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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이동생을 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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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2
최서해
1
누이동생을 따라
 
 
2
사 년 전 여름이었다.
 
3
나는 김군과 해운대에 갔다가 이 얘기의 주인공을 만났다. 그것도 그때에 비가 오지 않아서 예정과 같이 떠났다면 나는 이 얘기의 주인공과 만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4
해운대에서 이틀밤만 자고 떠나 동래 온천으로 가려던 우리는 비 때문에 하루를 연기하였다. 김군과 나는 여관 이층방에서 비에 잠긴 바다를 바라보면서 오전중은 바둑으로 보내었다.
 
5
오정이 지나서 우중충하던 천기가 훤해지며 빗발이 걷히었다. 구름 사이로 굵은 빗발이 군데군데 흘렀다. 조각조각이 서로 겹쳐 흐르던 구름은 석양에 이르러서는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맑게 걷히었다.
 
6
나는 김군과 같이 온천에 갔다가 붉은 빗발이 푸른 벌판에서 자취를 한걸음 두 걸음 감추일 때 온천을 나섰다.
 
7
오랜 가뭄이 남겨 주었던 텁텁한 기운은 비에 씻겨 버렸다. 석양은 눈이 부시게 맑았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시들시들히 늘어졌던 아카시아 잎들은 어린애 눈동자처럼 반짝거렸다.
 
8
푸른 잔디와 흰 모래 깔린 저편에 굼실거리는 바다를 스쳐 오는 바람은 여느 때보다 더욱 경쾌한 맛이 있었다. 나는 석양을 안고 여관으로 향하였다. 유까다에 수건을 걸친 김군도 나의 뒤를 따라 섰다.
 
9
아까부터 들리는 단소 소리는 점점 가까이 들렸다. 길고 짧고 높고 낮게 흘러 오는 그 소리는 발을 감추는 석양볕을 따라 머나먼 바다 저편 하늘가로 흘러갔다.
 
10
우리는 단소 소리가 나는 저편 나무 그늘로 갔다. 단소 부는 사람 앞에 오륙 인이 반달같이 벌려 서서 고요히 듣고 있다.
 
11
가슴에 석양을 받고 앉은 단소 부는 사람은 사람이 가고 오는 데는 아무 상관 없다는 태도이었다. 깎은 지 오랜 머리는 두 귀를 덮었다. 가락을 뜯는 쇠갈고리 같은 손가락하며 땀과 먼지가 엉긴 시커먼 낯빛하며 둥긋한 이마 아래 조는 듯이 감은 눈은 푹 꺼져들어서 험상궂게 생겼다. 한 다리는 거두고 한 다리는 뻗고 앉아서 정신없이 단소를 불던 입술에서 스르르 떼었다. 그는 눈을 떠서 돌아선 사람을 바라보았다. 눈뜨는 것을 보고 비로소 그가 애꾸눈인 것을 알았다. 그는 한숨을 휴 쉬더니 곁에 벗어 놓았던 군데군데 뚫어진 검은 사아지 양복저고리를 집어들고 일어섰다. 흙투성이 된 누런 양복 바지는 무릎이 뚫어졌다. 그는 서산에 뉘엿뉘엿 넘어가는 볕을 바라보더니 저편을 향하고 발을 떼었다. 그는 애꾸눈만이 아니었다. 왼편 다리까지 절었다.
 
12
나는 어디서 본 사람같이 느껴지면서도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로도 알 수 없는 째릿한 감정으로 절름절름 걸어가는 그의 뒷그림자를 바라보았다.
 
13
“여보게, 우리두 가세 인젠…….”
 
14
나는 김군이 부르는 소리에 발을 떼어 놓았다. 나는 여관에 돌아와 머릿속을 언뜻 지나가는 기억에‘옳지’하고 큰 발견이나 한 듯이 앞에 올라가는 김군에게,
 
15
“인제 생각나네!”
 
16
말하였다.
 
17
“지난 봄 종로 야시장에서 지금 단소 불던 작자를 보았군!”
 
18
하고 나는 돌아다보는 김군에게 말하였다.
 
19
“그 단소 잘 부는데!”
 
20
김군은 내 말에는 별로 흥미 없다는 듯이 말하였다.
 
21
“야시에서 들을 때엔 모르겠더니 예서 들으니 그럴 듯한데.’
 
22
나는 난간에 서서 석양에 잠긴 아른한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말하였다.
 
 
23
저녁 뒤에 김군은 달빛을 본다고 전등을 껐다. 이층 난간에 나 앉으면 바다와 산과 달 바라보는 맛은 옛날 한시를 읽는 맛이다. 서산에 넘어가는 해를 기다리고 있는 듯이 바다 저편 동쪽 산 위에 높이 솟은 달은 물 같은 빛발을 바다와 육지에 던졌다. 저녁 연기에 흐렸던 바다는 달빛에 잠겨서 전면에 은빛이 굽실거렸다. 그 위로 미끄러져 나가는 두어 개의 돛도 달지 않은 어선은 수묵을 찍은 것 같다. 두어 개의 어화가 해운대 아래 희미하였다.
 
24
바닷가에 어른대는 것은 사람의 그림자인가? 간간이 웃음과 노래가 흘렀다. 달이 높이 걸림을 따라 사면은 바닷 소리와 바람 소리와 달빛에 고요히 잠기었다.
 
25
“낮에 불던 그 사람인가보이!”
 
26
김군은 드러누워서 모기를 날리다가 벌떡 일어난다. 단소 소리가 달빛을 타고 들려 온다.
 
27
“그걸세……. 그 사람이야.’
 
28
달빛이 흐르는 바다를 고요히 바라보고 앉았던 나의 가슴은 흘러 오는 단소 소리에 아른아른 흔들렸다. 그 소리는 낮에 듣는 것보다 한껏 처량 하였다. 이어지는 듯 끊어지는 듯 굵고 가늘게 흘러 오는 그 소리는 밝은 달빛과 조화되어 달이 단소빛 소린지 단소 소리가 달빛인지 바다와 산을 스쳐 먼 하늘가를 흐르는 그 소리는 때로 여울 소리같이 격하고 때로 먼 하늘의 기러기 소리같이 처량하였다. 나는 세상을 떠나 달빛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듯이 표연한 맛을 느끼면서도 인간의 애틋한 심정을 벗을 수 없었다.
 
