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호(前號)에는 너무도 적게 썼다. 여러분 글동무를 뵈올 적마다 나는 질책의 시선을 느꼈다. 그럴 족족 내호(來號)에는 많이 쓰리라, 흠씬 쓰리라고 남 몰래 결심하였다. 그러나 미래는 ‘빈손의 환영’이었다. 모든 것을 약속하고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모 것도 없었다.
5
편집회의는 열렸다. 나는 소설과 기행문을 맡게 되었다 소설은 어찌하든지 지을 수 있는 듯싶었다. 두말 아니하고 쾌락(快諾)하였지만, 기행문은 무에라고 끄적거릴 가망조차 없었다. “어데 가본 데가 있어야 쓰지.”하고 탄식하는 수밖에 없었다. “왜 해운대 갔다 오지 않았소? 그것 쓰구려.” 그 잘 웃는 도향(稻香) 군이 그 때는 웬일인지 아주 엄연히 얼굴을 바루고 이런 말을 하였다. 나의 요리조리 핑계하는 것이 미웠음이리라. 전번에 미흡히 여긴 것이 부지불식간에 발로되었음이리라. 그 푸른 서슬에 나는 유유승명(唯唯承命) 하였건만 암만해도 써질 것 같지 않았다. 과연 그의 말마따나 해운대에 갔다 온 일은 있다. 잘잘못은 그만두고, 붓을 놀린다는 사람치고야 기행문 하나 없지 못할 만한 여행이었다. 제삼자로 보면 시적(詩的)이라고도 할 수 있었나니, 별 것이 아니라, 산과 바다를 아울러 풍경이 절가(絶佳)하다는 그곳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을 작정인 운치 있는 걸음인 까닭이라. 그 길 떠나기 전에 나로 말하여도, 거기에만 가면 나의 금수심장(錦繡心腸)(문자의 참월(僭越)은 용서하라)을 풀 수 있으리라, 풀 수 있으리라 하고 내 젊은 넋은 동경에 뛰었다. 하건만 현실같이 냉혹한 것은 없다. 마치 얼음과 같이 차디찬 것이다. 아모런 고려도 없고 아모런 염치도 없는 것이다. 싸늘하게 마주치면 꽃다운 환상도 부서지고, 따스하던 감몽(甘夢)도 깨어지는 것이다. 해운대가 환상으로 나타나고 꿈으로 보일 때는 얼마나 아름다웠으랴! 그리웠으랴! 그러나 현실의 그것은 흥미 삭연(索然)할 것이었다. 이 이유는 나종에 말하려니와 폐일언(蔽一言)하고 기행문을 쓸 무슨 흥이 없었다. 그리고 또 그것은 작년 시월 일이다. 좋든 나쁘든 기억조차 희미하다. 그러므로 “해운대 갔던 기행을 써요.”란 말을 들을 때에 나는 적지 않게 민울(悶鬱)하였다. 하되 쓰기는 써야 될 사세(事勢)라 잠자는 기억을 깨워 일으키게 비롯하였다. 과거의 검은 못에 흐릿하게 잠겼던 기억이 연꽃 모양으로 봉오리 봉오리 피어 오른다. 나는 문득 정다운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그 때의 무미하고 산문적이던 사실과 감상이 의미 깊은 듯도 싶었다. 사람이란 미래를 동경함과 마찬가지로 과거도 시화(詩化)하고 미화(美化)하는 것이다. 아모리 보잘것없고 하잘것없는 것일 망정 붓 가는 대로 느낀 그것을 적어 두려고 한다.
