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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간 동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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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백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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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간 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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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벌써 몇 년 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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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가까이 내가 참 좋아하는 동무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응칠(應七)이라고 부르는데 나이는 그때 열두 살인 나와 동갑이었고 학교도 나와 한 반으로 오학년 일조였습니다. 이 응칠군이야말로 씩씩하고도 용기 있는 무척 좋은 동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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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칠군의 아버지는 고기 장사를 하는데 사흘 만큼 한 번씩 열리는 장날마다 고기뭉치를 지고 가서 팝니다. 그의 어머니는 날마다 집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남의 집에 가서 빨래도 해 주고 또 농사철에는 남의 밭도 매 주고 모두 심어 준답니다. 그리고 그의 동생은 열살 짜리 계집아이 순금이하고, 일곱 살 짜리 응팔이, 세 살 되는 응구하고 도합 셋이었는데 순금이는 날마다 노는 사이 없이 어머니 일을 거들어서 참 부지런한 것 같습니다마는 거의 날마다 그의 어머니에게 얻어맞고 담 모퉁이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응팔이는 응구를 업고 길가에 나와 놀다가 무거우면 그냥 땅바닥에 응구를 내려놓고 저는 저대로 놀고 있으면 응구는 코를 잴잴 흘리며 흙투성이가 되어 냅다 소리를 질러 울기를 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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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칠이는 그래도 한 날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잘 다녔습니다. 공부는 나보다 조금 나을까요, 평균점은 꼭 같이 갑(甲)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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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칠이는 마음도 좋고, 기운도 세고 한 까닭에 우리 반 생도뿐만 아니라 아무하고도 잘 놀았습니다. 아이들이 싸움을 하면 반드시 복판에 뛰어 들어가서 커다란 소리로 웃기고 떠들고 하여 싸움 중재를 일수 잘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거의 날마다 꾸지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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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월사금을 가져오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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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습자지를 가지고 안 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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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벌을 서기도 자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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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습자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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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칠이는 왜 청서를 한 번도 내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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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선생님의 말소리에 습자 쓰느라고 짹 소리 없이 엎드려 있던 우리 반 생도는 모두 일제히 응칠에게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응칠이는 신문지 조각에 글자를 쓰던 붓을 멈추고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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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칠이 너 이리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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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웬일인지 몹시 노해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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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칠이는 교단 앞으로 나와서 고개를 숙이고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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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너는 월사금도 벌써 반 년 치나 가져오지 않고, 잡기장도 습자지도, 도화용지도 아무것도 사지도 않고 학교에는 왜 다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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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선생님이 꾸지람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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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돈이 없다고 안 주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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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칠이는 얼굴이 새빨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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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버지가 돈이 없어? 네가 돈을 받아 가지고는 좋지 못한 데 써버리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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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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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장도 안 사 줄 리가 있나. 네가 정녕코 돈을 다른 데 써 버린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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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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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대로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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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그만 응칠의 뺨을 한번 휘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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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용서하십시오. 아버지가 안 사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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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칠이는 뺨에다 손을 대고 금방 소리쳐 울 것 같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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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두근거려지며 응칠이가 가엾어 못 견디겠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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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만 벌떡 일어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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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정말 응칠이 집에는 돈이 없어요. 잡기장 사려고 돈을 달라면 학교에 못 가게 합니다. 응칠이 아버지는 돈이 없어 밥도 못 먹는다고 야단을 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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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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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너는 어떻게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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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선생님이 나를 노려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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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슴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 응칠이를 학교에 보낼 때는 응칠의 아버지도 돈벌이가 좋으셨는데 응칠이가 사 학년 때부터는 돈벌이가 조금도 없었으므로 그의 아버지는 응칠이도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무슨 일이라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월사금이나 학용품을 사려고 돈을 달라면 가지 못하게 하여 학교에는 왜 자꾸 다니면서 돈을 달라느냐고 야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응칠이는 오학년에 오른 후로는 거의 돈 한 푼 아버지에게 얻어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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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달라면 학교에 못 가게 하고 돈 없이 월사금도 바치지 못하니 선생님이 꾸지람을 하시고 정말 응칠의 사정은 딱했습니다. 나는 이 모든 사정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응칠이가 무척 가엾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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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응칠이는 그만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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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입니다 . 그날도 나는 형님이 사다 주신 잡지책과, 그림책을 들고, 어서 응칠에게 갖다 보이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막 대문을 나서 응칠이 집 가는 편으로 다섯 발자국도 못 걸어갔을 때 웬일입니까. 