29
우상같이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나의 머리에는 어제 들은 그 얘기가 떠 올랐다.
 
30
‘자살! 젊은 여자의 자살.’
 
31
젊은 여자로 물에 몸을 던졌다는 것도 그것이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는 것은 역시 젊은 나의 가슴에 애틋한 그림자를 긋는다.
 
32
그가 죽었다는 곳은 지금 바로 내다보이는 저 아래편 해운대 앞바다였다.
 
33
“바로 열흘 전입니다.”
 
34
우리가 있는 웃방에 한 달 전부터 와 있는 마산 친구가 어제 우리와 같이 바닷에서 거닐다가 말하였다.
 
35
“그날 나는 저편에서 미역감다가 사람 죽었다는 소리에 여러 사람과 같이 이리로 왔더니 에익 끔찍도 헙디다.”
 
36
하고 그는 그때의 광경이 눈앞에 떠오르는 듯이 이마를 찌푸렸다.
 
37
“팅팅 불은 계집이겠지요! 머리는 흐트러지고 치마는 찢겼읍니다그려……. 그런 것을 낚시질하던 웬 늙은이가 ‘제기 꿈자리가 사납더니’ 어쩌고 투덜거리면서 옷을 벗고 들어가더니 저 바위 사이에서 물결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송장을 끄집어 내왔는데…….”
 
38
그는 바닷가를 가리키면서,
 
39
“바로 저기로군……. 저기다 내다 놓은 것을 보고는 나는 어떤 친구가 동래서 올 시간이 되었기에 여관으로 돌아갔지요. 그래 뒤에 들으니…….”
 
40
하고 그는 그 죽은 여자의 내력을 들은 대로 얘기를 하였다.
 
41
그 여자는 부산 어떤 유곽의 창기였었다. 그는 몹시 더운 어떤 날 해운대에 나타났다. 포주의 학대에 못 이겨 도망한 거라고도 하고 어떤 놈과 배가 맞았다고도 하나 이리로는 혼자 왔었다. 그는 여관에 들어 하룻밤 자고 이튿날 새벽에 나가서 해가 낮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여관에서는 온천으로 찾아가 보았으나 없었다.
 
42
“그래 여관에서는 퍽 궁금히 여기다가 그 소문을 듣고 와 보니 그 여자더라는데, 부산서 포주가 와서 어딘지 묻었답니다.”
 
43
하고 마산 친구는 창망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44
지금 나의 눈앞에는 보지도 못한 그 여자의 그림자가 창백한 얼굴로 떠오른다. 흘러 오는 단소 소리는 그 그림자의 원한을 하소연하는 듯이도 들리었다.
 
 
45
아홉시가 친 뒤 이슥해서 나는 김군과 같이 바닷가로 나갔다. 그때는 단소 소리가 그친 뒤였다. 바람 소리와 물소리가 어우러져서 들을 지나 산으로 올라가는 맛은 한여름의 괴로움을 씻고도 남음이 있었다. 온몸에 달빛을 받고 시원한 맑은 바람을 쐬면서 달 아래 이슬에 빛나는 잔디를 밟고 바닷가에 나서니 흰 모래판은 은가루를 뿌린 것 같았다. 하늘과 땅에 찬 것은 달빛과 바닷 소리와 바람 소리였다. 그 속에 흘러 오는 사람의 소리는 먼 세상에 떨어져 있는 사람의 소리같이 들렸다.
 
46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물결이 들어왔다가 밀리고 밀렸다가는 들어오는 바닷가로 올라갔다. 고기 후리를 늘이는 어선 두 척이 구물거리는 물 위를 미끄러져 나간다.
 
47
“여보게.”
 
48
하고 부르는 김군의 소리에 나는 발을 멈추고 머리를 돌렸다. 김군은 저편에 빈 배를 의지하여 쳐 놓은 모기장 앞에서 누구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49
“응, 게서 뭘 하나?…….”
 
50
나는 술놀음이 벌어졌구나 생각하면서 말하였다.
 
51
“이리 오게. 여기 마산 이 선생이 계시네.’
 
52
김군은 말을 마치며 무슨 뜻인지 허허 웃었다.
 
53
“이리 오셔요. 같이 좀 놀 수 없을까요? 허허.”
 
54
“참 명창인데, 명창이야…….”
 
55
저편에 드러누웠던 키 작은 친구는 그저 술이 취한 목소리였다.
 
56
“이 자식 명창이라니? 하하하 명창?…….”
 
57
하고 얽은 친구가 웃는 바람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58
밤은 깊었다. 달은 바다를 지나 육지에 높이 솟았다. 물같이 맑은 빛은 아까보다 좀 찼었다.
 
59
“에야차 에야.”
 
60
후리 당기는 소리가 저편 아래서 들렸다. 바다 저편에 수묵을 찍은 듯 하던 어선은 점점 후리 소리 나는 편으로 가까워진다.
 
61
“단소는 언제 배웠소?”
 
62
얽은 친구가 달빛이 넘실거리는 술잔을 들면서 그 사람을 치어다보았다.
 
63
“어려서 장난으로 불었지요! 별로 배우지는 않았읍니다.”
 
64
묻는 사람은 신기하게 물었으나 대답하는 사람은 극히 평범하였다.
 
65
“여보! 언젠가 내가 서울 야시에서 뵌 듯한데…….’
 
66
나는 그를 건너다보았다.
 
67
“네…… 서울 있었읍니다. 이곳 온 지 며칠 안 됩니다. 이런 놈의 신세가 어디를 가면 값이 있겠어요? 허허.”
 
68
술에 젖은 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기운 있게 흘렀다.
 
69
“천만에, 그 팔자가 도리어 편할는지도 모르지요!”
 
70
김군은 무엇을 생각하는 어조였다.
 
71
“편해요?…… 허허.”
 
72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73
“고향은 어디에요?”
 
74
누가 묻는 말에 그는,
 
75
“고향이라고 할 것두 없지요. 이 팔자에……. 나기는 평안도 영변서 났읍니다.”
 
76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지나간 기억을 밟는 듯이 왼쪽 눈을 먼 하늘에 주었다.
 
77
“부모 처자가 다 있어요?”
 
78
“아무도 없읍니다. 부모 처자가 있으면 이 꼴이겠읍니까. 벌써 송장된 지 오랜 사람이지만……. 허허.”
 