7
경제와 시간 관계로 나는 밤차를 타게 되었다. 어느 친구 하나 없이 쓸쓸하게 차실(車室)한 모퉁이를 점령한 나는 심심하고 울적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나도 저를 모르고 저도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피차에 마주 앉고 보면 말동무가 되는 수도 있건마는 패스 덕분으로 이등(二等)을 탄 나는 그런 순간의 말벗조차 찾을 수 없었다. 내 앞에 앉은 어떤 양복 입은 일본 신사는 “나는 이등 손님이었다.”하는 태도로 점잔을 길길이 빼고 있다. 그는 제 지위를 자랑하고 재산을 자랑하는 것처럼 때때로 금시계를 내었다 넣다 하고 있을 뿐이다. 그도 내게 말을 건네려 아니하였다. 나도 그에게 말을 건네려 아니하였다. 공연히 밉고 아니꼬운 생각까지 들었다. 이러고 보니 일찰나(一刹那)의 심심파적인들 어찌 얻으랴. 게다가 연로(沿路)의 경치조차 바라볼 수 없다. 시커먼 밤빛이 산과 들을 흐리어 버린 까닭이다. 연기와 같이 안개와 같이 공간에 가물거리는 창망한 야색(夜色)도, 버릴(棄[기]) 것 아니로되 그나마 창경(窓鏡)에 쏘인 전등의 반사가 허락지 않는다. 들리는 것은 무거운 짐을 실은 소가 헐떡이듯, 신음하는 철마(鐵馬)의 닫는 음향뿐이었다. 우루루우루루. 나는 팔을 베고 누웠다. 끝 모를 명상의 바다에 잦아지고 있었다…….
8
옛사람이 말하기를, 인생은 지나가는 나그네라 하였다. 그리고 덧없는 꿈이라고도 하였다. 그것은 물거품의 그림자나 진배없는 인세(人世)의 무상함을 형용함이리라. 풀 끝에 이슬 같은 생명의 허망함을 비유함이리라. 꿈이고 나그네인 사람으로, 꿈을 꾸고 나그네가 되는 것은 꿈 가운데 꿈을 꿈이요, 나그네가 나그네 됨이다. 꿈을 꾸어 보아야 꿈꾼 내 자체가 꿈인 줄 느낄 수 있고 여행을 하고야 여행하는 이 몸이야말로 원원히 나그네인 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꿈은 몽롱한 환상일세, 몽경(夢境)에 방황할 사이에는 꿈이 나인지 내가 꿈인지 생각할 의식이 없지마는, 여행을 말뚱말뚱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일세, 길을 가면서도 넉넉히 자아를 돌아볼 수 있는 것이다. 하고 나서 추억하니 암만해도 어슴푸레하지 않을 수 없고, 하면서 깨달으니 명확치 않을 수 없다.
9
“기차는 인생의 상징이다.”라고 그 때 나는 절절히 느끼었다. 낮이면 낮, 밤이면 밤으로 목적지에 다다르지 않으면 말지 않는 이 끊임 없는 진행이야말로, 생(生)의 길을 걸어가는 인생의 꼴이 아니고 무엇이랴. 닫고 또 닫는 가운데 황량한 들판도 지내리라. 풀 푸른 언덕도 스치리라. 은옥색 무지개가 어린듯한 산모롱이를 돌아들 제 수정 같은 맑은 물이 굽이치는 경개(景槪)로운 곳도 있으리라. 어느 때는 미친 바람도 만났다. 모진 비도 맞는다. 그러나 기차는 줄곧 달릴 뿐이다. 승지(勝地)라고 바퀴의 구름을 늦추지 않으며, 풍우(風雨)로 말미암아 머리를 돌리지도 않는다. 아니 돌리랴 돌릴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동안 쓴맛도 보고 단맛도 보며, 슬픈 일도 겪고 기쁜 일도 겪음과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기쁨도 지나가고 슬픔도 지나가는 것이다. 행복도 멈출 수 없고 고통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10
그러나! 그러나! 바람과 비는 차체(車體)를 부딪히고 두드리건만 왜 승지(勝地)는 그 곁만 지나칠 뿐인가? 바람과 비에 찌들림을 받은 대상(代償)으로 푸른 멧부리와 맑은 흐름도 차(車) 안에 담기는 수가 있어야 될 것이다. 하거늘 그것은 터무니없는 망상일다!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기보담 더 어려운 일이다. 설령 초자연의 힘이 있어 승지강산(勝地江山)을 그대로 베어온다 할지라도 차(車) 안에 들게 만들려면 산을 깎아야 될 것이며, 물은 흘러서 밑바닥의 널조각이 썩고는 말 것이다. 인생에 있어도 그러하다. 비애와 고통은 뼛골에 사무치건만, 행복은 멀리멀리 애닯은 그림자만 보이고 있을 뿐이다. 아모리 발버둥을 치고 두 팔을 내어 밀어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안을 수 없는 것이다. 갖은 고초와 온갖 곤란을 무릅쓴 끝에 헐떡이는 숨을 돌리고 흐르는 피땀을 닦으며 “인제야 잡았구나.”하고 기뻐할 겨를도 없이. 문득 깨달으면 잡으려던 행복의 월계화는 손아귀에 들어도 오기 전에 벌써 편편이 떨어지고 비애의 형극만 손바닥을 찌르고 있을 뿐이다.
