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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가(山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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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2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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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가(山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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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오르는 듯한 이웃집 처녀에게 하염없는 짝사랑을 해오다가 마침내 젊은 것한테 애인을 빼앗기고 남산을 지향없이 헤매고 있던 한 늙은 호랑이가 한양성을 쌓는 바람에 공주 계룡산을 찾아가다가 때마침 나이 삼십이 넘도록 혼처를 구하지 못하고 비관하던 나머지 목을 매러 산에 올랐던 처녀를 만나서 손에 손을 잡고 멀리 계룡산으로 사랑의 보금자리를 찾아갔다는 ― 듣기에도 맹랑한 전설이 떠돌아다니고 있는 구혈산(九穴山) 밑 반신불수가 된 느티나무와 호랑이가 처녀와 잔치를 했다는 초례봉 사이로 아담스러운 동리가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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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에 콩 나듯 감나무와 대추나무 사이로 뜸뜸히 한 채씩 집이 놓여지기는 했을망정 달걀껍데길 재켜놓은 것같이 산잔등이 둘러싸서 그지없이 아늑한 인상을 준다. 집이라고 여남은 채 ― 그러나 실상은 도합 일곱 집이었다. 나머지 세 채는 집이 아니라 건넌마을 김 주사가 억지로 꾸리게 한 거름집이었다. 이 동리가 궁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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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만은 로맨틱하지마는 실상 구혈산은 하나도 값비싸게 사줄 만한 것이 없는 평범 ― 하다니보다는 차라리 야산이었다. 오직 출입구가 아홉이나 되는 커다란 굴이 산중허리에 있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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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구혈산이건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도회 기분을 풍기고 지나가는 기차 덕분에 피크닉이라는 말을 얻어들은 정거장 친구들이 봄 가을로 정종병을 메고 와서는 구혈산에서 하루씩을 보내고 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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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구혈산이 갖는바 자랑은 ― 실상 자랑이랄 것도 못 되지마는 ― 산 모습이 백발노인이 두 다리를 쫙 벌리고 앉은 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언뜻 보면 그렇게도 보였다. 더욱이 A자형으로 된 맨상상봉을 실낱같은 길이 가로타고 지나간 것도 동리 사람들 말대로 한다면 ‘가리마’같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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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궁말이 달래 좋다는 게 아니지. 마음 착한 할머니가 손자놈을 데리고 앉은 상이거든! 봐, 우리 궁말이 구혈산의 손자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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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궁말 사람들이 걸핏하면 잘 내세우는 소리지마는 그렇게 보면 그런 성도 싶었다. 그리하여 정거장 친구들이 구혈산에 오르기만 하면(상상봉에서 궁말이 빤히 내려다보였다) 궁말의 위치를 찬송한다. 봄이면 뒷동산에 불송이처럼 핀 진달래를 들추었고 가을이면 홧대불처럼 무럭무럭 불꽃을 하늘 높이 뻗고 있는 감나무의 진한 단풍을 예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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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구혈산에서 내려다보는 궁말의 전망도 좋지마는 가을철 대추와 주먹만큼한 감덩이가 뒤룽뒤룽 매달린 것을 보는 맛도 싫은 것은 아니었다. 사오천 평 남짓한 구역 내에 백여 주의 감나무와 사오십 주의 대추나무가 흡사 과수원처럼 들어박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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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궁말이 낯이 깎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고 팔 데가 없다는 것이다. 성냥 한 갑을 사려 해도 십리가 넘는 장터로 나가야 하고, 막걸리 한 잔을 사먹으려도 칠 마장이나 되는 사그내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런 데서 되레 궁말의 값이 올라가는 것일지도 모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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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튼 궁말이란 이런 곳이었다. 서울 ××직조공장에서 그와는 실낱만한 인연도 없을 어떤 부잣집 따님들의 몸치장거리가 될 부사견을 짜다가 왼손 날라리뼈에서부터 몽창 끊긴 창건이가 궁말을 찾아온 것도 손바닥만큼한 감나무잎이 누릇누릇 단풍이 들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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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이는 몇 번이나 방망이 끝처럼 맨송맨송한 팔목을 내려다보고는 한숨을 지었다. 그는 어떤 놈하고 맞붙어서 단병접전이나 하다가 끊어졌다면 차라리 단념될 것도 같았다. 낯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계집년들의 호사감을 짜다가 애지중지하는 그 예쁘장스런 손목을 몽땅 잘린 생각을 할 때마다 터질 곳 모르는 울분이 치받고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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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다고 팔목만 들여다보고 앉았을 수도 없었다. 누구보다도 그를 싸고돌고 세상 이치를 일깨워주는 상수의 덕분으로 찾아낸 위자료 삼십원 나머지를 해어진 지갑 속에 싸고 싸서 들고는 오직 한 줄기의 혈육인 누님을 찾고자 서울을 떠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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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그랬지마는 해도 뉘엿뉘엿해서 창건이는 K정거장에 내렸다. 어린 조카나 줄 양으로 과자 한 근을 사서 수건에 꾸려 매가지고 궁말 어귀에 들어선 때는 가느다란 저녁 연기가 하닥하닥 처마 위를 기어올라가고 있었다. 일남네 산모퉁이를 돌아서 한데 우물 앞을 지나려니 울려고도 하지 않았건마는 문득 눈물이 솟았다. 어제 같으면서도 이미 먼 과거가 되어버린 그 옛날이 생각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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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이는 세 번 이 우물 앞을 지난 일이 있었다. 한 번은 그가 나이 어렸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따라서 출가한 지 삼 년째 나는 누님을 찾았었고, 그 다음이 서울 W고보에 입학하던 해 여름방학이었고, 맨 마지막이 그가 이학년 초에 학교를 떼어엎고 ××직조공장의 소년공으로 들어가던 바로 사 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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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집엔 감나무가 퍽 많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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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팔에 매달리어 이런 것을 물어가며 누이를 찾던 그 시절. 그후 남처럼 금단추를 단 교복을 떨쳐 입고 눈이 부실 장래를 꿈꾸어 가며 누이를 찾아가던 그 시절. 그때 산모퉁이를 돌아서려니 물 길러 왔던 누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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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규! 창건이가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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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뛰어오다가 물동이까지 깨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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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던 이 길을 삼 년 전에는 상복(喪服)에 조그만 캡을 눌러쓰고 기운 하나 없이 누님을 찾았던 것이다. 그날 누님은 마당에서 콩을 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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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 그 한 길을 찾아드는 오늘날의 이 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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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은 맨송맨송한 손목을 또 한번 꺼내어 보았다. 좁다란 길이 좁았다 넓었다 한다. 순간순간이 음숙한 굴헝도 되고 커다란 바위부리도 되어보였다. 그래도 그는 그것이 눈물의 탓인 것은 채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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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떨어진 양복 저고리 왼쪽 주머니에다 그는 병신 팔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오른손으로 눈물을 닦고 모자를 바로잡아 쓰고는 아직도 누님에게 손목을 잡히어 갈 때 기억이 아물아물하게 남아 있는 좁다란 밭둑을 타고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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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감나무가 하나, 그 밑에서 아이들 서넛이 연시를 따먹느라고 둘러섰다. 