79
그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코를 벌룩이며 웃음으로 말끝을 막았다.
 
80
여러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그 사람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달빛은 더욱 밝았다. 후리 당기는 소리가 들려 왔다.
 
 
81
술이 한 순백 지나갔다.
 
82
우리는 어찌어찌하다가 단소 불던 사람의 내력을 그에게 들었다. 그는 술 한잔을 마시고 안주를 집으면서,
 
83
“말씀한대야 변변치도 못한 것입니다.”
 
84
하고 눈가에 그윽한 웃음을 띠었다.
 
85
여러 사람은 두툼하고 검푸른 그의 입술만 치어다보았다.
 
86
“사람의 일생이란 생각할수록 맹랑하지요……. 나도 병신되기 전에는 지금에다 대었겠읍니까마는 이 꼴이 된 뒤부터는……. 허허……그래도 죽지않고 살아 있으니…… 어찌 생각하면 더럽지요…….”
 
87
그는 탄식 비슷이 뇌었다. 그 탄식은 무슨 철리나 머금은 듯이 구수하게 들렸다.
 
88
“그런 거지요! 죽으려면 파리 목숨만도 못하지만 끌면 쇠심 같은 것이 목숨이지요.”
 
89
김군 맞은편에 앉았던 얽은 친구가 맞장구를 쳤다.
 
90
“참말 그래요……. (하고 그는 말을 잠깐 끊었다가) 내 고향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평안도 영변이에요. 나는 사남매지만 어머니에게는 남매뿐이 외다. 우리 어머니에게는 나와 내 아래로 누이동생이 있고……. 그리고 내 위로 남매가 있다는데, 그들은 다 그들 어머니에게 외딸 외아들로 지금 어디가 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지요…….”
 
91
“그러면 어머니가 셋이게? 하…….”
 
92
김군은 의아한 눈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김군의 말이 끝나자 곧,
 
93
“말하자면 그렇지요……. 허허…… 우리 아버지가 천하 난봉이던가봐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 평양 관찰사 누구와도 친하고 또 무슨 벼슬도 지낸 잘난 어른이라고 합디다만, 그랬는지 저랬는지 나는 모릅니다. 내 기억에 남은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밤낮 싸우는 것밖에는 없읍니다.”
 
94
하고 그는 잠깐 말을 그쳤다. 그의 어조는 내가 상상하던 바와는 딴판으로 퍽 점잖고 기품이 었었다.
 
95
“내가 열 한 살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읍니다. 그때에 내 누이동생은 여섯 살이었지요. 본디 우리 아버지는 전라도 사람으로 영변 갔다가 우리 어머니와 만나서 우리 오뉘를 낳았는데, 전실에서 낳은 아들이 전라도 어딘가 있다고 들었읍니다. 그리고 전라도서 떠나 송도 가 계시던 때에 또 어떤 기생에게서 딸 하나를 낳았답니다. 그러다가 영변까지 불려가서 우리 어머니와 만난 것이 그럭저럭 세상이 이렇게 되고 더 뛸 길은 없고 하여 그대로 주저앉아서 장사를 하였읍니다그려.”
 
96
하고 그는 혼잣말하는 것이 싱거운 듯이 말을 끊었다가,
 
97
“자, 술이나 잡수시면서.”
 
98
하는 마산 친구의 말을 따라 술을 마시고 말을 이었다.
 
99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기가 막힙디다. 어린 마음에도 그때 어머니는……
 
100
마흔 셋이고 아버지는 예순 둘이었는데, 아버지는 그때에도 첩을 얻어 가지고 (말하자면 우리 어머니도 첩이지만) 딴살림을 하면서 며칠에 한 번씩 집에 오셔서는,
 
101
‘이건 왜 이 모양이냐? 저건 왜 저 모양이냐? 집에는 밥귀신들만 모였느냐?’
 
102
하시고 기를 못 펴게 야단을 쳤읍니다. 그러면 우리 오누인 호랑이나 만난 듯이 큰숨도 못 쉬고 어머니는,
 
103
‘괜히 집에 들면 야단이야……. 그년이 그러라고 시킵디까?’
 
104
하고 싸움을 시작하였읍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돌아나가시면 집안은 폭풍우가 지나간 뒤같이 어수선하였읍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나가신 뒤면,
 
105
“이리 오너라, 괜찮다……. 빌어먹을 년놈, 어린것들까지 기를 못 펴게…….”
 
106
하시면서 나와 골짝골짝 우는 누이동생 용녀를 달래었읍니다. 지금도 그러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의 애정이라구는 요만큼도 (그는 손가락 끝을 보이면서) 없읍니다. 어머니 생각은 지금도 가슴에 그득하지만……. 휴…….”
 
107
그는 한숨을 쉬었다. 잠깐 흐르는 침묵 속을 사람의 소리가 지나갔다.
 
108
“암, 때가 지내 보니 아버지가 야단만 치시구 성가시게 구니까 미웁기만해.”
 
109
마산 친구가 동감이라는 듯이 말하였다.
 
110
“그래 우리 형님이 망발이로군……. 그것 버릇 좀 가르쳐야……, 허허허.”
 
111
얼굴 기름한 사람이 마산 친구 보고 농을 치다가 웃는 바람에 모두 따라 웃었다.
 
112
“이놈의 버릇없는 놈 같으니라구, 흐흐.”
 
113
하고 마산 친구가 웃음을 내는데,
 
114
“그 입들 좀 닫쳐라……. 엑 인두루다 지져야겠다…….”
 
115
하고 얼른 친구가 제지하면서 벙긋하였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여러 사람의 말에 입을 닫쳤던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116
“그러던 집안에서 우리 오뉘가 하늘인가 땅인가 믿던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우리 꼴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어머니가 그렇게 병환으로 근 한달이나 누워 계셔도 아버지는 잘 들어오시지 않았읍니다. 간혹 오시더라도 화만 내시고 나가 버렸읍니다. 그때 김덕대라고 금점에 돌아다니던 늙은이가 우리 아버지와 친하였는데, 그이가 아버지를 못 견디게 졸라서 의사도 부르고 약도 썼읍니다. 그리고 이웃에 사는 이모가 항상 와서 밥을 지어 주었읍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마는, 어느 날 어머니가 냉면이 잡숫고 싶다고 하시기에 돈은 없고 어쩝니까? 김덕대를 찾아갔더니 그 영감도 없겠지요…….
 