11
이런 쓸데없는 공상의 장류(長流)에는 허우적거리고 있던 나는 감은 때 모르는 눈을 뜨게 되었다. 내 앞에 앉은 이가 어데 갔다가 돌아와서 털썩하고 나려 앉는 소리에 놀래었음이리라. 아마 식당에 갔다옴이리라. 그 자꾸자꾸 부어 오른 것 같은 부석부석 살찐 얼굴이 주기(酒氣)를 띠어 불그레하게 하였다. 매우 만족한 듯이 몸을 뒤로 제치고 있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나는 문득 전일(前日)에 읽은 모파상의 단편 「목가(牧歌)」를 생각하였다. 그 경개(梗槪)는 이러한 것이었다. 기차는 ‘지에루’를 떠나 ‘마르세이유’를 향하고 진행한다. 오월 그믐 가까운 때이다. 햇발의 비는 나리 붓는다. 한껏 핀 시토론, 오렌지, 장미꽃들은 열린 차창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향기를 심어 흘리고 있다. 그 객차의 한 칸에 미륵 같은 살찐 계집과 말라깽이 젊은 사나이가 말없이 마주 앉아 있다. 계집은 판 삶은 계란, 술을 주린 듯이 먹고 있다. 사나이는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다. 피차에 모르던 남녀가 서로 말을 통하고 보니 다같이 고향 사람이라, 서로 제 신상을 말하게 되었다. 계집은 유모 노릇하러 가는 길이고 사나이는 직업 구하러 가는 길이었다. 비반(肥胖)한 계집은 자꾸 잠을 흘린다. 젖이 불어서 못 견디겠다고 하소연한다. 궐녀에게는 젖 많은 것이 마음의 무거운 짐이라. 그것 때문에 숨길이 막히고 수족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하였다. 사실 궐녀는 기절이나 할 듯이 거북해 보이었다. 어떤 조그마한 정거장에서 정차가 되자 유모는 어떤 여윈 여자가 보채는 어린애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이런 말을 하였다.
12
“……부모 자식을 다 버리고 고용살이 하러 가는 터이니 돈이야 넉넉지는 못하지만, 만일 저 애가 단 십분이라도 좋으니, 이 젖을 빨아 주면 오(五) 프랑크쯤은 안 아끼고 줄 터이야. 그러면 저 애도 좋고 나도 좋겠지…….”
13
그리고 땀을 척척 흘리며 “아아 죽겠네.”라고 하였다. 그리고 가슴을 풀어 헤쳤다. 터질 듯이 불은 젖가슴과 고구마 같은 젖꼭지가 나타난다. 보다 못한 사나이는 자기가 그것을 빨아줄 수 있는가 물어 보았다. 계집은 낙종(諾從)하였다. 퉁퉁 불은 것을 그 사나이가 다 빨아 먹었다. 그리고 나서 계집은
14
“매우 폐를 끼쳤습니다. 무에라고 사례할 말씀이 없습니다.”
15
라고 한즉, 사나이는 감사에 채운 소리로,
16
“아니올시다. 사례는 내가 해야지요. 나는 이틀 동안 쫄쫄 곯았습니다.”
17
이 몇 페이지 아니 되는 단편 가운데 심각한 인생의 반어가 포함된 듯싶었다. 시간의 기차에 실리어 바람이 닿자 번개가 번쩍이듯 물이 흐르듯 구름이 사라지듯, 죽음의 정거장에 아니 닿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우린 다 같은 운명을 짊어진 사람이어늘 왜 누구는 살이 찌며 누구는 여위는가. 어떤 놈은 배불리 먹고 어떤 놈은 주리는가. 인간의 모든 불편과 모든 불행이 거의 다 여기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인류가 생긴 이래 기만만세월(幾萬萬歲月)을 두고 비린내 나는 전투와 혁명이 몇 번을 반복하였는지 모르리라. 하건만 그 보람도 없이 지금껏 이 문제는 해결의 서광을 볼 수 없다. 몇 천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그러나 살찐 놈은 살에 눌리어 고통을 받고, 주린 놈은 주림으로 하여 고통을 받는다. 과연 인생은 화택(火宅)일다. 고해(苦海)일다! 아아 언제나 언제나 불고 또 불어 견딜 수 없는 젖을 배고픈 이가 빨아 주며, 주린 창자를 살찐 이가 채워 줄까?