그는 ‘누님네 아이나 없나’하고 살펴보고 나지막한 울타리를 끼고 마당 한가운데 놓여 있는 바위 곁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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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위를 빼면 해롭다고 해서 그냥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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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이 그때 이렇게 그에게 설명하던 것을 생각하며 창건은 뜰 위로 올라서며 누님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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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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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지 괴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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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 누님을 찾으려니까 집 뒤에서 뭐라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파란 양재기에 장을 떠 담아 들고 누님이 쫓아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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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규! 이게 웬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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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은 창건이를 보자마자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는 금세 짤끔 한다. 그러더니 문득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의 손을 가만히 주머니에서 꺼내어 이리한 번 저리 한 번 들쳐보다 말고 그만에 ‘으악!’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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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어린애처럼 따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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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비둘기처럼 동그마니 남은 남매가 서로서로 붙들고 목을 놓아운 지도 아마 삼 년 전 창건이가 열아홉 나던 해 가을의 일이었다. 그후 창건의 손목은 다시 자라지 않았어도 삼 년이란 세월이 말없이 흘러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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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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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란 추억을 즐기도록 만들어진 동물이다. 그리고 그 추억의 대답이 쓰린 것이면 쓰린 것일수록 애틋한 것이며, 애틋한 것일수록 달콤한 것이다. 사람이란 결국 그 맛으로 사는 것이 아닌가도 싶을 만큼… 그리고 옛날을 추억하는 정에 있어서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현재의 생활이 지나간 옛날의 그것보다도 비참할수록 그 정은 더한층 새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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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심정은 창건이와 같은 불구자에게는 더한층 뼈에 사무치기도 하려니와 가버린 애인처럼 그립기도 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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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은 사무실로 되어 있는 조그만 방에서 푸석푸석 시름없이 떨어지는 낙엽 소리를 들어가며 그날도 가버린 옛날을 눈앞에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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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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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는 그제서야 알아듣고 앉은 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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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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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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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쇠냐? 박 선생님한테 갔다 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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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오늘두 못 오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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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까지 깡똥하니 고의를 걷어올린 열대여섯 된 아이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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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러시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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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 대단하시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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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참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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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선생이란 열다섯 된 소년이다. 운송점에서 급사로 있다가 모르고 그곳 야학 선생에게 등사판을 몰래 빌려준 것이 사건이 돼서 집에 와 있는 건강 씨의 아들이었다. 그는 저도 배울 겸 바쁘면 을반을 맡아서 가르치기도 했다. 어머니가 벌써 여러 날째 위험 상태에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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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이는 아이를 내어보내고 교실 안쪽을 쓱 한번 훑어보았다. 가을철이라 그런지 아직도 태반은 아이들이 안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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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방대에 희연을 꼭 재어서 한 대 담았다. 담배를 피워가며 꾸미어두었던 교재를 다시 한번 보살폈다. 생각하니보다도 아이들이 정성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대견하다. 한 달에 하나씩이라도 아이들이 늘어가는 것도 그지없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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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달린 종을 흔들고 두루마기 고름을 고쳐맨 후 교실로 되어 있는 옆방으로 들어갔다 . 맨멍석 위건마는 바둑돌처럼 단정히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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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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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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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시간은 산수였다. 보통학교 삼학년 정도인 갑반에서는 문제를 내어주고 일학년생인 을반은 외자리 갓법을 가르쳤다. 메인 대통처럼 아둔한 아이들을 달래어 이만큼이라도 알아듣게 만든 자기 교수법에 이제는 웬만큼은 자신도 생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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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시간은 ‘한글 맞춤법’이다. 셋째가 ‘일어 회화’. 이렇게 시간을 마친 그는 아이들과 함께 궁말로 넘어왔다. 재거리 고개에서 아이들은 제각기 흩어지고 네 아이만이 그의 뒤를 따라왔다. 한데 우물 앞에서 네 아이들이 다 떨어져나가고 그는 디딜방앗간을 옆으로 끼고 누님 집을 지나서 조그만 산잔등을 올라갔다. 벌써 이틀째 못 오는 박 선생 문식이를 찾으려 함이었다. 덜 익은 감빛 같은 달이 문식이네 용마루 위에 있었다. 그야말로 삼간 초옥 방 한 칸에 부엌 한 칸 뜰팡 한 칸, 뜰팡에 대어 반 칸이나 될까말까 한 어리만 해놓은 헛간이 있었다. 울도 담도 없이 동그마니 드러난 거적한 닢 깔리지 않은 뜰팡을 누런 달빛이 망설이듯 조심스럽게 들이비추고 있었다. 저것이 사람 사는 집인가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더욱이 그래도 이동리서는 최고 인텔리라는 ‘건강’ 씨의 거처하는 집인가 하니 하늘조차 너무 무심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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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씨는 궁말은 고사하고 구혈산 일대에서는 가장 유식한 축이었다. 비록 조선말 이외에는 다른 나라 말을 못할지언정 통감권도 읽었고 시전편도 외우는 그다. 옛날 사립학교를 마치었다느니만큼 웬만큼 사칙문제쯤은 암산으로도 풀고 신문장을 들고 ‘군축 문제’니 1935년이니 하는 사람도 창건을 빼놓고는 그뿐이었다. 일찍이는 독립 운동에 참가했었고 그후 어떤 신문 분국을 경영한 일이 있다는 것만은 들어서 알지마는 어떻게 돼서 그가 이 촌구석까지 굴러들어왔는지를 아는 사람은 건강 씨 자신밖에 없었다. 그는 일체 입을 열지 않았다. 아는 체도 않았다. 자기의 걸어온 옛이야기를 꺼내는 법도 없었다. 그러기에 동리에서도 진서 편지를 보는 것으로 미루어서 그가 ‘행세글’은 된다 할 뿐이요,얼만한 학식을 갖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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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는 ‘건강’이라는 말을 유독 잘했다. 실하게 크는 나무를 보아도 가리켜 ‘건강한 나무’라고 한다. 물결이 세차게 흐르는 것을 보아도 그는 ‘건강하게 흐른다’고 하였다. ― 이리하여 ‘건강(健康)’이 바로 그를 부르는 이름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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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이가 궁말에 온 지 한 두어 달쯤 됐을 때였다. 궁말에서는 갑자기‘염병’소동이 났다. 창문네 집에서 생긴 병균은 이웃집으로 다시 옮아갔다. 그들은 쉬쉬 했다. 염병이라고 하면 펄펄 뛰었다. 홍재라는 사람은 주재소에 고발하는 놈은 낫으로 배지를 가른다고 소리소리 쳤다. 급기야 병균은 건강 씨 여편네한테로 뛰어갔다.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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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하는 병을 숨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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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진해서 주재소로 뛰어가서 온 동리에 소독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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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이가 건강 씨의 사람됨을 알게 된 것도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였다. 