117
‘엑 죽어 봐, 죽으랴.’
 
118
어린 가슴에 결심하고 어버지 전방으로 찾아갔읍니다. 그때까지도 가게라고 벌이기는 하였으나 속이 빈 때였더랍니다. 전방으로 찾아가니 아버지는 안 계시고 서모가 저편 방에서 나오시면서,
 
119
‘왜 왔니?’
 
120
하기에 나는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돌쳐서려다가 저리로 올라오시는 아버지를 만났읍니다.
 
121
‘어째 왔니? 응.’
 
122
아버지는 벌써 눈살이 꼿꼿하셔서 나를 보십니다. 나는 기가 질려서 머뭇머뭇하다가 겨우 말을 끄집어냈읍니다.
 
123
‘냉면? 앓아 뒈질 지경에 냉면?’
 
124
하시면서,
 
125
‘가라! 보기 싫다.’
 
126
하시기에 그만 돌쳐섰읍니다. 어떻게 분한지 돌아서서 눈물을 씻고 집으로 돌아갔읍니다. 해골만 남은 어머니가 나를 보시더니,
 
127
‘네가 왜 울었니?’
 
128
하고 끓어 올라오는 가래를 억제하십디다. 나는 어머니를 보니 더욱 서러워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흑흑 느껴 울었읍니다.”
 
 
129
“어머니는 괴롭게 지내시다가도 정신만 좀 차리시면,
 
130
‘내가 죽으면 너희들을 누가…….’
 
131
하시고는 목이 메이서 더 말씀을 못 하셨읍니다. 돌아가시는 때에도,
 
132
‘용녀야─순남아.’
 
133
모기 소리만큼 뇌이셨읍니다.”
 
134
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격하였다. 그는 목이 메이는지 침을 삼키고 한숨을 쉬면서 달을 쳐다보았다. 달빛이 이상히 빛나는 그의 왼쪽 눈은 눈물이 스르르 젖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135
“그러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우리 오누이는 아버지에게 끌려서 거리에 있는 서모의 집으로 갔었읍니다. 우리가 살던 집은 그 뒤 일본 사람이 들어있었읍니다. 서모의 집으로 간 날부터 우리 오누이는 설움이었읍니다. 생아자도 부모요, 양아자도 부모라고 나로서 서모의 말씀을 하는 것은 불효막심한 일이지만 그때 그 서모는 참말 지독하였지요…….
 
136
그는 강계 기생이었는데 그때 나이 서른 셋인가 되었으나 퍽 젊게 보였읍니다. 그의 독살이 오른 눈과 안으로 옥은 이빨은 지금도 눈앞에 보이는 것 같읍니다. 우리 오누이는 편히 앉아 보지도 못하고 배불리 못 먹었읍니다.
 
137
‘오늘 ××장에 갔다 오너라. 사내 자식이 밥만 처지르지 말고 일도 해야지……. 나이 열 한 살에 저 꼴이냐?’
 
138
아버지가 하루는 들어오시더니 부엌에서 솔개비를 때기 좋게 자귀로 찍고 있는 나에게 편지를 주십디다.
 
139
‘××장에 가서 황 주사를 찾아 전하고 주는 것이 있을 터이니 가지고 오너라.’
 
140
하시기에 나는 서모가 주시는 찬밥을 먹고 떠났읍니다. 그때가 지금으로 치는 아홉시는 되었겠읍니다. ××장은 삼십리였읍니다. 두루마기도 없이 땟국이 흐르는 엷은 옷을 입고 나섰더니 눈 위에 스쳐오는 바람은 살을 에이는 것 같았읍니다.
 
141
‘어머니가 계셨으면…….’
 
142
나는 겨울이면 바지저고리에 솜을 퉁퉁 놓고도 두루마기까지 지어 주시던 어머니 생각을 하고 눈물을 흘렸읍니다. 나는 눈길에 찬바람을 쐬이면서 울었읍니다.
 
143
오정이 지나서 ××장에 이르러 그 사람에게 찾아가 그 편지를 주었읍니다.
 
144
‘응, 알았다.’
 
145
‘춘데 욕봤다. 배가 고프겠구나.’
 
146
그는 나를 방으로 불러들이더니 국수 장국을 사다 줍디다. 나는 어떻게 고마운지 세상에는 친아버지보다도 나은 사람이 있고나 생각하니 눈물이 납디다. 그리고 국수를 먹으려니까 늘 배를 주리는 누이동생의 그림자가 눈앞에 선해서 목에 넘어가지 않았읍니다. 나는 그 황 주사가 어디로 나갔으면 하고 은근히 기다렸읍니다. 그가 만일 없었으면 그 국수를 좀 건져서 감추었다가 용녀에게로 갖다 싶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어디로 나가지 않았읍니다. 내가 국수를 다 먹고 나니 그는,
 
147
‘네가 저것을 지고 어떻게 가겠니!’
 
148
그는 웃방에서 커다란 자루를 내다 줍디다. 그것은 녹말 가루였습니다. 촌 말 한 말은 되는 것 같았읍니다. 그가 새끼로 짊어져 주기에 등에 지니 허리가 휘청합디다. 길에 나서 몇 걸음 걸으니 그 추운 날에도 땀이 흐릅디다. 땀을 흘리면서 찬바람을 받으니 더욱 견딜 수 없었읍니다. 나는 그날 컴컴한 때 집으로 돌아갔읍니다.
 
149
‘요 배라먹을 자식……. 어디 가서 낮잠 자다 지금 오니? 응? 집에선 애가 타도록 기다렸는데…….’
 
150
서모가 나오더니 짐 지고 마루에 올라서는 나를 사정없이 밀치겠지요. 그러지 않아도 기운 없이 허덕이던 나는 그만 모로 쓰러져 마루 아래 떨어졌읍니다. 마루 아래 떨어지자 눈에서 불이 번쩍 나더니 이 눈(먼 눈을 가리키면서)이 들이제리는데 온몸이 송그러들고 이가 빠각거렸읍니다. 그래 눈을 붙잡고 몸을 일으키려니까 짐이 등을 꽉 잡아당겨서 그대로 몸을 틀면서,
 
151
‘아이구, 악 , 아이구.’
 
152
하고 이를 갈았읍니다. 언제 어디서 왔는지 용녀의 울음 소리가 귓가에 들렸읍니다.
 
