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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장 소화(山莊小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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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6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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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 소화(山莊小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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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시골집으로는 그만하면 쓰겠지만 그 집의 원주인이 참 훌륭한 부인이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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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가야 귀떨어진 동전 한푼 생산이 없이 곶감 꼬치 빼어먹듯 쏙쏙 빼어 먹던 그들이 Y씨의 알선으로 시골로 옮아앉기로 결정하자 마침 얌전한 집이 서울서도 멀지 않은 G역에 났단 말을 듣고는 그날로 집을 보러 갔던 어머니는 입에 침이 마르게 집과 집주인을 함께 추켜세웠다. 물론 탐탁하게 생각지 않으시려니 하고 은근히 걱정하던 그들은 되레 어머니 태도에 적이 놀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서도 웬만한 집은 거들떠보시지도 않는 어머니에게 아무리 시골집이 묘하기로서니 어머니 눈에 찰 리가 만무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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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집입디까,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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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초가라두 기와집보다 훨씬 낫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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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칸이나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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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칸이나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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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더욱 놀랐다. G주 있을 때의 집은 사십여 칸이나 되는 기와집이었고, 현재 있는 집만 해도 열여덟 칸이나 되는 터다. 이 집을 살 때도 착박하다고 화를 내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열여섯 칸 초가집에 눈이 어두운 것이 이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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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도 한풀 꺾이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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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하자 어머니의 얼굴에 갑자기 쓸쓸한 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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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는 어머니에게도 그럴 이유는 있었다. 첫째 백 석 미만의 추수로는 이 십 명 식구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세금과 허무할 만큼 쓰여지는 일용 푼돈에 몇 해 동안 쪼들려온 터라 아무데나 집이 난 김에 끌고 내려가자는 심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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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집에는 그러한 속다짐이 서 있는 터라 치더라도 어머니의 입으로서 원집주인을 칭찬을 하는 것은 도시 꼬단을 모를 일이었다. 웬만한 일에는 옳다 그르다 말을 좀처럼 안하시는 어머니임을 겪어와서 잘 아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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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이라도 어디 그런 티가 있던? 얌전한 것이 공손하고 상글상글 웃는 품이란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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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예쁩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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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쏙 빠졌더라. 향수에 베니칠 한 것이 어딜 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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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가 데리고 살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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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강원이가 웃음엣소리를 하니까 어머니는 “망할 녀석” 하고 눈을 흘기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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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아, 빈말이라두 문철이나 준다 그래봐라. 없는 놈이 차지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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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옜다, 그럼 그래라. 문철이 자네나 차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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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은 갑자기 웃음판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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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이도 강원이의 어머니를 어머니로 불러온 지 십 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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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그런 신여성은 조선 안에 둘도 없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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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일을 보고 막 저녁상을 받았을 때다. 어머니는 아까 이야기의 계속인지 다시금 이렇게 되뇌이었다. 어머니 성정에 두 번까지 입에 오를 여자라면 범상한 사람이 아니리라는 호기심이 났다. 그리하여 그도 바짝 다가앉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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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 ─ 원집주인은 진명 출신이었다. 일곱 해 전에 일본대학에 다니는 권덕흥(權德興)이란 청년과 알게 되어 그 해 봄에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은 항상 “가정만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지 못할 사람”이라는 것을 아내에게 입버릇과 같이 말을 해오더니 결혼한 지 삼 년 되던 겨울에 어린것의 양육을 간곡히 부탁한 편지 한 장을 남기고는 종적 없이 집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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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벌써 자기만을 위하여 일생을 바쳐줄 사람이 못 된다는 것만은 일찍부터 각오해온 그였으나 남편 방에서 편지 한 장을 발견하였을 때에는 눈 앞이 아찔하였다. 