그가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이 촌에서 야학을 시작한 것도 건강 씨가 있다는 데서 용기를 얻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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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씨는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묵묵히 일을 할 따름이다. 모든 것을 단념한 ― 아니 모든 것을 초월한 철인처럼 그의 생활 태도는 고결하고 순박한 맛이 있었다. 크게 기뻐하는 것을 본 사람도 없고, 또한 크게 노하거나 잗다랗게 불평을 깐족이는 것을 본 사람도 없었다. 열다섯 된 문식이를 맏이로 세 살 터울로, 세 살난 갓난애까지 오형제(모두 아들이었다)와 자기 내외 도합 일곱 식구가 남의 땅 세 마지기를 농사랍시고 해서 먹으면서도 그는 군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는 말 못하는 소처럼 그저 일하고 먹고 자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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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놈들은 밥에 체하는데 우리는 일에 체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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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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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체한 데는 영신환을 먹더라만 일에 체한 덴 뭘 먹노?… 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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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말에 은거한 지 팔 년. 그는 농사에 애이는 일이 없었다. 낫질, 지게질은 말할 것도 없지마는 가래질, 쟁기질까지 무엇 하나 농군에게 빠지는 것이 없는 그다. ― 아니 그 건강 씨를 보고 농군과 조금이라도 달리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알아듣기 쉬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농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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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식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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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이는 달빛에 비친 마당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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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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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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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식이가 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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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편찮으시다더니 어떠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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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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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에 지적지적해진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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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미처 건강 씨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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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걱정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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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는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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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걸요. 첨엔 어떨까 싶더니 절망 상태에 빠지고 난 후로는 되레 안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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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그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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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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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슬슬 감나무 밑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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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것들을 위해서라도 쉬 일어나셔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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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지요. 어린것들을 위해서라도 쉬 죽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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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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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가 놀랄까 겁을 냄인지 달은 건강 씨의 표정을 비춰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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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란 결국… 그러고 나면 결국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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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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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서운 전율을 느끼었다. 풀잎에서 이슬 방울이 스미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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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명은 아직 모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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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뻔하지요. 굶은 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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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건강 씨는 약간 불평스런 어조로 말을 꺼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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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병이란 신경병과 함께 현대 문명병이지요. 원시시대엔 그런 병이 없었지요. 결국 과학이란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는 겝니다. 뉴튼이 나기 전보다 인류는 훨씬 더 불행해졌지요. 우리야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죠. 다 그랬으면 좋으련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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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씨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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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병자 생각을 했음인지 황황히 인사를 하고 마당 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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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방문을 열기 전에 창건이는 몹시 신음하는 병자의 앓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더니 뒤미처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터졌다. 문식이도 달려갔다.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 울음소리에 섞여 갓난애의 ‘엄마’ 소리를 들었다고 창건이는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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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건강 씨 말대로 우리는 모두 긍용네나 덕실네나 창문네나 매형이나 내나 다 남을 위해 사는 사람들뿐이다. 그이 말이 옳다고 했다. 그남이란 한두 사람의 지주다. 몇 사람의 지주를 위해서 농사를 짓고, 한 사람의 사장을 위해서 천여 명이 피땀을 흘리고 손목을 잘리고… 상수의 말과 건강 씨의 말은 부합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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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세상은 남의 덕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남을 위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확실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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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컹!’