153
‘또 엄살이지, 어서 못 일어나겠니?’
 
154
서모의 악쓰는 소리가 들렸읍니다.
 
155
‘에그, 이게 웬 피여? 응, 눈 다쳤구나.’
 
156
가게 심부름을 다니는 김 서방이 나를 일으키다가 깜짝 놀라 치는 소리에 서모도 겁이 났던지,
 
157
‘피가 무슨 피……. 저런 못 생긴 자식.’
 
158
하는 목소리는 아까보다 누그러졌읍디다."
 
159
그는 말을 마치고 기침을 두어 번이나 기쳤다. 나는 머리끝이 옴싹하고 가슴이 찌르르하여 전기를 받은 것 같았다.
 
160
“엑, 끔찍하군!”
 
161
마산 친구가 말하였다.
 
162
당시의 기억을 끌어내는 듯이 바다를 한참 내다보던 그는 천천히 입을 열어,
 
163
“이 눈은…….”
 
164
하고 멀은 눈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165
“으흠…… 이 눈은 그때의 잃은 눈입니다. 이것도 내 팔자가 그리 되었겠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하고 원통합니다. 하긴 그보다도 더 큰 설움이 있지만…….”
 
166
“팔자가 무슨 팔자요……. 그렇게 지독한 계집두 있담…….”
 
167
얽은 친구는 그 사람의 말을 가로막으며 흥분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168
“흥.”
 
169
하고 자기 신세를 비웃는 듯한 코웃음을 쳤다. 나는 그를 다시금 쳐다보았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 가로놓였던 장벽은 점점 물러가고 점점 친하여지는 듯하였다.
 
170
달은 한 공중에 높이 솟았다. 어디선지 물새의 울음이 파도 소리에 들렸다.
 
171
후리 당기는 소리와 멀리 울려 오는 발전기 소리가 은근히 들리었다.
 
172
밤은 점점 깊었다. 그는 그저 말을 이었다.
 
173
“그것은…… 내가 이 눈을 다치던 것은 열 세 살 때이었읍니다. 나는 그뒤로 이 눈을 넉 달이나 앓다가 그 이듬해 봄에야 겨우 나았어요. 그 해 여름에 아버지가 술 잡숫고 며칠 앓다가 돌아가셨읍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때에 무슨 생각이 나셨는지 보시기만 해도 이맛살 찌푸리시던 우리 오뉘를,
 
174
‘순남아! 용녀야!’
 
175
하시며 불러들이시더니 두 눈에 눈물이 핑그르 돕디다.
 
176
‘나는 아마 죽나 보다! 너의 모와 너희 오뉘한테 내가 못할 짓을 했다.’
 
177
하시고는 목이 메어서 다시 말씀을 못 하시는데,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나는 그때 어떻게 서러운지 목놓아 울었읍니다. 아홉 살 된 용녀도 엉엉 울었읍니다. 나는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그때에 느꼈읍니다.
 
178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 초겨울에 서모는 집을 팔아 가지고 자기 고향인 강계로 갔읍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이모의 집으로 가고 용녀는 읍에서 오십 리 되는 촌에 민며느리로 보냈읍니다. 기구한 우리 오뉘는 이렇게 갈렸읍니다. 이모의 남편 되는 사람은 그때 사십이 넘었는데, 사람이 퍽 얌전하고 동리에서도 인심을 괴이고 지내었으나 집은 넉넉치 못했읍니다.
 
179
나는 그때 다시 학교를 다녔읍니다. 옛날 어머니 계신 때에 학교에 다니다가 중도에서 서모를 모시게 되면서 못 다니던 학교를 사 년 만에 애꾸눈이 돼 가지고 가니 반가와하는 사람은 없고 놀려 주는 사람만이 있었읍니다. 그때 학교란 우스웠지요. 이십이 넘은 이는 고사하고 사십 되는 사람이 학교에 다녔읍니다. 그때 황해도 살다가 이사온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나보다 일곱 살인가 여섯 살 위로 나를 퍽 귀애하였읍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단소를 잘 불었읍니다. 나는 그때 불어 본 단소를 인제는 한평생 불다 죽을 것 같습니다.
 
180
내가 고향을 떠난 것은 열 일곱 살 되는 해 여름이었으니 학교를 졸업하던 이듬해였읍니다. 평양 나가서 공부한다는 것이 처음 목적이었읍니다.
 
181
‘어디 가든지 편지 자주 해라! 그리고 가 보아서 고생되거든 오너라. 죽식간에 집에서 지내게.’
 
182
이모부는 십 리나 바래다 주면서 신신부탁을 하였읍니다. 나는 그날 용녀를 찾아보고 이튿날 떠났읍니다. 그때 열 두 살 된 용녀는 서모 밑에 있을 때보다 별로 나은 것 같지 않았읍니다. 그는 나를 만나 갈리는 때까지 울기만 하였고, 내가 떠나는 때 어디서 얻었는지 엽전 여덟 닢을 내다줍디다. 나오는 눈물을 억제하던 나도 울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183
‘용녀야, 아무쪼록 괴로움을 참고 잘 있거라, 응? 내가 가서 공부해 가지고 올께 응?’
 
184
하고 우리는 갈렸읍니다. 그것이 영영 갈리는 것이라고는 용녀도 몰랐을 것 입니다.
 
185
평양으로 나갔으나 이런 놈의 신세에 무엇이 변변히 되겠읍니까? 더구나 애꾸눈이 되고 보니 병신이라고 누가 돌아도 보지 않았읍니다. 하는 수 없이 어떤 국수집 심부름꾼으로 들어갔읍니다. 그것도 객주집에서 친한 친구가 소개하여서 들어가게 되었지요. 그럭저럭 그 해도 지나고 그 이듬해도 지나갔읍니다.
 
186
삼 년 되던 해에 나는 평양을 떠났읍니다. 다시 영변을 들러서 이모댁과 용녀를 찾아본다는 것이 바빠서 그렇게 못 되었읍니다. 어떤 친구가 진남포에 벌이가 좋다고 끄는 바람에 솔깃하여 진남포로 나갔읍니다. 그러나 진남포에 가서 나는 재미를 못 보았읍니다. 다만 국수집 한 모퉁이를 차지하였을 때보다 좀 넓은 세상, 분주한 세상을 하나 더 보았읍니다. 진남포서 겨울을 지나 이듬해 목포로 내려갔읍니다.
 