그리하여 농터를 따라서 세 살째 접어든 아들과 젖먹이 계집애를 안고는 실명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지금 그 집으로 옮아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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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다섯 해지 다섯 해 동안을 꽃같이 젊은 신여성이 독수공방을 하다니 끔찍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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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다시 한번 입에 침을 말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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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머니가 한씨의 칭찬을 하면 할수록 그는 듣기 싫었다. 한씨의 끔찍함을 이해 못하는 그는 아니지마는 그의 아내가 한씨만큼 ‘끔찍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의 아내는 이제 겨우 세 살 접어든 성순이란 년을 두고는 성순이가 종기로 다니던 병원의 의사와 자취를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어머니가 한씨를 칭찬하는 것은 그의 아내를 깎는 말이 되고, 나의 아내를 깎는다는 말은 결국 지금까지 아내를 싸고 돌던 그에게 대한 조그만 조롱이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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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이런 사람도 있구 저런 사람도 있지요,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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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좀 실쭉한 생각이 나서 이렇게만 말을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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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지 이십여 일 후엔 그도 강원을 따라서 시골로 왔다. 그는 어려서부터 의지할 곳이 없던 터라 벌써 십여 년 전부터 지금 어머니와 양부모를 정하고 있는 터고 보니 부모 자식 새에 못할 말이 없을 법한 일이건만 뺑득 어멈처럼 잘 삐지는 그는 한씨 말이 날 때마다 토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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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자식두. 그게 뭐 그리 고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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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한씨 말을 입에서 떼지 않으시는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그 심정은 그에게는 수수께끼였다. 콩을 갖다 팥이래도 그저 “오냐! 오냐?” 할 만큼 그에게 달게 구는 어머니면서도 한사코 듣기 싫어하는 한씨 말을 심심하면 끌어내는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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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한 달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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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에 그의 가슴에는 한씨에게 대한 알지 못할 질투가 무럭무럭 자랐다. 한씨의 ‘끔찍함’을 긍정하고 이해하면서도 한씨에게 호의를 가질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하루는 남은 이삿짐을 찾으러 왔을 때도 그는 종일 상을 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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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이런 사람두 있구 저런 사람두 있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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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늘 그가 내세우는 ─ 그나마도 아주 힘이 없는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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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는 점심 대접을 받고는 늦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큰 짐만 몇 개 꾸려가지고 너저분한 것은 버려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여섯시 차로 친정인 마산으로 떠났다. 떠날 때도 그는 내 아내를 데리고 간 사내를 대하는 것 같은 감정으로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그의 뒤태를 바라다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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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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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보슬비가 내리듯이 안개가 자옥하더니 해가 뜨고는 가을날처럼 날이 청명해졌다. 그는 영재(강원의 어린것)와 성순이를 데리고 동산으로 진달래나무를 캐러 갔다가 점심때가 겨워서야 내려왔다. 국수 장국을 말아 달래 먹고 화초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캐어온 진달래를 심고는 비질을 하다가 거름더미에서 이상한 종이뭉치 하나를 발견하였다. 아니 기실인즉슨 그것도 그가 발견한 것이 아니다. 성순이란 년이 코를 씻어달라고 갖다주는 종이를 무심코 들고 보니 낡기는 했으나마 고급 편전지였다. 첫눈에도 그 종이가 그들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직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의 집에서는 그러한 종이를 쓸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글줄이라고 쓴다고 각 잡지사에서 몇 권씩 원고지를 보내주기 때문에 그는 벌써 사오 년래로 종이라고는 엽서밖에 사본 기억이 없는 터다. 강원이 또한 시를 쓰는 관계로 원고지는 얻어 쓴다. 아니 그들 집에서는 안에서나 밖에서나 심지어 동정받침까지 그들의 원고지를 쓴다. 편전지가 있을 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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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거 어서 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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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장을 펴본 그는 눈에 안 익은 글씨에 놀라서 딸년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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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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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년은 거름더미를 가리키었다. 그는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 거름더미라면 어제 한씨가 못쓰는 휴지 뭉치를 거름더미에 쏟아버리고 갔기 때문이다. 그럴진대 이것이 한씨의 필적인 것만은 자명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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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갈들린 사람처럼 한숨에 읽었다. 장수로는 석 장이라고 하나 원고지로는 십여 매가 훨씬 넘을 것 같았다. 