응칠이가 담 모퉁이에 붙어 서서 우리 집 대문을 엿보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어떻게 반가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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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우리 집에 놀러오는 길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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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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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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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인지 응칠이는 몹시 기운이 없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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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저의 아버지가 아주 돈벌이를 못해서 밥을 못 먹나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응칠이 어깨를 잡고 우리 집으로 가자고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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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너의 집에는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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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칠이는 나의 팔을 뿌리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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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문간까지 와서 안 들어갈 테냐. 이것 봐라. 이것 형님이 사다 주신건데 너하고 같이 읽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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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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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칠이는 그렇게 좋아하는 잡지와 그림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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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제 너하고 같이 놀지 못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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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칠이는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바라보며 금방 울 것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응칠의 이 한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 전부터 만주로 돈벌이 간다고 하는 응칠의 아버지 말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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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만주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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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칠이는 대답 대신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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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만주에는 마적이 많아서 사람을 막 죽인다는데, 얘야 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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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는 응칠에게 다가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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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할 수 있나. 우리 아버지가 기어이 가신다는데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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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언제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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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 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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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어느 사이엔지 우리들은 어깨동무를 해 가지고 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울면서 걸어온 것이 응칠의 집 앞이었습니다. 다 ─ 찌그러져가는 그의 집 방 안에는 시커먼 커 ─ 다란 보퉁이 한 개가 놓여 있고 건넌방에 곁방살이하는 순덕이네 방에는 응칠의 집 식구가 모두 둘러 앉아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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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칠아. 너 어디 갔다 오냐. 어서 밥을 먹어야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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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순덕이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본 나는, 눈물이 자꾸 더 흘러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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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이 집은 순덕이네 집이 됐단다. 우리가 간다고 순덕이네 집에서 밥을 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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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응칠이는 삽짝에 붙어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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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들어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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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어라. 나는 밥 먹고 곧 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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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응칠이는 순덕이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얼른 눈물을 씻고 집으로 달려와서 어머니를 보고 응칠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돈을 좀 주어서 응칠의 아버지가 만주에 가지 않더라도 돈벌이 할 수 있도록 하자고 떼를 써 보았습니다마는, 어머니에게 무척 꾸지람만 듣고 집을 쫓겨났습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정거장 가는 길인 서문거리에서 응칠이 집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커다란 짐을 진 응칠이 아버지와, 응구를 업은 어머니,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응팔이, 보퉁이를 들린 순금이, 또 조그만 궤짝을 걸머진 응칠이가 순덕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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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여기서 뭐하니? 잘 있거라. 인제 언제나 또 만나게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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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제일 앞선 응칠이의 어머니가 나를 보고 말했습니다. 나도 제일 뒤에 떨어져 가는 응칠이의 뒤를 따라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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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돈벌이하거든 돌아오너라. 또 같이 학교에 다니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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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나는 응칠이가 짊어진 궤를 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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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궤 속에는 내 책이 들어 있단다. 만주 가서도 틈만 있으면 공부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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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응칠이는 힘있게 말했습니다. 나도 가슴속으로 어서 공부를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응칠이와 다시 만나게 될 터이다 하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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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만 들어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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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서문 고개를 넘었으므로 응칠이의 아버지는 돌아서 순덕이네를 보고 하직했습니다.
 
73
“그러면 잘들 가소. 죽지만 않으면 다시 만나리 ─.”
 
74
순덕이네 엄마는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75
나도 응칠이의 목을 안고 터져 오르는 울음소리를 억지로 참으며 느껴 울었습니다. 응칠이도 커다란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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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슴이 터져 나가는 것 같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서로 목을 안은 채 참다 못해 소리쳐 울고 말았습니다.
 
77
응칠이 아버지는 나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달래 주셨습니다. 그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흐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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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지 말고 어서 돌아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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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응칠이의 팔을 잡아 끌었습니다.
 
80
나는 발버둥을 치며 응칠이의 뒤를 따르려 했으나 순덕이 어머니가 나를 꼭 붙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81
한 걸음, 한 걸음 우리의 사이는 멀어져 갔습니다.
【원문】멀리 간 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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