187
목포 가서 일 년 동안은 비교적 편히 지냈읍니다. 어떤 운송부에서 짐을 취급하였는데, 그때 주인되는 일본 사람이 처음에는 ‘가다메상 가다메상’하기에 어떻게 골이 나는지 두어 번 화를 냈더니 그는 허허 웃고 맙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는 내가 화낸 것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얼마 뒤 부터는 나를 퍽 신임하였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188
‘박 서방, 박 서방!’
 
189
하고 어디 긴요한 심부름이 있어도,
 
190
‘박 서방, 박 서방!’
 
191
하고 나를 찾았읍니다. 나도 그 사람이 시키는 일은 성심껏 하였읍니다.
 
192
나는 목포에서 일 년을 지내고 이듬해에 그 운송점의 지점 일을 맡아 가지고 원산으로 갔었다가 다시 곤경에 들었읍니다. 그것은 그때 그 운송점 본점 주인이 갈린 탓도 있었읍니다만 내가 어떤 색시한테 반해서 마음이 들뜨게 된 탓이었읍니다. 나는 운송점을 나온 뒤에 한산 인부로 투족하였읍니다. 낮이면 괴롭게 일하다가도 저녁에 돌아와서 젊은 아내를 대하는 기쁨은……. 참…… 허허허…….”
 
193
하고는 그는 말하기 뭣하다는 듯이 웃었다.
 
194
“암, 그 맛 꿀보다 더 좋지……, 하하하.”
 
195
마산 친구가 웃는 바람에 모두 흥흥 하고 웃었다.
 
196
“그러나 그 색시와도 오래 못 살았읍니다. 그는 술장사하던 계집이었는데 꽤 이뻤지요…….”
 
197
하고 그는 벙긋하더니,
 
198
“한산 인부로 지낼 때의 생활은 운송점에 있을 때보다도 형편없었읍니다. 그 계집이 나를 배반한 것은 그 까닭도 되겠지만, 또 생각하면 누가 이(그는 멀은 눈을 가리키며) 꼴에 좋다겠읍니까? 하하하하.”
 
199
하고 그는 좌중을 돌아보며 웃었다. 우리들도 웃었다.
 
200
한공중에 떴던 달은 서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아까보다 좀 찬 기운을 느끼었다.
 
201
“나는 그때부터 술을 먹었읍니다. 그전에도 좀 먹기는 하였으나 그때처럼은 많이 먹지 않았읍니다. 돈푼 있으면 술 먹고 없으면 단소나……. 그때에도 단소는 차고 다녔지요. 사람이란 이상한 것이 처음에는 고향 생각과 누이동생 생각이 간절하더니 차츰 세월이 가고 멀어지니 애즐자즐하던 생각은 좀 엷어집디다. 그때까지도 편지 왕래가 있었으나 그 뒤로는 그것조차 없었읍니다. 몇 번 편지하였으나 회답이 없기에 나도 그만두었지요. 그러나 때때로 조용한 때면 용녀 생각에 가슴이 찢겼읍니다. 내가 회령가 있을 때에 어떤 고향 사람에게서 소식을 들으니 용녀는 성례까지 하고 잘 지낸다고 하였읍니다.
 
202
나는 그 뒤로 어디 가 오래 있지 않았읍니다. 내가 회령 있다가 부산 내려갔다 대구로 가 보았읍니다. 그렇게 다니는 사이는 일도 별일을 다 해 보았읍니다. 치도판으로, 항구판으로 탄광으로 돌아다니는 사이에 술과 계집도 자연 가까와졌읍니다. 그렇게 이리저리 흘러다니면서도 고향에는 못 가 보았읍니다. 이렇게 말씀하고 내가 용녀를 못 잊는다면 거짓말 같지만 실상은 빈 주먹만 들고 고향이라고 찾아가기가 뭣해서 못 간 것입니다. 그렇게 굴러다니다가 부산까지 가게 되었지요……. 그것은 내가 스물 여섯된 때이었읍니다. 아니 스물 일곱…….”
 
203
그는 말 끊고 손가락을 꼽더니,
 
204
“옳군, 스물 여섯이 맞습니다. 그 해 여름에 청진서 벌이가 없으니 항구판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들과 나와 셋이 주인집에 밥값도 못 갚고 떠나서 부산으로 갔었지요. 그 해 여름은 어떻게 더웠는지 참말 몹시도 더웠읍니다. 처음 그리로 가기는 여림창 뗏목일이 좋다고 해서 갔으나 그 해따라 어떻게 가물던지 물이 불어야 떼도 몰지요. 그런데 떼에는 모두 경험이 없는 작자들이니까 떼청에서 받아 주지 않습디다. 그래 하는 수 없이 감자밭 조밭 김도 매고 꼴도 베어다 주면서 밥을 얻어먹고 그 해 여름은 그럭저럭 지냈읍니다. 도끼 톱을 들고 산에 가서는 몇 아름씩 되는 나무를 찍어 넘어뜨렸읍니다. 그 크나큰 나무가 우지직하고 쾅 쓰러지는 때면 좁은 골이 떠는가는 것 같습니다. 도끼질과 톱질에 괴롭던 마음도 큰 나무가 벼락같이 쓰러지는 것을 보면 유쾌하기 그지없읍니다.
 
205
그렇게 쓰러진 나무를 다시 도끼와 톱으로 자르고 가지를 쳐서 산 아래로 내리칩니다. 나무와 나무가 빼곡한 사이 눈길에 ‘두장’을 대어서 머리를 돌려 놓으면 그 큰 나무통이 내리쓸리는 것은 무어라 할 수 없지요. 그렇게 나무를 넘어뜨릴 때나 골에 내리칠 때에 아차 잘못하면 몸이 가루가 되지요…….”
 
206
하고 그는 뻗치고 앉은 다리를 내려다보면서,
 
207
“이 다리도 그렇게 상한 것입니다.”
 
208
말하였다. 좌중의 눈은 그 사람의 얼굴에서 다리로 옮겼다. 나는 알 수 없이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넘어가는 나무와 내리질리는 나무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209
“하루는…….”
 
