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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책상 옆에서는 난로가 새빨갛게 달아가지고 있소. 밖에서는 살점이 떨어지게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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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봄이라고는 망원경을 대고 보아도 상투끝도 보이지 아니하오. 대체 무슨 흥으로 봄수필을 쓰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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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建陽多慶)’ 이라고 써붙인 풀도 마르기 전에 신문과 잡지에는 버젓이 봄이 왔소. 햇볕이 금시로 나른한 것 같고 어딘지 꽃이 환히 피어 있는 듯만 싶게……(신문 ․ 잡지를 만드는 양반들이 도대체 재주가 용한 분들이지만 오지 아니한 봄을 미리 다가오게 하는 재주는 미상불 큰 재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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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신문과 잡지에 봄소식이 창경원 야앵처럼 흐뭇지게 전해지는 서슬에 둔감인 나도 비로소 전당잡힌 춘추복이 맘에 내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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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나케 책상서랍을 뒤져 전당표지를 찾아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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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천행으로 유질(留質)기한이 바로 그 날이었소. 아슬아슬했지요. 만일 그 날이 지났더라면 금년 봄도 작년 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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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불여 장제류(人生不如長堤柳) 과진동풍 미탈면(過盡東風未脫綿)을 청승맞게 부르고 있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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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보는 이에게 사정사정해서 겨우 ‘4개월분 이자입’ 이라는 도장을 받아왔지요. 이렇게 해서 내게도 봄이 왔소 ─ 전당표지에 봄이 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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