하고 개가 짖었다. 또 도적이 들었나보다 했다. 어제도 그제도 근동에서 도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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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들도 저만을 위해서 살려는 놈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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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은 캄캄한 대공에서 도적놈을 발견하기나 한 듯이 꾹하니 개짖는 쪽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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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이 들었거든 감이나 따가거라. 벼 백이나 하는 놈들이야 감 없기로서니 굶어 죽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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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도적이 들었는지 세 집 개가 바짝 뒤집어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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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중지병으로 김 선달네 ‘오숭기’가 구수한 냄세를 퍽퍽 풍기기 시작한 어떤 날 밤, 갓난것의 “엄마” 소리도 들은 체 만 체 문식 어머니는 숨을 걷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나서 어둠 속으로 가는 그건마는 달도 그날은 없었다. 초닷새 달이 이면치레로 실쭉하니 감나무 가지에 걸렸더니 문식 어머니의 숨이 미처 걷히기도 전에 지고 말았다. 장삿날은 근래에 없이 맑게 개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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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집이니 날이나 좋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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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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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참, 날 좋군! 날은 아주 받아서 죽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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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생원도 이렇게 말하며 장죽을 물고 맑디맑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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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동리 사람은 김 생원의 이 말을 달리 해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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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능글마진 놈에 영감녀석! 장삿날이 좋아서 저라는 거겠군! 건강 댁네 죽는 바람에 환갑 잔치를 안해먹을 테니까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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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에! 옳에! 자네 말이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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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옆에서도 맞장구를 쳤다. 장삿날은 야학생 중에서 큰 아이들만이 골라졌다. 밥술이나 먹는 집이면 앞을 다투어 모여들지마는 아침이 지나서 한나절이나 되도록 손을 빌릴 만한 사람은 꽁지도 뵈지 않았다. 창건네 식구와 야학생 몇이 장사꾼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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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도 거의 아이들 손으로 꾸미어졌다. 아이들한테서 한달에 삼전씩 받는 기름값과 창건이의 총재산인 사원 팔십전, 그리고 돌아다니며 거둔 돈 이원 나머지가 장례비에 충당되었다. 이날 건강 씨의 물건이 쓰여진 것은 사발 다섯 개와 대접 두 개, 이빠진 보시기 몇 개 ― 이뿐이었다. 그밖에는 내놓을 것도 없었다. 물까지도 남의 집에서 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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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을 하고 상여가 꾸미어지도록 건강 씨는 무표정하였다. 별로 슬퍼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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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 호 ― 워 ―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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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두꾼 소리가 나자 상여가 움직움직하였다. 상여 뒤에는 문식이 아래로 열두 살, 아홉 살, 여섯 살 차례차례로 늘어섰다. 세 살 먹은 것은 커다란 사과 한 덩이를 들고 동리 아이 등에 업혀서 싱글벙글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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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이놈아, 그래 왜 들쳐업고 나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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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소리를 꽥 질렀다. 몹시 그 꼴이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돌아가려고 하니까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아이는 ‘빼 ―’하고 울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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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놓은 광중에 시체가 들어갈 제 한바탕 어린것들의 곡성이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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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회를 섞어서 물을 붓고 다시 눈물로 반죽을 하여 회를 다지고 합금정을 한 후에 분상을 긁어모으고 떼를 입히고 이리하여 일평생 남을 위해 살아온 그의 일생애는 완전히 끝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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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가 끝나면 바로 돌아서는 것이 죽은 사람에 대한 산 사람의 예의다. 그들은 한시를 지체 않고 발길을 돌렸다. 긍용이 등에 업힌 막내는 반이나 긁어먹은 사과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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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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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좋아라고 자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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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 좋다! 그것 먹고 얼른 커서 너도 네 어미처럼 남을 위해 살다가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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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건강 씨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그는 아무 말 없이 성큼성큼 걸었다. 마치 여편네가 따라올까 겁이나 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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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말 동리에 조당수 끓는 소리가 드높아 가건마는 그래도 가을은 가을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드높을 대로 드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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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빌어먹을 놈의 신세가 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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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를 등에 매달고 절구질을 하던 건강 씨는 절구공이를 확에다 세우고 확하니 하늘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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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사람이 왜 애새끼는 이렇게 쏟아놓고 죽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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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만 남은 잔등에 태워놓고 들까부니까 갓난것은 못마땅해서 짱알거린다. 절구질을 하다 말고 궁덩이를 툭툭 두드려주어도 여전히 빽빽거린다. 곧 절구확에다 꾸겨박고 콩콩 찧어버리고 싶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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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착하다! 인저 엄마 온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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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달래다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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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친놈이지! 이런 놈의 세상에서 먹구살겠다는 것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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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공이를 세우고 땅이 드놀게 한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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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저를 어째. 손수 절구질을 하는구려.”
 