210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211
“도끼를 들고 산으로 올라갔읍니다. 어쩐 일인지 그날 아침에는 몸이 찌긋찌긋하고 어젯밤 뒤숭숭하던 꿈자리가 생각나 하루 쉴까 하고 망설이다가 그날이 삯전 주는 간조 날이니까 말하자면 돈 욕심이 나서 일터로 나갔읍니다. 그러지 않아도 돈은 주지만 간조하는 날 안 가면 감독 녀석의 잔소리가 더욱 심하니까 나갔던 것입니다…….
 
212
둘째번 나무를 베어서 다듬어 놓고 두장을 내다가 쓸리는 나무통에 치어 넘어졌읍니다.
 
213
‘엑, 큰일났다!’
 
214
하는 사람의 고함 소리가 귓가에 들리자 마자 나는 그만 정신을 잃었습니다. 나무가 이만저만할쎄 내려가는 것을 잡지, 그렇게 큰 나무는 내리쓸리게 되면 항우 같은 장사라도 걷잡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얼마 뒤에 정신을 차리니까 후끈후끈한 방에 누웠는데,
 
215
‘정신차리게, 어떤가?’
 
216
하고 같이 일하던 친구가 모여 앉았다가 묻습디다. 나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것이 어떤 줄을 몰랐었으나, 차츰 이 다리가 저리고 무겁고 가슴 팔 할 것없이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읍니다. 들으니 이 무릎 보시오, 지금도 이렇게 (그는 옆으로 툭 비어진 무릎을 걷어올리고) 불거졌읍니다만, 그때에는 심하였읍니다. 이렇게 무릎을 삐고 넓적다리가 부러진 것을 모두 다리고 맞추어 놓고 나무를 대어 처맸읍니다. 그때 서 서방이란 강원도 친구는 그 즉석에서 머리가 부서지고 갈빗대가 부러져 죽었읍니다.
 
217
‘그만하기 하늘이 도왔지…….”
 
218
친구들은 나의 목숨붙은 것만 다행이라고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러나 병신되고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힙디다.
 
219
그러나 하는 수 없었읍니다. 나는 여러 달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읍니다. 나를 낳은 아버지까지 돌보지 않는 세상에서 그와 같은 친구의 도움을 받는 때 나는 무어라 할 수 없었읍니다. 나는 그 뒤로 친구의 고마움을 느꼈고 한 번 사귄 친구는 소홀히 여기지 않았읍니다. 이듬해 봄부터는 막대를 짚고 걸어다니게 되었으나 이 다리를 가지고 무슨 일을 하겠읍니까? 평생에 배운 재주라고는 막벌이밖에 없는데, 그것을 못 하게 되니 굶는 수 밖에 무슨 수가 있겠읍니까? 나는 얼마 동안 더 조심을 하다가 친구들이 한푼 두푼 모아 주는 돈을 받아 가지고,
 
220
‘고향에나 가지.’
 
221
하고 떠났읍니다. 말은 좋게 고향으로 간다고 하였으나 돈 한푼 없이 더구나 병신까지 되어 가지고 무슨 면목에 고향으로 갑니까? 청진으로 배 타러 나가다가 중로에서 길을 변경하였지요. 별로 정처도 없이 떠나 촌촌이 들러 밤을 지내었읍니다. 늦은 봄이라 길에 나서면 몸이 노그라지는 듯 하고 어떤 촌집을 찾아 들면 저녁을 먹고 봉당에 나 앉아 황혼빛에 잠긴 산과 들을 바라보면 무어라 할 수 없는 애틋한 생각에 가슴이 찢겼읍니다. 나는 가슴에 서린 정을 단소로 하소연하였읍니다.
 
222
단소 소리가 나면 온 동네가 모여 들어서 들었읍니다. 어떤 늙은이는 자기 집으로 끌고 가서 술도 받아 주고 밥도 먹이고 어떤 사람은 돈푼씩 줍디다. 처음에는 사양하였으나, 차츰 궁하니까 사양하던 마음은 딴판으로 돈주기를 원하였읍니다. 그때부터 나는 단소로 밥을 먹었고, 밥이 떨어지면 단소를 불었지요. 나로 생각해도 내 소위가 더럽기 측량 없읍니다.”
 
223
하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
 
224
“산천은 고금동이요 인심은 조석변이라는 말과 같이 알지 못할 것은 사람의 마음인 줄 압니다. 몸이 성하고 주먹이 든든해서 어디를 가나 두려울 것이 없을 때에는 고향 생각이 나고 용녀 생각이 나도 빈주먹에 어찌 가랴 하여,
 
225
‘어느 때든지 돈벌어 가지고…….’
 
226
하고 어느 때든지 돈벌 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믿었으나, 이렇게 병신 된 뒤로는 그런 희망은 끊어졌읍니다.
 
227
‘인제야 언제 돈벌어 가지고…….’
 
228
하는 생각이 앞서서 용녀와 이모 생각을 하다가도 혼자 탄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병신이 되어서 어디를 가든지 별로 돌보는 사람도 없이 되니까 더욱 고적하고 옛날의 어머니와 이모 내외와 용녀가 생각납디다.
 
229
작년…… 아니 재작년이었읍니다. 나는 어찌어찌 영변 근방까지 갔다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영변읍으로 들어갔읍니다. 그러니 고향을 떠난 지 열 세 해 만에 고향 땅을 밟게 되었지요. 옛날 면목이 있으면서도 생소한 것이 마치 꿈에 본 산촌 같았읍니다. 길에서 옛날 면목이 있는 사람을 만났으나 나는 그의 눈에 띄는 것이 싫어서 슬슬 피하여 갔읍니다. 그렇게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니다 옛날에 내가 있던 이모의 집 골목에 들어서서 한참 가다가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이모의 오막살이가 있어야 할 터에는 커단 기와집이 놓였겠지요.
 
230
‘우리 이모가 갑자기 부자가 되었나?’
 
231
하고 나는 문패를 들여다보니 그것은 딴 사람이었읍니다. 거리에 나오면서 누구 보고 물어 볼까 하다가 나의 꼴이 이 꼴이 되다 보니 차마 묻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나 그저 돌아서기는 너무도 섭섭하여,
 
232
‘어떻게 찾노?’
 
233
하고 계책을 생각하다가 저편으로 점점 가까이 오는 사람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그 사람은 나에게 단소를 가르쳐 주던 소학교 시대 친구였읍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지나가려는 그의 이름을 불렀읍니다.
 