19
그 이튿날 부산 있는 종형(從兄)집에서 아츰을 마치자 밤새도록 기차에 흔들려 피곤한 것도 잊어버리고 급급히 몸을 일으켰다. 궁둥이가 들먹들먹하며 어째 전차 가는 것이 느릿느릿하여 초조한 생각을 억제할 수 없었다. 자동차를 바꾸어 탈 남문(南門)에 다다르자 열 점에 떠나는 것은 벌써 떠났고 열 두 점에야 해운대 가는 정기 자동차가 있단 말을 들을 나는 이 두 시간 동안을 참기 어려워 ‘가시끼리’를 할까도 싶었다. 이대도록 나는 해운대의 경치를 한시바삐 보고 싶었다.
20
대관절 내가 이다지 해운대에 동경함은 수년 전 춘원의 해운대 기행을 읽은 것이 큰 원인이었다. 실물을 못 본 나는 그 글로 말미암아 별다른 채화(彩畵) 일폭(一幅)을 어린 머리에 그려 두었었다. 나도 세(細) 모래판에 미쳐 뛰어 보리라. 청풍(淸風)에 옷소매를 날리며 눈물을 흘려 보리라. 그리고 나도 그런 시(詩)를 읊으리라. 그런 글을 지으리라 한 것이 나의 숨은 숙원이었다.
21
그러나 냉혹한 현실은 이 구차한 꿈조차, 바람(願[원])조차 깨뜨리고 말았다. 아아 내가 왜 해운대에 갔던고? 만일 가지 않았던들 내 가슴에 그려둔 그림에 길이길이 먼지가 아니 안고 좀이 뜯지 않았을 것을! 그것으로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즐겨하였을 것을! 아아 행복을 마시려다 고통을 맛보고 시(詩)를 얻으려다 너절한 신문으로 흰 종이를 묵(墨)칠함은 무슨 일인가. 모를 일이다! 모를 일이다!
22
자동차를 나린 나는 황색(荒塞) 적막한 들판에 집 잃은 어린애 모양으로 방황하였다. 산도 없지 않고 바다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나의 꿈꾸던 해운대의 산해(山海)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무에라고 말할 수 없는 풍정(風情)있는 산과 어떻다 형용할 수 없는 시취(詩趣)있는 바다를 나는 기대하였거늘 산도 그저 그러한 산이요 바다도 그저 그러한 바다이었다. “창랑(滄浪)에서 이는 일진청풍(一陣淸風)”도 나는 느낄 수 없고 “벽파(碧波) 위로 소리 없이 지나가는 일엽편주(一葉片舟)”도 나는 볼 수 없었다. 다만 무료한 한수(閒愁)를 깨달을 뿐이었다.
23
“투명한 해파(海波)를 헤치고 텀벙실 뛰어들어 두 팔로 창해를 끌어당기며 물결을 따라 오르락 나리락하는 맛”도 볼 수 없는 나는 속될망정 온천욕장에서나 몸을 씻으려 하였다. 첫겨울 날이 찬 까닭인지 다행히 사람 하나 없었다. 목욕통 한 칸에서는 물이 솟고, 다른 칸은 이 칸의 넘친 물을 담아 가득하였다. 두 통의 물을 마음대로 멋대로 혼자 써서 석탄에 그을은 몸을 한껏 시쳤다. 그리고 그 떳떳한 물에 몸을 잠그고 있었다. 피곤한 몸이 해면(海綿)같이 풀어지며 나른하게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24
늘어지게 심신 세척을 한 나는 다시금 해안으로 나왔다. 물결이 출렁거리는 언덕 위에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늠실늠실 닥치는 창파는 스르륵 이리로 부딪자 버그르하고 물러서며 거울 같은 수면에 흰 화판(花瓣)의 거품을 띄웠다. 연파(煙波)묘망(渺茫)한 지평선 저편은 하늘과 바다가 한데 어우러져, 창궁(蒼穹) 한 가지 벽파(碧波)에 녹아 들어가는 듯하였다. 가슴이 시원함을 아니 느낌은 아니건만 그래도 마음 어데인지 ‘이까짓 경치야 아모 해변에서도 볼 수 있다.’하는 불만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