138
창문 아주머니가 키를 옆에 끼고 지나가다 말고 한 걸음 다가서며 남의 일 같지 않은 듯이 말한다.
 
139
“아이가 그래 그렇게 보채는군요. 아이 저를 어쩌나.”
 
140
“흥.”
 
141
하고 건강씨는 코웃음을 친다.
 
142
“그래 보채는지 어째 보채는지 누가 안다우. 그저 기를 쓰고 악만 쓰니.”
 
143
“웬 그놈의 염병이 들어와서.”
 
144
“ 허 참,창문 아주머니두. 그래, 얘 어머니가 염병으루 해서 죽은 줄 아우?”
 
145
“그럼요?”
 
146
“흥, 굶어죽은 게지라우! 거위가 거세면 병도 못 붙지요. 난들 누가 아우. 이러다가 앓아누우면 그대로 뻐드러질 테지만 있는 놈이야 병들어 죽었다지 굶어죽었다는 놈이 어디 있소.”
 
147
입으로는 “딱해라! 어쩌나!” 하면서도 그들에게 쌀 한줌 주는 사람은 그러나 없었다. 그렇다고 맘씨들이 매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전에는 그래도 “아무개네 밥 좀 먹구 가우.”라든가, “우리집 호박 좀 따다 잡슈.”라든
 
148
가 하는 소리가 울타리 새로 들리던 궁말이건만 지금은 그런 소리는 꿈에도 들어볼 수 없다. 제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를 끄기가 더 급했던 것이다.
 
149
아내와 어머니를 한꺼번에 잃은 문식이 부자의 생활은 날로 달라갔다. 건강 씨는 벌써 논밭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낡은 주머니끈에 매달린 괴물처럼 주렁주렁 달린 어린것들의 뒤를 거두랴, 아침 저녁으로 밥시중 들랴, 그야말로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그의 한 몸으로써 감당할 수 있는 범위는 세 살 먹은 것을 온종일 들쳐업고 있을 정도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도 벅찼다. 그의 수중에는 세 살 난 어린것의 창자를 채워줄 만한 양식의 준비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150
그렇건마는 건강 씨는 그런 내색을 한번도 남 보는 데서 하지 않았다. 동리 사람들은 그를 재주가 용하다고 하였다. 엔간히 꾸려간다고 하였다. ― 그러나 사람이란 누구든지 그만한 재주는 타고난 것이다. 없으면 굶는 재주 그러나 그 재주는 ! 한이 있는 것이다. 그 재주가 마르면 문식이 어머니처럼 죽어가는 것이다.
 
151
건강 씨가 아내가 죽은 후로 변한 데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허허”하는 너털웃음을 웃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그는 기가 막힐 때마다 “허허허” 하고 웃었다.
 
152
“일곱 살 먹은 놈부터는 그래도 지각이 났는지 먹을 것을 봐도 냉큼 덤비지를 않습니다. 아마 제 어미가 일찍 죽으면 철도 일찍 나는가봅니다그려. 허허허.”
 
153
건강 씨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서도 허허 웃었다. 아침 저녁으로 건강 씨의 부엌을 찾는 것이 창건의 거의 일과였다. 젖먹이를 들쳐업고 반 칸 폭도 못 되는 아궁이 앞에 빽빽하니 둘러앉았다. 못바늘이나 다루듯이 어색해 보이는 건강 씨의 솜씨였다. 파 두어 오리를 잘라서 끓인 멀건 된장찌개, 간장 ― 이것뿐이었다.
 
