 필요한 물품을 사 들이는 것이리라. 이상적 안해는 놀랄 만한 서리(犀利)한 관찰과 치밀한 주의로써 이상적 가정에 있어야만 할 물건을 찾아내었다. 트럼프, 손톱 깎는 집게같은 것도 그 중요한 발견의 하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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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로는 안해는 그야말로 이상적 가정에 없지 못할 무엇을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어째 입때 그것 생각이 아니 났는고, 하고 스스로 놀랄 만한 무엇이었다. 호올로 제 사색의 주도(周到)한데 연거푸 만족의 미소를 띠우며, 마츰 어데 출입하고 없는 남편의 돌아옴을 기다리기에 제삼자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이 지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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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돌아오자마자 안해는 무슨 긴급한 일을 말하려는 사람 모양으로 회오리바람같이 달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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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 또 하나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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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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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이상적 가정에 없지 못할 물건이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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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빙그레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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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무엇을 가지고 그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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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맞춰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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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의 눈에는 자랑의 빛이 역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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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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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먼 산을 보기도 하고, 이리 저리 세간을 둘러도 보며 진국으로 이윽히 생각하더니, 면목 없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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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아니 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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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무안새김으로 또 한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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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못 알아 맞추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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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는 배앝는 듯이 한 마디를 던지었다. 한동안 남편의 얼골을 생글생글 웃는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무슨 중대한 사건을 밀고하려는 사람모양으로 입술을 남편의 귀에다 대고 소근거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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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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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옳지!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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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대몽(大夢)이 방성(方醒)하였다는 듯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피아노가 얼마나 그들에게 행복을 줄 것은 상상만 하여도 즐거웠다. 멍하게 뜬 남편의 눈에는 벌써 피아노 건반 위로 북같이 쏘대이는 안해의 보얀 손이 어른어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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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두 시간이 못 되어 훌륭한 피아노 한 채가 그 집 마루에 여왕과 같이 임어(臨御)하였다. 지어미 지아비는 이 화려한 악기를 바라보며 기쁨이 철철 넘치는 눈웃음을 교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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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 무슨 서기(瑞氣)가 뻗친 듯한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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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그래, 왼 집안이 갑자기 환한 듯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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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보시오. 내 생각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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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주도한걸. 그야말로 이상적 안해 노릇 할 자격이 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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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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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끝은 웃음으로 마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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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번 쳐 볼 것 아니오? 이상적 안해의 음악에 대한 솜씨를 좀 봅시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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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사나이는 행복에 빛나는 얼골을 안해에게로 향하였다. 계집의 번쩍이던 얼골은 갑자기 흐려지고 말았다. 궐녀의 상판은 피로 물들인 것같이 새빨개졌다. 궐녀는 억지로 그런 기색을 감추려고 애를 쓰며,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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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번 쳐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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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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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사나이가 서먹서먹하였다. 답답한 침묵이 한동안 납덩이같이 그들을 누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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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말고 한번 쳐 보구려. 그렇게 부끄러워할 거야 무엇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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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남편은 달래는 듯이 말을 하였다. 그러나 그 소리는 자리가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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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칠 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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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같은 소리로 속살거린 안해의 두 뺨에는 불이 흐르며 눈에는 눈물 그림자가 어른거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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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모른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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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남편은 득의양양한 웃음을 웃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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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 번 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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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궐도 또한 이 악기를 매만질 줄 몰랐다. 함부로 건반 위를 치훑고 나리훑을 따름이었다. 그제야 안해도 매우 안심된 듯이 해죽 웃으며, 이런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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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잘 치십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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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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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 1922. 11.)
【원문】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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