깨알같이 쓴 글씨 이것만으로도 이 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짐작할 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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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에 읽고 난 그는 공연히 흥분했다. 아버지가 어깨 너머로 넘겨다보고 계시는 줄도 몰랐을 만큼 그는 흥분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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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종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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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늘로 쓴 것처럼 쪽 뽑은 글씨다. 그는 이 한마디만 읽고도 악마와 같은 일종의 쾌감을 느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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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새삼스러이 깨닫습니다. 사랑하고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설움의 큼을 당신은 호소하셨습니다마는 그보다도 더 큰 설움은 애당초에 사랑할 수 없는 설움이 더 크지 않을까요.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가 더 크지 않을까요? 사랑이 사랑으로 그친다면 행복이지요. 그러나 그 사랑이 한 사람을 파멸시킬 때 벌써 그 사랑은 죄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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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는 안 될 사람임을 잘 알면서도 그리고 겁내면서도 기다려지는 것이 당신이다. 뻐꾹새 소리만이 호젓하게 울리는 먼산을 바라보고 그가 오기를 기다리던 때의 심경이 여자의 독특한 붓끝으로 새기듯이 그려졌었다. 청초한 달밤 문을 똑똑 두드리기를 기다리는 여인의 심경은 여자 아니면 그릴 수 없을 만큼 폐부를 찌르게 묘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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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습니다. 도덕? 그까짓 것이 다 무엇입니까? 욕도 화도 아니 죽음도 당신의 품에 안길 수만 있다면 각오하겠습니다. 사랑을 위하여 죽는 사람 ─ 이보다 더 굳센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이 보다 더 떳떳스러운 죽음이 어디 있을까요?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죽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시드는 사랑을 죽음으로 살린 사람은 적지요. 아… 그러나… 이를 모름도 아니건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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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을 통하여 본다면 하루 이틀 동안의 교분은 아닌 성싶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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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번에 다녀가신 후로는”이라는 구절이 있는 것 등을 보아 가끔 그 남자가 다녀가는 것도 추측할 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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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까봐 겁을 내면서도 남모르게 기다려지는 이 마음, 이것이 아마 사랑이란 것인가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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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은 그는 이 편지를 어머니 앞에다 메어치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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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머니! ‘끔찍’한 한씨 부인의 연애편지 좀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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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메어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참았다. 그리고 다음을 잇대어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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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종원 씨! 원컨대 나를 원망하지는 마소서. 다만 나는 약한 여자외다. 불쌍히 생각하여 주소서. 지나간 삼 년 동안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였는지는 잘 압니다. 잘 알면서도 그리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정열만 못지않은 애정을 당신에게 느끼면서도 당신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나외다. 약한 여자외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진소위 열녀가 되기를 위함은 아니외다. 그이는 자녀를 나에게 맡기고 인류의 행복을 위한 전선에 서 있습니다. 그가 내게 이것들을 맡길 때의 그 심정을 생각하오면 다시금 약해지는 나외다. 네 종원 씨? 이것이 약해짐일까요? 강해짐일까요? 그 비판은 원컨대 종원 씨 스스로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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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도덕과 애욕과 모성애와 그리고 남편의 인류의 행복을 위한 운동 ─ 그 속에 얽매이어 한적한 산장 조는 듯한 등잔불 밑에 울다 웃다 한 흔적이 연문을 통하여 뼈가 저리게까지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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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존경합니다. 존경하고 그의 일의 뒤를 받치기 위하여 나의 사랑을 희생합니다. 그는 일찍이 가정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큰 무엇이 있음을 역설해왔습니다. 더 큰 무엇! 나는 '더 큰 무엇'을 위하여 나의 이 애끓는 사랑을 희생합니다. 나는 오늘에야 내가 그에게서 맡은 어린것들을 큰일의 후계자로 만드는 것이 그의 큰뜻을 받음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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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은 그는 격렬한 가슴의 격동을 느끼었다. 다 그만두고 한 여자의 승패는 둘째로 치고 이를 악물고 모성애와 애욕 속에서 악전고투했다는 이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그의 죄를 용서할 만한 일이다. 그렇건만 한씨는 오히려 싸워서 이겼다. 훌륭하게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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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편지를 들고 바로 어머니한테로 갔다. 한씨에게 대한 미움도 새암도 벌써 없어졌다. 그는 미리 어머니가 읽으시기도 전에 널름널름하면서 되풀이하였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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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머니가 칭찬하실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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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읽던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었지마는 옆에 서서 듣던 강원의 부인과 누님들도 돌아서서는 눈물을 씻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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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가정」6호, 1933년 6월〉
【원문】산장 소화(山莊小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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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3월 13일