154
밥은 언제든지 한 그릇이었다. 한 그릇을 아이들 다섯한테 떠맡기고 자기는 눌은밥을 먹는다고 부엌으로 나온다. 한 그릇 밥에 밥이 눋는다면 얼마나 눌으랴? 그는 하얀 빛 그대로 있는 밥알이 몇 개 뜬 맑디맑은 냉수를 아이들 보는 데서 후룩후룩 들이마시곤 한다.
 
155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156
창건은 아침을 먹고 나서 밥 한 그릇을 들고 건강 씨 부엌으로 들어갔다. 한사코 말리므로 살며시 부뚜막에 놓고 갈 양으로 들어섰다가 제법 소복하게 담긴 밥그릇을 보았다. 날된장 그릇과 젓가락이 놓인 것을 보면 밥을 먹다 말고 방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157
“아, 그건 또 왜!”
 
158
어느 틈에 건강 씨가 나타났다.
 
159
“여기도 이렇게 밥이 있는데 어떻게? 진지는?”
 
160
“지금 막 먹고 오는 길입니다.”
 
161
“그럼 실례합니다. 먹어야 산다니…”
 
162
그는 또 한번 웃었다.
 
163
창건이는 무심코 보다가 건강 씨의 밥그릇 속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였다. 자세히 보니 밥 담긴 밥그릇 속에 보시기 밑구멍이 드러나보인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164
“웬 보시기가 밥그릇 속에!”
 
165
하고 보시기를 가리켰다. 건강 씨는 ‘아차!’하는 기색이더니 그래도 허허 웃었다.
 
166
“아, 그예 바닥이 드러났군. 문식이란 놈이 나이답지 않게 하도 내 걱정을 하기에 한 사오 일 전부터 이런 궁리를 해냈지요. 허허허.”
 
167
창건이 눈 속이 화끈했다. 저러면서도 아무에게도 군소리를 하지 않는 건강 씨가 그에게는 그지없이 존경받을 만한 존재처럼 생각되었다.
 
168
일년내 농사라고 지은 것도 다 김 생원네 뜰앞에 쌓아준 그다. 벼 열두 말을 지고 넘어오다가 그나마도 장리 먹은 것을 닷 말 빼앗기고 겨우 일곱 말만 지고 왔다는 건강 씨면서도 그는 일년 식량은 되는 듯이 말하고 있다.
 
169
저러고 이 엄동을 어찌 날 것인고 하는 생각만 하여도 창건이는 눈앞이 아득하였다. 건강 씨도 문식이도 그리고 나머지 네 아들도 종당은 저 어머니가 밟은 길을 밟게 될 것이 아닐까? 저러다 병이 들고 약 한 첩 못 쓰고 죽으면 이제는 버젓하게 상여도 못 써보고 지게에 져다가 고려장을 지낼 것이 아닐까?
 
170
그러나 어디 그네들뿐이랴? 이 동리 사람은 ― 아니 이 세상의 남을 위해 사는 모든 사람이 그런 길을 밟을 것이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요, 매형도 누님도 다 그럴 것이다. 정당한 태도로 생활을 영위하려는 모든 사람이 응당 밟게 될 그 길 ― 그 길을 무서운 전율을 느끼며 창건은 바라다보는 것이었다.
 
171
이러고도 오히려 세상이 평온한 것이 창건에게는 한 수수께끼였다. 날이 갑자기도 아니지마는 드르릉 추워졌다. 해마다 이 철이면 당하는 고초지마는 그들의 배움의 터에는 나무 걱정이 또 하나 생기는 것이다.
 
172
그들은 의논하여 야학생 총출동으로 나무를 하기로 하였다. 마침 차기는 하였으나 볕이 따스하였다. 그들은 「야학가」를 소리 높이 불러가며 산에 올랐다. 창건이도 매형의 지게를 지고 따라 올라갔다.
 
173
「아리랑」이며 「저 건너 갈미봉」이며 야학가 같은 노랫소리가 두서없이 구혈 산중에 흩어졌다. 가끔 숲새에서 웃음소리가 깨어졌다.
 
174
비록 나이야 어릴망정 이십여 명의 힘과 용기와 정열이 합쳐진 일이다. 한낮도 되기 전에 벌목해간 터의 고주박만으로도 대여섯 짐은 실히 되었다. 그리고 그만하면 한 달 동안은 족하였다. 초례봉에서 한바탕 법구 놀음을 하고 쉬었다. 흥이 겨워 뛰노는 중에도 문식이만은 한풀이 죽은 것이 눈엣가시처럼 창건의 가슴에 사무쳤다. 낮에는 별로 만나는 일이 없어서 몰랐더니 문식이의 얼굴은 노랗다 못하여 시었었다. 팔과 다리는 보탬없이 말라빠진 삼대 ― 그대로다.
 
175
“요샌 어떻게 지내나?”
 
176
먼저 걸어가다가 뒤따라오는 문식이를 돌아다보고 창건은 물어보았다.
 
177
“그저 그렁저렁 살아가지요. 요새 같아서는 살기 위해서 먹는 겐지 죽기 위해서 먹는 겐지 심판을 모르겠어요.”
 
