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것은 오직 백성일 뿐이다.
5
백성의 두려워할 만한 것은 수재(水災)나 화재(火災)나 호환(虎患)이나 표환(豹患)보다 심하다.
7
그러나 윗사람이 늘 함부로 대하고 길들이려 하며 잔학하게 그들을 부리려 하는 것은 유독 왜인가?
9
대저 함께 이루는 것만을 즐겨 항상 보는 것에 구애되며
11
순수하게 법을 받들고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은
13
늘 그러한 백성[恒民]이니, 항민은 두려워할 게 없다.
15
사납게 빼앗겨 살갗과 뼈와 골수가 찢기고 집의 수입과 땅의 지출을 다 바치며
17
무궁한 요구에 맞춰 공급함으로 근심하고 탄식하며 윗사람을 헐뜯는 사람을
19
원망하는 백성[怨民]이니, 원민도 반드시 두려워할 필욘 없다.
21
자취를 푸주간에 감추고 몰래 딴 마음을 품어
23
궁벽한 천지 사이에서 흘겨보다가 요행한 때에 변고가 생기면
25
자신들이 원하던 걸 실현하려는 사람을 호협한 백성[豪民], 즉 호민이라 한다.
27
호민(豪民)이라는 사람들은 두려워할 만하다.
33
팔을 휘두르며 언덕이나 밭 위에서 한 차례 부르짖으면
35
원민(怨民)들이 소리를 듣고 모이니 도모하지 않았는데도 동시에 소리친다.
37
저 항민(恒民)은 또한 살 길을 강구하여
39
부득불 호미와 곰방메, 창 따위를 들고 따라 가서 무도한 이들을 죽인다.
41
진나라가 망한 것은 진승과 오광 때문이고,
43
한나라가 혼란스러워진 것은 또한 황건적으로 인해서였다.
45
당나라의 쇠함은 왕선지와 황소가 편승하여
47
마침내 그것 때문에 사람과 나라를 망하게 하고서야 그만뒀다.
49
이것은 모두 백성을 괴롭혀 스스로 기른 허물로 호민(豪民)이 틈에 편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51
하늘이 목민관을 세운 것은 백성을 기르도록 해서이지
53
한 사람으로 하여금 윗자리에서 방자하게 흘겨보며
55
계곡이나 골짜기 같은 메워지지 않을 욕심을 채우려 해서가 아니다.
57
그러니 저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의 재앙은 마땅하고 불행한 일이 아니다.
59
지금의 우리나라는 그렇지가 않다. 땅이 좁고 사람이 적으며
61
백성은 또한 나약하고 악착같고 기이한 절개와 호협한 기상이 없다.
63
그러므로 평상시엔 재주 있는 사람과 준수한 사람이 나와도 세상에 쓰여지지 못했고,
65
난리가 닥쳐도 또한 호민이나 사나운 졸병이
67
앞서서 멋대로 난리를 펴 나라의 근심인 사람들이 없었으니, 또한 다행한 일이다.
69
비록 그러나 지금의 조선은 고려 때와는 다르다.
71
고려때엔 백성에게 세금을 부과함에 상한선이 있었고
73
산과 연못에서 나오는 이익을 백성과 공유했다.
75
그리고 상업은 통하게 했고 장인들에게 혜택을 줬으며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하도록 했다.
79
갑작스런 변란과 좋은 일이 있더라도 증세하지 않았다.
81
그럼에도 고려 말에 이르러선 오히려 삼공(三空)을 걱정해줄 정도였다.
83
조선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구구한 백성의 세금으로
85
귀신을 섬기고 윗사람을 받드는 절개는 중국과 동등하다.
87
백성이 낸 세금은 오푼인데 세금이 나라에 귀속된 것은 겨우 한 푼이니,
89
그 나머지는 간사하고 사사로운 관리들에게 낭자하게 흩어졌다.
91
또한 관청엔 여분의 저축해둔 게 없어 일이 있을 때마다 1년에 간혹 두 번이나 세금을 내게 하니,
93
수령과 재상들은 이것을 빙자하여 가혹하게 징수함에 또한 끝이 없었다.
95
그러므로 백성의 근심과 원망이 고려말기보다 심했던 것이다.
97
그럼에도 윗사람이 편안해하며 두려워할 줄 모르는 것은 우리나라엔 호민(豪民)이 없기 때문이다.
99
불행히 견훤과 궁예 같은 사람이 나와 흰 몽둥이를 휘두른다면
103
어찌 가서 쫓지 않을 거라 보장하며, 기주(蘄州)와 양주(梁州)와 육합의 반란은
105
발을 구부리더라도 기다릴 수가 있으리라.
107
그러니 목민관은 두려워할 만한 형세를 분명히 알아
109
지금까지의 규범을 바꾼다면 오히려 그만두게 함에 미칠 만하다.
111
* 박부추수(剝膚椎髓): 한유(韓愈)가 사용했던 말이다. 살을 깎고 골수를 부순다는 의미로, 가혹한 수탈 정책을 상징하는 말이다
112
* 왕선지(王仙芝 )ㆍ황소(黃巢) : 왕선지는 당(唐)의 복주인(濮州人). 희종(僖宗) 초에 무리를 모아 난을 일으켰다. 뒤에 황소(黃巢)가 호응해 주어 크게 세력을 떨쳤으나 진압된 후 죽었다. 황소는 당(唐)의 조주인(曹州人). 대대로 소금장사였다. 많은 재산을 모아 망명객들을 부양하였고, 무예에 뛰어나 왕선지가 난을 일으키자 호응했다. 왕선지가 죽은 뒤 왕으로 추대되고 충천대장군(衝天大將軍)이 되었다. 10년 동안 여러 지역을 점령하여 큰 세력을 떨쳤으나 뒤에 패망하여 자결했다
113
* 계학지욕(溪壑之慾): ‘끝이 없는 욕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14
* 한졸(悍卒): 경한지졸(勁悍之卒)의 준말로, 강하고 날랜 병사란 뜻이다
115
* 삼공(三空) : 흉년이 들어 제사를 궐하고, 서당에 학도들이 오지 않고, 뜰에 개가 없음을 비유한 가난을 상징하는 말임
116
* 낭려(狼戾): 땅에 알곡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양
117
* 祈ㆍ梁ㆍ六合之變 : 기주와 양주(梁州)를 거점으로 했던 황소(黃巢)의 난을 가리킴
118
* 현철(弦轍): 현(弦)은 현(絃)과 같으므로 곡조(曲調)를 뜻하며, 철(轍)은 수레바퀴이지만 여기서는 궤도(軌道)를 뜻한다. 즉 현철(弦轍)은 ‘지금까지 통행되어온 규범’이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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