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풀밭에 놓으니 도야지는 다짜고짜로 뜯어먹기 시작한다. 그 코는 결코 땅을 떠나지 않는다.
4
그는 부드러운 풀을 고르는 것도 아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부터 무찔러 나간다. 훌칭이와 같이 또는 눈 먼 두더지와 같이 곁눈질도 않고 갈팡질팡 그저 앞으로 앞으로 짓쳐 나간다. 그리고도 코가 지치지 않음은 놀랄 일이다.
5
그렇지 않아도 김칫독 같은 배를 더욱 더 둥글게 만들 생각밖에 아니한다. 일기가 어떻게 변하든지 그런 것은 조금도 괘념을 않는다.
6
몸 털이 한낮 뙤약볕에 타오르는 것도 돌아보지 않거니와 시방 또 우박 실은 무거운 구름장이 풀밭 위를 뒤덮은 것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7
까치는 약삭빠르게 용수철에 튕기는 듯이 날아올라 몸을 사리고 칠면조도 울 안으로 숨는다. 그러고 어린 망아지조차 측백나무 그늘로 기어든다.
8
그러나 도야지는 뜯어 먹는 그 자리에서 꼼짝달싹을 하려 들지 않았다.
10
그는 조금 식상이 되었든지 꼬리를 흔들지도 않는다.
11
우박이 쏟아져서 우두두둑 몸에 부딪히매 그제야 신트림 소리로 중얼거린다.
12
“에이 몸 괴로워 또 진주를 끼얹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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