234
‘이게 웬일이오? 응?’
 
235
그는 나를 돌아다보고 의아해하더니 차츰 눈이 둥그래져 내 손목을 잡았읍니다.
 
236
‘이렇게 만나기는 참 뜻밖인데?’
 
237
나는 그 사람이 반가우면서도 사람의 시선이 몸을 스치는 것이 싫었읍니다.
 
238
‘자, 우리 집으로 갑시다.’
 
239
그 사람은 싫다는 나를 짖궂게 끌었읍니다. 그는 옛날 집대로 있었으나 모든 것이 옛날만 못하였읍니다. 그도 변모가 퍽 되었읍니다.
 
240
‘차츰 얘기하지.’
 
241
내가 모든 것을 물으니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나는 저녁 때에 그의 얘기를 들었읍니다.
 
242
그의 말을 듣는 나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어쩔 줄 몰랐읍니다. 이모 내외는 삼사 년 전에 북간도로 갔다는데 소식이 없었읍니다. 늙은이가 간도 간다고 나으리마는 낯익은 곳에서 남에게 창피하니까 갔나 보더군요. 그리고 용녀는 참말 기막힌 일이지요…….”
 
243
그는 차마 말할 수 없다는 듯이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244
“용녀는 신세를 망쳤읍니다. 내가 떠난 뒤에 성례하여 그럭저럭 살았으나, 그 남편되는 사람이 아편장이가 되었더랍니다. 본래 없는 형세에 그 꼴이 되니 집안은 더 말할 수 없이 되고 용녀의 괴로움은 컸던가 봅니다. 그것도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있었더면 괜찮았겠는데, 그들이 구몰하고 남편이 그 꼴이니 얼마나 괴로왔읍니까? 그 뒤 그들은 평양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였다가 그 남편은 용녀를 어떤 유곽에 팔아먹고 도망하였습니다. 그 뒤 용녀는 안동현 어떤 유곽에 있다고도 하고 대련 어떤 유곽에 있다고도 하는데 잘 알 수 없다고 하였읍니다.
 
245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날 밤을 일각이 삼추같이 지냈읍니다. 이튿날 떠나 절름절름하면서 안동현으로 향하였읍니다. 안동현과 대련의 유곽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찾아보았읍니다. 나는 용녀라고 불렀으나 용녀를 아는 사람은 없었읍니다. 나는 단소를 불며 다녔읍니다. 단소 소리에 머리를 내미는 분 바른 여자의 얼굴은 마른 내 가슴에 이상한 물결을 쳤읍니다. 나는 그 속에서 용녀 비슷한 얼굴만 보면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았더니,
 
246
‘얘, 너한테 반했나 보다.’
 
247
‘아이, 별꼴 다 보겠네.’
 
248
하고 저희들끼리 농도 하고 욕도 합디다.
 
249
그러나 근 일 년이나 그렇게 다니면서 물어 보았더니 나는 대련 창기들과는 거의 면목이 익어지고 또 용녀란 이름은 이 입 건너 저 입 건너 그들이 대개 알게 되었읍니다. 첨에는 그들이 용녀를 감추고 가르쳐 주지 않는 것 같이 생각이 되었으나, 그 뒤에는, 참말로 거기에는 용녀가 없다고 믿었읍니다. 그래 나는 떠나려고 하였읍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어떤 키작고 예쁘장하게 생긴 색시가,
 
250
‘그것이 아마 계월인가봐! 그래 옳아. 영변이 고향이라던가? 한데 키가 크고 눈이 작은……. 저 어른 말과 같이 생긴 애야요……. 참, 그 오빠가 있는데 애꾸눈이래.’
 
251
하고 나를 보더니,
 
252
‘서울 신마찌 ××루에 가 찾으세요.’
 
253
하고 가르쳐 줍디다. 나는 어떻게 반가운지 미칠 것 같습디다. 이튿날 그곳을 떠났읍니다.
 
254
도보로 근 한 달이나 걸려서 서울로 갔읍니다. 서울 가서 그런 색시를 찾았더니 얼마 전에 군산 유곽으로 갔다고 역시 어떤 색시가 가르쳐 줍디다. 나는 그만 어깨가 축 늘어지고 가슴이 덜렁 내렸앉았읍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서울서 봄을 지나 군산으로 내려갔읍니다. 돈이나 있어서 차를 타고 다녔으면 무슨 걱정이겠읍니까마는 이 다리를 가지고 도보로 다니니 그 고생은 무어라 할 수 없이 켰읍니다…….
 
255
그렇게 군산으로 간 것은 작년 여름이었읍니다. 군산 가서 한 달이나 찾았읍니다. 그들은 내 꼴이 이 모양이니 잘 가르쳐 주지 않습디다. 그런 것도 귀찮게 돌아다니면서 단소를 불다가는 물어 보았더니 그런 색시가 ──서울서 온 평안도 색시 계월이가 ──얼마 전에 부산으로 내려갔다고 합디다. 나는 다시 부산으로 떠나 내려가다가 중로에서 절도 혐의로 경찰서에 잡혔지요……. 가도록 심산이라더니 나 두고 한 말인가 봐요…….그래 얼마 신고하다 전에 부산 가서 군산서 가르쳐 주던 그 유곽으로 찾아갔더니……
 
256
참…….”
 
257
그는 기가 막힌 듯이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258
나의 머리속에는 아까부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259
먼 촌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260
“이곳 와서…….”
 
261
하고 그는 입을 열었다.
 
262
“용녀는 열흘 전에 이곳 와서 물에 빠져 죽었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예까지 찾아왔읍니다마는……. 조금만 일찌기 왔더면 그가 죽지 않았을는지…….”
 
263
이때 곁에 앉았던 친구가,
 
264
“응, 전번에 그 송장이로군!”
 
265
하고 말하였읍니다.
 
266
그는 말을 하고 그 사람을 바라보더니,
 
267
“나도 이곳을 인제는 떠나겠읍니다.”
 
268
하고 고요히 말하였다.
 
269
나는 이튿날 아침차로 김군과 같이 동래 온천으로 갔었다. 그 이튿날 해운대에서 온 사람의 편에,
 
270
‘그 단소 불던 사람도 어제 낮에 물에 빠져 죽었다.’
 
271
는 마산 친구의 편지를 받았다.
 
272
그도 누의동생의 뒤를 따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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