178
“어째서?”
 
179
“선생님, 생각해보세요, 그렇잖은가 ― 먹거든 싱싱해야 할 게 아닙니까. 그런데 먹어도 시드니 웬일입니까?”
 
180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181
비알을 지나서 궁말로 내려서는 길목에 이르러서야 멋멋하던 침묵을 깨고 문식이가 창건의 옆으로 바짝 다가서며 갑자기 이런 말을 물었다.
 
182
“선생님, 살인죄라는 것은 어떤 것을 살인죄라고 그럽니까?”
 
183
“살인죄라는 건…”
 
184
하고 대답하면서도 그는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185
“살인죄에는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것과 또 하나는 부주의로 죽인 것들이 다 살인죄겠지. 그런데 왜 갑자기 살인죄는?”
 
186
“글쎄요 ― 그러면 제 동기간을 죽여도 살인죈가요?”
 
187
“그야 물론. 그런 건 왜 묻나? 갑자기?”
 
188
그는 문식이를 꾹하니 노리고 보았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지 악을 썼다. 돌아보니 장성이가 나무를 진 채 넘겨박힌 것이었다.
 
189
다행히 다친 데는 없었으나 장성이는 일어나지를 못하고 깔고 뭉기었다. 지겟다리를 벗겨놓아도 폭 거울러져서 몸을 가누지 못한다.
 
190
“이런 자식두! 그래 고것을 지고서 짤짤맨다니?”
 
191
누군지 야무지게 쏘아붙였다. 옆에서 따라오던 만복이가 그 말을 받아서 둘째손가락을 쭉 뻗치어 표독스럽게 덕수의 턱을 푹 치걷으며,
 
192
“요런 앙큼스러운 자식 보게. 요녀석아, 너는 조밥이라도 아침을 먹은 생각을 못하니?”
 
193
이 말을 듣자 장성이는 폭 엎어지며 흑흑 느껴 울기를 시작했다. 창건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194
“그래, 장성이는 오늘 아침도 못 먹었니?”
 
195
― 그러나 창건이는 만복이의 대답에 다시 한번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이다.
 
196
“아이 선생님두. 여기서 아침 먹은 녀석들이 반이나 되는 줄 아십니까.”
 
197
“뭐야?”
 
198
“제가 알기에도 돌쇠 석천이 나 넷이나 됩니다.”
 
199
창건은 더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서웠다. 그는 소나기 설거지하듯 얼렁뚱땅해서 아이들을 끌고 집으로 내려왔다. 내려와서도 사무실 문을 꼭꼭 처닫고 앉아서 눈이 붓도록 혼자 울었다.
 
 
200
4
 
 
201
그 해도 다 저물어가는 섣달 스무날을 훨씬 지난 어떤 날 밤이었다. 창건은 뒹굴뒹굴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그날 저녁때 누님이 하던 말이 잠이 들만하면 그의 귓전을 울리었다.
 
202
그날 뉘 입에서 난 말인지 해토만 되면 방을 뜯어고칠 의논이 떠올랐다. 그때 매형이,
 
203
“창건이 방도 좀 뜯어고쳐야 할걸.”
 
204
하니까 누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205
“우리 그러지 말고 제 방은 제가 뜯어고치기로 합시다!”
 
206
하며 뛰어왔다.
 
207
전 같으면 매형 보기 미안해서 미리 까느라고 그랬다고 선의로 해석하고 말 그였으나 요 근자에 와서 갑자기 자기를 눈엣가시처럼 보는 것 같은 눈치를 챈 터라 뼈에 사무치도록 느껴진 것이다. 그까진 돈 한푼 안 생기는 꼴나자빠진 선생질이라는 둥 동무 하나가 와서 잤다고 봉놋방이냐고 모진 소리를 하는 것이 귀담아들어서 그런지 유달리 귀에 거슬리었다.
 
208
하기야 일년 가야 멍석 한 타래 틀지 못하는 것을 그만큼이라도 거두어주는 것만도 고맙지 않은 것은 아니지마는 병신이 된 죄로 오직 하나인 혈육이라고 누이 턱을 쳐다보고 있는 자기고 보니 좀더 살붙이답게 왜 못해 줄꼬? 하는 것이 야속도 했고 원망도 스러웠다. 믿거니 믿겠거니 해온 만큼 더 서러웠다.
 
209
그는 한참이나 서럽게 울었다. 굶어죽더라도 이곳을 떠나버릴까? 오직 한 줄기뿐인 혈육이니 미워하건 꼬집건 누이 손에 묻힐까? ― 이런 생각을 하며 창건은 건강 씨의 앞마당까지 올라갔다.
 
210
사방은 괴괴하다. ‘모두 잠이 든 게로군’하고 발길을 돌리려니까 소곤소곤하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창건은 가만히 귀를 기울이었다. 누구를 타이르는지 “그래라, 응.” 이니 “너두 그라지?” 하는 소리가 나서 그는 열다섯 먹은 문식이가 제법 어른 노릇을 하는 게다 생각하며 쓴웃음을 띠고 가만가만히 방문 앞으로 갔다. 신문으로 때운 데가 뚫어져서 방안이 환히 들여다보이었다.
 
