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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음주 단연불가(不可飮酒 斷然不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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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2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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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可飮酒 斷然不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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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일라컨 아예 거 술 자시지들 마시우. 몸 상하지 돈 낭비하지 가끔 실수하지 일 낭패하지 가정불화 생기지. 뭐 두루 해롭습니다. 아예 술 자시지들 마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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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싫어하는 사람더러 말이지 이건 술 좋아하는 날 보고 ‘음주불가론'을 쓰라니 아무렇게나 어물쩌억 해넘길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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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주량이 적다니까 술을 좋아 않는 줄 알고서 편집자는 이런 고역을 맡긴 모양이지만 천만에! 술을 많이 못 먹는다고, 애주도 하지 말란 법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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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불 나는 주량이 말이 안되게 적다. 순한 정종이라도 다직 삼사 배, 술이 아니라는 맥주도 세 고뿌면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가슴이 두근두근 숨은 새액색…… 실로 옆에서 보기도 액색하게시리 대취를 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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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던 주량이 요새 송도(松都) — 선술집 호화판의 송도 — 에 머물면서 2,3 선량한 악우(惡友)들의 학대로 소주를(本酒 30도짜리를) 일거 다섯 잔씩이나 먹을 때가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발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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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리를 하느라니까 한참 당년(當年)에 마구 위스키를 고뿌로 십여 배씩 들이켜고 다니던 그때가 그립구나! 그 당철에야 나도 대주당(大酒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두주(斗酒)를 오히려 부족타 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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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뭏든 지금은 그처럼 조금 먹는 술에 취하기만 하고 도무지 주객 앞에야 내놓기조차 부끄러운 주량이면서 ‘음주불가론' 쓰기를 비쌔니 남이 듣기에 엉뚱한 수작 같지만 그러나 못멋어도 술이 좋은 걸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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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먹는 데도 여러가지 분별이 있겠다. 배부르자고 먹는 술, 술 먹는 멋으로 먹는 술, 울분할 때 흥을 돋우자고 먹는 술, 오입할 준비공작으로 먹는 술, 술 먹고 지랄하자고 먹는 술, 그리고 그냥 술이 먹고 싶어서(알콜 중독) 먹는 술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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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남방(南方) 농촌에서 많이 보는 풍경인데 점심 새때쯤 되어 논에서 김을 매던 농군들이 새참(중간요기)으로 논두덕에 나와 앉아 막걸리들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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뻑뻐억한 막걸리를 큼직한 사발이다가 넘실넘실하게 그득 부은 놈을 처억 들이대고는 벌컥 벌게 벌컥 한입에 주욱 다 마신다. 그러고는 진흙 묻은 손바닥으로 입을 쓰윽 씻고 나서 풋마늘대를 보리고추장에 꾹 찍어 입가심을 한다. 등에 착 달라붙은 배가 불끈 솟고 기운도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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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걸 못먹게 금주니 막걸리니 하는 사람은 벼락을맞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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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배부르자고 먹는 술의 예증이요 그 다음 흥을 돋우자고 먹는 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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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 죽고 자식 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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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건 팔아 술 사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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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누더기 덮고 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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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물어 못 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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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지궁상이 홧김에 망건이라도 팔아서 한잔 먹고는 그런 청승맞은 소리를 하고 누웠는 것도 흥은 흥이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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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명의 미끈미끈한 젊은 패들이 청홍(靑紅)의 등불 밑에서 불란서 인형 같은 계집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술을 맘껏 마시고는 외치고 노래하고 실로 천하에 겁(法)할 것 없이 호기있게 노는 것도 흥은 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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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는 대개가 우울한 월급세민(月給細民)이요 가난한 서방님네들이다. 그렇던 그들이 ‘가부시끼’를 했던지 뉘 주머니를 털었던지 아무튼 옹색한 마련으로나마 이렇게 한바탕 노는 마당에는 누구 없이 영웅이요 그리고 심중은 통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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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강산(有酒江山)에 다호걸(多豪傑)이라니 여느때 손윗 상전에게 눌려 세상에 껴눌려 홀쭉하던 그들로 하여금 가다가 하룻밤 영웅이 되게함도 그리 큰 죄는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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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요런 가을철 궂은비나 구죽죽 내리고 하는 석양, 촐출해서 찾아 온 친구를 붙들어 앉히고 전골냄비나 바글바글 지지면서 골목쟁이 구멍 가게에서 되는 대로 사온 텁텁한 약주술이나마 권커니잣거니 한잔 또 한잔 잔을 거듭하면서 세사(世事)와 인정을 안존히 담화하는 이런 담아(淡雅)한 멋도 노상 거절할 것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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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이밖에 오입이나 할 준비공작으로 질탕하게 놀면서 먹는 술이나, 먹고 나서 지랄이나 하려고 일부러 퍼먹는 술이나, ‘알콜중독’ 으로 푸르르 떨리는 손 끝에 좌수우봉(左受右奉)하면서 술잔을 집어드는 술이나 이러한 술들에 대해서는 단연 ‘음주불가론’도 필요하고 ‘금주법’도 필요하고 구세(救世)신문 ‘금주호(禁酒號)’도 성가시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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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방 실상인즉 예의 미워 못할 악우들한테 끌려나가서 몇잔 하고 돌아온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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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뉘엿뉘엿하니 통으로 쏟아져나올 것 같고 골치가 빠개지게 관자놀이가 들썩거리고 조갈이 나고 정신이 가물가물하고 도무지 형벌 치고는 끔찍한 형벌이다. 누구는 술이 대취해 가지고 단상에 올라서서 금주 강연을 했다더니, 나는 술이 취해가지고 ‘음주불가론’을 쓰고 있으니 하늘이 내려다볼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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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일라컨 아예 거 술 자시지들 마시우. 몸 상하고 돈 낭비하고 가끔 실수하고 일 낭패하고 가정불화 생기고. 에, 거 아예 먹을 게 아닙니다.
【원문】불가음주 단연불가(不可飮酒 斷然不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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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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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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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3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