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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의 혈육도 남기지 못한 어떤 젊은 과부가 남편의 삼년상도 치르기 전에 개가할 의향을 가지고 하루는 약간 소중한 물건만을 대강 추려서 한 보퉁이 싸이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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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쯤 걸어가다가 이 과부는 어떤 산 모롱고지에 이르자 마주 바라보이는 건넛산 공동묘지로 저도 모르게 눈이 쏠렸다. 우뚝 걸음을 세우고 바라 보았다. 거기엔 고인의 무덤이 있는 곳이었다. 올송졸송 공지가 없이 둘러 붙은 그 무덤들 가운데서 이 과부는 어느 것이 남편의 무덤일까를 일심으로 찾기에 바빴다. 아직 잔디풀이 완전히 무덤을 덮지 못한 하나의 새 무덤, 분명히 그것이 남편의 무덤인 것을 알게 되자 이 과부는 소스라쳐 놀랐다. 그 무덤 옆에는 틀림없는 자기의 남편이 이전 생시 모양으로 새까만 주의 (周衣)를 입고 서서 손을 헤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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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이 과부에게는 내 혼이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는데 나를 버리고 시집을 가다니! 어서 발길을 돌리어 자기 있는 곳으로 오라고만 손을 헤기는 것 같아서 자기의 지금 집을 떠난 행동을 하느님이 내려다 보고 금시 벌을 줄 것 같게 마음이 두려웠다. 이미 작고한 남편은 잊어버리자 일단 마음을 정하고 떠난 길이면서도 자책에 뉘우쳐지는 마음을 이겨낼 길이 없었다. 너무도 무서움에 그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감은 눈앞에도 그 산 그 무덤은 보이고 그 무덤가에선 여전히 남편이 손을 헤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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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하고 머리 위에 이었던 보자기가 땅에 떨어졌다. 손맥이 뽑힌 것이다. 뒤이어 곧 과부도 모로 쓰러졌다. 몸을 받쳐 줄 다리 힘도 없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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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 여인의 뒤에서 짐을 싣고 오다가 목도(目睹)했다는 우차부(牛 車夫)의 이야기와 병원으로 실려가 응급 수당을 받고 나서 의사의 물음에 직접 그 여인의 입으로 나온 말이라고 전하는 사람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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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무덤가에서 손을 헤겼다는 남편은 그것이 사람일 수는 없고, 그 부인이 개가를 하게 되므로 작고한 남편에게 절개를 못 지키는 미안한 마음에서 그렇게 보여진 환상(幻想)임에 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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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부인이 어떻게도 남편을 생각하고 있었더라는 것과 또 개가라는 것이 어떻게도 그 부인으로 하여금 마음에 걸리게 하였더라는 것을 일반은 여기서 알 수가 있게 됨에 죽도록 수절을 못하고 개가에 마음을 먹었다가 이렇게 혼이 났으니 인젠 개가에의 마음은 그 부인으로 일절 두지 않으리라 하는 것이 누구나의 추측으로 자못 흥미롭게 그 동리에선 그 부인의 그 후의 행동을 주시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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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부인은 일반의 추측을 완전히 무시하고 바로 며칠이 지나지 못해서 가다가 기절을 하였던 그 길을 다시 걸어가고야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다들 놀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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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놀랐다. 나는 그 대담한 생활 태도에 놀랐다. 작고한 남편을 그렇게 못 잊어 하면서도 수절을 무시하는 대담성―무엇이 그 부인을 이 길로만 그렇게 이끌어 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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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재미가 나는지 시집을 간 날 저녁부터 가마니를 부처끼리 서치는데 밤에도 자지 않고 하루 열 폭씩을 쳐낸다나" 하는 마지막 마디를 들었을 때 나는 그 부인이 아직 이루지 못한 청춘에 불타는 생활에의 의욕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넘쳐 흐르는 왕성한 생활력을 수절의 가슴속에 얌전하게 묻어 썩이는 것과, 이미 작고한 사람이니 영원히 잊어버림으로 천부의 생활력을 마음껏 발휘해 보는 것과, 그 부인도 얼마나 생각해 보다가 필야엔 이 길을 걷기로 했을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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