211
아랫목 쪽으로는 갓난것이 잠이 들었고, 문식이는 세 동생을 앉히고 퍽도 간곡히 달래고 있었다.
 
212
“황식아, 너도 어머니 보고 싶지?”
 
213
“응.”
 
214
셋째 놈도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215
“너는?”
 
216
“나두!”
 
217
“옳지, 그럼 형아가 어머니 보게 해줄게. 형아가 하라는 대로만 해, 응? 모두 그라지?”
 
218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219
창건은 ‘저애가 무슨 요술을 하려고 저러노?’하고 또 한번 고소를 금하지 못했다.
 
220
문식이는 서까래 두 개로 만든 시렁 위 송판에 놓인 그릇을 내리더니 윗목에서 보시기 세 개를 내어놓고 물을 한 탕기씩이나 실하게 따라놓고는 다시 설명을 시작한다.
 
221
“자 봐라. ‘내가 먹어라! 엇!’ 하거든 똑같이 들이키어야 한다! 하나라도 늦게 먹으면 어머니가 안 보여! 알겠지? 자 모두 든다구!”
 
222
“그럼 애기는?”
 
223
하고 화식이란 놈이 형을 쳐다본다.
 
224
“응, 애기는 내가 또 보여주지.”
 
225
“그럼 아버지는?”
 
226
“아버지는 장에 갔으니까 인저 이따이따 와서 만나보지.”
 
227
“아이 좋아라! 이걸 먹으면 정말 어머니가 뵈우, 형아?”
 
228
“암, 자 들었다 ― 엇!”
 
229
세 아이들은 어머니를 만나본다는 바람에 일제히 보시기를 들어올렸다.
 
230
“자, 내가 마셔라― ‘엇!’ 하거든 똑같이 먹어야 한다. 늦게 먹는 애
 
231
눈에는 어머니가 안 보인다, 알았지?”
 
232
이런 설명을 하고 있는 문식의 얼굴이 희미한 등잔불 빛에도 보기 싫을 만큼 무섭게 일그러지는 것을 본 바로 그 순간 번개보다도 빠른 속도로 창건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생각이 있었다! 언제던가,
 
233
“제 동기를 죽여도 살인죈가요?”
 
234
하고 문식이가 묻던 그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235
“앗!” 하고 가슴이 쿵더쿵 뛰었다. 그는 큰기침을 “칵!” 하고 문을 펄쩍 열었다.
 
236
“문식아!”
 
237
그는 무엇에 쫓긴 사람처럼 뛰어들어가서 아이들의 보시기를 빼앗았다. 놀란 아이들이 일시에 울음보를 터뜨리었다.
 
238
창건은 노르무레한 그 물이 무엇인지를 즉각적으로 깨달았다. 그는 그것을 밖에다 모두 쏟아버리고 윗목의 빨랫줄과 주머니에서 조그만 창칼까지 압수했다. 더는 위험성있는 물건이 없는 것을 다지고서야 그는 물었다.
 
239
“아버지는 어디 가셨니?”
 
240
“장에 가셨어요."
 
241
창건은 우선 세 아이들을 달래서 재우고,
 
242
“그것을 애들한테 먹이면 어쩌잔 말이냐?”
 
243
하고 달래듯이 물었다.
 
244
“죽일랴고 그랬어요.”
 
245
“무엇?”
 
246
그는 새삼스러이 이와같이 놀랐다.
 
247
“살려두는 것은 죄여요! 먹을 건 자꾸 달라지요. 줄 건 없지요! 어떻게 합니까. 굶어죽느라고 바둥대는 것보다 낫지요!”
 
248
이렇게 말하며, 문식이는 방바닥에 푹 엎어졌다. 그는 어깨춤을 추썩추썩 추어가며 흑흑 느껴 우는 것이었다.
 
249
“문식아, 울지 마라! 그러고 이후엔 아예 그런 생각을 말어야 한다! 인저 네가 크면 뭣때문에 우리가 굶어죽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때 가서 정말…”
 
250
창건은 알아듣도록 이야기하였다.
 
251
“우리는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싸우기 위해서 살고 ― 싸우기 위한 삶을 위해서 먹는다. 우리가 굶어죽는다는 것은 조금도 우리의 죄가 아니요 우리의 잘못도 아니다. 잘못은…”
 
252
창건은 거품을 뿜어가며 문식이를 타일렀다. 그는 새로운 ― 새로운 ― 흥분을 느끼었다.
 
253
“알아들었느냐?”
 
254
“네!”
 
255
“알아들었으면 눈물을 거둬야지!”
 
256
“네!”
 
257
하면서도 문식이는 눈물을 그치지 못한다. 문식은 울지 않으려고 애를 쓰건만 눈물은 자꾸자꾸 흘러내렸다.
 
258
어디서인지 개소리가 자지러진다. 건강 씨가 돌아옴인가? 그렇지 않으면 또 도적이 들었나?
 
259
창건이가 문을 뻐끔히 열자 말없는 달빛이 그의 앞가슴에 턱 들어안기었다.
 
 
260
〈「신동아」 40호, 1935년 2월〉
【원문】산가(山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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